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56화 (56/230)

회귀한 탑 등반자 56화

56화 설인 아셔 (2)

준석은 아셔와 마주치자마자 직감했다.

이 싸움, 절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압도적인 기개를 가진 아셔가 공허한 두 눈으로 찬찬히 그를 응시했다.

녀석은 설원의 오랜 세월이 담긴 나무를 뿌리 채 뽑아 무기로 사용하고 있었다.

‘저 무기가 바로 천수인가.’

소문에 따르면 천수는 눈과 얼음을 자유롭게 다룰 수 있는 힘이 담겨 있다고 한다.

쿠웅!

아셔가 천수로 바닥을 내리찍자, 충격파로 밀려나는 눈덩이들.

“……!?”

내리찍은 힘이 어찌나 세던지 땅이 크게 흔들렸다.

그러나 준석의 몸은 땅에 찰싹 달라붙은 듯이 꿈쩍도 하지 않았다.

풍요의 로브에 적용된 대지 친화력 덕분이었다.

“우가가!”

투둥! 투둥! 투둥!

그러더니 녀석이 큼지막한 양손을 들어 가슴을 세게 두들겼다.

소리 때문일까?

준석의 심장도 덩달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분명 어려운 전투가 될 것이다.

하지만 누구도 꺾지 못한 녀석을, 오늘 끌어내린다고 생각하니 절로 힘이 솟아올랐다.

“그어어…….”

말없는 탐색전이 벌어진다.

차분한 고요함 속에는 긴장감이 서려 있었다.

-온다.

다칼이 입을 연 것과 동시에 두 발을 딛고 서 있던 아셔가 하늘 높이 뛰어올랐다.

거대한 몸집을 가진 녀석이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강한 탄력과 빠른 움직임이었다.

“쿠하아아아!”

이십여 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아셔가 양손에 든 천수를 머리 위로 들어올리고 내리찍는다.

쿠아앙-!

준석은 방금 전의 공격을 피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일부러 피하지 않았다.

녀석의 힘 대중을 파악하려는 의도였다.

파즈즉, 챙!

보호막에 균열이 가더니 결국 힘없이 깨져 버렸다.

곧장 뒤로 물러선 준석은 아셔를 주시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배지로 펼친 보호막으론 공격을 한 번밖에 막지 못해.’

배지에 마나를 불어넣으면 보호막은 언제든지 형성할 수 있지만, 보호막이 버틸 수 있는 내구력에는 한계가 존재했다.

만일 연타로 공격이 들어오면 유효타가 들어온다.

확실히 녀석은 강했다.

“쿠하아!”

아셔가 쉬지 않고 그다음 공격을 시도해 왔다.

후우우웅!

횡 베기.

순간 준석은 천수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을 받았다.

천수가 휘몰고 오는 바람은 괴이했다.

‘바람이 상대가 공격에 맞게끔 유도하고 있다.’

거기다가 주변의 얼음 조각들이 바람을 타고 그를 위협하고 있었다.

픽! 피피픽! 픽!

준석은 다시 만들어 낸 보호막으로 조각들을 막아 내며 코앞에 다크퍼드를 시전했다.

휘오오오!

강한 바람을 둥그렇게 말아 올려, 블랙홀처럼 빨아들이는 바람의 방향을 바꾸고 날아드는 얼음 조각들을 전부 튕겨 내 버렸다.

동시에 날아드는 천수의 방향이 살짝 옆으로 비틀게 만들었다.

쿠우웅!

아슬하게 비껴 나가는 공격!

준석은 상대의 빈틈을 발견하곤 다크스윔으로 녀석의 머리 위로 이동했다.

“오우?”

다크소드.

지이잉-

그는 검을 소환해, 위로 치솟은 날끝을 거꾸로 돌리고 정수리에 내리찍었다.

푸악!

“이런.”

다른 놈이었다면 방금 전의 공격으로 치명상을 입었을 테지만, 역시 오랜 세월 공략당하지 않은 마물다웠다.

칼날 끝이 살짝만 들어갔을 뿐.

머리뼈에 닿기는커녕 두피를 전부 뚫지도 못했다.

녀석의 피부 강도는 그야말로 강철과 같았다.

날아드는 한쪽 손을 피해 고공 점프를 한 준석이 곧 날아드는 반대쪽 손바닥을 보았다.

다크웹.

다가오는 손바닥 앞에 거미줄을 소환하고, 다시 녀석의 머리 위에 착지해 발을 디뎠다.

그러고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다크스윔을 시전했다.

아무것도 없는 허공에 모습을 드러냈다 사라지길 반복한다.

이윽고 수십 미터 상공 높이에 멈춰 선 그가 지팡이를 든 손을 아래로 향하게 한다.

슈아아악!

다크퍼드로 회전하는 발판을 만들어 냈다.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풍압, 그에 대한 반발력으로 그는 바닥에 발을 대지 않고 공중에 떠 있을 수 있었다.

안정감 있는 자세로 준석은 아래를 내려다봤다.

어느덧 아셔의 몸집이 콩알만 해 보였다.

위를 올려다보는 아셔.

녀석이 무언가를 던지기 시작한다.

그것은 눈덩이.

하나 단순한 눈덩이가 아니었다.

사람은 그냥 밀어내 버릴 정도로 거대한 눈덩이가 셀 수 없이 날아들었다.

준석은 다크스윔과 다크퍼드를 이용해 날아드는 눈덩이를 피하며 다칼에게 말했다.

“다칼, 양동 작전이다. 내려가서 시선을 끌어.”

“아우우우우!”

기다렸다는 듯이 크게 울부짖는 늑대.

다칼이 과감하게 아래로 떨어진다.

잠시 후, 다칼이 시선을 끌었는지 더 이상의 눈덩이가 날아들지 않았다.

“후우~.”

준석은 머릿속에 아셔의 기술들과 다크소드에도 뚫리지 않았던 피부의 강도를 떠올렸다.

‘피부 강도가 세면 약하게 만들면 그만이야.’

그리고 어둠만큼 그것을 취약하게 만드는 것도 없었다.

쏴아아아-!

눈이 내리는 설원에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하얗게 서린 눈과 완전히 반대인 시커먼 비가 주변을 검게 물들인다.

[다크레인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오르며 떨어지는 검은 빗방울이 미세하게 늘었다.

‘하나로는 부족해.’

준석은 겹겹이로 다크레인을 시전했다.

쏴아아아아!

검은 빗방울이 미친 듯이 늘어나 하늘을 빼곡히 메웠다.

이쯤이면 됐을 것이다.

하지만 광역기 마법을 중첩으로 사용한 만큼 체내에 있는 마나가 빠르게 소모되어 갔다.

회복하는 마나보다 소모하는 마나가 큰 상황.

그렇게 오래는 유지하지 못하리라.

한편 다칼은 작은 몸집으로 잘 버텨 주고 있었다.

약해졌다고는 하나 본래 최강의 신수였고, 최근에 얻은 하승달 목걸이의 효과로 예전의 힘을 조금이라도 회복한 효과가 있었다.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갈 차례.

준석은 7층에서 얻은 컬스버닝을 시전했다.

쿠호오오오-

아셔의 괴성이 들려온다.

어느새 하얀 털에 뒤덮힌 새파란 불꽃이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그러나 몸이 타거나 녹아내리지는 않았다.

컬스버닝은 불로 공격하는 마법이 아니라 타오르는 저주를 거는 마법.

컬스버닝에 걸린 상대는 인식 저하와 면역력 저하에 시달리게 된다.

하지만 녀석에게 저주를 거는 것은 쉽지 않았다.

아셔가 얼음을 품으며 저주를 걷어 낸 것이다.

“저주는 안 통하나.”

저주에 대해 저항도 있는 것 같지만 녀석이 들고 있는 천수의 영향도 있는 듯 보였다.

“그렇다면…….”

준석은 천수에 집중했다.

그리고 등가교환.

위이잉!

한순간에 천수를 이곳에 소환했다.

천수가 없으면 녀석의 전력은 반으로 줄어들 터.

등가교환으로 녀석의 몸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다면 필히 엄청난 양의 마나를 소모하게 된다.

그것은 상대가 강하면 강할수록 더 크게 적용된다.

하지만 그 대상이 무기라면?

아무리 강력한 무기일지라도 단순히 공간이동을 시키는 것만 가지고는 그렇게 큰 마나가 소모되지 않았다.

이내 준석이 천수에 손을 터치하자, 메시지가 올라왔다.

[해당 무기는 귀속상태이므로 가질 수 없습니다.]

“굳이 손을 댈 필요는 없지.’

준석은 다시 한번 등가교환을 시전해 천수를 완전히 다른 곳으로 보내 버렸다.

가질 수 없다면 버리면 되는 것이다.

쿠호아아아-

아셔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온다.

준석은 그를 보며 피식 웃었다.

“무기 없는 설인이 얼마나 견디는지 볼까.”

컬스버닝을 시도하자 이번에는 마법을 걷어 내질 못한 채 제대로 저주가 통하고 있었다.

이것으로 밑밥은 다 깔았다.

이제는 녀석이 쇠약해질 때까지 기다리면 됐다.

그러나.

수아아아악!

“큭!”

갑자기 불어오기 시작한 눈보라가 발밑에 있던 다크퍼드를 없애고 그를 밑으로 끌어냈다.

눈보라에 맞은 그는 마법을 시전할 수가 없었다.

주변에 모인 알 수 없는 하얀 알갱이가 마법 시전을 막고 있었다.

쿠웅!

수복히 쌓인 눈 덕분에 땅에 떨어진 충격은 크지 않았다.

“후아~.”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다칼과 싸우고 있는 아셔가 떨어진 그를 힐끔 노려본다.

“우가아아아!”

“그래. 무기를 빼았겼다고 쉽게 당하면 내가 섭하지.”

아직 녀석은 주변의 환경을 지배하고 있었다.

천수를 잃어 약해진 것은 맞으나 아직 드러내지 않은 기술이 더 있을 터.

그리 생각하자마자, 아셔가 두 팔을 벌리더니 이내 주변에 변화를 일으켰다.

쿠구구구구-

“……!? 다칼! 뒤로 물러나!”

뒤늦게 녀석이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눈치챈 그가 다칼에게 소리쳤다.

그러나 둘 다 피하기에는 늦었다.

어느덧 주변을 둘러싼 얼음돔.

“으어어어어어!”

비를 맞아 검은색 털로 변질한 아셔가 포효한다.

[얼음돔에 갇혔습니다.]

[얼음돔 안에 있는 동안에는 움직임이 크게 저하됩니다.]

[얼음돔 안에 있는 동안에는 이동력이 크게 저하됩니다.]

[얼음돔 안에 있는 동안에는 고통스러운 강추위를 느낍니다.]

[얼음돔 안에 있는 동안에는 마나 운용에 어려움을 겪습니다.]

각종 패널티들을 알려 오는 메시지가 그의 시야를 가득 채웠다.

그러나 그가 입고 있던 갑옷에서 빛이 서리더니 메시지가 올라온다.

[이뮨의 마나갑옷의 효과가 적용됩니다.]

[얼음돔 안에서 움직임이 자유로워집니다.]

그것이 끝이 아니었다.

[날개 달린 목동의 신발 효과가 적용됩니다.]

[얼음돔 안에서 이동이 자유로워집니다.]

[성화의 깃 효과가 적용됩니다.]

[얼음돔 안에서 고통스러운 강추위를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를 제외한 모든 페널티가 사라졌다.

다크볼트.

파지직! 파직!

[어려운 환경 속에서 마나 운용에 성공합니다!]

[신체가 변화를 겪습니다!]

[신체의 마나 회전력이 영구적으로 증가합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 남은 패널티 마저도 그에겐 어드밴스로 작용했다.

마나 회전력이 빨라진 만큼 줄어든 시전 시간.

“후욱! 후욱! 후욱!”

아셔가 거친 숨소리를 내고 있었다.

얼음돔을 만들어 낸 것이 녀석에게도 부담이 되고 있는 것이었다.

거기다가 검은 비를 잔뜩 맞고 컬스버닝까지 걸렸으니 신체의 기능이 빠르게 떨어지고 있을 터.

다크소드.

우웅-

다칼이 시선을 끈 틈을 타 준석이 검을 날려 보냈다.

촤악!

녀석의 어깨에 생겨난 상처는 분명히 이전과 다르게 깊었다.

누적되어 온 어둠이 녀석의 단단한 피부마저도 약화시킨 것이다.

준석은 녀석의 피가 흘러내리는 것을 보며 사악하게 미소를 지었다.

“자. 그럼 2차전을 시작해 볼까.”

적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얼음돔이 한순간 아셔, 녀석의 무덤으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 * *

승세를 가져온 뒤엔 금방 끝날 줄 알았던 전투는 무려 1시간 동안 이어졌다.

“그어어어엉-!”

마지막 발악이라도 할 것처럼 크게 울부짖는 아셔.

하지만 녀석에겐 더 이상 움직일 힘이 없었다.

아셔의 몸 곳곳에 남아 있는 상처들과 상흔들.

회복력을 저하시키는 어둠으로 인해 여전히 상처가 벌어지고 출혈이 벌어진 곳과 이미 빠르게 회복되어 남은 흉터들이 뒤섞여 있었다.

하나 녀석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캬하아~ 캬하아~.”

보조하던 다칼 역시 크게 지쳐 있기는 마찬가지.

나 또한 녀석을 상대하며 생긴 상처들이 곳곳에 있었다.

물론 녀석처럼 치명상은 아니지만.

“이걸로 정말 끝이다.”

나는 마지막 겸격을 녀석의 목에 휘둘렀다.

서걱!

그리도 베이지 않던 목이 단숨에 잘려 나갔다.

……쿵!

거구의 몸이 손절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하아~.”

크게 숨을 토해 낸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치지지직…… 채애앵!

굳건히 자리를 지키던 얼음돔이 깨져 무너져 내린다.

그것이 마치 그 누구도 깨지 못했던 난공불락을 무너뜨린 것에 대해 내 마음을 대변해 주는 기분이었다.

휘이이이-

차가운 눈보라가 몸을 두들긴다.

주변에 환호를 해 주는 사람 따윈 없었다.

대신 다른 것이 축하 메시지를 던져 왔다.

[이목을 끌었습니다.]

[등급이 한 단계 위로 상승합니다.]

[등급: S]

매우 받기 힘든 S등급을 책정받았다.

물론 그게 끝은 아니었다.

[등반자들 중 최초로 아셔를 처치하였습니다!]

[아셔를 처치한 업적으로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황혼의 오르골이 지급됩니다.]

처음 보는 아이템이 보상으로 떨어졌다.

“오르골?”

나는 무슨 용도로 쓰이는지 정보창을 열어 보려고 했다.

그러나 의외의 메시지가 떴다.

[해당 층에서는 이 아이템의 정보를 열어 볼 수 없습니다.]

정보를 열어 볼 수 없다니.

‘해당 층에서라…… 그럼 맞는 층에서 가야만 정보를 열어 볼 수 있다는 건데.’

회귀 전에도 이런 아이템은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등반자들 중 최초로 달성한 업적 보상인 만큼 이 오르골이 어딘가 중요하게 쓰일 것만은 분명했다.

“음?”

그때 아셔의 시신에서 잿더미가 날아들었다.

‘저 잿더미는…….’

이윽고 내가 차고 있던 벨트에 그 잿더미가 스며들었다.

‘아니. 이 벨트는 분명 문지기들, 오스트 문양을 가진 마물들에게만 반응을 보일 텐데.’

[오리오 벨트에 변화가 생깁니다.]

오리오 벨트에 화려한 빛을 품었다가 사라졌다.

변화한 부분이 무엇인지 보기 위해 곧장 벨트의 옵션을 확인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