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50화
50화 보상
하얀 초승달이 녀석의 몸에 새겨졌다.
그리고 목에 걸려 있던 목걸이는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어 버렸다.
아이템 각인.
페르라의 힘이 깃들어 있는 아이템의 특징 중에 하나였다.
스스로 각인 해제도 가능해 영구적으로 사용해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뜻밖인 점은 이후의 변화였다.
“캬하아응?”
-뭔가 팔다리가 길어진 기분이 드는군.
실제로 다칼의 몸집이 이전보다 커져 있었다.
“그래 봐야 아직 땅딸보지만.”
“캬하악!”
다칼이 입을 벌려 날 물었다.
이빨도 같이 성장한 것인지 살짝은 따끔해졌다.
“캬하으! 캬하윽!”
-땅딸보라는 말 취소해라!
“땅딸보를 땅딸보라 부르지. 뭐라 불러.”
-취소할 때까지 이렇게 물고 있겠다!
나는 피식 웃음을 흘리곤 알았다며 녀석을 다그쳤다.
“취소. 취소. 됐지?”
-진즉에 그럴 것을.
그런데 갑자기 신수의 몸이 성장을 했다는 건 백퍼센트 목걸이의 영향을 받았다는 건데.
‘신수를 성장시킬 만큼의 힘이라면 신좌 페르라의 힘 밖에 없다.’
페르라의 특별한 능력 중에 하나가 자신의 힘의 일부를 아이템 혹은 생명체에 이전을 시켜 줄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 대상이 아무나는 될 수 없고 페르라와 영적으로 잘 맞는 존재 혹은 성질을 가지고 있어야만 이전이 가능했다.
‘생각보다 그 합이 더 잘 맞아떨어졌던 거야. 그리고 목걸이에 아직 저 정도의 힘이 남아 있었다니.’
추후 한번쯤 도움이 되어 줄 소모성 아이템으로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보니 더 큰 떡이 기다리고 있었다.
“흐음~ 이건 예상 밖이구만.”
페일러가 턱을 쓸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목걸이가 자네 소환수와 이렇게 잘 맞다니. 보통 맞질 않아 제대로 된 힘을 발휘하기 어려울 텐데. 아주 주인을 잘 만났어.”
그가 껄껄껄 크게 웃어 댔다.
나는 그런 페일러를 보며 말했다.
“귀한 선물을 준 것 같은데. 이런 걸 그냥 줘도 되는 겁니까?”
“아까 말했잖나. 어차피 쓰지 않으면 저 창고 안에 처박혀 있을 운명이야. 그걸 그냥 주는 건 내 변덕일 뿐이니 받아 주게.”
“그럼 거절치 않고 받겠습니다.”
그래도 대가를 원했으면 포인트라도 좀 쥐어 주었을 텐데 말이다.
‘뭐. 덕분에 내 포인트는 굳었지만.’
* * *
나는 페일러와 작별 인사를 고한 뒤 곧장 호텔로 돌아갔다.
그리고 유희가 있는 방을 찾아갔다.
아침 일찍 마나를 회복하자마자 나머지 상처도 치유를 해 줬기 때문에 상태가 많이 나아져 있었다.
아니. 그냥 멀쩡했다.
“야, 천천히 먹어.”
“아음! 아음!”
유희는 호텔 서비스로 주문한 고기를 허겁지겁 먹어 치우고 있었다.
“컥! 컥! 쿨럭쿨럭!”
“그러니까 천천히 먹으라니까.”
하루 종일 굶은 티를 내듯 유희는 질주를 멈추지 않았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5인분이 넘는 음식들이 싹 사라졌다.
“하아~ 이제야 살 것 같다.”
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불러온 배를 두드리는 그녀.
“이게 너의 본모습이었어.”
“응? 뜬금 무슨 소리야?”
“10분 안에 5인분이 넘는 음식을 먹는 건 나도 못하는 일인데. 그동안 숨기느라 고생이 많았겠어. 김식신 씨.”
“뭐? 김식신?”
“그래. 개같이 귀신같이 음식을 먹어 치우니 널 앞으로 김식신이라 부르마.”
“뭐! 말 다했어! 너 일로 와! 당장 와! 야! 이준석!”
쳐 맞기 싫어서 도망을 치던 나는 결국 등짝을 한 대 맞고서 다시 자리에 착석했다.
“그르르…….”
한 대를 같이 맞은 다칼.
‘대체 넌 왜 맞았냐?’
머리를 매만지며 아파하는 다칼을 바라보던 나는 마음을 차분한 분위기로 내려앉히고 유희에게 본론을 꺼내 들었다.
“난 오늘 올라갈 생각이다.”
그 말뜻을 알아차린 유희도 표정을 굳히며 대답했다.
“정확히 언제.”
“용무를 마치는 대로 바로. 올라가기 전에 보고 가야 할 사람이 있거든. 그래서 넌 어떻게 할 건지 물어보러 왔어.”
“나? 나는…….”
대답을 머뭇거리던 유희가 이내 마음을 굳힌 듯 얘기했다.
“나중에 따라 올라갈 게.”
“음. 역시 길드원들 때문인가.”
“어? 어떻게 알았어?”
“뻔하지.”
“미안. 미리 얘기 안 해서.”
“굳이 내게 말할 필요가 있나. 네가 판단하는 거지. 그래서 들어온대? 그 둘.”
“아? 어! 성태 씨랑 자린이 둘 다 들어오기로 했어.”
역시나.
유희가 말을 잇는다.
“네가 자린이를 싫어하는 걸 알아. 하지만 난 기회를 주고 싶어.”
기회라…….
“애초에 네가 이끄는 길드이고 네가 선택한 길이니 잘하리라 믿어. 근데.”
박자린. 그녀가 변할지 안 변할지는 모르지만 나는 마지막으로 충언 한마디를 해 주었다.
“기억해. 사람은 잘 바뀌지 않아. 물론 네가 정이 많아도 정에 끌려 다니는 사람은 아니니까 크게 걱정은 안 된다만.”
“네가 걱정하던 일이 생기면 그땐…… 정말로 결정을 내려야지.”
당연하지만 유희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길 바라는 표정이었다.
“그럼, 그 두 사람이 다 준비가 되면 올라오려고?”
“어. 아무래도 함께 움직이는 것이 좋으니까.”
“그래도 너무 오래 걸린다 싶으면 뒤처지는 인원은 두고 올라와라. 그렇게 한 층에 오래 머물게 되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그 층에 안주하고 싶어지니까.”
“나도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어. 그리고…… 너랑도 층이 멀어지면 안 되니까. 너무 걱정은 마.”
고개를 끄덕인 나는 유희에게 마지막 인사로 쪽지를 건넸다.
“이건 뭐야?”
“나중에 열어 봐. 오를 때 도움이 될 거야.”
쪽지에는 10층까지 오르는데 도움이 될 만한 정보들이 담겨 있었다.
“고마워.”
“간다.”
나는 손을 흔들며 방을 빠져나왔다.
“크르릉.”
-감정적으로 서운하지 않은가?
안에서는 조용히 있던 다칼이 내게 물어 왔다.
“무슨 뜻이야?”
-그러니까, 가까이 지내던 친구가 자네가 아닌 길드원들을 택한 게 서운하지 않냐 이 말이다.
나는 쓰게 웃었다.
“예전이었으면 서운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탑에서 30년의 세월을 보내며 나 또한 내다보는 시야가 넓어져 있었다.
“유희가 저들을 택한 건 탑을 오르는데 필요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야. 나도 거기에 동의하고. 그러니 서운해할 게 하나도 없지.”
만일 서운하다면 그 감정은 그냥 가까이 있는 것만 바라봤기 때문이다.
‘이곳에서의 인연들이 유희와 내가 같이 걸어온 시간을 뛰어넘을 순 없다.’
내가 그랬던 만큼 이는 확신할 수 있었다.
상대의 마음을 모르는 게 인간이라지만 때론 상대가 전달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이 있다.
나는 뒤로 잠시 돌아보며 속으로 속삭였다.
‘건강한 모습으로 다시 보자고.’
* * *
그가 마지막으로 반드시 보고 가야 할 인물.
준석은 침대에 누워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윌튼을 쳐다봤다.
“얼굴이 뺀질거리는 걸 보니 이제는 살 만한가 보네.”
“크하핫! 뺀질거리다니, 평생 살면서 그런 말은 들어 본 적이 없는데.”
크게 미소를 띠던 그가 이내 진지한 눈빛으로 변했다.
“치유사에게 자세한 정황은 들었습니다. 절 데리고 온 게 준석 씨고, 거기다 오웬을 상대한 게 당신이라고. 이걸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아아~ 길게 말할 필요가 있나. 그냥 도움을 받은 만큼 토해 내면 되는걸.”
“하핫! 크하하하!”
준석의 말에 한참을 웃던 그가 다시 입을 뗐다.
“오히려 대놓고 요구를 하니 마음이 편하네요. 드리겠습니다. 제가 도움받은 만큼. 그러나 그 전에.”
그는 겨우겨우 몸을 일으켜 세우더니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그동안 정말로 죄송했습니다. 제가 한 무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준석은 고개를 숙인 그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사과는 필요 없습니다. 무례 저지른 일은 이미 전에 퉁 쳐서 사라졌으니까.”
“그리 생각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윌튼이 이내 그를 올려다본다.
그는 겉으로는 괜찮은 척을 하고 있으면서도 속으로는 벌벌 떨고 있는 중이었다.
처음엔 그저 괴물 신입 중에 한 명인 줄 알았다.
그러나 눈앞에 있는 자는 그저 신입 따위가 아니었다.
상상을 초월한 괴물.
‘누구도 이기지 못한 오웬을 상대해 이겼다. 인포메도 당했다 들었는데…… 도저히 내가 어떻게 해 볼 상대가 아니야.’
꿀꺽.
여기서 자칫 밉보였다가는, 어쩌면 그의 목이 달아날지도 몰랐다.
자신을 살린 것도 그이지만 죽일 수 있는 것도 그이기에.
그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는 주는 대가도 그만큼의 가치가 있어야 한다.
윌튼은 그와 대화를 나누면서도 머릿속 한편에는 무엇으로 대가를 치러야 할지 깊이 고민했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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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5,850포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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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포인트 수치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이렇게까지 많이 받아먹을 생각은 없었는데.”
윌튼이 자기를 살려 준 대가로 무려 100만 포인트를 내놓았다.
한국 돈으로 치면 약 1억 원 정도 하는 금액.
물론 오웬을 처리해 준 대가와 그의 목숨값으로 더 챙겨 받아먹을 수도 있었지만 내가 그렇게까지 양아치는 아니었다.
받아 낼 것을 다 받아 낸 나는 이만 도시의 중심지로 이동했다.
“아우~!”
다칼이 짧게 울부짖었다.
-다른 일행은 안 보고 가도 되나?
대표적으로 하성태를 가리켜 말하는 것일 터.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가 봐야 잠에 들어 있는 모습만 구경할 텐데. 뭐 하러 가. 그냥 나중에 얼굴 보고 말하면 되지.”
아마 회복을 위해 당분간은 잠에서 깨어나지 않을 것이다.
이내 나는 목적지에 당도했다.
거대한 바위 아래 자리 잡고 있는 거대한 문 앞엔 경비병들이 지키고 서 있어야 하지만.
어젯밤 일 때문인지 아무도 자리를 지키고 있지 않았다.
덕분에 터치 당하는 일없이 문 앞으로 이동이 가능했다.
가까이 다가가 문 위를 잠시 올려다본 나는 두 손으로 문을 밀었다.
쿠구구구-!
땅이 끌리는 소리와 함께 문에 가려졌던 공간이 드러난다.
끝에는 계단이 보였다.
다음 층으로 향하는 계단이었다.
하지만 저곳으로 향하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미션을 종료하겠어.”
말하자마자 곧바로 미션을 종료한다는 메시지가 올라왔다.
아쉽게도 보상이 바로 들어오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이 미션을 전부 끝마치거나 아님 미션시간이 종료될 때까지 기여도 측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1위는 따 놓은 당상이었다.
그 어떤 것보다 많은 기여도를 챙겨 주는 멜트스니어를 잡았으니까.
나는 5층의 보상은 뒤로한 채 어두운 터널을 걸어 들어갔다.
계단 끝에 다다를 때까지 함정이나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툭!
이윽고 멈춰 서서 문 위를 바라봤던 것처럼 다시 위를 올려다본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나선형 계단이 보인다.
그리고.
철컹!
뒤에 열려 있던 문이 강제로 닫혔다.
동시에.
쏴아아아-!
계단을 둘러싸고 있는 벽 틈 사이로 물이 쏟아져 나왔다.
이것은 일종의 타임어택.
시간 안에 올라가지 못하면 물에 잠겨 죽는 결말이었다.
하지만 그런 결말은 약자에게나 주어진 결말.
다크스윔.
수아악-!
나는 다크스윔으로 갈 수 있는 최대거리까지 이동해 위로 올라갔다.
다크스윔.
다크스윔.
계속해서 연달아 마법을 시전했다.
정말 수 초도 되지 않는 시간.
스르륵-
마법 시전을 멈춘 나는 어느새 계단 끝에 도달해 있었다.
이제 한걸음만 더 나아가면 6층이다.
밑을 보면 물은 아직 백 분의 일도 따라오지 못했다.
‘그래. 다시 정상에 오르기까지 멈추지 않을 거야.’
앞으로도 이 속도로 층을 오르는 것이다.
그리고 해당 층에서 오랜 시간을 빼앗긴 만큼 6층, 7층, 8층, 9층, 10층을 쉬지 않고 단숨에 도약하리라.
그리 마음을 먹으며 나는 마지막 남은 한 발을 크게 내디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