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40화
40화 성배를 든 천사 (2)
나는 유희의 말을 듣고서 다시 말을 되물었다.
“뭐? 성배를 든 천사? 확실해?”
“어. 분명히 맞아. 지금도 계속 말을 걸어오고 있어.”
“음…….”
‘성배를 든 천사라면, 시니엘을 말하는 거겠지.’
시니엘.
이걸 잊혔다고 해야 하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해야 하나.
하데스와 비슷한 느낌의 신좌였다.
계약자가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최상의 자리에 위치한 천사.
시니엘에 대해서는 나도 모르는 것이 많았다.
하지만 이것만은 분명했다.
‘시니엘은 어지간해서 등반자에게 계약을 청하지 않아. 그리고 매우 중립적인 태도를 취하는 신좌다.’
어쩌면 유희에게 있어 이건 매우 좋은 기회였다.
나는 가까이 붙어서 말을 이었다.
“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나도 잘은 모르지만 중립을 추구하는 신좌라는 건 알고 있어. 신좌들 중에도 매우 강한 편에 속하고. 무엇보다 신성력을 다루는 너와 잘 맞을 거라는 거야. 근데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니까.”
“오케이. 덕분에 어느 정도 참고가 됐어.”
표정을 보아하니 아무래도 마음의 결정을 굳힌 듯하다.
그래도 난 조금 더 신중히 선택할 수 있도록 뒤로 물러나 주었다.
그리고 혹시 도심에 아직도 살아남아 있는 새들이 있는지 확인을 해 보았다.
시야에 몇 마리가 보이긴 했지만 이제 곧 없어질 조무래기들이었다.
대다수는 죽거나 도망을 쳤다.
그때.
“음?”
보는 시야 위로 메시지들이 가득 채워졌다.
그것은 이전 층에서 미처 정산하지 못했던 결과에 대한 내용들이었다.
[남아 있던 시간이 전부 소멸하였으므로 진행되고 있던 4층의 미션이 강제로 종료됩니다.]
[그동안 조건을 충족하지 못한 등반자들에게는 따로 생존 미션이 부여됩니다.]
“결국엔 시간을 초과한 건가.”
이는 당연한 수순이었다.
자신의 띠를 지키며 남의 것을 빼앗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존재할 테니까.
그리고 실패한 사람들에게는 생존 미션이 부여된다고 했는데.
본무대부터는 미션을 실패해도 살아남기만 하면 같은 미션을 시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튜토리얼 층은 튜토리얼 층만의 실패 미션들이 따로 존재했다.
하나 그것은 사실상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특히나 4층의 생존 미션.
말이 생존이지, 그냥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의 현장일 뿐이다.
오직 살아남은 극소수만이 다음 층을 오를 기회를 얻는다.
하지만 지금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기에, 그냥 무시하고 다음 내용을 확인했다.
[기여도 순위에 들었습니다.]
[기여도 명단에 이명을 공개하겠습니까?]
“됐어.”
[기여도 명단에 이명이 비공개 처리됩니다.]
[기여도 순위가 공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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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비공개 – 60.01%
2위) 빛의 심판자 – 20.12%
3위) 어설픈 재능의 마법사 – 7.0%
4위) 뚝배기 브레이커 – 6.95%
5위) 검에 서리가 맺힌 설녀 –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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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여도에서 1위를 차지하였습니다.]
[기여도순에 따라 기본 보상과 보너스 보상이 지급됩니다.]
1등은 당연히 나의 차지였다.
그리고 아래 순위표를 보니, 공개된 이명은 내가 전부 아는 이명들이었다.
저들이 순위권 안에 들어간 건 그다지 놀라울 일도 아니었다.
그만한 능력을 지닌 사람들이니까.
다만 주안나, 저 여자는 내게 띠를 빼앗겨 놓고도 5위권을 차지했다.
“하여간 독한 여자야.”
이어서 순위에 따른 보상이 손에 주어졌다.
[올랜드 마나 반지가 지급되었습니다.]
[성화의 깃이 지급되었습니다.]
하드 난이도 마지막 튜토리얼 층의 수석 졸업템이라 불리는 올랜드 마나 반지와 향후에 다가오는 층에서 큰 도움이 되어 줄 성화의 깃.
나는 특히 올랜드 마나 반지에 관심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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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랜드 마나 반지
효과: 마나 회복력 증가, 마나x1.2
조건부 효과: 일정 기준치를 넘는 마나를 소모하게 되면 반지에 박힌 올랜드 보석에서 빛이 나기 시작하며, 자연스레 그 빛이 소모되는 동안 마법의 시전 시간을 줄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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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 효과는 나무랄 데가 없었다.
특히 조건부이긴 하나, 일정 시간 동안 마법 시전 시간을 줄여 주는 건 앞으로 전투가 있을 때 큰 영향을 끼칠 것이다.
나는 곧장 그것을 손에 착용했다.
우웅!
끼자마자 마나가 대폭 증강되는 게 느껴졌다.
“후~”
난 그 증강되는 마나를 금방 추스른 후 상태창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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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 회귀한 자
칭호: 좀비 학살자 외 3개
능력치
근력:67(+250)
민첩:65(+445)
체력:86(+250)
정신력:135(+250)
마나:134(+411)
스킬
점지(Lv1) 마나볼트(Lv8) 마법컨트롤(Lv16) 다크스윔(Lv3) 다크웹(Lv3)
어스월(Lv3) 행운의룰렛(Lv1) 다크소드(Lv2) 다크소울(Lv1) 원드퍼드(Lv1) 등가교환(Lv-) 마나방출(Lv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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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개인적으로 그동안 민첩이 마나보다 월등히 높아서 신경이 쓰였었는데.
이젠 비등한 수준까지 끌어올려 어느 정도는 만족스러움을 느꼈다.
이내 나는 눈앞에 있던 상태창을 없애고, 아직 손에 들려 있는 성화의 깃을 쳐다봤다.
분명 깃털에 파란 불꽃이 타오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맨손으로 만져도 아무렇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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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속) 성화의 깃
내용: 영원의 불꽃을 두르고 있다.
효과: 하루 동안 추위를 느끼지 않으며 빙결에 대한 내성이 생긴다.
사용 가능 횟수: 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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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난이도 때는 이것을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가 없어, 끝내 내가 원하는 지역에 다다르지 못했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얻어 냈으니 결과가 다를 것이다.
나는 성화의 깃을 아공간에 집어넣은 뒤 다시 유희가 있는 곳을 쳐다봤다.
유희도 마찬가지로 이전 층에 대한 보상을 받는 중이었다.
그러나 유희는 보상템을 제대로 확인도 안 해 보고 그것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그러더니 하늘을 올려다본다.
잠시 후.
사하아아ㅡ!
하늘에서는 신성한 빛이 쏟아져 내렸다.
눈이 부셔 앞을 제대로 내다볼 수는 없었으나, 지금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다.
‘계약을 했군.’
빛이 점차 사그라들며 보이지 않던 시야도 회복되어 간다.
어느덧, 끈 하나를 손에 쥐고 있는 유희의 모습이 보였다.
그녀는 큰 변화를 겪은 듯, 외형적으로 많은 것이 변해 있었다.
순백색의 머릿결.
황금색이 깃든 두 눈동자.
내겐 거부감이 느껴지는 강대한 신성력까지.
이전에는 그냥 평범한 얼굴이었다면 지금은 누구나 아름답다고 느낄 만한 외모였다.
유희는 곧 손에 들린 끈을 이용해서 뒷머리를 묶었다.
그러고는 내게 다가와 입을 열었다.
“나 계약했어.”
뭔가 홀가분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래 보이네.”
“근데 왜 그런 얼굴로 봐?”
“내 표정이 어때서?”
“아니. 굉장히 낯설어하는 표정인데?”
“음. 솔직히 낯설긴 해.”
퍽!
유희가 내 등짝에 스매시를 날려 온다.
말보다 주먹부터 나오는 걸 보니 일단 내 친구가 맞았다.
“낯설기는 개뿔. 계약했다고 뭐가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
“모르나 보네.”
“뭘?”
“직접 거울을 봐. 내가 대체 무슨 얘기를 하는 건지 바로 알 거다.”
“거울? 거울은 왜?”
이내 건물 창가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한 유희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이게 뭐야!? 내 머리 왜 이래? 눈은 또 왜 이렇고!?”
나는 유희에게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계약으로 인한 영향이야.”
“뭐? 그럼 못 되돌려?”
“당연히 못 되돌리지.”
퍽!
“이 멍청아! 외형이 바뀔 수도 있다고 진작에 말했어야지!”
“그게 화낼 일이야? 잘 봐봐. 보면 이전의 너보다 예쁘게 생겼구만. 뭐가 불만이야.”
“난 원래 내 모습이 좋다고!”
설마 외형이 바뀐 걸 가지고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다.
난 내 감정을 숨긴 채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
“야, 갑자기 뒤로 왜 도망치냐?”
“응? 내가 언제?”
“지금!”
유희가 이렇게까지 히스테리를 부리는 건 굉장히 드문 일.
정말로 자기 모습이 바뀐 게 마음에 들지 않는 듯 보였다.
이젠 아예 신좌에게까지 따지고 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아하니 저쪽에서는 묵묵부답인 듯하다.
‘딱히 할 말이 없겠지. 바꿔 달라고 바꿀 수 있는 게 아니니까.’
“하~ 준석아. 진짜, 정말로 이대로 살아야 되는 거야?”
“한 번 바뀌었으면 어쩔 수 없어. 거기서 염색을 해도 소용없을 거야. 신좌의 힘이 너한테 영향을 끼친 거라서. 그냥 좋게 생각해. 얼굴이 아예 바뀐 것도 아니고, 그냥 머리 색만 바뀐 거잖아. 눈도 색깔 렌즈를 꼈다고 생각하고.”
가만히 지켜보던 다칼도 한마디 거들었다.
-내가 봐도 지금의 모습이 훨씬 더 낫다.
“야, 김유희.”
“어?”
“얘도 지금의 네 모습이 낫단다.”
심란해하던 그녀의 표정에서 살짝은 긍정적인 미소가 피어났다.
“정말로? 너 소환수가 그리 말해?”
“어.”
유희가 다시금 창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본다.
“그래…… 바꿀 수 없는 거 좋게 생각하자…… 맞아. 완전히 얼굴이 바뀐 건 아니잖아.”
다행히도 현재의 모습을 받아들이기로 한 모양이다.
하긴, 애당초 이전의 모습을 되돌리려면 계약을 파기해야 하는데.
그것은 딱히 좋은 판단은 아니었다.
‘시니엘만 한 신좌를 찾기 어렵지.’
“근데, 준석아.”
“어?”
“여기서 뜬금없는 얘기긴 한데. 아까 전에 킹스니어는 어떻게 알려 준 거야? 그냥 일반 스니어들이랑 아예 구별이 안 되던데.”
“아. 그건, 그런 걸 구현할 수 있는 마법을 얻었거든.”
나는 유희에게 등가교환 마법에 대해서 대략적으로 설명했다.
그러자 두 눈을 크게 뜨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까, 너 말은 마나만 충분하면 무엇이든 구현할 수 있다는 거잖아?”
“그렇지.”
“와~ 그거 진짜 사기 스킬이네.”
“그래도 자칫 잘못 사용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
“그거야 네가 알아서 잘 조절하겠지. 세상에 그런 스킬이 어디 있어. 뭐. 내가 알고 있는 건 없지만, 그래도 엄청 희귀한 스킬이라는 건 알겠다.”
솔직하게 내가 봐도 등가교환은 규격 외의 스킬이긴 했다.
“그보다 이젠 어떻게 할 거야?”
유희의 질문에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뭐가?”
“하늘을 보니까, 조금만 있으면 해도 뜰 것 같은데. 사실 우리가 잠을 그리 오래 잔 건 아니잖아. 다시 들어가서 잘 거야?”
나는 마지막에 빠져나오기 직전에 방 상황을 기억해 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난 들어가도 어차피 못 자. 방이 엉망이 됐거든.”
“그럼 다른 방으로 바꿔 달라고 하면 되잖아.”
“그것도 그렇긴 한데. 딱히 피곤하지도 않고, 그냥 개인적으로 볼일을 좀 보고 오려고.”
“그래? 하아암~ 난 지금 눈이 감겨 죽을 것 같아. 부족한 잠에 힘을 써서 그런가. 갑자기 미친 듯이 잠이 몰려오네.”
“계약한 영향도 있을 거야. 갑작스런 변화로 몸이 피로를 느낄 수도 있거든.”
“그럴 수도 있겠네.”
“먼저 들어가서 쉬어. 가서 마음도 추스르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는 유희의 등을 떠밀었다.
이후.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것까지 확인한 후에야 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유희가 저 정도 반응을 보인 것을 보면 얼굴 변화에 대한 충격이 꽤 클 텐데.
이 정도면 매우 잘 넘어간 편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게 무사히 고비를 넘긴 나는 호텔을 빠져나왔다.
머리 위에 나앉은 다칼이 내게 물어 온다.
-그런데 어디를 갈 예정이지?
“이르긴 한데, 무기랑 갑옷 맞추러.”
-옷이라면 이미 사서 입고 있지 않은가?
“이건 아무런 성능도 없는 옷이고. 전투할 때 입을 옷이 따로 있어야지.”
갑옷은 그렇다고 쳐도 무기는 지금 여기서 맞추지 않으면 당분간은 맞추기가 어려웠다.
물론 조잡한 무기는 이곳이 아니더라도 얻어 사용할 수 있겠지만, 쓸 만한 것을 사용하려면 꼭 해당 층에서 해결을 봐야만 했다.
곧장 내가 향한 곳은 언덕이 있는 산책길.
이 도시는 아무래도 산중에 만들어졌다 보니, 언덕이 높이 치솟아 있는 구간들이 여러 곳 존재했다.
난 그 구간들 중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구간을 지났다.
얼마나 지났을까?
나는 도시의 풍경이 전부 내려다보이는 전망대에 이르렀다.
마침 저 멀리엔 해가 떠오르는 중이다.
밝은 빛을 바라보던 것도 잠시.
나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에도리카스에는 공중에 떠 있는 바위들이 사방에 깔려 있다.
난 그 바위들 중 한 곳을 주시했다.
이곳에서 가장 가까이 닿는 곳이었다.
다크스윔.
스르륵!
어둠이 되어 그 바위 위에 도달한 나는 곧바로 다음으로 가까운 바위를 올려다봤다.
스르륵!
스르륵!
……
……
그렇게 차례대로 바위 하나씩을 오르다 보니 어느새 도시와 가장 멀리 떨어지고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바위 위에 도달했다.
보통은 이런 높은 곳에 아무것도 없어야 정상이건만.
앞을 내다본 내 눈에는 집 한 채가 담겼다.
200평쯤 되는 드넓은 저택.
하지만 살림살이를 차린 집이라기보다는 그곳은 대장간에 가까웠다.
깡! 깡!
더욱이 안에서는 한창 작업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저택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몇 걸음 발을 내디디니.
“꾸아!”
뒷간에서는 웬 두꺼비 한 마리가 잽싸게 튀어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