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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75화 (75/230)

회귀한 탑 등반자 75화

75화 피라미드 상층부 (2)

싸움이 시작되자 시장터는 초전박살이 나고 사람들은 혼비백산했다.

“캬하아아앙!”

천이 넘는 미라 개와 카미라들 틈새로 파고드는 늑대 한 마리.

상어가 작은 물고기 떼를 덮친 것과 같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던 병사들의 배열이 처참히 무너진다.

뚝, 뚝. 투두두두!

그리고 천장에 생겨난 먹구름에서 검은 비가 쏟아져 내렸다.

[다크레인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크레인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한층 더 빠른 속도로 비가 쏟아져 내립니다.]

굵고 빨라진, 검은 빗방울에 노출된 이들은 하나도 빠짐없이 영향을 받았다.

이어서 하나하나 폭탄처럼 강력하게 풍압을 일으키는 카이린의 주먹이 병사들을 휩쓸었다.

이를 지켜보던 상층부의 지배자 오른팔 엘키는 두 눈을 찡그렸다.

분명 숫자는 이쪽이 앞서고 있는데 전세가 밀리는 느낌이 들은 탓이다.

“대체 어디서 굴러먹던 새끼들이야.”

상층부에서 이런 깽판을 놓을 정도면 하층부. 중층부에서도 얌전히 있지 않았을 텐데 따로 보고가 들어온 게 없었다.

그렇다면 보고 체계에 문제가 생긴 것이 분명했다.

엘키는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라네스에게 이 사태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벌써부터 머리가 아파 왔다.

“시발. 일단 저 녀석들부터 정리해야겠군.”

양손에 단검을 든 그는 검은 보석이 박힌 지팡이를 들고 있는 남자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주먹을 사용하는 여자도 강하긴 하나, 이 상황을 전부 컨트롤하는 것은 저놈이었다.

저놈만 죽이면 금방 상황이 정리되리라고 믿었다.

파앗!

엘키는 기척을 지우고 지근까지 접근했다.

그리고 양손의 단검을 빠르게 찔러 넣었다.

상대 등허리를 파고드는 일격!

여태껏 자신의 첫 번째 공격을 피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하나.

치징!

그가 두르고 있던 보호막에 가로막혀 버렸다.

마법사이기에 보호막을 가지고 있을 수도 생각한 엘키가 이미 연계를 펼치고 있었다.

그때 지팡이를 든 사내와 두 눈을 마주쳤다.

왜일까?

순간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엘키는 본능적으로 공격이 아닌 뒤로 회피했다.

간발의 차로 바닥 아래서 검이 튀어나왔다.

하마터면 몸이 반으로 갈라질 뻔한 상황.

그렇게 날아오른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자신에게 날아들었다.

챙! 채챙!

공격을 튕겨 내는 그는 순간 두 눈을 바삐 움직였다.

상대할 것이 하나라고 판단하는 순간 양옆에서 네 개의 검이 더 날아들었다.

“크윽!”

그러며 어디선가 날아온 거미줄이 온몸을 덮쳤다.

그뿐이랴.

[저주에 걸렸습니다.]

디버프까지 껴안게 됐다.

몸 곳곳에 피어오르는 파란 불꽃.

딱히 뜨겁지는 않았으나, 검은 비를 맞으며 몸이 더욱 빠르게 썩어 들어간다는 느낌이었다.

“제길.”

공격을 막기도 벅차서, 상대에게 접근을 할 수조차 없다.

순간 전력을 다하지 않으면 이곳이 자신의 무덤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그만큼 상대는 강했다.

‘어쩔 수 없지.’

그는 이를 꽉 깨물더니 비장의 수를 꺼내 들었다.

초월.

그가 고유 스킬을 발동했다.

[일시적으로 신체 능력이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모든 스킬 레벨이 5씩 상승합니다!]

[일시적으로 상태 이상 면역 상태가 됩니다!]

몸에 누적되어 가던 부패가 일순간 사라졌다.

그리고 비약적으로 빨라진 움직임은 날아드는 검들을 전부 피해 내고 상대에게 닿을 수 있게끔 만들어 주었다.

‘다시 잡았다!’

엘키는 코앞에 있는 상대를 보며 양팔을 귀신같이 움직였다.

혈, 칼날이 지나친 곳은 피의 잔상이 남았다.

잔상의 곡선이 예술처럼 허공을 겉돌았다.

정말 수 초도 되지 않는 시간에 수십 번이 넘는 검격이 오갔다.

그 사이 보호막은 깨부숴졌다.

촤악!

유효타를 먹인 것은 단 하나. 그럼에도 엘키는 웃었다.

웃는 이유는 간단했다.

검이 뿜어내는 더러운 피가 상대의 살갗 안으로 파고들었을 테니까.

곧 몸에 이상 징조 현상이 일어날 것이다.

예상대로 상대의 얼굴이 굳어졌다.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한 그는 마무리로 다음 스킬을 연계했다.

혈도!

무형의 피의 기운이 칼날 끝에 생겨났다.

엘키는 곧장 그를 향해 찔러 넣었다.

동시에 초월 스킬의 발동이 끝이 났다.

잠시 멈췄던 부패가 되살아나며 여전히 쏟아지는 비에 영향을 받았다.

한데 상대가 죽었으면 이 비도 멈추어야 하건만, 비는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내리고 있었다.

‘설마. 안 죽었나.’

분명 찌른 느낌이 들었는데.

다시 한번 칼날 끝을 훑었다.

찌르긴 찔렀다.

다만 애꿎은 벽을 찔러 버렸다.

‘어느 틈에 벽이!’

후두둑.

바닥에서 치솟은 벽이 사라진다.

그리고 방금 전까지 눈앞에 있던 그도 같이 사라져 있었다.

예민한 감각 스킬이 발동했다.

‘옆이다!’

어둠의 형상이 나타난다.

분명히 미리 인식했음에도 불구하고 공격을 제대로 반응할 수가 없었다.

파지직! 콰앙!

“크헉…….”

전기 구체를 맞고서 전신이 마비당한 느낌이 들었다.

챙강!

한쪽 팔에는 힘이 아예 안 들어가 단검을 놓쳐 버렸다.

“크으으!”

십여 개가 넘는 검들이 일시에 날아들었다.

고압의 전류를 맞은 것도 있지만, 몸의 부패가 진행되어서인지 신체가 말을 듣지 않았다.

‘움직여! 움직이라고!’

엘키는 제 뜻대로 움직여 주지 않는 육신에 화를 내며 나머지 한쪽 팔이라도 움직여 공격을 막아 내려고 했다.

하나 그것은 부질없는 짓에 불과했다.

푹! 푸푸푸푹!

팔과 다리, 몸통.

얼굴을 제외한 모든 곳에 검이 꽂혔다.

“쿠확!”

내상을 크게 입은 그는 피를 토해 냈다.

털썩!

더 이상 서 있질 못하는 무릎을 꿇었다.

그런 그 앞으로 천천히 걸어오는 남자.

금방 처리할 수 있을 거라 여겼건만.

뒤늦게야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랑 싸우며 숨 하나 흐트러지지 않았어.’

그리고 어찌 된 영문인지 더러운 피가 체내에 섞여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상대는 매우 멀쩡해 보였다.

‘이미 무슨 수를 썼군.’

그렇다면 자신에게 가망성은 없었다.

이미 육체는 엉망이 되었고, 마지막까지 움직여 주던 나머지 한쪽 팔도 움직이는 건 무리였다.

언젠가 이런 순간이 찾아올 거라는 생각은 했지만…… 그게 오늘이 될 줄이야.

엘키는 단념한 채 짤막히 말했다.

“죽여라. 어차피 내버려 둬도 죽겠지만.”

그러자 상대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쭉 다물고 있던 입을 뗐다.

“한껏 욕이라도 지껄이거나 내가 왜 이러는지 물어볼 줄 알았더니. 안 물어보네.”

“…….”

“좋아. 말한 대로 보내 주지.”

그것이 그가 마지막으로 들은 말이었다.

* * *

나는 엘키란 남자의 시신을 내려다봤다.

비록 적이지만 깔끔히 승복을 받아들이는 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물론 하층부, 중층부에서 봤던 놈들은 전부 마지막엔 입이 더러웠기에 비교적 괜찮아 보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그놈이 그놈인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아직 싸움을 이어 나가고 있는 다칼을 보고 소리쳤다.

“다칼! 힘 좀 적당히 사용해!”

가장 위협이 되는 녀석을 제거한 상황에서 굳이 몸집을 키워 신좌에게 받은 힘을 소모할 필요는 없었다.

그렇기에 주의를 주었다.

이내 내 말을 들었는지, 다칼이 몸집을 작게 줄이고 있었다.

“히아압!”

“하압!”

“음음. 잘하고 있군.”

그리고 카이린은 자신의 몫을 톡톡히 하는 중이었다.

나는 곧 남아 있는 숫자를 헤아렸다.

이제 절반쯤 처리했으려나?

내가 가세하면 10분정도면 정리가 끝날 것이다.

하나 뜻밖의 복병이 나타났다.

“저 자식이다!”

“저 놈을 죽여! 감히 엘키 님을!”

지배자 측에 붙은 수하들이 달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노예들까지 합세 해 공격을 해 왔다.

최소한 하층부, 중층부 노예들은 이렇게 달려들진 않았는데, 이들은 굳이 살려 둘 필요도 없겠다.

파직! 파즈즛!

찰나 나는 마나볼트 십여 개를 시전했다.

이어서 구체를 두 개로 갈라 이십여 개로 만들었다.

기뢰처럼 공중에 구체들을 띄어 두었다.

파지지!

“으아아아!”

근처에 다가오는 사람들은 구체에서 뻗어 나온 전류에 직격타를 맞았다.

이를 이겨 내고서 안으로 파고드는 이들이 있었으나 헛된 행동이다.

콰앙!

구체 하나씩을 움직여 폭사시켰다.

콰앙! 콰아앙!

“으아아악!”

“꺄아아!”

한동안 폭발 소리와 비명 소리만이 들려왔다.

…….

…….

…….

…….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하암~.”

나는 하품을 찢어지게 하며 다칼에게 다가갔다.

“캬하~ 캬하아~.”

숨을 크게 고르는 다칼.

“꽤 지쳐 보이는데? 무리한 거 아니야?”

-아니다. 이 정도는 괜찮다. 그보다 엘키, 그자는 어떻게 됐지?

“보다시피 저어기.”

손가락으로 엘키의 시신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흐음. 아주 벌집을 만들어 놨군.

“할 때 확실히 해야지.”

-그보다 우리가 찾던 놈은 어디에 있는 거지? 이 정도 소란을 냈으면 나타날 법도 한데.

“그러게.”

라네스, 그자의 손에 상층부의 열쇠가 있을 터.

아님 하층부 녀석처럼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지도 모른다.

아공간에 집어넣는 게 불가능한 씰스톤처럼 비밀의 방 열쇠 또한 아공간에 집어넣는 것이 불가능하니 말이다.

나는 마나가 차길 기다렸다가 라네스의 위치를 찾는 대신 열쇠를 추적했다.

어차피 열쇠를 찾으면 라네스가 거기에 있을 확률이 매우 높았다.

“저기다.”

위치 파악을 끝낸 뒤 곧바로 움직였다.

우측 중간에 있는 통로를 지나자, 음산한 분위기가 풍겼다.

-곳곳에 함정들이 있군. 조심해라.

다칼의 말에 주의하며 걸었다.

댕강!

벽의 빈틈에서 거대한 양 손날 도끼가 튀어나왔다.

후우웅- 후우웅-

일반 도끼에 불과하다면 크게 위험할 것이 없지만 도끼에는 마나가 실려 있었다.

그것도 밀집력 높은 농도를 지닌 정밀한 마나가.

저것에 베이는 순간 보호막으로 막는 건 고사하고 몸이 두 동강이 나 버릴 것이다.

나는 다크스윔을 시전해 날아드는 도끼들을 피했다.

그렇게 차근차근 안으로 들어섰다.

한 이백여 미터 정도 되는 거리를 파고들어 가니, 아무것도 없는 빈 공동이 나왔다.

아니. 우측을 바라보자 큼지막하고 투명한 유리창 너머로 비인륜적인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크르르!”

-인간들을 저리 매달다니.

정육점의 돼지들을 쇠고리에 걸어 놓은 것처럼 사람을 저기에 걸어 놓았다.

까득.

나는 이를 꽉 깨물었다.

저것이 의미하는 것은 단 하나뿐이었다.

이곳에 인육을 먹는 자가 있다는 것.

내가 제일 싫어하는 부류가 인육을 먹는 놈들이었다.

지구에서도 그런 놈들을 숱하게 봐 왔기에 그들의 역겨움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특히나 그들이 싫은 건 한때 내가 알고 지내던 친한 지인들이 그 녀석들의 손에 죽은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안 좋은 기억이 떠올라서일까.

꽈악…….

오랜만에 분노가 일었다.

-준석, 아직 살아 있다.

나는 그 얘기를 듣자마자 곧장 주먹을 내질렀다.

콰아아아! 쨍그랑!

사소한 복수로 시작된 노예들의 구출.

이후엔 핍박당하고 있는 이들을 구해 내는 숨겨진 미션을 수행하려고 했다.

하나 지금의 행동은 그런 의도 때문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감정이었다.

어떤 놈들이 이 짓거리를 하며 인육을 처먹는지 모르겠지만 속으로 다짐했다.

하나도 빠짐없이 뼈와 살을 발라 버리리라.

마침 인기척이 느껴졌다.

유리창 너머, 고리에 걸린 수백 명의 인간들 틈 속에 모습을 드러내는 자.

그는 한쪽 손에 톱을 들고 서 있었다.

풍채와 느껴지는 분위기를 보아, 우리가 찾는 라네스는 아니었다.

그가 라네스가 아니어도 상관없었다.

안 그래도 이 분노를 조금이라도 잠재워 줄 대상이 필요했으니까.

“다칼, 넌 사람들을 구해.”

-알았다.

이어 뒷말은 작게 혼잣말로 속삭였다.

“난 저놈을 갈아 버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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