회귀한 탑 등반자 78화
78화 마지막 관문
[주변이 어둠으로 잠식됩니다.]
지팡이로 내리친 바닥에는 곧 완벽한 원을 이루는 어둠이 튀어나왔다.
어둠은 물결치듯이 위로 꿀렁이더니 빠르게 영역을 확장해 나간다.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고속 캐스팅’이 발동합니다!]
그것은 바닥에 널브러진 사람들을 전부 밀어지고 오직 라네스만을 남겼다.
“흐으!?”
라네스가 공간을 집어삼킨 어둠을 보고 흠칫한다.
그리고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급히 나를 찾고 있었다.
시야만이 아니라 공간을 자각하는 선의 경계선이 완전히 무너져 버렸으니 발을 내딛기도 어려워했다.
발을 앞으로 내뻗다가도 다시 되돌리며 머뭇거린다.
“걸음마부터 다시 배워야겠는데?”
“……건방진!”
쾅! 콰앙! 쾅!
라네스는 내 도발에 넘어가, 뭉뚝한 둔기를 마구 휘둘렀다.
“어디냐! 나와라! 미꾸라지처럼 도망치지 말고 나오란 말이다!”
쾅! 쾅! 쾅!
애먼 곳에 공격을 하던 라네스가 금방 지쳐서는 거칠게 숨을 내쉰다.
그 순간, 나는 지배력을 높여 어둠을 움직였다.
“으윽!?”
살아 숨 쉬듯, 꿈틀거리는 어둠이 라네스를 덮쳤다.
“으아아!”
라네스가 어둠을 걷어 내려 자신의 어둠의 힘을 이용해 빠져나가 보려고 발악을 해 보지만 소용이 없었다.
“으으으으, 으읍!”
그저 무기력했다.
결국엔 어둠에 집어삼켜져 모습을 완전히 감추었다.
하나 아직 끝이 난 것이 아니었다.
저대로 내버려 두면 몸이 부패돼 뼈조차도 안 남을 테지만, 그전에 다크포스를 유지하는 시간이 끝나리라.
다크소드.
우우웅-
즉시 내 몸보다 큰 검이 소환됐다.
손을 까닥이자, 명령을 받은 검이 직선으로 날아갔다.
푹!
어둠을 파고든 검의 끝이 뒤에까지 관통했다.
녀석을 뒤덮고 있던 어둠을 걷어 내자, 복부에 검을 찔린 라네스가 피를 뿜으며 서 있었다.
“쿠허억…… 이, 이렇게 죽을 순 없다.”
아직 말할 힘이 남아 있는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는 녀석.
녀석의 몸에 박혀 있던 다크소드를 움직였다.
서억!
등에서 나와 녀석을 다시 찌르고 또 찔렀다.
쿠항!
기어코 무릎을 꿇는다.
“크허어어…… 데모디오 님이시여…….”
마지막에 찾는 것은 그놈의 신좌였다.
어떻게 된 게 탑에 들어와 악역을 자초하는 놈들은 하나같이 궁지에 몰리면 자신과 계약을 맺은 신좌를 찾아 댔다.
하지만 녀석이 원하는 대로 되지 않을 것이다.
데모디오는 도우러 오지 못할 테니까.
이곳은 그 녀석의 영역이 아닐뿐더러, 지금 이곳은 하데스의 힘이 강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하데스는 최상위 신좌.
그 힘을 뚫고 들어올 만큼 신좌 데모디오는 강하지 않았다.
“크으!”
라네스는 무언의 메시지를 받아 본 것인지 인상을 구겼다.
“내가 이대로 끝날 것이라 생각하나!? 내 죽는 한이 있더라도 네놈은 반드시 죽이고 가겠다!”
라네스의 얼굴에서 이내 핏줄이 크게 튀어나왔다.
파하악!
곧 핏줄이 터져, 피로 적셔진 얼굴.
상당량의 피가 가슴 밑으로 흘러내린다.
“흐흐흐흐!”
‘자기 피와 살을 매개체 삼아 힘을 사용하려는 거군.’
이 자리서 인육을 먹을 수 없으니 이런 식으로 자기를 희생하겠다는 것인가.
어떤 꿍꿍이가 있는지는 모르나 그냥 힘을 사용하게 두지 않았다.
녀석이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어둠으로 팔과 다리를 묶고서 입 속에 어둠을 집어넣었다.
침투한 어둠이 몸 곳곳으로 퍼져 나간다.
나는 몸속에 침투한 어둠과 하나가 된 것 같이 감각으로 그 모든 것을 느꼈다.
“으으억! 어억!”
라네스가 괴이한 얼굴로 숨을 헐떡댔다.
이내 나는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때가 왔을 때 힘껏 펼쳤다.
파아아아악!
그것이 신호가 되어 몸이 갈기갈기 찢겨져 나가는 폭사가 일어났다.
온갖 찌꺼기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나는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어둠을 꽉 잡고 있던 지배력을 풀었다.
“후우~.”
길게 숨을 토했다.
오랫동안 공부에 집중하다가 헤어 나온 것처럼 머리가 띵했다.
조종하는 어둠의 양이 많아지면 많아질수록 정신력이 많이 소모되기에 이는 일반적인 현상이었다.
곧 다크포스로 펼쳐졌던 공간이 사라져 간다.
“끝났군.”
라네스가 있던 자리에는 무언가가 떨어져 있었다.
가까이 이동해, 그것을 손으로 집었다.
[비밀의 방 열쇠上를 얻었습니다.]
추적할 때까지만 해도 어떤 함에 넣어져 있었는데, 그새 챙겨 둔 듯했다.
굳이 애꿎은 발걸음을 할 필요가 없으니, 나야 편안했다.
“캬하앙~.”
-준석.
저쪽에서 다칼이 걸어오고 있었다.
“거기에 있으라니까 무슨 일이야?”
-사람들이 의식을 찾았다.
순간 혹시 다른 일이 생긴 건 아닐까 생각했다.
“그거 다행이군.”
-이런 짓을 벌인 녀석들은 다 정리했나?
“그래. 방금 끝났어.”
마침 메시지 하나가 떴다.
[상층부에 갇힌 노예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숨겨진 미션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세이브 스킬을 획득하기 위한 자격과 실마리를 획득합니다.]
웬 양피지 한 개가 허공에서 떨어졌다.
나는 그것을 잡아채며 저절로 말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세이브?”
회귀 전에도 들어 보지 못한 스킬 이름이다.
세이브하면 대체적으로 저장 아니면 구하다의 의미로 쓰였다.
‘혹시 누군가를 살릴 수 있다거나 그런 건가.’
하지만 의외로 다른 의미가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탑에서 살아온 다칼이라면 알고 있지 않을까?
“다칼, 세이브 스킬에 대해서 알고 있어?”
-방금 뭐라고 했나?
“세이브 스킬에 대해서 알고 있냐고.”
-음. 아주 오래전에 그걸 사용하는 등반자를 한 번 본 적이 있지. 그런데 그건 왜 묻지?
“아니. 방금, 스킬을 얻는 자격과 그 실마리를 얻었거든.”
-그럼 그 양피지가?
“그래. 그러니 알고 있는 게 있음 말해 봐.”
-사람을 구하는 스킬이다. 다 죽어 가는 놈도 살릴 수 있지. 다만 한 번 사용하고 나면 스킬은 사라진다.
“1회성이다. 이건가.”
내 혼잣말에 다칼이 답했다.
-1회성이라고 해도 엄청 강력한 힘을 지닌 스킬임은 틀림없다. 그 스킬의 힘을 옆에서 직접 본 입장에서 확언할 수 있다.
“강력한 스킬이라는 건 알고 있어.”
회귀 전에도 1회성에 불과한 스킬들을 얻어 본 적이 있다.
그때도 그 스킬들은 매우 강한 힘을 발휘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런 스킬들의 특징은 따로 자격이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자격이 주어지지 않으면 얻을 기회가 생겨도 그 스킬을 얻지 못한다.
‘살아 있기만 하면 저주를 걸렸든 몸의 일부만 남았든 살린다는 건 엄청난 메리트야. 다만 그걸 직접 자신한테도 사용할 수 있나?’
이것은 다칼에게 물어봐도 모를 것이다.
확인해 보는 방법은 단 하나.
직접 스킬을 얻어서 사용해 보는 것뿐.
나는 주어진 실마리를 무엇인지 확인하기 위해 양피지를 펼쳤다.
거기엔 짤막한 글이 써져 있었다.
-41층, 폐허가 된 교회를 찾아가 교탁 밑을 가 보아라.
“교회, 교탁…….”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알아냈다.
그러나 문제는 실마리를 풀 장소가 아직 한참이나 남은 41층이라는 것.
그 사실을 알게 되니 온몸의 힘이 쫘악 빠진다.
“일단 이건 접어 둬야겠네.”
-41층이면 앞으로 26층을 더 올라야 한다.
나는 살짝 인상을 썼다.
“굳이 말 안 해도 알아.”
-26층이 남아서 26층이라고 말한 건데. 무슨 문제라도 있나?
눈치 없는 다칼께서 친히 두 번이나 더 언급해 주신다.
“말을 말자. 말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그것은 비밀의 방 열쇠.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열쇠들까지 꺼내 총 세 개의 열쇠를 쳐다봤다.
이제 비밀의 방의 입구로 가기만 하면 되는데.
“씁.”
그 전에 신경이 쓰이는 것이 있었다.
나와 같이 올라온 카이린, 그녀가 신경이 쓰인다.
‘지금쯤 관문에 있으려나.’
이전에 그녀가 하던 말을 떠올려 보면 관문에 있을 가능성이 매우 높았다.
‘나한테 관문 보스를 빼앗겨서 엄청 분해하는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마지막 관문 보스도 반드시 내가 잡아야만 했다.
그래야 삼위일체 견갑을 완벽히 완성시킬 수가 있었다.
‘아니면 쓸모없는 템이 되어 버려.’
그나마 다행인 점은 그녀 혼자서 관문 보스를 처치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스무 명 서른 명이 넘게 상대해야 겨우 처치가 가능한 것이 관문 보스.
하지만 그녀가 보여 줬던 무력을 생각해 보면 살짝은 불안한 요소가 존재했다.
‘그냥 관문에 들렀다가 가야겠어.’
괜히 비밀의 방부터 갔다가 관문 보스를 빼앗기면 곤란하니까 말이다.
결정을 내리자마자 나는 곧장 관문이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카이린은 마지막 관문 보스인 다카를 상대하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촤악! 촤아악!
사방에 난무하는 채찍질!
“저런 미친년!”
채찍을 계속 휘두르는 다카를 보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어떻게든 파고들려고 여러 번 시도했으나 워낙 빈틈이 없고 재빨랐다.
그렇다고 채찍을 맞으며 접근하려니 아까 전에 맞은 우측 어깨가 욱신거린다.
채찍이 살갗을 파고들어 뼈까지 때렸는지, 오른팔을 움직일 때마다 미칠 듯한 고통이 밀려 왔다.
‘어떻게 해야 하지?’
허공에 주먹을 내질러 풍압을 생성해 채찍의 방향을 바꿔 보려고 했으나 그 방법은 실패.
원거리 공격을 통해 보스를 처치하려고 했으나 그 또한 채찍에 막혀 실패.
멀리서 상대할 방법은 도저히 없었다.
어떻게든 접근을 해야 하는데…….
그때 새로운 방법을 떠올렸다.
‘그래. 아까 전부터 저년은 움직이지 않고 있어.’
그럼 움직이도록 만들면 됐다.
지형지물!
그녀는 곧바로 천장을 올려다봤다.
그리고 오른팔을 뒤로 빼며 크게 호흡을 했다.
“후우우우~ 합!”
기합과 함께 내지른 정권!
강력한 풍압이 공격이 되어 날아갔다.
콰아앙! 쿠구구구……!
일부 천장이 무너져 내리며 파편이 밑으로 쏟아졌다.
뒤늦게 천장을 올려다보는 다카.
‘지금이다!’
카이린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전력을 다해 뛰었다.
촤차자자자자!
“……!?”
그녀는 달리다 말고 순간 멈췄다.
노랗게 두 눈을 번뜩인 다카가 갑자기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채찍을 휘둘렀기 때문이다.
“뭐야…… 여태 봐주고 있던 거였어?”
촤아악! 촤아악!
맞았는지조차 모르고 있었다.
잠시 후, 허벅지와 다리에 쓰라린 고통이 느껴졌다.
“으으윽!”
살짝 몸이 기울었다 다시 중심을 잡는다.
스륵.
모션을 취하는 다카를 보며 그녀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하~ 도저히 방법이 없다면 나도 어쩔 수 없지.”
이미 체력은 떨어질 대로 다 떨어졌고. 육체를 움직일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찾아오고 있었다.
더는 못 움직이기 전에 끝을 내야만 하는 상황.
비장의 수.
몸의 무리가 따르고 일시적으로 스탯이 줄어들기는 하지만 매우 빠르고 관통력이 강한 원거리용 정권 스킬이 있었다.
이 공격을 받고도 이기지 못한다면 깔끔히 포기할 생각이다.
“후으읍.”
정권을 내지르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호흡.
카이린은 집중해서 호흡을 했다.
잠시 후 자세를 취한 그녀의 오른쪽 주먹에서 하얀 원기가 모이기 시작한다.
그 원기가 점차 커져, 주먹을 아예 뒤덮을 만큼 거대해졌다.
‘됐다. 이거면!’
주먹을 내지르려는 그 순간.
슈아아아악!
옆으로 검은 바람이 빠르게 지나쳤다.
바람이 어찌나 날카롭던지, 그저 옆을 지나쳤을 뿐인데도 뺨에 상처가 났다.
파아앙!
찰나였다.
다카가 채찍으로 반응하지 못하고 검은 바람의 폭격을 맞았다.
폭발에 의해서 먼지가 발생한다.
“쿨럭쿨럭!”
기침을 하는 그녀는 한쪽 눈을 감으며 나머지 한쪽 눈으로 앞을 내다봤다.
곧 먼지 속에서 드러난 다카는 이전의 모습을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형체가 엉망이 되었다.
자신이 그리 고생해서 잡으려고 했던 관문 보스가 누군가의 의해서 쉽사리 잡혀 버리니 허탕한 기분이 들면서도 얼이 나갔다.
“…….”
침묵을 유지하는 그녀.
지금 당장에 한 명이 떠올랐다.
이런 짓을 할 것 같은…… 그놈.
이내 두 주먹을 불끈 쥐면서 뒤로 돌아 소리쳤다.
“이준석! 야잇, 개새끼야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