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한 탑 등반자-44화 (44/230)

회귀한 탑 등반자 44화

44화 풍요의 로브 (1)

경매장을 나온 류주한이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조용히 한 남자를 응시했다.

‘설마 이런 곳에서 마주칠 줄이야.’

류주한이 그를 관심 있게 보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에게서 위기의식이 발동했기 때문이다.

순전히 우연이긴 했지만 자신이 그토록 찾아 헤매던 슈퍼 루키를 발견했다.

‘그런데 계속 옆에 붙어 있는 저 여잔…… 우리 측에서 스카웃하려고 했던 김유희? 둘이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그녀를 스카웃하려고 길드원들이 몇 번이고 찾아갔단 소리는 전해 들었다.

그렇다면 길드원들이 저 남자를 마주했을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딱 그 꼴이군.’

류주한은 이내 둘을 번갈아 쳐다봤다.

여자가 끝내 길드 가입을 거절했다는 얘기는 들었지만 만일 남자를 설득하면 그녀 또한 들어올 수 있지 않을까?

행복한 상상을 해 본다.

하지만 그만큼 신중을 기해야만 했다.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다가 모두 잃는 수가 있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둘에게 다가가 말을 걸고 싶었다.

하나, 그러지 않았다.

저런 슈퍼 루키 같은 경우는 길드의 권위만 내세워 접근했다간 오히려 화를 불러오는 수가 있다.

가입을 제의하는 것도 타이밍.

드디어 남자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여자랑은 따로 가는 건가?’

계속 동행할 줄 알았던 둘은 각자의 길로 흩어졌다.

류주한은 당연히 남자를 쫓아갔다.

“그런데 어디를 가는 거지?”

향하는 방향을 보니 음식점이나 묵을 곳에 가는 것은 아닌 듯 보였다.

저곳으로 가면 분명히 성문이 나온다.

‘경비병들을 쫓고 있어.’

그러고 보니 경매장에 들르기 전에 진행했던 길드 회의에서 한 가지 보고가 들어왔다.

성주가 바깥 숲의 조사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경비병들의 숫자를 보면 저것은 조사를 위해 꾸린 인원이 아니었다.

마치 어딘가 전투를 치르러 가는 것 같은…….

‘이거, 심상치 않은데?’

어느덧 도시 외곽에 이른 경비병들이 성문을 지나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자신이 쫓던 남자 역시 그들을 따라 몰래 성문 밖을 나섰다.

기본적으로 외부출입은 제한이 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을 뒤쫓아 가려면 그도 몰래 성문을 나가야만 했다.

물론 길드 직급을 이용해 긴급 출입허가를 받을 수야 있긴 하지만 왠지 몰래 따라가 봐야 할 것만 같은 냄새가 났다.

결국 그는 월담을 시도했다.

외부로 나오자 골짜기처럼 구불구불한 길과 울창한 나무들이 드러났다.

그리고.

‘어느새 벌써…….’

슈퍼 루키와 자신이 떨어진 거리를 보며 그는 곧바로 속도를 내어 쫓아갔다.

다시 가까워졌을 때쯤, 최대한 발자취를 감추고 미행을 계속했다.

산의 중간까지 내려갔을 즈음.

맨 앞에 행렬을 이어 가던 병사들이 발걸음을 멈추었다.

‘뭐야?’

이미 내려 와서 기다리고 있는 인원들이 있었다.

그런데 그 인원들의 안면이 낯이 익었다.

‘전부 성주를 따르는 충신들이잖아? 저들이 나섰다는 건 단순히 사냥을 나온 건 아니라는 건데.’

무엇보다 또 다른 위기의식이 발동 중이었다.

성주의 충신들이 강하다고는 하나 자신보다 강하지는 못했다.

그렇다는 건.

‘저들 중에 성주가 있다.’

얼굴 없는 성주.

많은 사람들이 그의 모습을 궁금해하지만 류주한은 그의 얼굴을 알고 있었다.

얼마 가지 않아 그를 발견했다.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성주가 나섰다는 건 분명히 심각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 예감은 빌어먹게도 맞아떨어졌다.

“깡그리 다 잡아!”

그들이 노린 것은 도시에 추방된 추방자들이었다.

한데 눈앞에 발견된 추방자들은 약자로 인식된 추방자들과는 사뭇 달랐다.

무기와 갑옷을 제대로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움직임을 갖춰 하나의 군집을 이룬 셈이었다.

본래 추방자들은 각자도생하는 성향이 강해, 뭉치기보다 따로 생존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뭔가 이상해.’

저렇게 군집을 이루려면 그 중심이 반드시 있을 터.

“……!?”

류주한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위기의식 레이더에 둘이 걸려들었다.

하나는 슈퍼 루키. 또 하나는 성주였다.

그래서 당연히 그 둘인 줄 알았는데, 어느 순간부터인가 슈퍼 루키는 시야에 보이지 않고 있었다.

“그럼 내가 느끼는 또 하나는…….”

다른 자의 것이었다.

류주한은 그자를 금방 찾아낼 수 있었다.

쌍검으로 압도하는 힘을 내 보이는 한 남자.

날렵한 몸놀림을 보아, 절대적으로 위층의 인간이었다.

이내 성주와 그가 맞붙었다.

둘은 거의 호각. 누가 이길지 모르는 승부였다.

상황을 정리해 보면 일이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성주의 행동. 추방자들의 동향. 이외에 종합적인 것을 고려했을 때. 이건 도시를 노리는 게 분명하다. 이 사실을 서둘러 보고해야 돼.’

류주한은 도시로 돌아가기 위해 서둘러 몸을 돌렸다.

그러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근데 슈퍼 루키는 언제 사라진 거지? 아무리 괴물 신입이라도 해도 내가 놓쳤을 리가 없는데…….’

딴 데 집중하고 있었던 탓일까?

그는 애써 자신이 놓쳤다는 사실을 부정했다.

* * *

다칼이 슬쩍 뒤로 돌며 말했다.

-따돌렸군. 우릴 계속 뒤쫓던 인간은 일부러 내버려 뒀던 건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싸움은 시작됐고, 그렇다면 만약을 대비한 방비책을 하나 더 두는 게 좋지 않겠어?”

-철두철미하군.

“얻어걸린 거라면 최대한 활용해 줘야지.”

-그도 그렇지만 저자가 톱날검을 지니고 있던데. 봤나?

“봤어. 그게 누구한테 갔나 했더니, 주인 하나는 잘 만났네.”

류주한.

장기간 동안 5층에 머물던 등반자 중에 한 명이었지만 향후 무슨 바람이 불어서인지 다시 층을 오르기 시작한 등반자.

내 머릿속에 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딱히 특출 나서가 아니었다.

그저 생각지도 않게 층을 꾸준히 올랐기 때문이다.

‘그게 몇 층이었더라…… 중층부까지 오른 것은 기억나는데.’

어차피 그건 중요한 게 아니었기에 생각을 하다가 멈추었다.

그보다 벌써 목적지에 다다랐다.

넝쿨로 가득 뒤덮힌 유적지, 풍요의 신전.

땅에 묻혀 제대로 된 모습은 드러나지 않았고, 오직 낡고 부서진 신전의 입구만이 형태를 유지하고 있을 뿐이었다.

“넌 뭐야! 여긴 어떻게 왔어?”

입구를 지키고 있던 사내 둘이 이쪽으로 걸어온다.

“아직 잔당이 남아 있었나.”

추방자들은 신전을 아지트로 삼고 있었고 저들은 그 아지트를 지키는 보초병들이었다.

슈아아악-!

나는 양손에 칼날비 형태의 바람을 일으켜 녀석들에게 날려 보냈다.

“커억!”

“끄윽…….”

[윈드퍼드 레벨이 올랐습니다!]

둘의 제압을 끝내고 곧장 안으로 들어섰다.

어두컴컴한 공간에 램프들이 일정거리마다 놓여 있다.

점점 밑으로 향하는 길.

이윽고 거대한 크기의 공동이 나왔다.

그리고 이곳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 추방자들 스무 명 정도가 보였다.

“침, 침입자다!”

추방자 중 한 명이 날 발견하고 크게 소리친다.

파직! 파지직!

각자 무기를 들고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마나 볼트를 선물했다.

“끄아아악!”

“아아악! 살려!”

구체 하나에 이만한 광역기도 없었다.

공격이 빗겨 가거나 피한 이들은 이후 시전한 다크소드로 모두 제거했다.

뚜벅. 뚜벅. 뚜벅.

공동을 넘어 기나긴 통로를 지난다.

원래는 함정이 난무하는 곳이지만 추방자들이 일일이 제거한 덕에 발동하는 함정이 별로 없었다.

그렇게 신전의 끝, 전시관에 도달했다.

전시관의 벽에 그림들이 한가득 새겨져 있었다.

“크르응?”

-저기, 디오니소스의 얼굴이다.

다칼이 그림을 보고 아는 체를 했다.

“얼굴을 아는 걸 보니 잘 아나 보네.”

-한때 그래도 가까이 지냈던 신좌다.

나는 의외라는 듯 녀석을 쳐다봤다.

“그들이라면 전부 멀리하고 지낸 줄 알았는데.”

-대체적으로는 그게 맞지만, 디오니소스는 날 동급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하등한 존재로는 보지 않더군.

“그 양반이라면 그럴 수 있지.”

잠시 후, 계속 걷던 발걸음을 멈춘다.

그리고 한 그림을 올려다봤다.

[저 너머로 있는 세상에 진기가 가득한 물건이 존재한다.]

점지가 발동 중이었다.

드넓은 논밭에 한 그루의 나무.

그 나무 위에는 옷이 걸려 있었다.

또 한가운데는 네모나게 움푹 파인 홈이 존재했다.

나는 올렸던 고개를 내리며 아공간에서 고대 석판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A, B, C가 뭉쳐 하나가 된 석판을 파인 홈에다가 가져다 댔다.

순간. 딸깍! 소리와 함께 벽에서 작은 진동이 울었다.

이후 석판에서 희미한 빛이 새어 나오더니 석판과 그림이 같이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기 시작한다.

후웅! 후웅! 후웅!

석판에서 나온 빛이 원을 그리며 만들어 낸 소용돌이가 점차 커져 간다.

뒤에 있는 그림이 소용돌이로 인해서 더 이상은 보이지 않게 됐을 때.

나는 그 소용돌이 속으로 몸을 던졌다.

시야가 검어지고 공중에 뜬 느낌이 들었다.

탁!

발이 땅에 닿는 순간 시야도 같이 돌아왔다.

분위기가 변했다.

아니, 분위기만이 아니라 다른 세계에 온 것처럼 환경 또한 바뀌어 있었다.

주변이 어두운 건 여전했지만 공기에서 느껴지는 기류에서 썩은 냄새가 났다.

그리고 질척질척한 땅은 재로 타 버린 것처럼 새카맣다.

그뿐이랴.

사방팔방에 깔린 곡물에서 잿빛가루가 흩날린다.

생명의 씨앗이 꺼져, 죽음처럼 싸늘하다.

이곳은 풍요의 밭…… 이었던 곳.

지금은 밭도 뭐도 아닌 황야에 불과했다.

“끼리리-!”

어디선가 괴이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고개를 돌려, 소리의 주인을 바라봤다.

“끼이이에에-!”

“알아서 등장하셨네.”

이 주변 일대의 생기를 다 빨아먹고 망가뜨려 버린 원흉.

과연 저것을 나무라고 표현해야 할까?

서른 개가 넘는 뾰족한 나무줄기는 팔이자 무기이며, 밑으로 뻗은 두 뿌리는 저놈을 지탱하는 발이 되어 준다.

그리고 기둥 사이에 파여진 두 개의 구멍은 시뻘겋게 빛을 내며 녀석의 두 눈이 되어 주었다.

거기에 질퍽한 검은 진흙을 온몸에 두른 모습은 가히 공포스럽기까지 하다.

하지만 내 시선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녀석이 양어깨에 두른 로브였다.

저것이 바로 풍요의 로브.

비록 지금의 모습은 찢어지고 헐어 있으나 곧 본래 모습을 되찾으면 새 옷처럼 변질할 예정이었다.

“끼리리리-!”

단숨에 날 제거할 생각인 듯 녀석은 서른 개가 넘는 팔을 이용해 공격을 해 왔다.

상당한 거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무줄기가 고무처럼 늘어나 내게 접근해 온다.

콰가가가가각!

나는 연달아 날아드는 공격을 옆으로 달려서 피해 내곤 재빠르게 위를 살폈다.

회귀 전에는 녀석을 단숨에 잡아 로브를 취했었지만 이번에는 그러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전에 내가 사용했던 건 로브의 진짜 모습이 아니었다.

로브의 진짜 모습을 보려면 녀석을 죽이지 말고 정화부터 해야 된다.

죽이는 건 그다음이다.

왜냐하면 녀석이 바로 로브의 일부이기 때문이었다.

‘설마 알았겠어? 저 녀석이 로브의 일부라는 걸.’

나도 상층부에 다다르고 나서야 우연히 알게 됐다.

녀석은 로브의 힘이 타락하며 만들어 낸 하나의 형상체인 데트리머.

아무튼 녀석을 정화하는 방법은 총 두 가지였다.

첫 번째, 등가교환으로 정화한다.

두 번째, 강력한 빛을 이용한다.

우선 첫 번째 방법은 무기한 보류였다.

이유는 정화를 하는데 얼마큼의 대가가 필요한지 가늠이 되질 않는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만은 분명했다.

자칫 마나의 희생을 넘어 신체 일부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두 번째 방법밖에 없는데.’

강력한 빛 또한 등가교환 마법으로도 만들어 낼 수 있지만 대가가 크고 이것도 얼마나 마나를 써야 할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그보다 확실한 빛이 존재했다.

윈드퍼드!

강한 풍압이 담긴 바람이 하늘높이 치솟아 올랐다.

잠시 후, 저 멀리서 펑! 소리가 났다.

그리고 아주 조금이지만, 먹구름에 가려져 있던 태양빛이 드러났다.

나는 그 빛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가능하겠어.’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