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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66화 (66/230)

회귀한 탑 등반자 66화

66화 인식 속에서 사라진 통로 (2)

당황한 네펜데스가 급히 양팔을 들어 올린다.

촤라라락!

꽃들의 줄기가 뱀처럼 기어 나오더니 가시 벽을 두른다.

접근 자체를 차단할 생각이었던 것 같지만 이전의 모습을 되찾은 다칼에겐 소용이 없었다.

“캬하앙!”

다칼이 앞발을 들어 올렸다가 내리찍자 생성된 가시 벽이 스티로폼처럼 갈가리 찢겨져 나갔다.

“꺄아!”

네펜데스가 화들짝 놀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틈을 타 다칼이 접근해 녀석의 목을 꽉 물었다.

“끄아아악! 떨어져라! 냄새나는 더러운 녀석!”

“크륵!”

-타락한 정령 따위가 감히!

다칼이 단단히 화가 나 보였다.

나야 처리할 대상을 대신 정리해 주니 그저 편안할 따름이었다.

“히아아야야! 무엇을 하는 것이야! 당장 녀석을 공격해라! 나의 새싹들이여!”

네펜데스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이 다른 꽃의 정령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아우우우우!”

하지만 다칼의 울음소리에 단박에 정리가 됐다.

다칼이 뿜어낸 어둠이 주변을 어둡게 만들더니 움직이려는 정령들을 옴짝달싹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어둠이 살아 숨 쉬듯 움직여 녀석들의 움직임을 아예 봉쇄해 버렸다.

“캬하아아아아!”

-이제 그만 무로 되돌려 주마.

뒤늦게 무언가가 잘못되었다고 느낀 네펜데스가 곧장 꼬리를 내리며 애절하게 소리쳤다.

“살, 살려 줘! 목숨만 살려 주면!”

“크하아악!”

“꺄아아아!”

씨알도 안 먹히는 소리였다.

다칼이 더는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다고 느꼈는지 네펜데스는 이내 나를 쳐다보았다.

“제발! 살려 주기만 하면 내가 알고 있는 정보는 다 넘길게! 그러니까 그쪽 개한테…… 꺄아악!”

다칼이 자기를 개라고 표현한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나 보다.

고통의 비명 소리가 더욱 커졌다.

‘그런데 정보? 무슨 정보를 넘긴다는 거지?’

“그쪽이 혹할 만한 물건이 있는 곳을 알려 줄게! 그러니까 제발! 끄아아아!”

“다칼, 잠깐.”

다칼이 이쪽을 흘겨보며 말했다.

-이런 녀석의 말은 들을 필요조차 없다.

“그래도 들어 보는 게 나을 것 같은데.”

-동행자여, 타락한 자의 혀 놀림에 넘어가면 안 된다.

“넘어간 게 아니고. 그냥 들어 보기만 하자는 거지.”

나는 다크스윔을 이용해 네펜데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크르르르.”

여전히 목을 물은 채 놓아 주지 않는 다칼.

내가 다칼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그제야 목을 놓아 주었다.

“자. 말해 봐. 내가 혹할 만한 아이템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는 게 사실이야?”

“멍청한! 내 목숨이 걸린 일에 거짓말을 하겠어!?”

“콰아악!”

“꺄아아아!”

말투가 건방져서 내가 하려던 행위를 다칼이 대신 해 주었다.

“그만.”

“끄으윽! 빌어먹을 개새끼!”

“크아악!”

“꺄아아아!”

그 후로 몇 번을 더 물리고 나서야, 녀석의 건방진 말투가 사그라졌다.

“말해 봐. 어디에 있는지.”

“……살려 준다 약속을 해 주면. 말해 주지.”

“그래? 그냥 지금 당장 죽던가, 다칼.”

녀석에게 굳이 묻지 않아도 됐다.

물건이 있는 곳을 알고 있다면 필시 이 근방에 있을 것일 터.

그렇다면 점지 스킬이 발동될 때까지 이 근방을 돌아다니면 되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물어본 이유는, 거기에 투자하는 시간을 줄이려는 것일 뿐이다.

“아, 아니! 아니! 아니! 말할게! 말하면 되잖아!”

“진작 그럴 것이지.”

네펜데스에게서 포스 넘치던 위용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오직 비굴한 모습만이 남아 있었다.

“칫…… 저쪽으로 가면 우물 하나가 있어. 달이 비추는 우물이니 금방 찾을 거야. 그곳에 가 봐.”

“달이 비추는 우물? 우물 안에 물건이 있다는 건가? 아니지. 그냥 같이 가 보면 되겠네.”

“이이이! 말하면 풀어 준다면서! 감히 거짓말을!”

“내가 언제? 들어 보기만 한다고 했지. 풀어 준다는 말은 일절하지 않았는데. 그리고 네 말을 어떻게 믿어? 방금 전까지 우릴 죽이지 못해 안달 나 있던 녀석의 말을.”

“캬하아!”

-그렇지. 타락한 자의 말은 믿는 것이 아니다.

“쌔해해해!”

퍽!

“끼악!”

대놓고 싫은 소리를 내니 저절로 주먹이 나갔다.

“더 맞고 갈래? 아님 그냥 갈래?”

“…….”

그제야 꼬리를 내린다.

역시 맞아야 말을 듣는다니까.

나는 네펜데스가 안내하는 우물로 가는 동안 다칼에게 물어봤다.

“그런데 갑자기 어떻게 된 거야? 어떻게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온 거지?”

“크르릉.”

-그것이. 나도 의문이다. 그러나 내 목에 걸린 목걸이와 연관이 있는 것이 틀림없다. 이곳을 들어온 뒤로 목걸이에서 엄청난 힘이 뿜어져 나오더군. 그게 내 육체에도 영향을 끼친 것 같다.

“목걸이와 연관이 있단 말이지…….”

하승달 목걸이는 달의 여신 페르라의 힘이 깃든 물건.

그러나 물건에는 그녀의 힘이 많이 남아 있지 않은 걸로 알고 있다.

한데 11층에서 주피로와 싸웠을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이미 소멸해 버린 신좌의 물건에서 생각 이상의 힘이 나온다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했다.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있어.’

특히나 이곳에 온 뒤로 목걸이의 힘이 더욱 강해졌다고 했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쩌면 페르라가 살아 있을지도 몰랐다.

그게 아니고서는 목걸이의 힘이 강해질 일이 없었다.

‘혹시 우물과 연관이 있나?’

하늘을 올려다보면 달 같은 건 찾아볼 수도 없었다.

어둡고 침침하다.

그런데 우물에 달이 비친다고 했다.

‘가 보면 그게 어떤 의미인지 금방 알게 되겠지.’

앞장을 서던 네펜데스가 발걸음을 멈춰 섰다.

“저기가 내가 말한 우물이야.”

꽃과 수풀이 가득한 들판 사이로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우물 한 개.

근방에 또 다른 우물이 있긴 했지만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다.

“커헝!”

다칼이 먼저 우물로 뛰어나갔다.

툭!

나는 네펜데스의 등을 떠밀며 그 뒤를 따랐다.

곧 다칼과 맞은편에 서서 우물을 들여다보았다.

네펜데스가 말한 대로 우물 안에는 반짝이는 초승달이 비치고 있었다.

분명 하늘에는 달이 없건만, 마치 우물이 달을 품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환각이나 허상인가?’

자세히 보니 물 아래에 반짝이는 초승달 조각이 보였다.

그것이 물로 투영돼 실제 달처럼 보였던 것이다.

우물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던 다칼이 굳게 닫고 있던 입을 열었다.

-여신이 말을 걸어왔다.

“여신이라면 페르라?”

다칼이 고개를 끄덕인다.

-목걸이에 힘을 불어넣은 것도 자기가 한 일이라는군.

“끼고 있던 목걸이의 힘이 강해졌다고 말했을 때부터 이상하단 생각은 했지만…… 대체 어떻게 된 거지? 분명 소멸한 걸로 아는데.”

다칼은 그녀에게 귀를 기울이듯이 한참 동안 조용히 있었다.

그 사이.

네펜데스가 수상한 짓거리를 시도했다.

내가 못 볼 거라 생각했는지 아직 꽃이 피지 않은 꽃봉오리를 가시처럼 곤두세워 다칼과 내 머리를 노리려고 하고 있었다.

다크딥트리.

[루트딥트리 레벨이 올랐습니다!]

촤르륵!

레벨이 오르며 더욱 질기고 견고한 나무줄기가 네펜데스의 몸을 속박했다.

그리고 줄기의 힘을 더해 압박을 가했다.

“커억, 컥!”

“뒤에서 수상한 짓거리를 하면 모를 줄 알았어?”

“끄윽! 이 벌레 같은 놈이……!”

목적도 이뤘으니 더는 살려 둘 이유가 없었다.

나는 마무리를 윙해 다크소드를 시전했다.

“윽, 안, 안 돼에에에!”

“이만 꺼져.”

서걱!

목을 벤 뒤 나무줄기로 더 큰 압박을 가해 나머지 몸마저도 쪼가리를 내버렸다.

후두둑!

찌꺼기처럼 남은 흔적은.

홀리크로스.

초고열의 빛으로 소멸시켰다.

[꽃의 정령 네펜데스를 처치하였습니다!]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100,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마나 정화 가루가 지급되었습니다!]

곧 보상으로 자그만 주머니가 떨어졌다.

안에는 하얀색의 가루가 담겨 있었다.

‘이걸로 마나 정화가 가능하다고?’

당장에는 어디에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지만 일단은 아공간에 집어넣어 두었다.

그리고 아까 전부터 아무런 말없이 서 있는 다칼을 바라본다.

‘점점 몸집이 작아지고 있어.’

목걸이로 전달되던 힘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잠시 후, 페르라와 얘기를 끝마친 듯 다칼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요약하자면 육신은 완전히 소멸했으나 운이 좋아 일부 영혼을 조각에 담아 살아남을 수 있었다는군.

“조각이라면. 저 우물 안에 있는 걸 말하는 건가.”

-그렇다.

나는 곧장 우물에 손을 올려 등가교환을 사용했다.

퐁!

깊이를 알 수 없는 웅덩이 속에 있던 달 조각을 꺼내 손으로 거머쥐었다.

파직!

그러나 조각은 나를 거부하듯 강렬한 스파크를 일으켰다.

나는 바닥에 떨어진 조각을 내려다보았다.

“아무래도 여신님께서 날 거부하는 것 같은데.”

신좌의 영혼이 담긴 조각이라니, 솔직히 흥미로웠다.

비록 일부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나, 여전히 강력한 힘이 저 조각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여신이 내게 제안을 해 왔다.

“무슨 제안?”

-나보고 자신의 계약자가 되라는군.

육신을 잃고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신좌와 계약을 맺는다?

그녀의 계약자가 되는 건 그다지 좋은 방법이 아니었다.

그러나 다칼이 그러고 싶다면 내 입장에선 말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웃기네. 신수를 계약자로 들이려는 신좌라…….’

나는 다칼에게 물었다.

“그래서? 수락했나?”

다칼이 날 조용히 응시한다.

-당연한 걸 묻는군. 거절했다. 말했다시피 난 누구의 밑으로 들어가지 않아.

“그래. 그리 말했지.”

-준석, 그대와 같이 하고 있는 것도 동등한 입장에서 동행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말없이 미소를 지었다.

어쩌면 알면서도 다칼의 말을 직접 듣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그럼, 계약자가 되길 거절했다면 다른 소리를 했을 텐데.”

-계약자가 되기 싫다면 한 가지 거래를 하자고 했다. 그리고 난 그 거래를 받아들였지.

“거래?’

-페르라가 왜 소멸의 위기에 처했는지 알고 있나?

“대충은.”

페르라는 달의 여신, 그리고 그녀의 자리를 넘본 신좌가 있다.

그는 태양의 신 르켈라.

태양과 달을 모두 지배하고자 하는 야욕을 드러낸 르켈라는 페르라를 소멸시키고 두 개의 심장을 차지했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페르라의 소멸 이유였다.

하지만 그녀가 이런 곳에 숨어들어 살아 있을 줄이야.

잠깐, 생각해 보니 페르라가 이곳에 살아 있다는 건 르켈라가 그녀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인데.

‘그럼 설마…….’

다칼이 말을 잇는다.

-그렇다면 얘기가 빠르겠군. 내게 복수를 의뢰했다.

“잠깐만.”

-왜 그러는가?

“확인해 볼 게 있어.”

나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하데스!”

이 정도로는 반응이 없으려나.

“야이 음흉한 영감탱이야!”

이 정도면 반응이 올 법도 한데, 여전히 조용하기만 하다.

‘역시 그런 거군.’

페르라가 여기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이곳은 신좌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 같은 곳이 분명했다.

그렇기에 페르라가 르켈라에게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여기선 신좌들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겠네.”

-그게 무슨 뜻이지?

“말 그대로야. 여긴 신좌들이 보지 못하는 사각지대다. 한마디로 시청이 불가능한 지역이란 말이지.”

다칼은 그제야 무언가를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그런 거군. 그래서 페르라가 이곳에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야.

“그래. 그리고 네가 말한 그 복수의 대상이란 게 르켈라인가.”

-그렇다.

“괜찮겠어? 무려 태양과 달. 두 개의 심장을 지배하는 신좌야. 그런 신좌에게 대신 복수해 주겠다고? 대체 그 대가가 뭐지? 아, 물론 예상은 간다만.”

-내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을 모두 주겠다는군.

“다칼,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겠지?”

-안다. 자신을 희생한다는 뜻이지.

“그래. 복수를 위해서.”

어쩌면 나쁘지 않은 선택일지도 모른다.

그녀가 이곳에 있으면서 새로운 계약자를 만날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니까.

아니. 어쩌면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지도 몰랐다.

-내가 그녀의 힘을 얻는다면, 우리들의 목적을 이루는데 한 걸음 더 앞서 나갈 수 있을 거다.

다칼이 얼마큼 이전의 힘을 되찾을지 모르지만 그렇게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이전이었다면 신좌를 죽인다는 건 꿈도 꾸지 못할 일이야.’

하지만 지금처럼 탑을 오른다면……

신좌 하나를 처리하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특히나 제안을 받아들인 건 다칼이다.

나는 그저 곁에서 도움을 주면 되는 것일 뿐.

그리고 다칼은 이미 선택을 했다.

-그대가 위험해질 수도 있는데 괜찮은가?

이미 선택을 해 놓고서 물어 온다.

그런 다칼에게 아까 전에 했던 얘기를 그대로 되돌려 주었다.

“당연한 걸 물어보네. 동행자라면 상대의 뜻을 존중해 주는 게 서로에 대한 예의 아닌가?”

-내가 괜한 걸 물어봤군.

슬쩍 입꼬리를 내 보인 다칼이 바닥에 떨어진 조각에 다가섰다.

이어서 조각에 입을 댄다.

강하게 거절을 했던 나와 달리 조각은 다칼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콰윽!”

다칼이 거침없이 조각을 깨물어 삼켰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다칼에게서 화려한 빛이 뿜어져 나왔다.

그것은 마치 달이 투영된 빛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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