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69화
69화 피라미드 하층부
피라미드 하층부 내실.
하층부를 총체적으로 관리하는 김차호.
그는 여유로이 차를 들이켜며 15층에 새로 올라온 등반자들에 대한 보고를 들었다.
“그러니까 예의 주시해야 될 놈이 이 세 놈뿐이라 그거지?”
“예. 14층에 내려 보냈던 정보원의 보고에 의하면 같이 있던 등반자들이 그 셋을 주로 지목했답니다.”
“흐음.”
이름: 카이린
성격: 괴팍함. 이기적임
주특기: 주먹
특이사항: 층마다 기여도 순위에서 1~5등을 차지함. 이명: 타고난 격투가
이름: 이백호
성격: 호전적이고 무계획적임. 매우 단순함
주특기: 쌍검술
특이사항: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음. 기여도 순위에서 항상 3위권을 차지함. 이명: 기백의 쌍검사
이름: 이준석
성격: 대체적으로 말은 조용한 편이나 행동은 과감하며 계획적임
주특기: 마법
특이사항: 층마다 기여도 순위에서 최상위를 차지하는 것으로 예상됨. 이명: 비공개. 머리 혹은 어깨에 새끼 늑대를 데리고 다님.
수행원이 가지고 온 정보를 훑어본 그가 입을 달싹이며 세 명을 호명했다.
“카이린, 이백호, 이준석.”
혹여나 피라미드에 위협이 될 수도 있는 인물들의 이름을 되새기던 그는 유독 한 사람이 눈에 들어왔다.
이준석.
“조용하지만 계획적이라…… 이런 놈들이 꼭 골치 아프지. 이 녀석에 대해서 더 아는 거 없어?”
“신뢰성 있는 정보로는 종이에 적힌 정보가 다입니다. 이준석 같은 경우는 워낙 말수가 없는 편이어서 추측성이 섞인 말들이 많았답니다.”
“그래? 음. 아쉬운데.”
추측성 말이라도 들어 볼까 고민을 하던 찰나.
“큭.”
김차호의 몸이 한쪽으로 기울었다.
순간 옆으로 넘어질 뻔한 그는 악독스럽게 이맛살을 찌푸리며 아래를 내려다봤다.
땀을 뻘뻘 흘리며 의자 흉내를 내고 있는 한 남자.
“쯧.”
김차호는 자리서 일어서더니 남자를 보며 곧바로 발길질을 했다.
“커억!”
“그거 하나 제대로 못해서 빌빌대? 하마터면 넘어질 뻔했잖아! 이 버러지가!”
퍽! 퍽! 퍽!
그는 분노가 가실 때까지 발길질을 멈추지 않았다.
“후우~ 안 일어나? 엄살 피우지 말고 일어나.”
“잘, 잘못했습니다! 주인님! 제발 기회를 한번만!”
남자가 그에게 바짝 붙어 손이 불나도록 빌어 댔다.
“이 새끼가, 어디서 더러운 손을 대!”
김차호는 아예 일어서지 못하도록 아공간에서 꺼낸 채찍으로 그를 내리쳤다.
촤악!
“으억!”
촤악!
“억!”
채찍질 소리는 비명이 들려오지 않을 때까지 계속됐다.
김차호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가다듬더니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하여튼 간에 요즘 녀석들은 약해서 안 돼. 이봐.”
수행원이 김차호의 뚱뚱한 몸매를 슬쩍 보며 답했다.
“예.”
“새로운 의자 하나 더 가져다 놔.”
“알겠습니다.”
“그리고 이 새끼는 치워 버려.”
“네. 다음엔 조금 더 튼튼한 놈으로 데려오겠습니다.”
김차호는 수행원에게도 경고를 했다.
“한 번 할 때 잘해라. 그리고 카이린과 이백호는 들어오면 얼굴 반반한 녀석들을 붙여서 정신줄 좀 빼놔. 이곳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무슨 말인지 알지?”
“예. 그럼 나머지 한 명은 어떻게 할까요?”
“이준석? 그놈은 내가 직접 찾아가보지. 우선 어떤 놈인지부터 확인해 봐야겠어.”
“알겠습니다.”
“이만 나가 봐.”
수행원은 깍듯이 인사를 하고 구석 한편에 쓰러져 있는 남자를 데리고 나갔다.
홀로 남은 김차호는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간만에 움직여 보네. 이번 놈은 눈앞에 꿇리면 어떤 느낌이려나.”
혀를 날름거리는 그는 벌써부터 발밑에 두는 걸 상상했다.
“흐흐흐, 크하하하!”
방 안에 울려 퍼지는 쩌렁쩌렁한 웃음소리는 한동안 끊이지 않고 계속되었다.
* * *
피라미드 내부로 들어온 준석은 주변의 분위기부터 살폈다.
인간의 욕망이 드러난 곳 혹은 추악한 곳이라 표현했지만, 실제로 체감되는 분위기는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미라독들이 펼치는 레이스가 곧 시작됩니다! 인생 역전의 기회를 꿈꿔 보세요!”
“포커! 고스톱! 마작! 등등 없는 게 없고 전부 다 있어요! 대박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
“언니, 오빠들! 피로 한번 녹이고 가요. 최상의 전신마사지 한번 받고 가면 피로가 싹 가신다니까?”
시장 길거리인지 피라미드 내부인지 구별이 되지 않을 만큼 시끌벅적했다.
마치 라스베이거스에 온 것만 같은 착각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
사람들의 웃음이 끊이질 않으며 불행한 사람 하나 없이 행복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준석은 달갑지 않게 상황을 내다봤다.
오히려 밖에 있을 때보다 더 냉랭함을 풍겼다.
“쇼들 하고 있네.”
이곳은 사람들의 눈을 홀리기 위한 보여 주기식에 불과했다.
이지 때 또한 처음 분위기는 이와 비슷했다.
사람들이 이곳에서 눌러 살면 좋겠다고 생각이 들게 할 만큼 파라다이스적인 환경을 조성했다.
하지만 그것은 피라미드를 지배하는 자들의 계략이었다.
‘나도 전엔 이 분위기에 속아 넘어갔지.’
유흥으로 포인트를 전부 소모하게 하는 것이 그들의 목적.
뒤늦게 포인트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땐 이미 늦은 후다.
그제야 비로소 파라다이스 뒤에 숨겨진 추악한 진실과 마주하게 된다.
수많은 등반자들이 빚에 묶이거나 강압을 당해 노예처럼 살아가고 있었다.
피라미드의 본질은 포인트로 뭐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탑이 구축해 둔 각종 상점과 피라미드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미라 병사들. 그리고 위로 올라갈 수 있는 방법마저도 포인트로 해결이 가능했다.
피라미드의 층은 하층부, 중층부, 상층부. 총 세 부류로 나눠진다.
또한 포인트 없이도 오르는 방법이 존재한다.
각 층을 지키고 있는 보스를 직접 처리하면 끝.
지금 당장에도 준석은 넉넉히 잡아 한 시간 내에 상층부 관문 끝까지 다다를 수 있었다.
그럼 미션도 클리어가 가능하고, 누구보다 빨리라는 조건을 채울 수 있다.
그리하면 기여도 순위에 도움이 되겠지만 준석은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이곳에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하층부, 중층부, 상층부마다 존재하는 히든피스 조각.
자세히는 세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각 층마다 있는 열쇠들을 얻고 나면 상층부에 존재하는 비밀의 방을 출입할 수가 있다.
‘거기에만 가면 스핑크스의 머리를 얻을 수 있어.’
스핑크스의 머리.
그것은 아이템임과 동시에 에고가 존재했다.
그리고 그 에고가 낸 문제를 풀면 숨겨진 힘이 개방하게 되는데 탑을 오르려면 그 힘이 꼭 필요했다.
‘이지 때는 그걸 각 층부에 있는 지배자들이 가지고 있었지.’
아마 여기서도 그다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열쇠는 히든피스 조각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성능이 꽤 괜찮은 아이템이기도 했다.
그러니 힘 있는 자들이 그걸 안 가지고 있을 리가 없었다.
지배자들을 찾아 열쇠를 빼앗고 처리한다는 뜻은 피라미드의 뿌리를 뽑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
추후 새로운 지배자들이 다시 생겨날 수 있겠지만, 최소한 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썩은 뿌리들을 꼴 보기가 싫었다.
그들이 하는 짓이 역겹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이지에서 포인트를 뜯겼던 기억 때문에 사소한 복수심도 일었다.
대상은 그 대상이 아니나, 그래야 조금은 속이 후련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한동안 머물러 있던 그는 조금 더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나저나 이 벌레 같은 녀석은 어디에 있으려나.’
하층부 지배자가 어디에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지 때와는 다른 놈들을 상대하는 것이라서 어떤 얼굴을 하고 있는지는 몰랐다.
“귀찮은데 그냥 마법이나 쓸까.”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등가교환.
그는 하층부에 있는 등반자 중에 가장 강한 놈을 추적했다.
사람을 찾는데 천리안 와드를 사용할 수도 있었지만 추후 더욱 중요한 데에 쓰일 것을 고려해서 조금 더 묵혀 두었다.
우웅-!
발동한 마법이 그의 시야를 광범위하게 넓혔다.
그러더니 총알같이 빠르게 움직이는 시야가 그를 어딘가로 인도했다.
이윽고 어느 한 곳으로 당도했다.
“오호…….”
준석은 흥미롭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건 조금 의외인데?”
어디엔가 구석에 찌그러져 있을 줄 알았더니, 그가 찾던 대상은 의외로 가까이에 있었다.
그것도 자신을 향해 제 발로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킁킁!”
-어디서 돼지 냄새가 나는군.
“그러게.”
신사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가 손수건으로 이마에 맺힌 땀을 훔치며 준석에게 말을 걸어왔다.
“안녕하십니까. 반갑습니다.”
준석은 상대를 알고 있었지만 모르쇠로 반응했다.
“누구?”
“저는 이곳을 총괄하는 김차호라고 합니다. 그쪽 얘기는 많이 전해 들었습니다.”
대놓고 정보원이나 수행원들을 풀어 인적조사를 끝냈다는 것을 밝혀 왔다.
이미 알고 있는 얘기였지만 여전히 모르쇠를 일관하며 맞받아쳤다.
“난 그쪽한테 내 얘기를 해 준 적이 없는데.”
김차호의 한쪽 눈썹이 꿈틀거렸다.
말이 짧아 기분이 나빴을 법함에도 그는 침착한 태도를 유지하며 말했다.
“하하. 이곳의 총관리를 맡고 있다 보면 별의별 얘기들이 다 귀에 들어옵니다. 그러니 너무 기분 나빠하진 마시죠.”
준석은 웃는 얼굴에 침이라도 뱉을까 진지하게 고민했다.
‘가증스럽네. 그런데 지배자가 이리 직접 나선 걸 보니 경계대상 1호로 찍혔나 보군.’
아마 이렇게 좋게좋게 얘기하면서 어떻게든 등골을 빨아먹고 뒤통수칠 것이다.
속이 훤히 보이니 여기서 당장 정리할까 생각하다가 잠시 계획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
더욱 좋은 수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냥 열쇠를 빼앗고 처리하는 것보단 녀석이 가지고 있을 어마어마한 포인트도 뜯어내는 게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머리에 스쳐 지나갔다.
피라미드에서 사람들의 등골을 빨아먹었다면 분명히 엄청난 포인트를 손에 쥐고 있을 터.
‘포인트는 강제로 빼앗을 수가 없지.’
그렇다고 아예 빼앗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럼, 미끼를 던져 볼까.’
“뭐. 사람 정보가 여기저기서 새어 나가는 건 흔한 일이니, 그냥 넘어가지.”
“이해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보다 이곳을 총괄하는 사람이라면 이곳 지리나 정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겠네?”
“예? 아, 예. 그렇죠.”
“그렇담 안내를 좀 해 주지. 내 얘기를 멋대로 수집한 대가로 생각해.”
“어, 음. 네. 바쁘지만 그리 어렵지 않은 부탁이니 들어 드리겠습니다. 어디로 안내해 드릴까요?”
준석은 이내 물건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것을 팔까 하는데. 괜찮게 팔 수 있는 곳으로 안내해 주면 좋겠군.”
“……!?”
물건을 본 김차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찰나지만 탐욕스러운 눈빛이 스쳐 지나갔다.
‘탐이 날 테지.’
피라미드는 인간 본연의 욕망이 드러나는 곳.
그런 곳에서 모든 욕망을 실현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아 있는 그라면 욕심을 낼 수밖에 없는 물건이었다.
향락의 진주.
11층에서 바크가 가지고 있던 물건이다.
가까이 있는 대상을 천천히 향락에 빠뜨리는 힘을 가진 그것은 사람의 마음을 강제로 조종하는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역시나 곧바로 반응이 왔다.
금세 입꼬리를 올린 김차호가 말했다.
“그거, 제가 사겠습니다.”
그래도 머리가 돌아가는 놈인지, 강제로 빼앗으려는 어리석은 행동은 하지 않았다.
상대가 아공간에 넣고 죽게 되면 다신 가지게 될 수 없을 테니.
그뿐만이 아니라 그의 정보에 대해서 들었다면 섣불리 나서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얼마에 파실 작정입니까? 혹시 생각해 둔 가격이라도?”
“있지.”
“어지간하면 가격을 맞춰 드릴 수 있습니다. 말씀해 보시죠.”
“큰 거 한 장.”
“백만이요? 그 정도면 충분히…….”
“아니, 말고.”
“그럼…….”
준석은 똑같이 입꼬리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천만, 천만 포인트에 팔도록 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