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64화
64화 최초 SS등급
‘몸뚱이 자체가 사라지고 있어.’
“구아아악! 갸아!”
따로 떨어져 나간 머리에서 듣기 싫은 괴성이 들려온다.
녀석의 머리도 형체가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었다.
이걸 부패라고 불러야 할까? 아님 소멸이라고 불러야 할까?
부패한 어둠이 주피로를 집어삼키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했다.
하나 마지막까지 그냥은 안 사라지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케에에에!”
쿠구구구!
숨기고 있던 힘을 밖으로 표출하기 시작하며 그 여파로 땅이 흔들리고 있었다.
쿠쾅!
땅속에서 얼음과 불이 치솟았으며 대기에는 강력한 전기가 형성됐다.
그 안에 꼼짝도 없이 휘말리게 된 나는 주피로의 몸뚱이를 바라보며 전력을 다해 앞으로 뛰쳐나갔다.
비록 마법을 이용해 싸우는 게 마도사이긴 하나, 마나가 다시금 바닥을 드러내고 있는 지금.
전투 방식을 따지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축복의 차로 인해 신체 능력이 올라가기도 했지만, 다크소울로 인해 증강된 신체 능력은 상상 이상으로 대단했다.
투쾅! 펑!
연달아 발차기를 가하고 곧장 날아가는 것을 뒤쫓아 주먹을 연타로 내질렀다.
그리고 어지간해서는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던 카드를 꺼내 들기로 마음먹었다.
지팡이를 몸뚱이에 가져간 나는 나지막이 외쳤다.
“일시 해방.”
순간 소름 끼치는 고요함이 찾아온다.
우웅-
작은 물방울이 떨어져 공명하는 듯한 소리가 들리더니.
수화아아아아악-!
악으로 가득 찬 기운이 지팡이에서 내뿜어져 나왔다.
끝도 없이 밀려나오는 기운들.
나는 그것을 한곳에 집중시켰다.
오직 주피로를 향해.
악 기운이 녀석의 머리와 몸뚱이를 전부 뒤덮는다.
악 기운의 영향을 받게 되면 보통 광기화 혹은 악마화가 진행된다.
그럼 지금에서 더욱 자극해 봐야 좋을 것 하나도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악 기운의 주된 힘은 정신을 파괴시키고 무너뜨리는 것이다.
“갸하아악!”
주변에 일어나던 변화들이 점점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악 기운의 효과가 제대로 발휘되고 있었다.
“크윽!”
하지만 이보다 더 오랫동안 유지하고 있기는 힘들었다.
점점 악 기운의 통제가 줄어들고 있는 중이었다.
완전히 통제를 벗어나기 전에 다시 거둬들여야만 한다.
‘더 이상은 안 돼!’
한계다.
“으아아!”
해방시킨 악 기운을 다시 거둬들여 나갔다.
어느새 주변의 공간이 뒤틀리고 있었다.
이곳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끝난 것이다.
회색의 공간이 파편화가 되어 바람에 휘날리듯 날아오른다.
공간은 껍질을 벗겨 내듯 자신 스스로를 벗겨 내며 원래의 배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후하아~ 하아~.”
일시적으로 해방시킨 악 기운을 겨우 거둬들인 나는 거칠게 숨을 내쉬었다.
“……얼추 시간은 맞췄네.”
가지고 있던 깃발도 같이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곧 엉망인 현장이 눈에 들어온다.
곳곳에 구멍이 뚫리고 균열이 가 있는 다리는 위태위태해 보였다.
당장에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많이 파손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안도감을 느꼈다.
잠시 긴장감을 내려 둔다.
그리고 전투 중에 같이 활약했던 다칼이 괜찮은지 확인했다.
“캬하아~ 캬하~.”
다칼 역시 상당히 지쳐 보였다.
옆구리에 상처가 나긴 했지만 신경을 써야 할 정도는 아니었다.
나는 다칼에게 다가가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했어.”
-하마터면 같이 황천길을 건널 뻔했군.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황천길을 건넜어도 나 혼자 건넜으리라.
‘죽지도 않는 신수가 황천길은 무슨.’
-그런데 결국에는 주피로를 잡아내는구나. 솔직히 도저히 무리라고 생각했는데.
꽤 힘든 전투였다.
“준비 없이 싸웠으면 백 프로 졌겠지.”
그만큼 주피로를 상대하기란 까다로웠다.
특히 속성에 대한 내성을 지니고 있지 않았다면 몸을 제대로 움직이기조차 못했을 것이다.
잠시 후.
이 싸움의 끝을 알리는 메시지가 시야를 밝혔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업적을 세웁니다!]
[등반자들 중 최초로 고대종 주피로를 처치하였습니다!]
[등반자의 이명의 격이 오릅니다!]
[상당수의 신좌들이 당신의 업적에 관심을 가집니다!]
[일부 신좌들이 당신을 흥미롭게 지켜보기 시작합니다!]
[일부 신좌들은 주피로가 잡힌 것에 대해 의문을 갖습니다.]
[이목을 끌었습니다!]
[등급이 한 단계 위로 상승합니다.]
[등급: SS]
[도달할 수 있는 최고등급에 도달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등급을 올릴 수 없습니다.]
한순간에 수많은 메시지들이 올라온다.
주목할 것은 주피로를 잡으며 이명의 격이 올랐다는 것이며.
S등급, 그 이상의 등급은 없을 거라 여겼던 예상을 깨고 SS등급을 부여받았다는 점이었다.
메시지는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11층에 숨겨진 미션을 클리어하였습니다!]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500,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주피로의 단검이 지급되었습니다.]
주피로를 잡는 것이 숨겨진 미션이었는지, 50만 포인트와 더불어 주피로의 단검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오~.”
붉은 악어 눈동자 모양와 날카로운 선형의 문양이 새겨진 단검은 강한 인상을 남겼다.
그리고.
[11층 클리어 조건이 충족됩니다.]
[11층 미션이 종료됩니다.]
[기여도 순위에 들었습니다.]
[기여도 명단에 이명을 공개하겠습니까?]
숨겨진 미션뿐만 아니라 기본 미션의 클리어 조건 또한 같이 충족되었는지, 미션을 종료한다는 메시지가 떴다.
워낙 한꺼번에 많은 메시지들이 몰아치다 보니 정신이 없었다.
하지만 금방 정신을 차리고서 기여도 순위 확인에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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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비공개 – SS등급
2위) 뚝배기 브레이커 – S등급
3위) 검에 서리가 맺힌 설녀 – A등급
4위) 비공개 – A등급
5위) 비공개 – A등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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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도에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기여도순에 따라 기본 보상이 지급되며 받은 등급에 따라 가치가 다른 보상이 지급됩니다.]
순위는 예상한대로 모두 아는 인물이 차지했다.
특히나 뚝배기 브레이커, 안수찬이 S등급을 받은 것은 의외였다.
아무래도 나 대신에 주피로를 잠시 상대한 것이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이외에는.
‘설녀가 A등급이네.’
밑에 순위로 들어온 자들도 전부 A등급을 책정받았다.
더 밑으로는 아마 B등급과 C등급을 부여받았을 터.
유일한 SS등급을 받은 1위 명단표를 다시 한번 보며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그 누가 SS등급을 받아 봤을까?
그저 등급에 불과하지만 저도 모르게 자부심이 느껴졌다.
그런데 과연 SS등급은 보상으로 무엇을 줄지 엄청 궁금했다.
이상하게 주피로를 상대했을 때보다도 더 가슴이 떨렸다.
곧 보상의 메시지가 올라왔다.
[삼신용의 반지가 지급되었습니다.]
“삼신용의 반지?”
꽤 낯선 이름이었다.
하나 심상치 않은 힘을 지닌 반지라는 것은 육안으로만 봐도 알 수 있었다.
붉은색, 푸른색, 황금색을 품고 있는 작은 뿔 세 개가 가지런히 붙어 크게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뿔이 각기 다른 형태의 모습을 지니고 있어 뚜렷한 개성마저 느껴졌다.
더 자세한 확인을 위해 아이템의 정보창을 열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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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삼신용의 반지
영구효과: 마나의 숨결
효과: 용들의 인정을 받을 경우 각 뿔이 지닌 잠재된 힘을 다룰 수 있게 된다.
스킬 습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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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쓰여 있는 내용을 흥미로운 눈길로 쳐다봤다.
‘효과에 용들의 인정이라고 한 걸 보면 이 뿔 하나하나에 용의 혼이라도 깃들어 있는 건가?’
각 뿔이 지닌 잠재된 힘이 어느 정도이고 또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에고가 깃든 아이템의 경우 대체적으로 매우 강력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영구효과 또한 심상치 않았다.
용의 숨결을 연상케 하는 마나의 숨결.
내가 생각하는 그 설마가 맞는다면 마도사에게 있어 이만큼 매력적인 아이템도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정확한 힘에 대해서는 직접 껴보면 자연스레 알게 되리라.
지금 끼고 있는 반지가 어둠의 반지와 올랜드 마나 반지 두 개였는데.
나는 반지를 끼지 않은 나머지 손가락에 삼신용의 반지를 착용했다.
“……!?”
끼는 순간 요상한 기운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
막 소름 돋거나 기분 나쁜 느낌은 아니고, 따뜻하게 감싸는 듯한 그런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커다란 변화가 있었다.
[마나의 숨결을 터득하였습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마나의 일부를 흡수할 수 있게 됩니다.]
[기본 마나 회복력이 비약적으로 증가합니다!]
“후으읍~.”
놀라웠다.
숨을 들이켜는 순간, 마치 다른 세상을 처음 마주한 것처럼 생애 전혀 느껴 보지 못했던 색다른 감각과 기분을 느꼈다.
죽어 있던 뇌세포들이 전부 깨어나 활동하는 활력감 마저 든다.
그 정도로 새로 얻은 능력은 대단한 것이었다.
‘이 느낌, 맛. 이게 대기 중에 있는 마나인가?’
내가 느끼지 못하고 빨아들이지 못하던 것이 같이 호흡을 통해 들어오니 숨을 쉬는 것이 처음으로 낯설게 느껴지고 있었다.
하나 불편한 낯설음보단 좋은 낯설음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스며들어 온 극소량의 마나는 신체 안에 있는 마나 그릇에 차곡차곡 쌓여 갔다.
바닥난 마나의 회복력 또한 몰라보게 달라진 것을 느꼈다.
이전보다 서너 배는 빠르게 회복되는 기분이다.
나는 반지에 깃든 또 다른 힘을 들여다보고 싶었지만 그 전에 주변에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쿠구구구-!
오랜세월 동안 이 자리를 지키던 콜드브릿지가 무너져 내리려는 것이다.
주피로와의 싸움 여파로 발생한 후폭풍이었다.
뒤늦게 주위를 살폈다.
다리에는 나 이외에 극소수의 인원들만 남아 있었다.
안수찬, 주안나, 그리고 이름 모를 등반자들 몇 명뿐.
안수찬은 주안나의 부축을 받으며 시그 마운틴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중이었다.
나 역시 어디로 갈지 선택을 해야 했다.
가장 먼저 크록 마운틴 쪽을 쳐다봤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긴 내가 깽판을 치고 왔으니 좋지 않아.’
그다음엔 아셔 마운틴을 바라봤다.
저곳에 가면 그 마을로 다시 가야 하는데. 그 마을 사람들은 절대 날 반기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시그 마운틴을 보았다.
실은 아까 전부터 내게 말을 걸어오고 있는 신좌가 있었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그쪽이 마음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천공의 주인에게 한 방 먹인 것에 통쾌했다고 말합니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고대종과의 전투를 흥미롭게 보았다고 말합니다!]
[전투에 미친 투신이 자신을 재밌게 한 대가로 줄 게 있다며 자신의 진영으로 오라고 말합니다!]
……
……
그것은 다름 아닌 토르였다.
비록 콜드브릿지에서의 전투에서 내가 깽판을 놓고 토르와 계약을 맺은 자들을 때려눕히기도 했지만.
토르가 적대하는 세력을 깨부수고 제우스에게 엿을 크게 먹인 것도 사실이었다.
그렇다 보니 그의 입장에선 날 딱히 싫어하거나 적대할 이유가 없었다.
무엇보다 토르는 자신의 계약자들을 중시하기보다는 이명 그대로 전투에 미친 투신이었다.
그런 그에게 고대종과의 전투를 선보였으니, 그의 욕구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었을 터.
현재의 토르는 자신을 즐겁게 해 준 대가로 무엇이든 퍼줄 기세였다.
그렇담, 지금 내가 가야 할 곳은 정해져 있었다.
가자. 시그 마운틴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