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54화
54화 만뢰
다크월.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고속 캐스팅’이 발동합니다!]
[레인보우 띠의 조건부 효과가 발동 중입니다.]
[효과 ‘마법 증폭’이 일어납니다!]
초록색으로 변해 있는 띠의 증폭과 지팡이의 마법 증폭이 합쳐져 발동했다.
쿠구구구!
뾰족한 뿔의 섬전암을 들어 올릴 만큼 거대한 벽이 그 아래서 치솟았다.
나는 손에 끼고 있는 반지를 흘겨봤다.
일정 기준치를 넘어서서 올랜드 마나 반지는 빛나고 있었다.
[올랜드 마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법의 시전 시간이 감소합니다!]
두 개의 고리가 회전하는 검정색 구체가 공간을 빠르게 장악해 나간다.
[행운의 룰렛이 발동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룰렛에서 <6>이 나왔습니다!]
[발동한 스킬 레벨에 <+6>이 일시적으로 적용됩니다!]
[마나볼트 레벨이 일정 레벨에 도달하여 파괴력이 한층 더 강력해집니다.]
이어서 치솟아 있는 벽을 없애곤 섬전암을 그대로 공중에 노출시켰다.
허공에 기울어진 돌.
콰아아우우웅!
바닥에 닿은 충돌로 인해 두 개의 파편으로 나뉘었다.
“끼아아아악!”
그 전에 석화가 풀린 독수리가 하늘을 활공한다.
펑! 퍼퍼퍼퍼퍼펑!
하나, 준비되어 있던 구체들을 이용해 독수리가 날뛰지 못하도록 공격을 퍼부었다.
동시에 두 파편으로 나눠진 섬전암을 아예 가루로 만들어 버렸다.
몸에 두른 보호막에 튕겨져 나가는 작은 파편들.
피어난 먼지로 인해 시야는 가려졌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눈에 띄는 것이 있었다.
강렬한 빛을 뿜고 있는 기다란 물건, 만뢰였다.
나는 그것을 손에 거머쥐기 위해 곧바로 다크스윔을 사용했다.
그리고 손에 닿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파쟛! 파쟈쟈-!
만뢰와 뻗은 손 사이에 스파크가 일었다.
순간 섬뜩한 느낌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자, 본능적으로 뻗던 손을 되돌렸다.
쿠과가가강!
간발의 차로 발생한 전기 공명.
동그렇게 생긴 에너지가 점차 부피를 늘렸다.
단순 부피만 늘려 나가는 게 아니라 인간의 형태로 자리를 잡아갔다.
“건방진 노오오옴!”
분노에 서려 있는 목소리가 메아리치듯 양쪽 귀로 울려 퍼졌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진다.
기어코 모습을 드러낸 제우스가 내 멱살을 잡으려고 시도한다.
하나 탑이 그걸 내버려 둘 리 없었다.
치잉!
제우스의 접근을 막는, 고차원적인 균열이 일어났다.
전기로 형태를 갖춘 제우스의 모습이 순간 일렁였다.
나는 그 틈을 타 등가교환 마법을 시전했다.
제우스가 뺏기지 않으려고 몸에 품은 만뢰를 강제로 이동시켜 손으로 끌어왔다.
“잔재주를 부리는구나!”
다시 접근하려는 제우스를 피해 재빠르게 뒤로 물러섰다.
그리고 손에 쥐어진 만뢰를 쳐다본다.
파직! 파직!
번개 모양을 닮은 만뢰는 차갑고 찌릿한 느낌이었다.
거기에 시퍼렇게 빛을 품고 있는 것이 과연 이걸 먹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들었다.
“그것은 너 같은 애송이가 품을 물건이 아니다!”
애송이?
회귀 전에 탑의 마지막 층까지 갔던 나에 비하면 지금은 애송이가 맞았다.
하지만.
파스스-
만뢰를 부숴서 가루로 만들어 버린 나는 조용히 씩 웃었다.
비웃음이 섞여 있는 미소.
“하읍!”
단숨에 그 가루를 집어삼켰다.
일단 입안에 담긴 했으나, 신체가 본능적으로 목구멍에 넘기길 거부하고 있었다.
“이런 미친놈……!”
제우스가 욕설을 뱉으며 하늘에서 독수리들을 데리고 다가왔다.
직접 손을 댈 수 없으니 자신의 가디언들을 소환해 만뢰를 빼앗으려는 것이었다.
그래서일까?
입에서 넘어가지 않던 가루가 금방 목구멍을 타고 안으로 들어갔다.
“…….”
나는 곧 들이닥칠 고통에 대비했다.
“끼악!”
“끼아아-!”
그러며 코앞에 접근해 온 독수리들을 쳐다봤다.
제우스는 진심인 듯, 섬전암에 앉아 있던 짝퉁 가디언과는 다른 놈들을 불러냈다.
한 마리 한 마리가 거대한 덩치를 지녔다.
하지만 진짜 남다른 것은 십자가 눈동자.
거기에 황금색으로 물들어 있는 두 눈동자는 제우스가 직접 이끄는 독수리들의 특징이었다.
[탑이 개입합니다.]
[독수리 가디언들의 힘이 현격히 낮아집니다.]
“크하아앙!”
-내가 나서지.
다칼이 독수리들의 접근을 막았다.
하지만 숫자가 많았기에 모든 공격을 막아 낼 순 없었다.
어떻게든 접근해 온 독수리들이 나를 향해 부리를 쪼아 댔다.
투두두둑!
보호막에 가로막혀 타격을 받진 않았지만 역시나 제우스의 하수인들이라 그런지 부리로 쪼는 것을 막기만 해도 상당한 마나가 소모됐다.
물론 하데스의 하수인인 케르베로스에 비하면 독수리 가디언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다만 그 숫자가 많아서 문제였다.
그런데 그보다.
‘생각보다 괜찮잖아?’
만뢰를 먹자마자 큰일이라도 날 것 같았지만 의외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크윽!”
갑자기 심장에 칼이 찌르고 들어온 것처럼 고통이 느껴졌다.
“커으윽!”
점차 그 고통은 커져 갔다.
“으아아아!”
생애 처음 느껴 보는 고통에 절로 비명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생각도 없이 만뢰를 섭취한 것은 아니었다.
[일시적으로 마나를 담는 그릇이 넓어집니다.]
조금이라도 보탬이 되기 위해 리치네스를 사용했다.
지팡이 효과로 빠르게 차오르기 시작하는 마나.
이어서 나는 가슴에 손을 대고 등가교환을 발동했다.
마나만 충분하다면 어떤 마법이든 사용할 수 있도록 해 주는 마법.
난 그것을 이용해 잠시 만뢰를 소화하기 용이한 몸으로 버프를 걸었다.
[버프가 발생합니다!]
[소화하기 어려운 것을 소화해 낼 수 있는 능력이 증가합니다!]
버프를 발동시켰지만 고통은 여전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끼아아! 끼아!”
다칼 혼자서 독수리들을 막는 것이 벅차 보인다.
어차피 이곳에 더 남아 있을 필요가 없으니, 우선 독수리들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야겠다.
나는 곧장 귀환석을 꺼내 들었다.
“쥐새끼처럼 도망갈 생각이구나!”
퍄자자자자자!
“그렇게는 안 되지!”
제우스가 자신의 손끝에 번개를 만들었다.
이미 그는 탑에게 차고 넘칠 정도의 경고를 먹었을 터.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우스는 앞뒤 안 가리고 내게 번개를 날려 보냈다.
순간 날 직접 타격하려는 게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귀환석은 이미 발동 중이기에 찰나의 시간만 벌면 됐다.
뒤로 다크스윔을 사용하여 반경 범위에서 벗어났다.
쿠과가가가!
하지만 제우스의 공격은 상상 이상으로 엄청났다.
예상한 범위를 넘어 내가 이동한 곳에까지 그 영향이 들이닥치고 있었다.
여파에 휘말리기 직전.
“하아~.”
나는 귀환석을 통해 처음 소환됐던 자리로 되돌아와 있었다.
그리고 마나가 거의 바닥이 나 있는 걸 느끼곤 곧바로 마법을 해제했다.
다행히 만뢰가 몸에 자리를 잡은 듯, 아까 전에 느껴졌던 고통은 사라져 있었다.
대신 살짝 차갑고 찌릿한 느낌이 전신을 뒤덮었다.
느낌이 쎄하기보다는, 충만감이 느껴졌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최초로 만뢰를 흡수하였습니다!]
[완벽한 뇌속성 내성을 가집니다!]
[완벽한 뇌속성 친화력이 생깁니다!]
[만뢰자라는 칭호가 주어집니다!]
[완성된 뇌속성 마법들의 정해져 있는 틀과 형태에서 벗어나서 비교적 자유롭게 다룰 수 있게 됩니다!]
“오오…….”
뇌속성 내성만 생겨도 충분하건만.
친화력뿐만 아니라 칭호 덕분에 특이한 능력도 얻었다.
‘정해져 있는 틀과 형태를 벗어날 수 있단 말이지?’
대충 무슨 의미를 뜻하는지는 알아들었다.
그래도 생각만 하는 것보다는 직접 해 보는 것이 좋을 터.
나는 다크볼트 대신 마나볼트를 시전했다.
그리고 기계를 손질하는 엔지니어처럼 두 개의 고리를 가진 구체에 변화를 주어 보았다.
“……!?”
새로이 얻은 희한한 능력은 생각한 것보다 더 대단했다.
바꾸지 못하던 고리의 형태를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구체를 둥근 형태가 아닌 날카롭고 비좁은 길쭉한 원형태로 변형이 가능했다.
뿐만 아니라 구체를 두 개로 나눌 수도 있었다.
폭발력의 힘이 반감되기는 하나, 이는 이전에는 안됐던 일이다.
거기에 마나볼트만의 특성, 폭발하려는 성질에 대한 통제성도 늘어나 있었다.
[마나볼트 레벨이 올랐습니다!]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상당한 고통이 수반되기는 했지만 이것은 그만한 메리트가 있었다.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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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회귀한 자
칭호: 좀비 학살자 외 4개
능력치
근력:116(+250)
민첩:105(+565)
체력:156(+250)
정신력:183(+250)
마나:205(+496)
스킬
점지(Lv1) 마나볼트(Lv14) 마법컨트롤(Lv20) 다크스윔(Lv6) 다크웹(Lv6)
어스월(Lv5) 행운의룰렛(Lv2) 다크소드(Lv5) 다크소울(Lv1) 원드퍼드(Lv4) 등가교환(Lv-) 마나방출(Lv6) 루트딥트리(Lv3) 리치네스(Lv2) 다크레인(Lv1) 컬스버닝(Lv1) 홀리크로스(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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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킬은 이제 마도사라 불려도 문제없을 만큼 가득 채워져 있었다.
회귀 전의 11층에서 이것의 절반이었던 걸 고려하면 회귀 직후에 내가 달려온 길이 절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해 주는 듯했다.
-제우스의 영역에 들어설 때부터 뭔짓을 벌일 줄 알았지만, 설마 만뢰를 섭취할 줄이야…… 죽지 않아 다행이다만.
“그보다 괜찮나? 멀미는?”
-메스껍긴 하다만 괜찮다.
다칼이 걱정되는 눈빛으로 말을 잇는다.
-제우스가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단순히 녀석의 계약자를 처단한 것은, 죽고 죽이는 탑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니 그러려니 넘어갈 순 있어도 영역의 힘을 강화시켜 주고 신좌와 계약자 간에 유대감의 힘을 가져다주는 매개체를 그대가 강제로 끊어 버렸으니. 절대 가만히 있지 않겠지.
“상관없어. 그걸 알고도 움직인 거니까.”
그리고 지금쯤 한창 시끄럽게 메시지를 보내야 할 제우스는 조용하기만 했다.
‘탑에게 제재를 먹은 거겠지.’
그간 너무 날뛰었으니까.
마지막에 했던 행동은 탑에서 지켜야 할 규율을 넘어 상당히 과한 행위였다.
제우스는 아마 당분간 내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터다.
“원하는 것도 다 얻었으니. 이제 다음 지역으로 가 볼까.”
나는 크록 마운틴을 쳐다봤다.
씰스톤과 만뢰를 얻어 냈으니, 저 산에서의 볼일은 끝났다.
다만 중립지역인 아셔 마운틴으로 가려면 다시 저기로 가야만 한다.
발걸음을 뗐다.
처음과는 반대로 마나가 바닥이 나서 걸어가야만 했지만 상관없었다.
가면서 마나를 채운다고 생각하면 되니까.
그리고 아직 시간은 충분했다.
* * *
제우스와 토르 계약자들 간의 접전지역 콜드브릿지.
토르의 진영으로 합류한 안수찬은 눈앞의 스케일을 보며 감탄을 내뱉었다.
“어마어마하군.”
콜드브릿지의 규모는 보통 생각하던 다리와는 차원이 달랐다.
수백 명이 들어서도 넉넉할 것 같은 옆넓이와 끝도 없이 이어지는 길이.
무엇보다 입이 벌어지는 건 다리를 지탱하고 있는 기둥이었다.
가파란 절벽과 절벽 사이를 잇는 다리 밑에는 심연으로 가득찬 어둠만이 존재했다.
기둥은 그런 어둠을 향해 뿌리내리고 있었다.
떨어지면 다신 돌아오지 못하리라.
“정말로 여기서 싸울 거야?”
뒤에 서 있던 주안나가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으로 그에게 물었다.
“응. 위험하긴 해도 눈에 띄는 방법으론 이게 최고잖아.”
대다수의 등반자들이 이 전장에 합류했다.
미션의 내용은 최대한 눈에 띄는 것.
앞에 주어가 빠져 있어 누구에게 눈에 띄라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중요한 것은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은 확실히 눈에 띄었다.
명분은 신좌들 간의 영역다툼.
그걸 대신해서 싸우는 수많은 등반자들.
이만큼 눈에 띄는 것이 어디 있으랴.
또 안수찬은 이곳에 눌러앉아 있던 등반자들에게서 중요한 얘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곳 콜드브릿지에 몰려드는 또 다른 이유.
마침 그 이유가 메시지로 올라온다.
[돌발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콜드브릿지에 전조 분위기가 조성됩니다.]
[콜드브릿지에서 혈투를 벌여 마지막까지 다리 중앙을 사수하십시오!]
“이벤트가 떴다!”
“가자아아!”
이때만을 기다리고 있던 토르의 진영 사람들이 콜로세움처럼 형성된 다리 중앙을 향해 힘차게 달려 나갔다.
“크하~ 신입들 뭐 하고 있어!? 빨리빨리 안 움직여!?”
한 남자가 술을 들이켜며 진영을 이끌었다.
이미 준비를 끝낸 안수찬도 손에 든 망치를 꽉 쥐고서 다른 사람들처럼 힘차게 발을 내디뎠다.
쿠구구구!
수백 명에 이르는 사람들의 대이동!
“와아아아!”
함성 소리가 메아리치며 각 진영의 사람들이 중앙을 향해 모여들고 있었다.
약 이백 년간 이어져 온 팽팽한 전쟁.
전쟁에 참여해서 싸우는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전쟁의 끝마침표를 찍으리라고는 상상하지 않았다.
하나.
저쪽 편에 있는 크록 마운틴에 천둥이 울리며 먹구름이 크게 소용돌이치고 있었다.
아직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눈치채리라.
이백 년간 이어져 온 전쟁의 밸런스가 무너져 가고 있다는 것을.
균열이 가고 있다는 것을.
격변이 일어나려고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