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74화
74화 피라미드 상층부 (1)
“후아~.”
간만에 전력으로 달렸더니 숨이 거칠어졌다.
그와 상반되게 다칼은 표정이 여유로워 보였다.
마법이 아닌 순수한 힘으로 공간 이동이 가능하다 보니 이곳까지 오는데 큰 힘이 들지 않은 것이다.
짧게 숨을 고른 나는 잠시 뒤를 돌아보았다.
아까 전에 카이린, 그 여자가 날 불렀었던 같은데.
“알아서 하겠지.”
내가 굳이 그 여자를 신경 쓸 이유는 없으니까.
계단에서 금방 시선을 떼고, 상층부로 진입하는 입구를 쳐다봤다.
입구 없이 바로 진입했던 하층부, 중층부와 달리 상층부에는 입구가 따로 존재했다.
다만 따로 닫힌 문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여태 스케일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압도적인 크기를 지닌 네모난 통로가 어둑하게 자리 잡아 있을 뿐이다.
입구로 들어서기 전에 있는 광활한 공간에는 개의 대가리를 가진 거대한 크기의 미라 병사들이 창과 도끼, 검을 바닥에 세워 둔 채 양쪽에 진열되어 있었다.
석상처럼 서 있는 미라 병사들은 고개를 돌리지도 않은 채 시뻘건 두 눈을 움직여 나를 내려다본다.
‘저놈들이 저렇게 컸었나?’
회귀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상층부 입구에 있는 미라 병사들의 키를 비교해 보았다.
얼추 8미터가 넘는 키.
기억으론 가늠하기 어렸으나, 회귀 전에 미라 병사들의 키는 천장에 닿을 정도는 아니었다.
‘더 큰 놈들이군.’
앞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쿵! 쿵쿵! 칭!
가만히 있던 미라 병사들이 걸어 나와 창과 검으로 길을 가로막았다.
곧 미라 병사의 입에서 케케묵은 저음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허가받지 못한 자는 지나갈 수 없다.”
녀석은 유일하게 황금 갑주를 두르고 있었다.
‘놈이 대장인가.’
그리고 말하는 걸 보면 이곳에 있는 미라 병사들은 이미 누군가에게 고용된 상태였다.
아니었으면 이리 움직일 리가 없었다.
회귀 전에도 이들은 이미 고용됐었기에 다 때려 부숴 버렸던 기억이 난다.
어쨌든 한번 고용하고 나면 그 고용시간이 끝날 때까지 다른 사람이 이 녀석들을 고용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이번에도 다 때려 부수려고 나서려던 그때.
입구 안쪽으로부터 발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시선을 옮겨 그쪽을 응시했다.
딱. 딱. 딱.
어둠 속에서 끝이 구부러진 지팡이를 짊어진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한눈에 봐도 그가 같은 마도사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본새를 보아하니 입구를 지키는 놈인가.’
아직 그의 정체를 알 수 없지만 언제든 공격이 가능하도록 등 뒤로 다크소드를 시전해 두었다.
어쩌면 하층부, 중층부에서 벌어진 일이, 상층부에 있는 녀석들 귀에 들어갔을 수도 있다.
감시자 또는 염탐꾼들은 피라미드 곳곳에 깔려 있으니 말이다.
쿠웅! 쿠웅!
그가 걸어 나오니 미라 병사들이 길을 비켜선다.
그걸 보고서 저 남자가 이 녀석들을 고용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열 발자국이면 닿을 거리에 다가선 그는 먼저 입을 열었다.
“누가 올라온다는 얘기는 못 들었는데. 어떻게 올라오셨죠?”
“어떻게 올라오긴. 그냥 걸어서 올라왔지.”
“으음. 혹시 출입증을 보여 주실 수 있습니까.”
“출입증? 무슨 출입증을 말하는 거지?”
“중층부에 계시는 에르샤 님의 허락이 담긴 출입증 말입니다.”
더는 확인해 볼 필요도 없이 이 녀석은 피라미드의 지배자들 밑에 있는 수하였다.
그리고 첫마디를 듣고 확신했다.
아직 상층부 녀석들 귀에는 내 얘기가 들어갔지 않았다고.
“아! 출입증이라면 당연히 가지고 있지.”
나는 주머니에서 출입증을 꺼내는 척을 하며 등 뒤에 숨겨 두었던 다크소드를 움직였다.
사아아악!
상대가 어수룩한 자라면 눈으로 쫓기도 힘들 것이다.
검이 녀석의 목을 베기 직전.
“……!?”
그가 반응을 보였다.
스으-
몸이 모래처럼 변해 사라진다.
스으-
이내 입구에 다시 나타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날 보며 말했다.
“하마터면 당할 뻔했군요. 행적이 수상하다 여겨 의심하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가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그러며 차가움이 담긴 목소리로 나지막이 지껄였다.
“저자를 죽이세요.”
쿠웅! 쿠웅!
꼼짝도 않던 미라 병사들이 그의 말에 반응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오호. 마침 새로운 손님이 또 올라오네요.”
그 얘기를 듣고 뒤를 돌아봤다.
“허억. 허억…….”
뒤처져서 보이지 않았던 카이린이 계단 끝에 서서 숨을 고르고 있었다.
“누군가가 올라온다는 보고를 들은 바가 없으니 그 여자 또한 불청객이겠고. 어디 한번 둘이 잘해 보시길.”
나는 사라지려고 하는 그를 다크스윔을 연달아 시전해 뒤쫓았다.
“흐업!”
바로 앞에 나타난 나를 보며 깜짝 놀란다.
“어딜 가려고. 내가 가란 말도 하지 않았는데.”
또 공격하려고 하면 모래로 변해 사라질 터.
그 전에.
“다칼.”
“캬하아응!”
다칼이 마안을 사용해 녀석의 몸을 빠르게 돌로 만들어 나갔다.
“어, 어!?”
신체의 이상함을 감지한 그가 급히 손을 써 보려고 시도한다.
하나 석화에 면역력이 있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마안의 힘에서 헤어 나오질 못할 것이다.
그러나 마법을 사용하는 것까지 막아 낼 수 있는 건 아니기에 그가 급히 마법으로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안 되지. 그렇게는.”
어둠으로 가득 찬 입구로 들어선 것이 그의 실수이다.
나는 지배력을 이용해 어둠을 끌어왔다.
그동안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다크딥트리를 사용해 왔기에 어둠 지배력을 많이 기른 상태였다.
곧 자그만 어둠의 공간이 그와 나 사이를 촘촘히 메웠다.
모래로 변해 이동을 하려던 그는 어둠에 가로막혀 당황스러운 얼굴을 띠었다.
어둠은 모든 것을 집어삼키는 물질.
완벽한 공간 이동을 사용하지 않는 이상 이곳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했다.
“왜 이동이……!”
나는 그의 뒤에 서서 말했다.
“그러니까, 애초에 모습을 드러내지 말았어야지. 그게 오늘 너의 두 번째 실수다.”
이미 절반쯤 몸이 굳어진 남자는 마지막으로 발악을 해 댔다.
“……이대론 못 죽어!”
쿠과가가가!
땅 밑에서 치솟는 뾰족한 바위들.
그뿐이 아니라 허공에는 모래폭풍이 형성됐다.
“오.”
생각보다 마법을 시전하는 속도가 빨랐다.
‘저 정도면 하성태보다 재능이 있는데?’
하나 재능도 제대로 꽃을 피워야 의미가 있는 법이다.
스스로 우물 안의 개구리가 되길 택한 그에게 환한 미래란 없었다.
다크퍼드.
휘이이이-!
형성된 모래폭풍이 내가 만들어 낸 어둠의 바람에 밀려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리고 땅 밑에서 치솟은 뾰족한 바위들은 나를 위협하기는커녕 전부 비껴 갔다.
[풍요의 로브 효과가 적용됩니다.]
[해당 마법의 면역 상태가 됩니다.]
자신의 마법이 전부 통하지 않자, 그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리고 두 동공이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어떻게…… 내 마법이.”
그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드러냈다.
“어, 어억……!”
그 틈에 진행된 석화는 그의 목을 타고 이내 입과 코. 그리고 눈에까지 빠르게 잠식했다.
나는 이젠 완전히 돌덩이가 되어 버린 그를 보며 안타까운 눈으로 바라봤다.
불쌍해서 그런 것보다는 같은 마도사의 길을 걷는 입장에서 이런 최후를 맞이한다는 게 아쉬운 것이었다.
하나 그것은 논외의 감정일 뿐이고.
퍼석!
나는 그의 몸을 박살 낸 뒤 주변의 어둠을 걷어 냈다.
그리고 미라 병사들이 있던 곳을 돌아보았다.
내 예상과는 다른 광경이 펼쳐지고 있었다.
“흐아아압!”
콰아앙! 파사삭!
고전하고 있을 줄 알았던 카이린이 내지른 일격에 거인처럼 큰 미라 병사들이 힘없이 쓸려 나가는 중이었다.
“침입자, 막는다.”
하나 마지막 남은 한 놈 때문에 그녀는 고전을 겪었다.
쿠과가가강!
미라 병사들 중에 대장이라고 했던, 황금 갑주를 두른 병사가 휘두른 검격에 땅이 반으로 갈라졌다.
“칫!”
카이린은 그 공격을 막아 내느라 한쪽 건틀렛을 깨 먹었다.
“감히, 내 걸 부숴!? 너 죽었어. 일로 와!”
나는 그녀가 나머지 건틀렛을 상단까지 치켜들고 달려드는 것까지만 보고 돌아섰다.
싸움을 전부 지켜보지는 않았지만 결과는 이미 알고 있었다.
100퍼센트 확률로 카이린이 이길 것이다.
비록 건틀렛을 깨 먹긴 했지만 그녀에겐 여유가 있었다.
“으음.”
그나저나 계단에서 마나를 많이 빨려서인지 남은 마나가 절반가량밖에 되지 않았다.
‘당분간 마나는 아껴야겠어.’
입구 너머에 있는 긴 어둠의 터널은 걸어서 이동했다.
혹여나 계단에서처럼 함정이나 디버프 발동기 같은 것이 있을까 경계했지만 의외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크르으응.”
-다 온 것 같군.
다칼의 말대로 저 멀리 새하얀 빛이 보이고 있었다.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빛 너머로 발을 내딛는 순간.
시끌벅적한 소리와 함께 찬란한 황금으로 뒤덮인 공간이 나왔다.
하층부, 중층부에서는 보지 못했던 시장의 거리가 중앙으로 쭉 뻗어 있고 양끝에는 지배자들의 것으로 추측되는 거주지와 입구에서 봤던 거인 미라 병사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다.
또 특이한 점이 있다면 노예로 보이는 이들이 쇠 목줄과 쇠 구슬을 달고 있지 않다는 점이었다.
마치 자의적으로 노예가 되는 걸 마다하지 않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것을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사실은, 상층부의 일부 노예들은 지배자들처럼 매우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한 층을 올라갈수록 노예들이 매우 잘 길들여졌다는 생각이 머릿속에서 떠나가질 않았다.
싫어도 어쩔 수없이 억압을 당해서 노예를 하는 이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놈들도 있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구해 줘야 하는 경계선 속에서 애매모호함을 느끼게 만드는 요소였다.
하나 한 가지 분명한 건 미션 내용에 적힌 핍박당하는 노예는, 최소한 저들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준석, 저길 봐라.
다칼이 무언가를 보고서, 앞발을 들어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금방 그쪽으로 시선을 옮긴 나는 살짝 입이 벌어졌다.
척! 척! 척!
맨 끝에 있는 통로에서 장비를 갖춘 미라 개와 카미라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수십 아니 수백, 많으면 천은 넘을 숫자였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저 많은 숫자를 상대하려면 힘을 좀 꽤 써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로 모습을 드러내는 정체불명의 남자.
남자는 상체는 노출하고 하체는 하얀 편복바지를 입었다.
코에 한 피어싱과 양 허리춤에 차고 있는 휘어져 있는 단검 두 개도 눈에 띈다.
보기에는 매우 무방비해 보였지만 나는 본능적으로 느꼈다.
녀석이 강한 놈이라는 걸.
“크응, 크응.”
곧 냄새를 맡은 다칼이 인상을 구겼다.
-저 녀석의 칼에 피 냄새가 난다. 그것도 엄청 짙군.
그때.
“엘키 님이다!”
“엘키 님!”
저자가 상층부의 지배자 라네스인 줄 알았는데.
‘엘키는 또 누구야? 녀석 오른팔인가.’
상층부 사람들은 그를 보자마자 자기 할 일들을 멈추고서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마치 임금을 맞이하는 신하들과 같았다.
하나도 빠짐없이 90도로 고개를 숙이거나 아님 무릎을 꿇거나 엎드렸다.
그러자 그들의 시선은 자연스레 엎드리지 않은 내게로 쏠렸다.
그나마 나와 가까이에 있던 한 사람이 빠르게 내게 손짓을 했다.
“빨리 엎드려! 뭐 하고 있어! 그러다 죽는다고! 이 사람아!”
나는 그 말을 무시하고 다칼의 말에 집중했다.
-어떻게 할 생각인가? 지금 녀석과 부딪치게 되면 저 수많은 병사들과 맞서야 할 텐데. 난 어떤 선택을 하던 그대의 말을 따르도록 하지.
엘키라는 자의 시선도 곧 나를 향했다.
이를 보고 나는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아주 다들 나한테 관심이 많네.”
사실 다칼이 나한테 어떻게 할지 물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불리한 전투, 피곤한 일을 모면하자고 지금 이 자리에서 그에게 엎드린다는 건 내 자존심이 허락지 못했다.
힘들긴 하겠지만 굳이 상대하지 못할 것도 아니고 말이다.
나는 조용히 지팡이를 들었다.
그런데. 뒤에서 시끄럽게 달려오는 소리가 들렸다.
“하아~ 하아~ 겨우 따라잡았네. 진짜.”
다름 아닌 카이린이었다.
그녀는 내 앞에까지 다가와 천천히 숨을 골랐다.
그러고는 주위를 두리번거린다.
“뭐야. 분위기 왜이래? 왜 다들 이쪽만 쳐다보는 거야?”
나는 저절로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을 참지 못하고 웃으며 금방 마법을 시전해 전투를 준비했다.
의도치는 않았지만, 딱 알맞은 타이밍에 나타났다.
덕분에 쓸 만한 손이 하나 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