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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72화 (72/230)

회귀한 탑 등반자 72화

72화 피라미드 중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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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방화자

효과: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불을 지르면 방화 효과가 극대화되며 정의가 실현될 때까지 ‘꺼지지 않는 불꽃’으로 바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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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칭호는 불이 퍼지는 속도가 급격히 빨라지는 효과를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정의의 방화자로 바뀌며 꺼지지 않는 불꽃이 추가되었다.

이는 마치 지옥 불을 연상시켰다.

다만 정의를 실현할 때만이라는 모호한 기준이 붙어 상시로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그래도 쓸 만한 칭호가 나왔어.’

악으로 규정한 것들은 전부 태워 버릴 수 있다는 것 아닌가?

여태까지는 칭호의 효과를 이용해 건물이나 없어져야 할 물건, 필요 없는 물건을 태울 때만 사용했다.

하나 앞으로는 악을 처단하는 데도 쓰일 수 있었다.

그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머금었다.

한데 칭호 두 개를 얻는 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새로운 메시지가 또 올라왔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숨겨진 미션이 진행됩니다.]

[남은 시간: 09:59:59]

[주어진 시간 안에 중층부. 상층부에서 핍박당하고 있는 노예들을 구하십시오.]

회귀 전에는 보지 못했던 미션이다.

준석은 주어진 시간을 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10시간이면 충분하네.”

이제 막 하층부에서 벗어나려던 참이다.

곧장 관문의 보스를 정리한 뒤 중층부를 휩쓸고 다음 상층부로 올라가는 건 금방이었다.

준석은 여전히 큰 덩치를 유지 중인 다칼을 올려다보며 가볍게 점프했다.

등에 올라탄 그가 말했다.

“가자.”

“크르응~.”

-꽉 잡아라.

다칼이 말없이 한쪽 앞발을 뒤로 톡톡 튕기며 자세를 낮췄다.

“푸후우~.”

이어 크게 숨을 내뱉더니.

파하앙!

전광석화처럼 엄청난 속력으로 달려 나갔다.

순간 몸이 뒤로 기울은 준석은 등의 털을 두 손으로 꽉 잡으며 다시 앞으로 중심을 옮겼다.

본래 움직임이 빠르다는 것은 알았지만 직접 등에 타보니 기대 이상이었다.

쾅! 콰앙!

비좁은 공간이 나올 때마다 전부 부수고 달렸다.

그리 막힘없이 달리다 보니 금세 관문 앞까지 이르렀다.

다칼의 몸집보다 큰 철문이 그들을 기다린다.

그리고 아래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등반자들도 눈에 들어왔다.

굳게 닫혀 있는 문.

하나 다칼은 멈추기는커녕 오히려 속도를 높였다.

“캬하아앙!”

“피, 피해!’

도저히 막아 낼 엄두가 나지 않는 듯, 화들짝 놀란 등반자들이 서둘러 도망을 친다.

곧 지근거리까지 접근한 다칼이 문을 그대로 들이박았다.

쿠후우웅! 콰아앙!

힘에 못 이긴 문이 통째로 뜯겨 나간 것도 모자라 저편으로 매우 빠르게 날아갔다.

퍽!

그리고 찰나 무언가를 강하게 치고 지나가는 소리가 들렸다.

“푸흐륵~!”

뒤늦게 움직임을 멈춘 다칼이 고개를 들어 앞을 내다봤다.

준석 역시 똑같이 앞을 내다보았다.

문이 무언가를 친 것 같긴 한데, 정확히 그게 무엇인지 몰라 궁금한 것이었다.

끼이익, 콰아하아앙!

벽에 부딪힌 문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치고 지나간 게 무엇인지 모습을 드러냈다.

웬 피떡이 된 생명체가 어딘가 밟힌 것처럼 찌그러진 채로 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그어어억…….”

몸을 부들부들 떨다가 이내 그러한 움직임마저 사라졌다.

[나타 보스를 처치하였습니다!]

[중층부로 올라갈 수 있는 권한을 얻습니다!]

[압도적인 승리를 취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100,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삼위일체 견갑 파편이 지급되었습니다.]

“음?”

준석은 이 상황을 어리둥절하게 쳐다봤다.

“캬하앙?”

다시 몸집이 작게 만든 다칼 또한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짧은 침묵이 흐르더니, 이내 다칼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래도 하층부를 지키는 녀석이라 셀 줄 알았는데, 약하군. 겨우 문짝 하나 맞고 나가떨어지다니.

완전히 찌그러진 보스를 보며 준석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음. 확실히…… 예상보다 약해 빠졌어. 뭐 덕분에 손을 움직일 일은 덜었지만.”

준석은 대리석이 깔린 넓은 공간 끝에 놓인 드넓은 계단을 쳐다봤다.

계단 앞에는 투명한 보호막으로 가로막고 있었다.

올라갈 수 있는 권한이 없는 자는 저 보호막을 지날 수가 없었다.

하나 어쩌다 보스를 처치해, 권한을 얻은 둘은 가볍게 보호막을 지나쳤다.

준석은 계단을 오르며 보상으로 받은 삼위일체 견갑 파편을 살폈다.

파편이라고는 하나, 기본적인 견갑의 형태는 갖춰져 있었다.

다만 완성형이 아니다 보니 정보창을 열어 옵션을 확인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완성형이 되려면 중층부, 상층부에 있는 관문 보스까지 처치해야 했다.

그러니 당장에 쓸 일은 없었다.

견갑 파편을 아공간에 집어넣고 계단을 오르는 데만 집중했다.

잠시 후, 옆에서 나란히 걷고 있던 다칼이 그에게 물었다.

-그런데 그대가 살던 세상에도 이런 저열한 곳들이 많았나?

“내가 살던 세상에? 으음…….”

준석은 생각에 잠긴 듯 손으로 몇 번 턱을 문질렀다.

“많다고 하면 많고 적다면 하면 적다고 볼 수 있지.”

-그게 무슨 뜻이지?

“겉으로만 보면 없을 것 같이 보이는데, 파고들면 이런 더러운 짓거리를 일삼는 곳투성이지. 생각해 보면 이곳도 똑같잖아? 처음 겉으로 보이는 건 나름 괜찮은데 안으로 파고드니 더러운 것들투성이잖아.”

-그 얘긴, 결국 밖이나 안이나 비슷하다는 거군.

“그래.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세상이 멸망하기 전까지는 그래도 그런 더러운 짓거리들을 대놓고 하지는 못했다는 거야. 뒤에서 해도 언젠가 반드시 걸려 처벌을 받았고. 물론 안 걸린 놈들도 있겠지만.”

-그런 걸 처벌을 하는 집단이 있었다는 건가?

“있었지. 법이라는 게 존재했거든. 법을 어긴 자들은 경찰이 잡아들이고 검찰이라는 집단이 형벌을 정하고 처벌하는 거야.”

-그럼 법은 누가 만들지?

“사람들이. 그래서 부족하지만 그게 또 장점이야.”

-흐음. 잘은 모르지만 뭔가 효율적이고 합당해 보인다. 과연 그게 어떤 모습인지 한 번쯤은 실제로 보고 싶군.

준석은 그 말에 피식 웃었다.

“그럼 낙원에 안 가고 100층을 클리어한 뒤에 나랑 같이 지구로 가면 되겠네.”

-내가?

“그래. 아마 사회가 다시 구축되는데 시간이 좀 걸릴 테니, 그걸 보는 데 오래 걸리겠지만.”

-흐음. 생각은 해 보지.

다칼은 진심인지 농담인지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렸다.

이후로 얼마나 걸었을까? 계단의 끝이 보이고 있었다.

계단 끝에는 이곳을 오르기 전에 있던 보호막과 똑같은 보호막이 처져 있었다.

곧장 보호막을 지나 중층부에 이른 둘은 하층부와는 다른 새로운 광경을 목도했다.

하층부에서는 그래도 자기들만의 욕망을 뒤로 감추었었는데.

중층부는 그런 것 따위 없었다.

초장부터 온갖 더러운 욕망들을 표출하고 있었다.

어떤 인간은 목줄을 차고서 개처럼 기어 다니는 중이었다.

목줄의 끈을 가지고 있는 자는 그런 식으로 끌고 다니는 게 당연하다는 듯이 상황을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였다.

그리고 어떤 놈은 대놓고 사람을 학대하고 있었다.

학대하는 인간은 즐겁다는 듯이 환하게 웃었다.

그걸 본 준석은 표정이 구겨졌다.

아래층보다 위층이 더 심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고 있으니 역겨움이 든다.

이렇게 대놓고 일을 저지르고 있으니 굳이 머뭇거릴 필요도 없었다.

지팡이를 치켜든 그는 차가운 눈빛을 내보이며 다칼에게 나지막이 말했다.

“다 쓸어버려.”

* * *

준석은 은빛 아우라를 뿜어내며 불길 속을 유유히 걸었다.

“으아아악! 아아악!”

“살려 줘어어!”

사방에는 몸에 불을 붙이고 뛰어다니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몸에 붙은 불을 어떻게든 꺼보려고 하지만 물을 뿌리든 모래를 뿌리든 소용이 없었다.

화아악!

끄려 할수록 오히려 불의 기세는 강해졌다.

결국 온몸이 새카맣게 타서 시체가 되어 버린 이들은 침묵했으며 아직 불길 속에 살아 이들은 계속해서 비명을 질러 댔다.

그러나 불길이 번지지 않은 곳이 있었다.

지배자와 그 밑에 지배 층들에게 핍박받던 노예들이 있는 곳이었다.

그들은 지배층들이 죽어 가는 걸 똑똑히 목격했다.

준석은 금방 죽은 지배층 중 한 명의 시신에서 불이 사그라드는 걸 보고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확실해서 좋네.”

정의의 방화자 칭호를 얻고 나서 꺼지지 않는 불꽃 효과가 어떤지 궁금했는데.

확실히 뒤처리가 깔끔했다.

그뿐만 아니라 새로이 얻은 칭호인 노예 해방자 칭호의 해방자 효과도 만만치 않은 성능을 지니고 있었다.

은색빛의 아우라가 피어오르는 동안에는 온갖 공격의 피해를 무효화시켜 주었다.

완벽하다고 볼 수는 없으나, 거의 반무적과 비슷한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었다.

하나 유지 시간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점차 아우라의 빛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아우라가 전부 사라지기 전에 준석은 마지막 타깃이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크르륵!”

그 타깃은 다칼이 목을 문 채 꼼짝도 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은 상태였다.

준석은 중층부의 지배자인 에르샤를 내려다보았다.

주름살이 핀 50대의 얼굴을 지닌 에르샤는 빈정대는 태도로 입을 열었다.

“네가 지금 무슨 짓을 한 것인지는 알고 있기나 해?”

“크확!”

“끄윽, 빌어먹을 놈의 개새끼.”

준석은 더 꽉 깨물려는 다칼을 제지하고는 에르샤와 눈을 마주쳤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어디 설명해 봐.”

“하! 사람 잘못 건드렸어. 여기서 이 짓을 벌인 걸 보면 하층부에도 깽판을 친 것 같은데. 여기까지는 어떻게 비볐다고 쳐도 상층부에 있는 라네스 님에게 걸리면 네놈의 목이 먼저 따일 걸? 결국엔 네놈 머리가 바닥에 굴러다니겠지. 끼하하하하!”

까마귀처럼 웃어 대는 목소리에 준석은 무심히 주먹을 내뻗었다.

퍽!

“끄악!”

“아줌마, 시끄러워.”

“뭐, 뭐!? 아줌마!? 내가 어딜 봐서 아줌마야! 이 거머리같이 생긴 녀석이.”

다시금 주먹을 뻗는다.

퍽!

“크억!”

“거울 안 봐? 그 얼굴에 어떻게 아줌마가 아니야. 주름살이 가득 피었구만. 뭐. 나이가 들면 주름살이 피는 건 당연한 거지만, 곱게 나이를 처먹었어야지. 젊은 남자들 끌어다가 자기 욕망을 푸는 데 써먹고. 이상한 쾌락을 가져선 사람을 고문하고 죽여 희열을 느끼고. 더 말해 봐야 뭐 해. 입만 아프지.”

“야아! 너라고 다를 것 같아! 다를 것 같냐고! 인간들은 다 똑같아! 똑같다고!”

발악하는 에르샤를 보며 준석은 마치 벌레를 보듯 흘겨봤다.

이 세상엔 구제가 영원히 불가능한 이들도 존재하는 법이다.

그는 다칼에게 신호를 보냈다.

“죽여.”

“안 돼! 안 돼에에에!”

콰직!

다칼은 단숨에 에르샤를 처리했다.

그리고 중층부 비밀의 방 열쇠는 이미 회수해 둔 상태.

그러니 어디에 있는지 찾을 필요도 없었다.

볼일을 끝냈으니 몸을 돌리려던 준석은 순간 죽은 에르샤의 등을 보고서 시선을 멈추었다.

같이 움직이려던 다칼이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왜 그러지? 아직 얻어야 할 게 남아 있나?

“아니. 그런 게 아니고. 익숙한 걸 본 것 같아서.”

그녀의 등에서 어떤 문신을 보았다.

남아 있는 문신이 거의 지워져 있어 보자마자 알아보긴 어려웠지만, 문신에 새겨진 문양은 분명히 방패 문양이었다.

그것이 평범한 문양이면 모를까, 저 방패는 울튼 왕가의 문양.

한때 저층부를 아우러서 지배했던 왕가의 표식이었다.

동시에 준석이 끼고 있는 영광의 장갑을 만들어 낸 곳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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