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45화
45화 풍요의 로브 (2)
약하게 내리쬐던 빛은 다시 먹구름에 가려졌다.
대기 중에 떠도는 악한 공기와 타락한 땅의 기운이 계속해서 먹구름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사실 악한 것들을 없애는 목적이라면 악재 구슬만 한 것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 가지고 있지 않기도 하고, 자칫 악재 구슬로 인해 데트리머가 구슬에 흡수될 수도 있었다.
‘그런 변수를 만들어 낼 순 없지.’
나는 시선을 내려 앞을 내다보았다.
수아아악!
뾰족한 나무줄기들이 사방에서 치고 들어오고 있었다.
난 피하는 것을 멈추고 배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투두두두!
공격들이 보호막에 가로막히거나 옆으로 비껴졌다.
“다칼, 석화.”
“캬응!”
-이미 시도하고 있다.
“어둠도 만들어 내서 보조해.”
다칼이 본격적으로 서포트에 나서자 데트리머의 공격이 둔화된 게 한눈에 보였다.
녀석의 몸체의 일부도 회색으로 물들어 간다.
“크르릉…….”
하지만 여타 몬스터들과는 다르게 석화되는 속도도 느리고 다칼이 애를 먹고 있었다.
그렇다면 유지시간도 그리 길지 않을 것이다.
다크웹.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고속캐스팅’이 발동합니다!]
띠의 증폭으로 거미줄의 굵기도 굵었다.
현재 띠의 색깔은 보라색. 세 번째로 높은 증폭률을 지닌 색이었다.
그래도 나는 석화에서 풀려날 것을 대비해 녀석의 몸에 여러 번 거미줄을 쳤다.
[다크웹 레벨이 올랐습니다!]
그리고 윈드퍼드를 시전하자 곁에 하나둘씩 바람이 모여들었다.
어느덧 돌풍같이 회전하는 구체들이 셀 수 없이 머리 위로 떠다녔다.
“끼릭! 끼에에에!”
데트리머가 석화에서 벗어나 중첩으로 쌓은 거미줄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을 쳐 댔다.
아무리 녀석일지라도 금방 벗어나기는 어려울 터.
하지만 거미줄 영역에서 벗어난 팔들은 다시 공격을 해 오고 있었다.
‘굳이 신경 쓸 필요 없다.’
막아 낼 보호막도 있었고, 더 좋은 방법이 있었다.
“캬하앙!”
-내게 맡겨라.
다칼이 어둠을 이용해서 날아드는 공격들을 쳐 내는 중이었다.
그동안 나는 윈드퍼드 마법을 더 시전하여 마흔 개가 넘는 구체를 만들어 냈다.
‘이 정도면 되겠지.’
난 마나볼트였다면 할 수 없는 일을 했다.
휘오오오-
각개 흩어진 마법을 하나로 뭉친다.
형태가 자유로운 마법만이 할 수 있는 방법이었기에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형태만 바꾼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으로 들어가게 되면 그 형태 안에 마흔 개가 넘는 마법을 따로 컨트롤해 내야 했다.
그리고 윈드퍼드 마법끼리 서로 부딪치게 되면 강한 반발력을 일으키는 만큼, 부딪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가 필요했다.
고오오-
어느덧 하나의 형태로 완성된 구체가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처럼 천천히 회전하고 있었다.
[마법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마법컨트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법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마법컨트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치 태풍의 눈을 바라보는 듯하다.
“끼이이이-!”
가까스로 거미줄에서 벗어난 데트리머가 가까이 접근해 온다.
나는 녀석이 다가오는 것을 내버려 뒀다.
“다칼, 내가 신호를 보내면 녀석을 다시 돌로 만들어 버려.”
“캬흐으응!”
-돌로 만든다 해도 처음보다 그 시간이 짧을 거다!
“괜찮아.”
몇 초의 시간만 있어도 충분하다.
녀석이 내가 생각한 사정거리에 닿길 기다렸다.
‘지금이다.’
나는 거대한 소용돌이로 이루어진 구체를 하늘로 쏘아 보냈다.
그리고 금세 초근거리까지 다가온 녀석을 보며 보호막을 없애고 다크소드를 시전했다.
우우웅-
“키에에!”
녀석이 아가리를 크게 벌린다.
입 구멍은 날 집어삼킬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하지만 잡아먹힐 생각은 전혀 없었다.
푹!
“끼아아아아악!”
손에 잡힌 검을 녀석의 입안에 찔러 넣은 뒤 곧장 시전을 해제하고 다크소드 두 개를 따로 시전했다.
검 하나씩을 손에 쥔다.
“케헤에에!”
그리고 반격으로 날아드는 나무줄기들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서걱서걱!
멈추지 않는 검격.
“끼에에에-!”
나는 녀석의 팔이 남아나질 않을 때까지 계속 공격을 퍼부었다.
정화되기 전에 죽이지만 않으면 될 뿐, 팔을 모두 잘라 놓는 건 상관없었다.
물론 회복력이 뛰어나 금방 자신의 팔을 재생시킬 테지만 그 전에 모든 결과물을 만들어 내면 그만이었다.
“후읍!”
마지막 일격으로 옆 공중돌기를 하며 칼날을 세웠다.
“끼아아아-!”
모든 팔을 제거당한 데트리머가 처음으로 뒷걸음질을 쳤다.
나는 힐끗 하늘을 올려다봤다.
미리 올려 보냈던 구체가 마침 먹구름에 닿고 있었다.
모세의 기적이 일어나듯, 날려 보낸 구체가 먹구름을 걷어 내고 하늘 저편에 있던 태양빛을 이곳으로 불러냈다.
그러며 바로 밑인 이곳에 빛기둥이 만들어졌다.
“께에에에에에-!”
나는 빛에서 도망치려는 데트리머를 두 손으로 붙잡았다.
“안 되지. 도망가면.”
녀석을 원천 봉쇄하기 위해 이번에 경매장에서 새로 얻은 스킬인 루트딥트리를 사용했다.
수우욱!
땅에서 순식간에 자란 3, 4미터 정도 되는 나무가 내 의지대로 나무줄기를 움직였다.
스르륵, 촤악! 스르륵, 촤악!
그 나무줄기들로 녀석의 몸을 전부 휘감았다.
치이이익!
그리고 데트리머의 몸에서 수증기가 피어올랐다.
동시에 주변의 열기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께에엑! 께에에엑!”
듣기 싫은 괴성 소리에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가까이서 들으니 정말로 듣기가 싫었다.
“가만있어.”
퍽!
“끽!”
면상에다가 주먹을 꽂아 넣으니 드디어 조용해진다.
얼마가지 않아, 뿜어져 나오던 수증기는 점차 사라져 갔다.
말라비틀어져 있던 녀석의 몸에는 생명이 불어넣어진 듯 활력을 되찾았다.
그뿐이 아니다.
뒤덮여 있던 진흙마저 증발해 사라지고, 내가 전부 다 잘라 냈던 나무줄기가 다시 자라 새싹을 만들어 냈다.
다만 데트리머에게 쬐어지던 빛이 점차 사라지고 있는 중이었다.
먹구름이 드리운다.
정화를 하는데 성공을 했다고는 하나, 아직은 안심할 수 없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터.
“끼이에에에에에에엑!”
녀석은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온몸에서 진액을 뿜어냈다.
“다칼!”
소리치자마자 다칼이 석화를 시도했다.
“께에에-!.”
녀석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돌로 변한 것을 확인하자마자 마나볼트를 사용했다.
콰아앙! 쿠과가가가……!
마나볼트에 직격당한 데트리머는 돌조각으로 산산이 조각났다.
작은 돌조각 되어 버린 데트리머를 내려다본다.
거기엔 남색과 검정색이 섞인 로브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로브를 손에 집었다.
[불안정한 상태의 풍요의 로브를 얻었습니다.]
잠시 후.
사아아아-
작은 돌파편이 빛의 원자로 변해 로브에 스며들었다.
[풍요의 로브가 안정화됩니다.]
[로브의 일부가 정화되어 풍요의 로브가 완전한 모습으로 변화합니다!]
낡아빠진 모습이던 로브가 새 것으로 변화했다. 그리고 이전에는 없던 문양이 로브에 새겨졌다.
태양.
그것은 금박지로 그려진 태양이었다.
-후~ 머리가 어질어질하군.
어깨에 나앉은 다칼이 거칠게 숨을 내쉰다.
마안으로 정신력을 과도하게 소모하면서 지친 것이리라.
나는 그런 다칼을 보며 머리를 손으로 쓰다듬었다.
“수고했어.”
그리고 로브의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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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 풍요의 로브
영구효과: 체력+30, 포화유지
효과: 대지친화력, 지속성 마법일부면역
조건부 효과: ?
조건부 효과: ?
스킬 습득: 리치네스(Lv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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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요의 로브에 각인된 스킬을 습득합니다.]
[리치네스(Lv1)를 배웠습니다.]
로브에 달린 능력은 상당했는데, 그중에 포화유지와 리치네스에 유독 눈이 갔다.
포화유지는 음식을 먹으면 더 오랜 시간 동안 포만감을 유지할 수 있다.
지금이야 아공간에서 음식을 넣어 놓고 언제든지 꺼내먹을 수 있어 걱정할 필요가 없지만 공간 팔찌를 이용하지 못하는 특수한 장소에서는 이는 매우 큰 메리트였다.
그리고 팔찌의 공간이 무한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담아 둔 물건이 많을수록 음식을 담아 둘 수 있는 양도 한계가 있었다.
그다음은 스킬.
풍요의 로브답게 주어진 스킬 또한 풍요와 연관이 있었다.
다만 그것이 예상 밖으로 작용할 뿐.
리치네스.
스킬을 사용하자 몸 안에 있던 마나 그릇이 크게 확장을 이루었다.
리치네스는 인위적으로 마나 그릇의 크기를 넓혀 줄 수 있는 힘.
다만 1레벨이다 보니 약 10퍼센트가량만 늘었을 뿐이다.
하지만 그것만 해도 마도사에게는 큰 영향을 끼친다.
이외에 장점으로는 사용할 때 마나 소모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단점도 존재했다.
넓어진 그릇만큼 비어진 공간이 생겨나는데 그것을 자동으로 채워 주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비어 있는 공간은 스스로 가진 마나회복능력으로 채우거나 마나를 즉시 채울 수 있는 아이템에 기대야만 했다.
그리고 유지시간도 정해져 있었다.
레벨이 올라갈수록 유지시간도 올라가지만, 현재 1레벨로는 1분을 유지하는 것이 전부다.
심지어 한번 사용하고 나면 부작용을 생각해서 몇 시간 동안 쿨타임을 가져야 한다.
그래도 마나가 기본적으로 많이 들어가는 스킬 혹은 등가교환 스킬과 같은 걸 떠올리면 장점이 더 부각되는 스킬이라 할 수 있었다.
나는 로브를 몸에 걸쳤다.
원래부터 내 것이었던 것처럼 옷이 딱 맞는다.
이어서 주변을 둘러보니 다 말라비틀어졌던 논밭이 새살이 돋아나듯 노랗게 물들어 가고 있었다.
먹구름에 가려져 어둡던 하늘도 빛을 되찾아 갔다.
하지만 내 관심을 끈 건 그런 배경이 아니라 한 개의 메시지였다.
[풍요를 품은 술의 도취자가 당신에게 흥미를 가집니다.]
이곳은 디오니소스의 영역.
자신의 영역이니 관심을 가지고 싶지 않아도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을 터였다.
하나 그는 내게 더 말을 걸어오거나 혹은 내 눈앞에 나타난다거나 하지 않았다.
원래부터 술을 제외하곤 관심이 없는 양반이다.
이 정도의 관심만 해도 충분히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괜히 더 많은 관심을 가져 봐야 좋을 것도 없지.’
뭔가 하나에 집착을 하면 정말 미친놈처럼 집착을 하니까 말이다.
이내 나는 왔던 길로 다시 되돌아갔다.
그렇게 그림 속 풍요의 밭을 나와 신전을 빠져나온다.
“크하앙!”
-이제는 뭘 할 거지? 이대로 도시로 돌아갈 건가?
그새 원래 모습을 되찾은 다칼이 물어 왔다.
나는 그 물음에 저 멀리 북쪽 방향을 바라봤다.
여기서는 보이지 않지만 조금만 더 걸어가면 가파른 벽이 존재하는 골짜기가 나온다.
등반자들은 그곳을 스니어 골짜기 혹은 검은 협곡이라 불렀다.
위층에서 내려온 등반자들조차 유일하게 꺼려하는 장소.
“협곡에 갈 거야. 한번 나온 김에 기여도나 땡기고 가야지.”
-그렇다면 녀석을 상대할 생각인거군.
“그래.”
킹스니어와 스니어를 전부 아우러서 통제하는 까마귀들의 황제.
멜트스니어.
녀석을 사냥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