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53화
53화 씰스톤 (2)
이를 꽉 깨문 바크의 목에 실핏줄이 맺혔다.
해당 층에서 이런 광범위한 마법을 펼칠 수 있는 자가 있을까?
다급히 머리를 굴려 보지만 당장에 떠오르는 인물이 없었다.
‘토르 진영에도 마법을 사용하는 녀석들이 있긴 하지만 어둠을 다루는 녀석은 없었지.’
그리고 토르 진영의 녀석이 이곳까지 밀고 들어왔다면 진작에 보고가 들어왔을 터.
설사 보고를 하는 중간 과정에 문제가 생겼다고 해도 이곳의 진영과 적의 진영을 이어 주는 유일한 다리이자 격전지, 콜드브릿지에 있는 녀석들이 전부 죽었다면 제우스가 가만히 있질 않았을 것이다.
귀띔이든 뭐든 해 주었을 터.
그때. 그는 제우스가 했던 경고가 떠올랐다.
‘이쪽으로 새로 올라온 녀석 중에 한 놈을 조심하라고 했지.’
하데스와 계약을 한 놈이라고 했던가.
필시 어둠을 다룰 테니, 지금 발동하고 있는 마법하고도 연관이 있을 수 있었다.
“……건방진 새끼.”
멋도 모르고 아주 날뛰어 대는 꼴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러나 방심할 수는 없었다.
마법의 힘과 범위, 그리고 유지력을 보았을 때 강한 힘을 지닌 자인 것은 분명하니까.
바크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혀를 끌끌 찼다.
“쥐새끼들이 따로 없군. 다들 동작 그마아아안!”
어둠의 비로부터 도망을 치던 쉼터의 거주민들이 일제히 멈춰 섰다.
물론 도망을 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상황 파악에 나선 이들도 있었다.
바크와 같은 제우스의 계약자들.
그들은 바크의 완벽한 통제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행동했다.
바크가 그들의 대장인 것은 사실이나 같은 신좌의 계약자이기에 최소한의 존중이 존재했다.
바크는 그들은 신경 쓰지 않은 채 거주민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금 당장 이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녀석을 찾아라! 분명히 쉼터 근방에 있을 것이다! 녀석을 찾아, 잡아서 데리고 오는 놈에겐 내 큰 포상을 내리겠다!”
최면에 걸린 이들이 두려움을 무릅쓰고 그의 명령에 절대적으로 따랐다.
다만 그 안에서 어물쩍대는 이들이 있었는데.
최면에는 걸리지 않았지만 그의 지배를 받고 있는 등반자들이었다.
바크는 그들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듯이 소리쳤다.
“아직 움직이지 않는 벌레들이 보이는군! 만일 이 소란 속에서 녀석을 찾지 않고 도망치는 이가 있다면, 비에 맞아 죽는 것보다 더한 고통으로 죽여 주지!”
어물쩍대던 이들이 그 말을 듣곤 빠릿하게 움직인다.
이후 바크는 전기로 뒤덮인 보호막을 둘렀다.
투두두두-!
처음에는 비를 막아 내는 듯했으나 점점 막이 얇아지고 파랗게 빛을 내고 있던 것이 어둠으로 물들어 가고 있었다.
그가 사용하는 마법이 상대의 마법에 잡아먹히고 있는 것이었다.
그게 마음에 들지 않은 바크는 오만상을 지으며 보이지 않는 적에게 도발을 했다.
“누군지는 몰라도 겁쟁이 녀석이군! 숨어서 공격하는 꼴이 꼭 포식자를 만나 벌벌 떨며 몰래 공격하는 쥐새끼 같구나. 이런 허접쓰레기 같은 공격으로 내가 세운 왕국을 무너뜨릴 수 있을 것 같나! 천만에!”
그러건 말건 상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계속해서 비를 쏟았다.
그리고 어디선가 시작된 다른 마법들.
기분 나쁘게 생긴 나무들이 땅에서 치솟아 거주민들을 속박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끄아악!”
“아악! 으아아아악!”
수십에 이르는 검은 구체와 날카로운 검들이 공중을 떠돌며 제우스의 계약자들을 공격하고 또 공격했다.
또한 눈으로 보기 어려울 정도로 얇고 날카로운 바람이 쉼터의 모든 것을 갈가리 찢어 놓는다.
“으으으!”
참다못한 바크가 직접 나서기 위해 발을 내딛는 순간 그에게도 검이 날아 들어왔다.
픽-
보호막을 뚫고 그의 뺨을 베고 지나간 공격.
상처를 타고 얇은 피가 흐른다.
그를 벤 검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다시 되돌아왔다.
“이까짓 공격!”
파지지직! 카아앙!
그의 손에 만들어진 번개의 창이 날아드는 검을 막아 냈다.
그리고 연이어 창을 휘두른 그는 아예 검을 저 멀리 쳐내 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검은 사라지지 않은 채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뛰어난 잔재주군. 그러나 그런 잔재주를 너만 부릴 수 있는 게 아니지.”
콰가강! 콰가강!
주변 대기에 반짝이는 번개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그의 몸을 감싸고 도는 여덟 개의 번개는 다가오는 검의 공격을 막아 냈다.
뿐만 아니라 여유가 되니 반격까지 가할 수가 있었다.
그러나 상대가 어디에 있는지 알지 못하는 상황.
끝내 그는 막무가내식으로 무차별 공격에 나섰다.
“나와라! 이 쥐새끼야!”
콰아앙! 콰아아앙!
그로 인해 거주민들도 피해를 입었지만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크하하하!”
되레 승기를 잡았다고 생각하며 크게 웃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그 웃음소리는 길게 가지 않았다.
“언제…… 이렇게 모인 거지……?”
하나밖에 없던 날아드는 검이 어느덧 다섯 개가 넘게 그의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밖으로 돌리던 번개를 다시 회수해 공격을 막아 보지만, 검의 개수가 점점 늘어났다.
그리고 그것이 여덟 개가 넘어가는 순간.
픽- 픽- 서걱!
“끄아아악!”
살갗만 조금 베이다가 기어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다.
한 번 시작된 공격은 멈추지 않았다.
픽- 픽픽- 픽픽픽픽픽-
일부러 고통만을 느끼게 하려는 듯, 날아드는 검들은 살갗만을 얇게 베고 지나갔다.
“이 개새끼가아아아! 나와아아! 나와! 씨바아알!”
흥분한 그가 미친 듯이 소리쳐 보지만 상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바크의 온몸이 걸레짝이 되어, 얼굴의 형태마저 알아볼 수 없을 즈음.
가까운 곳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쉼터의 한가운데.
어두운 곳에 녹아들어 있던 남자가 얼굴을 내 보였다.
“크으윽!”
바크는 그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그 남자의 두 눈은 마치 심해보다 어두운 심연을 들여다보는 듯했다.
두려움 없는 그가 순간 흠칫할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바크는 이때만을 기다렸다는 듯이 허연 이를 보이며 온몸을 파랗게 물들였다.
파지지지-!
대기를 뜨겁게 달구는 전기 입자들이 그를 중심으로 생겨났다.
남자가 서 있는 주변에도 금세 파란색의 입자들이 자리를 채워 나갔다.
바크는 그를 보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구이로 만들어 주지.”
동시에 입자의 빛이 강하게 번쩍였다.
입자들이 폭발할 것처럼 빠르게 팽창한다.
“다칼.”
고요하게 울려 퍼진 저음의 목소리.
이어서.
“크하아앙!”
남자의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늑대 새끼 한 마리가 크게 울부짖는다.
“……!?”
바크는 얼이 나간 표정을 지었다.
수많은 전기 입자로 환하게 빛나던 주변이 급속도로 어둑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폭발해야 할 입자들이 터지기는커녕 들이닥친 어둠에 잡아먹혀서 사라지고 있었다.
끝까지 남겨 두었던 필살기가 허무하게 막혀 버린 것을 목도한 그는 허탈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이렇게 진다고……?’
믿을 수 없었다.
위층에서 내려온 등반자라면 몰라도 아래층에서 올라온 놈에게 당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서 그는 현실을 부정했다.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어디 위층에서 내려온 놈이 분명해!’
당연히 그에겐 최면도 향락도 통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방법은 한 가지.
‘나중을 위해 아껴 두려고 했지만…….’
그가 팔찌 아공간에서 아이템을 꺼내려고 시도했다.
그러나.
서걱!
“으, 으으아악!”
그 전에 팔찌를 차고 있던 손이 단숨에 잘려 나가 버렸다.
완전히 전투 불능 상태가 되어 버린 바크 앞에 남자가 다가왔다.
“대, 대체…… 넌 누구야!”
겁에 질린 바크가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물었다.
그러자 남자가 작게 입을 연다.
“악명이 있어서 그래도 좀 기대했는데. 으음…….”
“뭐?”
“됐고. 씰스톤은 어디 있지?”
바크는 무의식적으로 씰스톤을 숨긴 품을 힐끗 내려다봤다.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을 곧바로 캐치해 낸 남자는 씩 웃었다.
“대답은 잘 들었어. 그럼 이만 죽어라.”
“으, 으아아아악!”
서걱!
그는 공중에 떠돌던 검 하나를 회수해 바크의 목을 단숨에 베어 버렸다.
땅바닥에는, 몸뚱이에서 떨어져 나간 바크의 머리가 조용히 굴러다닐 뿐이었다.
* * *
나는 칼을 거둬들이고 바크의 품속을 뒤졌다.
[씰스톤을 얻었습니다.]
팔각형의 문양이 새겨져 있는 돌은 내가 원하던 물건 중 하나였다.
“이것으로 하나.”
씰스톤의 개수는 총 세 개.
이곳 제우스의 영역에 한 개.
토르의 영역에 한 개.
중립지역에 한 개.
난 그 세 개를 전부를 얻을 생각이었다.
‘그래야 그놈을 소환할 수 있으니까.’
바크의 품을 더 뒤지던 나는 이내 의외의 것을 발견했다.
향락의 진주.
딱히 내겐 이용 가치가 없는 아이템이었지만, 다른 등반자들이 환장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들을 쾌락에 빠뜨린다지.”
원하던 물건은 아니지만 덕분에 포인트를 벌었다.
곧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쉼터의 중심지를 벗어났다.
사람들 눈에 띄지 않고 가장 구석진 곳.
여기엔 비밀장소가 존재했다.
동굴.
본래는 입구 앞에 제우스의 계약자들이 지키고 서 있어야 하지만, 아까 전에 싸울 때 나왔던 것인지 자리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두운 입구를 지나 동굴에 들어서자 조용하던 제우스가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
[천공의 주인이 여긴 네놈 따위가 들어올 곳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래? 그렇게 말하니까 더 궁금해지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곳이 어딘지는 이미 알고 있었다.
어두컴컴한 공간.
사람이 잘 드나들지 않은 듯 바닥은 울퉁불퉁하고 거칠었다.
-회귀한 그대라면 여기가 어딘지 알고 있는 거겠지.
“당연.”
-이제 같이 다닌 지도 좀 지났지만 여전히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군. 아무튼 조심해라. 탄내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다칼은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를 안심시키듯 말했다.
“괜찮아.”
실은 이곳에 들어선 순간부터 가슴이 떨리고 있었다.
여기는 제우스의 영역에서도 심장부나 마찬가지였으니까.
이내 모습을 드러낸 거대한 공동.
그 한가운데 자리 잡은 뾰족한 뿔 형태의 돌이 보였다.
뿔의 높이가 어찌나 높은지, 고개를 들어야 그 끝이 보였다.
그리고 돌 위로 뚫려 있는 천장으로 먹구름이 드리운 하늘이 비친다.
나는 다시 돌을 내려다봤다.
웅장함을 나타내는 저 돌의 정체는 섬전암.
모래에 번개가 내려쳐 생겨난 돌이었다.
동시에 이 산 전체를 제우스의 영역으로 만들어 준 핵심이기도 했다.
정확히는 저 거대한 섬전암 안에 있는 아주 자그만 돌에 흥미가 있다.
‘수억 번의 번개가 일순간에 같은 곳을 내려쳐야 생기는 만뢰.’
그것이 저 안에 숨어 있다.
그 만뢰를 만약 가루로 만들어서 먹는다면 이론상으론 완벽한 전기 내성을 얻는다고 알려져 있다.
다만 만뢰를 먹게 되면 제우스에게 낙인을 찍힐 테고, 자칫하면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건 두렵지 않았다.
진정 두려운 건 두 번이나 탑의 정상을 정복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
실패를 맛보지 않으려면 이 정도의 위험쯤은 감수해야만 했다.
현재 점지 스킬도 저곳을 향하고 있었다.
그러다 내 시선이 한곳에 멈춰 섰다.
섬전암에 우뚝 서 있는 독수리 한 마리.
나를 노려다보는 것 같다.
지금은 석상에 불과하나, 저것은 제우스가 내려 보낸 가디언.
이내 녀석의 눈에서 붉은빛이 서렸다.
눈을 뜨려나보다.
나는 녀석이 활개 치기 전에 서둘러 지팡이를 들었다.
[천공의 주인이 지금 무얼 하는 것이냐 따져 묻습니다!]
[천공의 주인이 후회할 짓은 하지 않는 게 좋다고 말합니다!]
왜인지 웃음이 피식 나왔다.
후회?
내 계획대로만 된다면 절대로 후회할 일은 없었다.
나는 마음을 단단히 굳히며, 체내의 마나를 끌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