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70화
70화 비밀의 방 열쇠
“천만!?”
김차호는 예상치 못한 금액에 화들짝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천만은 아무래도 좀…….”
천만 포인트를 원화 가치로 환산하면 무려 10억 원이 넘는 돈이었다.
그가 돈이 많다고 해도 당장에 그만한 포인트를 지니고 있지는 않았다.
‘더럽게 비싸게 부르네.’
적당한 금액을 불렀으면 지불할 용의가 있었던 그는 아예 생각을 바꾸어 먹었다.
‘일단은 수중에 남아 있는 포인트로 녀석을 꼬드긴 다음에 교환할 때 물건을 빼앗자.’
그리 마음을 먹은 김차호가 가격 흥정에 들어갔다.
“삼백은 어떻습니까?”
“육백.”
“오백으로 하시죠. 그 이상은 저도 못 줍니다.”
“오백오십으로 하지. 나도 이 이상은 양보 못해.”
김차호가 가지고 있는 포인트는 육백만 정도.
오백오십이면 거의 전 재산을 주는 것과 같았다.
‘잠깐만.’
어차피 진심으로 줄 것도 아닌데 진지하게 흥정할 필요가 있을까?
‘그래. 그냥 대충 흥정을 끝내고 녀석을 몰아세울 장소로 이동하자.’
본래 계획은 사행성 게임을 하도록 꼬드기거나 여자한테 정신을 팔리게 만들어 가지고 있는 포인트를 전부 탕진시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한 번 탕진을 당하고 나면 피라미드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다.
이곳에 처음 온 등반자들은 모르는 사실이지만, 피라미드에 들어올 때는 아무런 포인트가 필요 없으나 나갈 때는 포인트를 내고 나가야 했다.
그리고 수십 명에 가까운 다수가 상대해야 처리할 수 있는 각 층의 보스를 혼자서 해치울 수 있는 것이 아닌 이상에야 하층부에서부터 상층부까지 올라가는데도 포인트가 필요했다.
그러한 사실을 모르다 보니 대다수가 포인트를 다 써 버리는 실수를 범하고 만다.
김차호는 준석도 그리 만들어 버릴 생각이었으나, 코앞에 있는 향락의 진주를 보고 나니 마음이 달라졌다.
저것만 있으면 사람의 마음마저도 지배할 수 있을 거란 확신에 욕심이 불타올랐다.
‘물건을 꺼냈을 때 기회를 노려야 돼. 지금이 아니면 영영 못 가질 수도 있어.’
포인트가 없는 피라미드의 노예로 만든다고 하여 아공간에 넣어진 물건까지 얻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설사 고문과 협박을 한다고 하여도 독한 놈의 같은 경우는 그런 방법이 안 통할 수도 있었다.
그러니 차라리 노예로 만들지 못해도 향락의 진주만큼은 빼앗겠다는 생각이었다.
잠시 후 그가 희멀건 치아를 드러냈다.
“좋습니다! 오백오십으로 하시죠. 그런데 거래를 하기 전에 장소를 옮겼으면 합니다. 여기는 보는 시선도 많고 시끄러워서.”
“맘대로 해.”
김차호가 두 손을 깍듯이 앞으로 뻗었다.
“이리로 따라오시죠.”
준석은 망설임 없이 그를 따라나섰다.
점차 사람들이 있는 곳과 멀어진다.
쿠웅-
단둘이 커다란 문과 통로를 지났다.
그러며 준석은 주위를 둘러보았다.
셀 수 없이 많은 문들이 설치된 게 보인다.
길치가 아닌 사람이 와도 길이 헷갈릴 정도로 미로 같은 공간이었다.
이내 하나의 문을 더 지났다.
돌과 기둥이 많은 공간에 들어선 김차호가 한가운데서 멈췄다.
준석은 여유로이 미소를 띠었다.
웃는 얼굴을 마주 본 김차호는 속으로 속삭였다.
‘멍청한 놈,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고 웃어? 머리가 좋은 놈인 줄 알았더니. 의외로 허술하잖아.’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이곳에는 정예병 스무 명이 숨어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곳곳에 설치해 둔 함정은 설사 기여도 랭킹 1위를 밥 먹듯이 한 놈이라고 할지라도 빠져나가기가 어려울 것이다.
다만 거래를 마치기 전까지는 숨은 이빨을 드러내면 안 됐다.
김차호는 가지고 있던 거래 큐브를 꺼내 약속했던 오백오십만 포인트를 집어넣었다.
빠르게 수치가 올라간다.
“자. 말했던 오백오십만 포인트. 보이시죠?”
김차호는 마지막까지 의심을 없애기 위해 큐브에 표기된 숫자를 보여 줬다.
“그럼 하나. 둘. 셋 하면 서로 건네주는 걸로 합시다.”
“그럴 필요 있나.”
준석이 먼저 향락의 진주가 들린 손을 앞으로 뻗었다.
잴 것 없이 바로 거래하자는 뜻이었다.
김차호의 입장에선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는 큐브가 들린 손을 앞으로 뻗으며 동시에 나머지 손도 같이 움직였다.
향락의 진주가 손끝에 닿는 순간 김차호는 탐욕스런 표정을 지으며 소리쳤다.
“지금이야! 죽여!”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숨어 있던 정예병들이 튀어나와 마법과 화살. 각종 암기들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김차호는 힘을 줘서 향락의 진주를 강탈하려고 했다.
“……크윽!”
한데 무슨 일인지 그의 손아귀에 있는 향락의 진주가 꿈쩍도 하지 않고 있었다.
“으으으윽!”
아무리 용을 써도 꿈쩍도 하지 않자 뒤늦게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뜨거운 시선을 느꼈다.
준석은 그를 쳐다보며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드에 있는 녀석이라 얼마나 센지 보려고 했더니. 별 볼 일 없는 송사리였네.”
“뭐, 뭣!?”
“못 들었어? 포인트나 주고 이만 꺼지라고!”
퍽!
“커억!”
김차호가 발에 걷어차여 날아갔다.
벽에 부딪힌 그는 배를 움켜잡으며 왠지 허전해진 손을 쳐다보았다.
가지고 있던 거래 큐브가 없다.
재빨리 앞을 내다본 김차호가 준석의 손에 들린 거래 큐브를 보곤 눈이 뒤집혔다.
“……내 포인트! 내 포인트 내놔!”
감정이 앞서 대책 없이 달려 나간다.
그런 그를 맞이하는 준석은 가지고 있던 거래 큐브를 던져 주며 발을 들어 올렸다.
퍽!
“쿠헉!”
또 걷어차인 그가 똑같이 벽에 부딪치며 입에서 피를 쏟아 냈다.
하지만 자신의 포인트를 다시 되찾았다는 생각에 바보같이 미소를 지어 보였다.
“흐흐흐…….”
하나 금방 안색이 굳어진다.
‘없어?’
거래 큐브에 넣었던 오백오십만 포인트가 제로로 표시되어 있었다.
순간 뇌 정지가 온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
자신이 놀아났다는 것을 깨달은 김차호가 표정이 악귀처럼 변했다.
“이런 시발! 버러지 새끼가아아!”
이번엔 그냥 달려들지 않고 아공간에서 채찍을 꺼내 들었다.
스륵, 촤아악!
채찍이 매섭게 공기를 찢으며 날아갔다.
서슬 퍼런 마나의 힘이 담긴 일격이었다.
탓!
하나 채찍을 가볍게 막아 낸 준석은 그것을 꽉 잡고서 되레 힘으로 김차호를 끌어냈다.
“크허억!”
힘에 못 이겨 끌려간 그가 속절없이 무릎을 꿇는다.
김차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상대의 무릎을 꿇리는 것엔 익숙하지만, 자신이 무릎을 꿇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았다.
자존심이 상했다.
김차호는 자신의 힘만으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는지 정예병들을 향해 고함을 질렀다.
“뭐 하고 있는 거야! 이 병신들아! 빨리 쳐! 빨리 치라고!”
발악, 소리쳤음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는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뒤늦게 이상하다고 느낀 그가 주위를 둘러본다.
“어……?”
감정에 앞서 있는 나머지 잠시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첫 기습 공격 때 아무런 타격이 없었던 것도 그렇고, 이후에 왜 정예병들이 눈에 띄지 않았는지.
“뭐야……?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이 새끼들아!”
공격해야 될 정예병들이 어느새 돌로 변해 있었다.
“크아하암~.”
석상 앞에서 하품을 찢어지게 하는 한 생명체.
자신이 밟으면 힘없이 죽을 것 같은 아주 자그마한 늑대였다.
별로 위협이 될 것 같지 않아서 크게 경계를 하지 않았는데, 그것은 잘못된 계산이었다.
‘설마. 함정마저…….’
급히 주머니에서 함정 버튼을 꺼내 눌러 보지만 반응이 없긴 마찬가지였다.
어느덧 자신의 채찍을 들고 다가선 준석이 그를 흘끔 내려다보았다.
“개 짖는 소리는 끝났나?”
“…….”
준석은 아무런 말도 잇지 못하는 그에게 질문했다.
“열쇠는 어디에 있지?”
여전히 입을 다문다.
“마지막으로 물어보지. 열쇠 어디 있어.”
“……열쇠? 무슨 열쇠?”
알면서도 시치미를 뗐다.
그러며 품속에 손을 넣는다.
“아~ 생각났다. 생각났어.”
준석이 귀를 기울인다.
상대가 방심하고 있는 틈을 타, 그는 재빠르게 몸을 움직였다.
“열쇠 여기 있다 새끼야!”
독이 묻은 단검을 꺼내 들고서 준석을 찌르려고 시도했다.
동시에 여러 개의 단검이 품에서 쏟아져 나와,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공중을 떠돌며 곧 준석을 노렸다.
회심의 일격!
그러나 어디선가 검은 나무줄기들이 튀어나와 훼방을 놓았다.
채채채채챙!
그것은 날아든 단검을 전부 쳐 낸 것도 모자라, 김차호의 양팔과 양발을 전부 속박했다.
“크흐으윽! 으아아! 이거 놔! 이거 놓으라고!”
“아무래도 대답할 생각이 없나 보군.”
“퉤! 시발! 열쇠의 존재를 어떻게 알았는지 모르겠지만, 네 녀석에게 알려 줄 일은 평생 없을 거다! 이 밥버러…….”
그는 끝까지 말을 잇지 못했다.
더 들을 필요 없다고 판단한 준석이 검으로 그의 목을 베어 버린 것이다.
“말이 너무 많아.”
하층부 지배자치고는 꽤 허무한 말로였다.
준석은 차분히 녀석의 주머니를 뒤지곤 그에게서 열쇠가 없다는 걸 깨닫고 방을 빠져나왔다.
그리고 등가교환 마법을 시전해 열쇠가 있는 위치를 추적했다.
‘저기다.’
가는 길에만 십여 개가 넘는 문이 존재했다.
또 전부 잠겨 있어, 고민할 필요 없이 전부 힘으로 부숴 버렸다.
쾅!
마지막 장애물까지 부순 그는 이내 열쇠가 담긴 상자를 찾아냈다.
한데 열쇠가 있는 위치에는 다른 것들도 같이 있었다.
썩 달가운 광경은 아니었다.
“크르르!”
-예나 지금이나 이곳은 하나도 바뀌지 않았구나. 같은 동족을 이런 식으로 취급하다니, 쓰레기만도 못한 놈들.
김차호에게 붙잡혀 노예가 된 이들이 쇠창살 안에 갇힌 채 천천히 생기를 잃어가고 있었다.
먹을 것도 제대로 주지 않아, 티가 날 만큼 몸이 빼빼 말랐다.
거기다 걸칠 것 하나 주지 않아, 벌거벗은 몸을 하고 있는 모습에선 인간의 존엄성 따윈 찾아볼 수 없었다.
그리고 그것을 수치심이라 여기지 않을 만큼 그들의 정신이 무너져 있는 게 보였다.
여기에 있는 숫자만 해도 수십 명.
분명 다른 곳에도 더 있을 것이다.
저들이 노예가 된 것에는, 어찌 보면 저들 탓도 있으니 잘했다고 볼 수는 없었다.
다만 이대로 무시하고 가면 아사하는 고통을 느끼다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다.
그러니 풀어 주는 것 정도는 해 줘도 되지 않을까.
준석은 양손을 앞으로 펼쳤다.
콰가가가곽……! 챠아아앙!
그들을 가둬두던 자물쇠 전부를 깨부수었다.
최소한, 이들을 책임지지는 못해도 저 좁아터진 감옥에서 벗어나게는 해 줄 수 있었다.
하나 자물쇠가 부서져, 문이 열렸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움직일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몸이 많이 망가지기는 했어도 분명 움직일 수는 있을 텐데 말이다.
“자의마저 잃어버렸군.”
그나마 일부 몇 명이 정신을 차리고서 감옥에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나머지는 여전히 그 안에 있었다.
준석은 그들을 지켜보다 냉정히 몸을 돌렸다.
그러자 다칼이 그에게 묻는다.
-저대로 내버려 둘 생각인가?
“이 정도면 내가 할 일은 다했어. 감옥에서 나와 여길 빠져나가는 건, 저들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이지.”
-흐음. 하긴. 이 이상 오지랖 부려 봐야 돌아오는 건 원망이나 욕뿐이겠지. 그 이상 도와줄 이유나 명분도 없고.
인간이란 챙겨 주면 그걸 당연한 권리로 착각한다.
그런 어리석은 마음이 생겨나는 건 모두 자신의 나약함으로부터 비롯된다.
나약함을 없애고 스스로 털고 일어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법이다.
특히나 한번 타락을 맛봤던 이들은 더더욱 그렇다.
마지막으로 저들의 모습을 보며 이내 준석은 상자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상자를 열자, 문손잡이처럼 생긴 열쇠가 눈에 띄었다.
[비밀의 방 열쇠下를 얻었습니다.]
‘너무 쉬운데?’
너무나도 쉽게 열쇠를 획득하니 무언가 꺼림칙한 기분이 들었다.
이런 중요한 물건을 그냥 두었을 리가 없을 텐데.
그때.
쿵……! 쿵……! 쿵……!
갑자기 땅이 울리기 시작했다.
발 울림처럼 일정하게 들려오는 소리는 점차 이쪽과 가까워져 갔다.
이내.
콰아앙! 퍼서석!
땅의 울림소리를 냈던 정체가 두꺼운 벽을 부수고서 모습을 드러냈다.
그 정체는…… 다름 아닌 피라미드의 미라 병사.
그것도 최정예로 취급되는 카미라라고 불리는 녀석들이었다.
2미터는 훌쩍 넘는 키. 무거운 철갑옷과 투구. 그리고 쌍날 도끼를 양손에 거머쥐었다.
준석은 그들과 마주하며 안색을 굳히긴커녕 입꼬리가 한쪽으로 올라가 있었다.
“그래. 쉬우면 재미가 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