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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55화 (55/230)

회귀한 탑 등반자 55화

55화 설인 아셔 (1)

산중에 들어선 준석은 길을 걷다 말고 시야에 들어온 메시지로 눈길을 돌렸다.

[시그 보스가 처치되었습니다!]

시그는 토르의 영역에 살고 있는 마물.

크록과 마찬가지로 산꼭대기에 위치해 있으며 씰스톤을 가지고 있었다.

예정된 수순대로라면 시그의 씰스톤은 란샤오라는 자의 손에 들어간다.

무위로만 따지면 바크를 뛰어넘는 실력자이자 시그 마운틴의 실효적인 지배자.

회귀 전에도 그에 대해서 알려진 것은 많지 않았다.

술을 좋아하고 싸움을 즐긴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싸움을 얼마나 좋아하면 매일매일 결투를 벌인다는 소문도 있었다.

수 년간, 그를 이기는 자는 없었다.

‘안수찬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말이지.’

란샤오는 갓 층을 올라온 그에게 패배하고 만다.

시기는 정확하지 않으나 아직은 벌어지지 않은 일.

하지만 이대로 시간이 흘러가면 란샤오는 안수찬에게 패배하고 그 자리와 씰스톤을 빼앗기게 되리라.

‘원래대로라면 이곳은 그의 무대이지.’

안수찬의 활약이 돋보이던 층이었지만 그것은 자신이 없을 때의 얘기였다.

나중에 누가 씰스톤을 가지고 있든 간에 무조건 빼앗을 예정이니까.

그는 누구와 붙든지 상관없었다.

그래도 조금 기대되는 쪽이라면 아무래도 안수찬이 조금 더 기대가 됐다.

‘층을 오르면서 최근 그의 무력을 봤지만 힘을 숨기고 있었지.’

뚝배기 브레이커만의 전매특허, 라스트헤드 스킬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걸 버틴 자가 없다고 그러던데.’

그 스킬의 위력을 직접 눈으로 보고 싶었다.

이내 다시 발걸음을 옮기던 준석은 곧 숲을 벗어나 용암길을 발견했다.

산꼭대기서 흘러내려온 시뻘건 용암은 주변을 뜨겁게 달구었다.

“얼굴이 화끈하네.”

물론 참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크르르응.”

다칼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무언가를 발견한 것일까?

-맛있는 냄새가 난다.

“킁킁!”

추아악!

그때 웬 토끼 한 마리가 용암에서 솟구쳐 올랐다.

코를 열심히 움직이던 다칼이 눈을 반짝였다.

-먹을 거다!

다칼이 어둠으로 변해 토끼 사냥에 나섰다.

하나 놈은 혼자가 아니었다.

“꾸이!”

“꾸이!”

“꾸이!”

연달아 용암 속에서 모습을 드러낸 토끼들이 다칼을 둘러싼다.

녀석들의 이름은 디파이어. 용암에서 거주하는 토끼종이였다.

살짝 붉어져 있는 털과 붉은 두 눈.

유독 기다란 양쪽 귀.

11층에서는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는 몬스터였다.

저 멀리엔 이곳을 먼저 지나간 등반자들이 있었다.

하지만 위치만 다를 뿐이지, 그들 역시 디파이어에게 둘러싸여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꾸이!”

화아아악!

귀여운 소리를 내며 불을 내뿜는 녀석.

그 화력은 생긴 외형과 다르게 전혀 귀엽지가 않았다.

초고열의 뜨거운 불은 닿는 그 무엇이든 녹여 버렸다.

저 불에 맞고 죽은 등반자들은 셀 수 없이 많았다.

오죽하면 등반자들이 이곳을 용암 시체밭이라고 부를까.

하지만 준석과 다칼에겐 해당되지 않는 얘기였다.

“뀩!”

“콰아움!”

다칼은 자기 몸만 한 디파이어를 붙잡아 목을 물어뜯었다.

“뀨이!”

다른 디파이어가 식사를 방해하려고 하자 다칼은 마안을 이용해 녀석들을 돌로 만들어 버렸다.

“콰악!”

이어서 여유로이 식사를 즐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준석은 한 놈을 입에 물고 있는 다칼을 종이봉투 들 듯이 목덜미를 집어 이동했다.

탓! 수우욱- 탓!

발을 가볍게 튕겨 험한 용암길과 디파이어 수백 마리를 피해 지나갔다.

그리고 어느덧 절벽에 이르렀다.

절벽 앞에는 몇몇 등반자들이 이미 서 있었다.

그들이 길도 없는 곳에 서 있는 이유는 준석이 이곳을 찾아온 이유와 같았다.

“저기까지 어떻게 뛰어내리라는 거야.”

“미친. 시도하다가는 객사하기 딱 좋겠네.”

등반자들은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준석은 조용히 절벽 끝에 다다라 그들이 쳐다보는 곳을 바라봤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시커먼 암흑이 절벽 아래의 공백을 채웠다.

그리고 공백 사이에 존재하는 거대한 산 하나, 아셔 마운틴.

홀로 외딴섬 같은 느낌이 물씬 풍겼다.

용암이 가득 흘러넘치는 크록 마운틴과는 정반대로 산 전체가 얼어붙어 있었다.

중간중간, 일부 땅의 모습이 드러나 있긴 하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또한 이곳과 떨어진 거리는 못해도 족히 백여 미터는 되었다.

“어……? 저거 새 아니야?”

“정말 새다!”

아셔 마운틴 쪽에서 어떤 새 한 마리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엄청 큰데?”

“저기 봐! 사람이 타고 있어!”

거대한 몸집을 가진 새의 등에는 중절모와 비슷한 모자를 쓰고 있는 여자가 있었다.

“꾸아아아-!”

“다들 뒤로 물러나!”

새가 날갯짓하며 절벽 끝에 착지했다.

이내 등에 올라타있던 여자가 내리더니 등반자들에게 인사를 해 왔다.

“안녕하세요!”

귀여운 외모에 해맑은 목소리를 가진 그녀의 모습에, 경계를 하던 등반자들의 눈빛이 삽시에 누그러진다.

“저는 저어쪽 산! 아셔 마운틴에서 살고 있는 에레나라고 해요!”

“에레나…… 좋은 이름이네.”

“예뻐요! 누나!”

그녀가 마음에 든 등반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그에 화답하듯 싱긋 웃는 그녀는 용암길을 가리키며 다시 말문을 뗐다.

“저 토끼들, 디파이어들을 상대하며 여기까지 오느라 힘드셨을 텐데. 다들 대단해요! 근데 끝에 와 보니 절벽이 있고, 그렇다고 다시 되돌아가려니 좀 그렇고. 안 그래요?”

“후~ 그러니까 말야. 저놈의 토끼 새끼들 때문에 죽을 뻔했는데. 다시 되돌아갈 생각하니 죽을 맛이지.”

“나도 겨우 살았다고!”

다들 어느 정도 실력은 있어 끝에 다다랐지만 왔던 자리로 되돌아가기에는 부담스러운 눈치들이었다.

‘그래서 절벽 아래 산으로 가 보려고 했겠지.’

하지만 뛰어 내려가기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 시도하지 않았을 것이다.

한편 새를 끌고 온 그녀는 이런 반응을 기다렸다는 듯이 빠르게 입을 열었다.

“그런 여러분들을 위해! 제가 온 거예요! 우리 버디를 이용해서 저 산까지 갈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오오!”

여기저기서 환호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다음에 그녀가 잇는 말에 환호성이 금방 사그라졌다.

“단 2만 포인트에! 싸죠? 2만 포인트만 주시면 저기 갔다가 여기 돌아올 때 용암지대를 지나 안전한 곳까지 모셔다 드릴 거예요!”

“에이씨. 뭐야. 돈 밝히는 년이었잖아.”

“난 또 공짜로 해 준다는 줄 알았네.”

환호는 빈정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여자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여전히 밝은 얼굴로 말을 이어 나갔다.

“2만 포인트가 비싸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계실 텐데. 이쪽 사정을 알고 나면 절대 비싸단 게 아니란 걸 깨달을 거예요. 그리고 여러분들. 미션으로 최대한 눈에 띄어라! 라는 미션 받으셨죠? 저어기~ 아셔 마운틴에 가기만 하면 등급을 받을 수 있어요! 그것도 C등급! 물론 이미 C등급을 받으신 분들도 있을 텐데 걱정하지 마세요! 아셔 마운틴에서 하루만 머무셔도 B등급까지 올리실 수 있으니까.”

“뭐? 그게 진짜야?”

“그게 진짜면 대박인데! 거짓말 아니지?”

마치 온탕 냉탕을 오가는 것처럼 사람들의 반응이 수시로 바뀌었다.

이를 지켜보고 있던 준석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장사꾼으로서 타고났군.’

이지에서도 비슷한 광경이 일어나긴 했지만 저 여자처럼 잘하지는 못했다.

그리고 아셔 마운틴에만 가도 등급이 오른다는 말. 그것은 거짓이 아니었다.

가기 어려운 위치라 그런지 아셔 마운틴의 땅을 밟기만 해도 C등급이 책정됐다.

또한 그곳에서 하루를 머물면 등급 하나를 올릴 수 있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나 그녀는 중요한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아셔 마운틴에서 생으로 하루를 버틴다는 건 매우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추위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매서웠다.

‘중립자들이 살고 있는 마을에 거주하지 않으면 몇시간 채 지나지 않아 얼어 죽겠지.’

그리고 그 마을에 거주하려면 또 포인트가 들어갈 테다.

여자는 그런 사실을 알고도 등반자들에게 좋은 이야기만 들려주고 있었다.

뭐. 그와는 상관없는 얘기였다.

준석은 다시금 아래를 힐끔 내려다보며 위치를 정하고 천천히 뒤로 물러섰다.

다들 멈춰 서 있는데, 혼자서 뒤로 물러나니 자연스레 시선이 끌렸다.

“뭐야. 저 남자. 지금 뛰어내리려는 거야?”

“그러는 것 같은데?”

“어. 근데 저 남자, 그 사람 아니야? 1층부터 계속 1위를 차지했다는 소문이 도는 그.”

“맞네! 근데 웬 제자리 뜀걸음?”

사람들 말대로 제자리 뜀박질을 하던 그는 이내 다리 밑을 내려다봤다.

신발에 달린 작은 날개에서 빛이 나고 있었다.

[날개 달린 목동의 신발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효과 증폭’ 발동합니다!]

[효과: 이동 방해 면역, 이동속도 600%증가, 민첩X6]

순간 발을 굴렀다.

파아앙!

묵직하고도 강렬하게 땅을 박찬 그가 단숨에 절벽 끝에 이른다.

그리고.

쿠웅!

다시 한번 지면을 박찬 그가 하늘을 날아올랐다.

믿기지 않는 높이.

등반자들은 할말을 잃은 채 그를 쳐다봤다.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아래로 떨어진다.

멀게 느껴졌던 백여 미터의 거리가 순식간에 좁혀져 간다.

그리고 점차 가까워지며 차디찬 바람이 불어오고 있었다.

준석은 착지할 위치를 찾으며 아공간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들었다.

불꽃을 품은 깃털, 성화의 깃.

이전에 얻었던 그것을 반으로 분질렀다.

[성화의 깃을 사용하였습니다.]

[효과가 발동합니다!]

[하루 동안 추위를 느끼지 않으며 빙결에 대한 내성이 생깁니다!]

바람에 휘날려 온 눈이 그를 덮쳤다.

이윽고.

다크스윔!

그는 어둠이 되어 안전하게 땅에 착지했다.

휘오오오-!

강하게 휘몰아치는 눈폭풍과 땅에 가득 쌓인 눈은 이곳의 혹독한 환경을 드러냈다.

달달달!

다칼이 몸을 뒤흔들었다.

더위나 추위에 강한 편인 다칼조차도 추위에 떨 정도였다.

하지만 준석은 성화의 깃을 사용해 아무렇지도 않았다.

잠시 후 그는 자신의 위치를 파악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조금 앞에 착지했네.”

소복. 소복.

아무도 밟지 않고 손때가 타지 않은 새하얀 눈에 발자취를 남기며 앞으로 걸어나간다.

그의 머리 위에서 몸을 달달 떨던 다칼이 어둠으로 추위를 걷어 내더니 입을 열었다.

-여기로 가면 그 녀석이 나오겠군.

“그래.”

-기어코 잡을 생각인가? 쉽지 않은 상대다.

“그래도 잡아야지.”

다칼은 걱정되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그가 이런 말을 꺼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

그만큼 지금 만나러 가는 상대는 쉽지 않았다.

-내가 갇히기 전에도 유일하게 잡히지 않았던 놈이다.

“그 이후로도 잡은 사람은 없어.”

-그렇다면 더더욱 가지 않는 게. 아니지. 깃을 사용했으니 어쩌면…… 그보다 녀석을 잡으려는 이유가 씰스톤 때문인가. 탑의 상인을 부를 거면 씰스톤 하나로도 충분할 텐데. 흐음…… 그 이상을 얻으려는 걸 보니 설마…… 그놈을 소환하려는 건 아니겠지?

“맞아. 그놈을 소환하려는 거.”

다칼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런 무모한 짓을! 아무리 네가 회귀자라고 해도 그놈만큼은 잡을 수 없다.

다칼이 단정지었다.

‘회귀자라고 해도 잡지 못한다라…….’

어쩌면 그럴 지도.

하지만 준석도 아주 대책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놈을 잡기 위해서 차곡차곡 준비를 해 왔으니까.

하나 그 전에 먼저 잡아야 할 놈이 있었다.

곧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검은 그림자. 하얀 털을 뒤집어쓴 거구의 설인이자 이곳 산의 주인인 마물.

“그어어어…….”

등반자들이 유일하게 정복하지 못한 난공불락 아셔와 마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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