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73화 (73/230)

회귀한 탑 등반자 73화

73화 올튼 왕가

한데 방패에는 웬 흉터가 져 있었다.

준석은 십자로 그어진 흉터를 보곤 그녀의 정체를 유추해 냈다.

추방자.

흉터는 그녀가 더 이상 왕가의 사람이 아님을 뜻했다.

보통 추방자가 되는 경우는 왕가의 뜻을 거슬렀을 경우이다.

올튼 왕가는 탑의 하층부 전부를 지배하기는 했으나 힘과 명예를 중요시하는 집단.

에르샤가 했던 짓을 떠올려 보면 추방자 표식은 그녀에게 딱 맞는 그림이었다.

‘그런데 올튼 왕가라면 멸망한 지가 꽤 됐을 텐데. 어떻게 추방자가 여기에 있는 거지?’

그 명맥이 끊겨, 관련자들은 아예 남아 있지도 않을 텐데 말이다.

그렇다고 에르샤의 몸에 새겨진 문신을 그냥 무시해 버리기에는 문양의 정밀함은 진짜였다.

“아직 왕가의 핏줄이 흐르고 있는 건가.”

다칼도 등의 문신을 보곤 그것을 알아보는 눈치였다.

-올튼 왕가에서 쫓겨난 추방자군. 그런데 방금 전에 한 말은 무슨 뜻이지?

“뭐가?”

-아직 왕가의 핏줄이 흐른다는 말. 마치 이미 멸망한 가문을 말하는 것처럼 말하고 있지 않은가.

다칼은 올튼 왕가가 멸망했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아.”

생각해 보니 모르는 게 당연했다.

다칼은 그동안 갇혀 있었으니 말이다.

다칼은 지금 올튼 왕가가 한창 왕성했을 시기를 떠올리고 있으리라.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나 보군. 하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층을 오르며 올튼 왕가 사람이나 그 흔적을 거의 찾아보기 어려웠으니까.

“이후로 시간이 흘렀으니 모르겠지. 올튼 왕가는 멸망했어.”

-흠. 그 강대한 세력이 쉽게 무너졌을 리 없을 텐데. 어떻게 된 거지?

“올튼 왕가를 무너뜨리려고 하는 세력이 많았던 건 알고 있지?”

-알고 있다.

“여러 세력들이 있었지만 그중에 혁명파가 있었어.”

-혁명파…… 내가 모르는 걸 보면 갇힌 이후에 생긴 세력인가 보군.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신흥세력에 가까웠지.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그들이 철웅성 같은 올튼 왕가를 단번에 무너뜨렸다는 거야.”

-어떻게 그것이 가능하지? 혹시 혁명파에 압도적으로 숫자가 많았나?

“아니. 다섯 명뿐이야.”

“캬항?”

다칼은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바라봤다.

-말도 안 된다. 어떻게 다섯 명이서 수천 명이 넘는 왕가 세력을 무너뜨릴 수 있지? 설사 위층에서 내려온 이들이라고 해도 탑의 제약을 받아 제대로 된 힘을 사용하지 못했을 텐데?

“그래. 그런 방식이었으면 절대로 불가능했겠지. 그렇다고 위층 애들이 수천 명이 넘게 내려왔을 리는 없고.”

-맞다. 양아치들을 한데 모으기보다 어려운 게 위층 등반자들이지.

준석은 끝 층까지 올라본 경험을 떠올리며 그 말에 동의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위층의 등반자들은 서로 뭉치기보다는 각자의 이득만 챙기기 바쁜 족속들이었다.

-한데 어떻게 했다는 거지?

“간단해. 내부에서부터 무너뜨린 거지.”

-그들이라면 작은 분란 따위 금방 막아 냈을 텐데.

“만일 내부의 적이 왕이라면?”

-왕이?

“그 다섯 명이 상대를 한 건 왕이야. 왕의 육체와 정신을 빼앗아 아주 천천히 하나하나씩 무너뜨렸어. 아무도 눈치채지 못하게 야금야금. 그리고 어느 순간 올튼 왕가는 폭삭 주저앉아 버렸지.”

-오랜 명맥을 이어 온 것치곤 꽤 허무한 말로군.

“오랜 시간 그 자리를 지킨다고 해서, 앞으로도 쭉 그 자리를 지킨다는 보장은 없지. 그리고 그 다섯 명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올튼 왕가는 언젠가는 무너졌을 거야.”

왕으로부터 시작된 멸망의 징조를 아무도 알아채지 못하고 막지 못했다는 것은 내부가 이미 약해져 있었다는 의미였다.

그러니 다섯 명이 나서지 않았더라도 누군가에 의해서 올튼 왕가는 사라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 다섯 명이 올튼 왕가를 집어삼킨 건가?

준석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무슨……?

“어느 날 다섯 명 전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거든. 왕가의 일부 보물들만 챙겨서.”

-목적이 왕가가 가진 권력이 아니었나. 그리고 일부 보물만 챙겨서 사라진다는 건 딱히 보물이 목적이었던 것도 아닌 것 같은데. 그랬다면 왕의 육체와 정신을 처음 빼앗았을 때 그 보물들만 챙겨서 사라졌을 테니.

“개인적인 복수나 우리가 모르는 다른 이유가 있는 거겠지. 한데 그것까지 우리가 알 필요는 없고. 이제 궁금증이 좀 해소됐나?”

-물어보고 싶은 건 다 물었다.

“그럼 이만 다음 층으로 올라가자고.”

둘은 두 번째 관문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이동하는 와중에 메시지 하나가 올라왔다.

[중층부에 갇힌 수많은 노예들을 구원하였습니다!]

[중층부에 썩어빠진 공간을 불태우는 데 성공합니다!]

[노예 해방자 칭호 효과가 강화됩니다.]

효과를 살펴보니 일시적이란 말이 한동안이라는 말로 바뀌어 있었다.

‘유지 시간이 늘어났구나.’

안 그래도 성능은 좋지만 유지 시간이 짧다고 생각하는 중이었다.

일단 상층부에 가면 당장에 도움이 되는 요소였다.

만족한 얼굴을 하며 곧 두 번째 관문 앞에 이른 그는 문을 지키고 있는 병사들을 정리한 뒤 마법을 준비했다.

윈드퍼드.

슈아아아악!

반복적으로 시전해 거대한 바람으로 이뤄진 구체 덩이를 만들어 냈다.

그리고 일체의 망설임 없이 그 구체 덩이를 문에 날려 보냈다.

쿠화아아앙!

다칼이 했던 것처럼 문이 저 멀리 날아갔다.

차캉!

이번엔 누군가가 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아니라 무언가가 베이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의 정체를 파악한 준석은 작은 감탄을 표했다.

“그래도 이번 놈은 아주 허접한 건 아니네.”

하나 결국엔 스쳐 지나가는 놈에 불과했다.

“침입자, 죽인다.”

치이익, 치이익.

보스 자카가 온몸에 붕대를 돌돌 감은 채로 대검을 질질 끌며 천천히 접근해 온다.

이내 다른 움직임을 보이는 순간.

준석이 기습적으로 다크스윔을 시전해 녀석의 뒤를 이동했다.

그리고 어둠의 십자가, 홀리크로스를 속성 변환해 만든 다크크로스를 녀석 심장에 박아 넣었다.

찰나, 압축해서 작은 형태를 유지 중인 십자 에너지가 폭발적인 공격성을 발휘했다.

“키하아악!”

단숨에 심장을 관통당한 자카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자카 보스를 처치하였습니다!]

[상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권한을 얻습니다!]

[압도적인 승리를 취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120,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삼위일체 견갑 파편이 지급되었습니다.]

포인트를 제외하곤 하층부 보스와 보상이 똑같았다.

특히 지급된 아이템의 이름이 똑같았는데, 파편의 형태는 이전 것과 매우 달랐다.

포탄을 맞은 것 같이 매우 조그만 파편 덩어리가 있을 뿐이다.

준석은 아공간에 넣어 두었던 다른 견갑 파편을 꺼내 방금 받은 파편과 접촉을 시켰다.

그러자 조그만 파편 덩어리가 흐물흐물한 액체로 변해 하층부에서 얻은 견갑에 흡수가 되었다.

그러며 견갑에서도 변화가 일었다.

남색에 가까운 색을 띠던 견갑이 검은색으로 변질하고 없던 문양이 생겨났다.

삼각형의 모습을 드러낸 문양은 선을 타고 빨갛게 타올랐다.

[삼위일체 견갑 파편이 일부 완성된 모습을 갖춥니다.]

여전히 정보창을 열어 볼 수는 없었으나 차차 형태가 완성되어 가는 모습에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때.

“캬하응?”

다칼이 뒤를 돌아보며 말했다.

-기척이다.

그 말에 준석도 같이 고개를 돌렸다.

뚜벅. 뚜벅. 뚜벅.

걸어오는 소리가 대놓고 들려오고 있었다.

기척을 숨기지 않는 걸 보니 기습 공격은 아니었다.

곧 모습을 드러낸 정체.

준석은 그 정체를 확인하곤 가슴팍까지 들어 올렸던 지팡이를 내려 두었다.

-저 여잔. 우리와 같이 올라온 등반자 아닌가?

“맞아.”

유독 눈에 띄는 행동을 많이 해 그녀의 이름도 알고 있었다.

카이린.

짧은 머리에 가벼워 보이는 몸.

주로 맨주먹을 사용하는 격투가였다.

‘여기까지 온 걸 보면, 유혹을 안 당했다는 건데. 의외로 이성적이네.’

그녀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먼저 입을 뗐다.

“관문마다 보스가 있을 거라더니. 보아하니 이번에도 그쪽이 처리했네. 에이씨……! 최대한 빨리 온 건데.”

카이린은 그가 보스를 처리한 것이 마음에 안 드는지 대놓고 불만을 드러냈다.

준석은 상대해 줄 가치를 못 느끼고 곧바로 몸을 돌렸다.

그러자 카이린이 다급한 목소리로 그를 불러세운다.

“이봐! 사람이 말하면 대답을 해 줘야 할 거 아니야!”

기어코 어깨를 붙잡는다.

그제야 그는 다시 그녀에게 시선을 두었다.

“뭐? 자기가 느려터져서 놓친 걸 또 하소연하려고?”

서로 대화를 섞은 적도 없는데, 자연스럽게 말을 놓았다.

“아니, 내가 언제 하소연했다고!”

“아까 한 게 하소연이지. 그게 하소연이 아니면 뭐야. 아무튼 더 할 말 없으면 간다.”

그가 계단으로 향하자, 카이린은 다급히 그를 따라나선다.

“잠깐만! 기다려!”

하지만 얼마 가지 않아 그녀는 발이 묶여 버렸다.

“아씨! 또 이거야?”

따로 권한을 얻지 못해 보호막에 가로막힌 것.

그녀는 일정 포인트를 지불하고 보호막을 통과했다.

“뭐가 그리 바빠! 기다려 달란 말 안 들려!?”

준석은 아예 대답하지 않기로 마음을 먹은 듯 카이린을 없는 사람 취급해 버렸다.

한데 앞서 걸어가던 그가 이내 계단 중간에서 멈추었다.

뒤따르던 카이린도 그를 따라 자리에 멈췄다.

“뭐야. 왜 갑자기 멈춰?”

준석은 두 눈을 낮게 깔고 계단 밑을 보았다.

-준석.

“알아.”

처음엔 착각인가 싶었는데 자신의 마나가 계단 밑으로 빨려 들어가고 있었다.

당연히 이지 때는 없었던 일이다.

‘올라갈수록 마나를 빨아들이는 양이 커지고 있어.’

“어?”

뒤늦게 이상함을 감지한 카이린도 안색을 굳힌다.

“이거 뭐야? 왜 내 마나가…….”

그녀가 어리둥절해하는 사이에 준석은 다크스윔을 시전해 재빨리 상층부에 도달하려고 했다.

한데 시전되던 마법이 파훼되는 것처럼 흐트러졌다.

그것을 보고 다칼이 한마디 했다.

-근처에 마법 시전을 방해하는 장치가 있는 게 분명하다.

하나 근처, 어디에 있는지 보이지 않았다.

‘그럼 달리면 그만이지.’

여기서 마나를 다 빨리면 곤란하기에 준석은 냅다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갑작스러운 시련이 찾아왔다.

쿠구구구……!

이질적인 기운.

급격하게 마나의 흐름이 바뀌었다.

어디선가 강력한 마법이 발동된 것이었다.

[중력에 짓눌린 듯이 육체가 무거움을 느낍니다.]

[육체의 피로가 빠르게 치솟습니다.]

“크윽!”

준석은 몇십 톤 무게가 두 어깨를 내리누르는 기분을 느꼈다.

그 때문에 움직이는 속도가 느려졌다.

그리고 몸의 피로가 빠르게 쌓여 가고 있었다.

하나 그는 자신에게 걸린 제약을 금세 벗어던졌다.

[목동의 날개 달린 신발 효과가 적용됩니다.]

[중력에 짓눌린 듯이 무거워졌던 육체가 다시 가벼워집니다.]

[생명의 물 효과가 발동합니다.]

[육체의 급격히 쌓여 가는 피로가 사라집니다.]

거기다 신발에 달린 날개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곧 있으면 조건부 효과가 터져 나올 터.

[목동의 날개 달린 신발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효과 증폭’이 발동합니다!]

[효과: 이동방해면역, 이동속도 600% 증가, 민첩x6]

파아앙!

더 빠르게 달릴 자세를 취하고 있던 준석은 엄청난 속도로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좋아. 이거지.”

한편 그의 뒤에 서 있던 카이린은 아까 전의 위풍당당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처량해진 모습으로 목놓아 소리치고 있었다.

“치사하게 혼자만 가냐! 이왕이면 나도 같이 가자! 조오옴!”

그렇게 소리쳤지만 그녀의 말을 귓등도 듣지 않은 준석은 이미 저 멀리 사라지고 난 뒤였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