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37화
37화 5층 (2)
나는 빈자리에 가서 착석했다.
그리고 우두커니 쭉 둘러보았다.
낚시터에 온 등반자들은 모두 느긋한 자세로 호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다들 물고기가 미끼를 물기만을, 목이 빠지게 기다리는 중이다.
잠시 후 낚시터를 관리하는 직원이 다가와 말을 걸었다.
“손님. 여긴 최고급실에서만 묵는 손님들만 사용이 가능합니다. 혹시 열쇠키 확인 가능하실까요?”
나는 가지고 있는 열쇠를 보여 주었다.
그러자 직원이 정중히 사과하듯 고개를 숙였다.
“낚싯대는 무엇으로 드릴까요? 저길 보시면 종류는 다양하게 있습니다.”
“저쪽에 있는, 마나 감응도가 높은 낚싯대로 하나 주십시오.”
“어…… 그게 손님. 손님이 찾으시는 낚싯대는 있긴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추천 드리지 않습니다. 물고기들이 마나가 실린 낚싯대 줄에는 잘 잡히지 않거든요.”
직원의 말은 사실이었다.
하지만 내가 잡으려는 것은 직원이 말한 물고기가 아니기에 난 괜찮다고 말하곤 가져다 달라고 말했다.
“손님, 여기 있습니다.”
낚싯대를 건네받은 나는 스냅을 한번 줘 보았다.
휙!
가볍고 탄력이 있다.
그렇다고 내구성이 약하지도 않은 것이 딱 사용하기 좋아 보인다.
나는 가장 먼저 감응도 테스트를 해 보았다.
우웅ㅡ
체내에 있는 마나를 외부에 실어 낚싯대에 퍼트렸다.
낚싯대의 색깔이 파랗게 변했다.
감응력이 높을수록 짙은 남색을 드러낸다.
‘이 정도면 쓸 만하군.’
마살치를 잡는 데는 전혀 하자 없으리라.
본래는 물고기를 잡으려면 미끼를 준비해야 하지만 마살치는 그런 것이 필요 없었다.
녀석에겐 마나가 곧 먹잇감이었다.
난 낚싯대의 추는 최대한 무겁게 달았다.
그래야 수면 아래 있는 가장 깊숙한 곳까지 내려갈 테니까.
준비는 이걸로 끝.
휘익!
줄을 던지고 풀었다.
지잉, 지잉, 지잉.
줄 끝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동안 나는 낚싯대에 마나를 실어 넣었다.
줄 길이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거리가 멀어져 정교한 컨트롤이 요구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나는 탑에서 밥 먹듯이 했던 게 마나를 운용하는 일이라 그다지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보다 얻을 수 있는 스킬이 하나 있었지.’
마나 총량이 늘어난 지금이라면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우우웅ㅡ
낚싯대에 파란빛이 바랬다.
필요 이상으로 마나를 방출했기 때문.
[상당한 마나를 방출합니다.]
[일정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마나방출(Lv5)을 배웠습니다.]
간단하게 새로운 스킬을 획득한 나는 시선을 다른 데 돌렸다.
지익!
줄이 더 이상 늘어나지 않고 있었다.
이미 줄 끝까지 마나도 실어 넣었으니, 이제 마살치가 미끼를 물길 기다리면 됐다.
“응?”
최소한 잡는데 몇십 분은 걸릴 줄 알았다.
그런데 갑자기 찌가 움직였다.
“벌써?”
나는 물고기가 도망치기 전에 줄을 끌어당겼다.
‘이 녀석, 질긴데?’
처음엔 반신반의했는데 당기는 힘을 보고 확신했다.
‘녀석이 틀림없어.’
다른 물고기였으면 이렇게 버티는 힘도 없었을 터.
점점 끌어 올려지기 시작한다.
“흐아압!”
마지막으로 있는 힘을 다해 당겼다.
그 순간.
촤아악!
물살을 튀며 물고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워어~.”
예상대로 마살치가 맞았다.
그런데 그 크기와 아름다움이 예전의 것과는 매우 달랐다.
덩치가 그다지 크지 않은 편인데 거의 100센치에 이르렀다.
비늘은 더욱 파랗게 빛난다.
“야야! 저거 봐!”
“아주 월척인데!?”
조용하던 낚시터 현장에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마살치를 두 손으로 잡아채곤 자세히 크기를 확인했다.
파닥! 파닥파닥!
‘이 정도면 110센치도 되겠어. 최소 몇백 년 된 마살치다.’
마살치 성장이 느린 것을 감안하면 발견하기 어려운 대어였다.
설마 이런 대어가 낚일 줄이야.
절로 흐뭇함이 들었다.
하지만 좋았던 기분도 금세 팍 식어 버렸다.
“야! 너! 뭐야!?”
옆에서 낚시를 하던 중년의 남자가 갑자기 성을 낸 것이다.
“내 월척을 그쪽이 가져갔잖아! 내가 여기서 얼마나 죽치고 있었는지 알아!? 어!? 그런데 이렇게 채간다고? 하ㅡ!”
나는 남자의 낚싯대를 쳐다봤다.
마나 감응도가 없는 평범한 낚싯대였다.
저런 걸로 마살치를 잡겠다니.
허세도 유분수지.
“하아~ 별 미친놈 다 보겠네.”
“뭐? 이 새꺄!? 미친놈? 보자 보자 하니까.”
“보자기로 보이냐고? 어. 그래 보이네.”
이런 놈은 진지하게 상대해 줄 가치조차 없다.
“이런 시발…… 이봐. 내가 지금 장난하는 걸로 보여? 그 포수치 내 거라고! 내 거!”
“방금 포수치라고 했어? 이게 포수치라고?”
“여기서 잡히는 물고기가 그거 하나밖에 더 있나!”
마살치를 포수치랑 비교하다니.
하지만 마살치의 실물을 모르는 건 다른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외형적으로 완전히 다르게 생긴 물고기라는 것은 누가 봐도 구별이 가능했다.
“됐고. 그쪽 때문에 내 자리 운을 썼으니, 자릿세랑 내 운 값까지 쳐서 그 녀석 나눠.”
“크르르…….”
-저 개소리를 언제까지 들어 주고 있어야 하는가?
분노한 다칼이 당장이라도 물 기세로 이빨을 드러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이 봤을 땐 그저 귀여운 늑대 새끼 한 마리가 귀여운 이빨을 드러낸 것일 뿐이었다.
하지만 나도 슬슬 이 개소리를 듣고 있기 거북했던 찰나.
난 딱 잘라서 얘기했다.
“이건 포수치가 아니고 마살치다. 다들 직접 보진 못했지만 이름은 들어 알고 있겠지.”
“뭐, 뭐? 마살치? 그 물고기가 이 호수에 있다고?”
“마살치는 마나를 먹잇감으로 사는 물고기잖아. 그런데 이 호수에 그런 게 있었어?”
“잠깐만 그럼…….”
다들 마살치는 마나 감응도가 있는 낚싯대가 아니면 잡지 못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제야 그들은 내 낚싯대와 저 남자의 낚싯대를 번갈아 봤다.
그들도 이제 알아챈 것이다.
“솔직히 먼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분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인정은 하지만. 마살치라면 말이 다르지. 애초에 저걸론 못 잡잖아? 완전 순 억지네. 억지야.”
“그래, 그래. 아무리 월척을 가지고 싶어도 그렇지. 저건 도둑놈 심보지.”
주변에 들려오는 비난에 남자의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이익! 너 이 새끼……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인지 모르지만 사람 잘못 건드렸어.”
그는 품에 소지하고 있는 무기를 꺼내 내게 달려들었다.
나는 무기를 꺼내 들 필요도 없었다.
“하암~.”
그냥 오자마자 발로 차버렸다.
퍽!
“어, 어어!?”
풍덩!
그대로 호숫물에 빠진 그가 물속에서 허우적댔다.
“어푸! 어읍! 살려 줘!”
낚시꾼이 수영도 할 줄 모른다니.
나는 혀를 끌끌 차며 그를 무시하고 다시 자리에 앉았다.
뒤늦게 낚시터 직원이 나서서 남자를 구했다.
그동안 나는 마저 마살치를 잡기 위해 낚싯줄을 던졌다.
지잉. 지잉. 지잉.
사람들한테 마살치가 있단 사실을 알리긴 했으나 그들은 어차피 잡지 못할 것이다.
마나 컨트롤의 정교함이 있어야 잡는 것이 가능한 것도 있지만, 앞으로 내가 여기 남아 있는 마살치들을 전부 잡아들일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 호숫가에 사는 마살치는 총 세 마리.
회귀 전에 직접 그 밑에 내려가서 확인한 결과였다.
물론 그땐 이런 대어를 보진 못했지만 그만큼 숫자가 많지 않았다.
툭!
금세 찌에서 반응이 왔다.
나는 속으로 월척을 외쳤다.
그리고 방금 전에 일어난 해프닝 따윈 완전히 잊어버린 채 낚싯대를 끌어 올렸다.
* * *
“하~ 결국 남은 한 마리는 못 잡았네.”
그 이후, 나는 마살치 두 마리를 더 잡아들였다.
그리고 나머지 한 마리는 한 시간 넘게 기다렸는데도 불구하고 잡히질 않았다.
결국 배도 고프고, 녀석을 잡는 건 포기했다.
“크하앙!”
-먹을 거다! 먹을 거.
다칼의 반응에 나도 같이 고개가 돌아갔다.
잡아들인 마살치 중 대어 한 마리를 호텔의 요리사에게 맡겼더니 아주 근사한 음식으로 재탄생해 돌아왔다.
“손님, 부탁하신 음식 나왔습니다.”
이내 식탁 앞에 놓인 여러 종류의 음식들이 눈에 띄었다.
마살치회. 마살치회덮밥. 마살치구이. 마살치매운탕 등등 각종 입맛을 돋우는 것들만 진수성찬으로 차려졌다.
“킁킁!”
냄새를 맡아보는 다칼.
“카하압!”
다칼은 구이부터 손에 쥐고 먹기 시작했다.
나는 가장 먼저 마살치회를 선택했다.
초장을 찍어 먹은 회 맛은 확실하게 일품이었다.
씹히는 식감만으로도 신선하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몇 번 회를 더 집어 먹으니 체내에도 변화가 생겼다.
[마나 순환력이 강화되었습니다!]
[소량의 마나가 올랐습니다!]
“음?”
마나 순환력이 좋아지는 건 예상했던 일이지만 마나도 같이 오르다니.
회귀 전에는 마살치를 먹어도 마나가 오른 적은 없었다.
비록 소량이라고는 하나, 뜻밖의 수확은 본 셈이었다.
“확실히 대어라 그런가. 달라도 뭔가 달라.”
“카하압! 카합!”
그 와중에 다칼은 음식을 미친 듯이 흡입한다.
팍!
나는 녀석의 등짝 한 대를 때렸다.
“카하앙!”
-먹을 땐 미개한 마물도 안 건드린다는데! 왜 때리는 것인가!?
“내가 먹을 건 남겨야지. 혼자 다 처먹어? 그리고 편식하지 말고 다른 것도 좀 먹어. 하나만 먹으니까 내가 먹을 게 없어지잖아.”
“크하아앙!”
-다른 건 냄새가 별로다.
“이거 완전 편식 덩어리네.”
“카하읍!”
“좀 내놔.”
나는 녀석이 다 먹기 전에 구이 일부를 미리 떼어 왔다.
그리고 다시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
…….
…….
배가 어느 정도 채워질 즈음.
“이준석!”
저편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응?”
뒤로 돌아보니 유희였다.
심부름꾼으로 보냈던 마리도 그녀와 같이 있었다.
한데 유희의 뒤를 쫓아다니던 박자린은 보이지 않았다.
‘잠시 어디 간 건가?’
그 사이 유희가 손을 흔들며 다가와 반대편에 있는 빈자리에 와서 착석한다.
그리고 유희와 같이 다가온 마리는 화사하게 웃으며 입을 뗐다.
“또 시키실 일은 없을까요?”
“으음. 시킬 일이 생기면 따로 부를 테니 그동안은 쉬고 있어.”
“예. 알겠습니다.”
그녀가 물러가자 유희가 내게 얼굴을 들이민다.
“야. 너 누구한테 시키는 게 은근 익숙하다?”
“그 표정은 뭐냐? 그보다 머리 좀 치워. 밥 먹는다.”
“아. 하긴. 넌 회…….”
나는 숟가락을 들다 말고 유희의 입을 틀어막았다.
“쉿. 여기서부터는 그거 언급하지 마. 내가 말했지? 신좌들이 우릴 지켜본다고.”
유희가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혹시 너 이곳에 올라오고 나서 컨택해 온 신좌가 있어?”
끄덕.
“아직 계약은 안 맺었지.”
끄덕.
“말했듯이 계약은 신중히 맺어. 그리고 신좌들은 자기 영역과 가까운 곳이 아니면 우리들이 하는 말을 듣지 못해. 하지만 볼 수는 있지. 그 점은 명확히 알고 있어.”
끄덕끄덕.
신좌들은 튜토리얼에 관심이 많지 않다.
거의 대다수가 죽어 나가기 때문도 있지만 해당 층에서는 자신들의 계약자로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선인 이곳에서부터는 등반자를 주시하는 신좌들이 많이 있었다.
“이제 입에서 손을 뗄 거야.”
“후아~.”
내게서 멀어진 유희가 말했다.
“갑자기 네 얘기 들으니까, 뭔가 오를수록 점점 조심해야 할 일이나 고민할 일이 많아지는 것 같아.”
“그래도 그 불구덩이같이 뜨거운 지하에서 살아가는 것보단 이게 낫지 않아?”
“음. 그렇긴 해. 근데…… 이거 먹어도 되는 거야?”
유희는 배가 고팠는지 자꾸만 음식을 쳐다보고 있었다.
“먹어.”
말이 떨어지자마자 유희는 아무거나 손으로 집었다.
“와. 대박 맛있어!”
“그런데 같이 다니던 그 여자는?”
“아, 자린이? 여기선 따로 다니기로 했어.”
“잘했네.”
“아읍! 그보다 뉴그라운드인가 하는 곳에서 인포메 길드? 거기서 나보고 들어오라고 하대? 아읍!”
“인포메?”
“응.”
이름이라면 들어 본 적 있다.
‘정보 길드였던가…… 그래도 5층에서는 나름 꽤 큰 길드인 걸로 아는데.’
그다지 나쁜 소문이 도는 길드는 아니었다.
하지만 길드에 속하면 제한되는 것이 많기에 장기적으로 보면 좋은 점보다는 나쁜 점이 더 많이 있었다.
뭐 어중간한 실력에 자기만의 비전을 가지지 않은 사람이라면 모를까.
“그래서 들어간다고 했어?”
“아니~ 내가 왜. 너도 없는데. 그냥 역시 탑도 사람 사는 곳인가 해서. 그리고 단체를 형성하면 탑을 오르기 수월해지는 것도 맞고. 그래서 말인데.”
유희는 음식을 먹다가 멈추고 말을 이었다.
“내가 길드를 만드는 건 어떻게 생각해?”
“네가?”
생각지 못한 발언이었다.
그러나 유희가 길드를 만든다면 앞으로 어떤 전개가 펼쳐질지 생각해 보았다.
‘긍정적인 힘을 가진 게 유희 장점이지만 그보다 더 큰 장점은 사람들과 융화가 잘된다는 거야.’
그 점은 나보다 뛰어났다.
그리고 은근 유희를 따르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생각해 보면 오히려 좋은 방안이 될지도 몰라. 나 대신에 유희가 탑 정상을 클리어하는데 도움을 줄 동료들을 모아준다면…….’
그런다면 내가 동료를 만드는데 굳이 힘을 쓰지 않아도 된다.
그런 결론에 이르니, 머릿속의 생각이 금방 정리가 됐다.
“난 좋다고 봐.”
“정말?”
“어. 탑을 클리어하려면 동료가 필요해. 그리고 길드를 만들면 조직력을 만들 수 있지. 네가 진심으로 원한다면 난 괜찮다고 생각해.”
“그럼 내가 길드를 만들면 너도 들어올 거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어, 왜!? 난 당연히 들어올 줄 알았는데. 너도 내가 만들면 좋다며.”
“좋아. 좋지. 근데 내가 들어가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야.”
“이유가 뭔데?”
“간단해. 괜히 친구인 내가 들어가면 내가 원치 않아도 그 안에서 파벌이 생길 거야. 그 점만 봐도 내가 안 들어가는 게 맞지.”
“안 그럴 수도 있잖아.”
“그럴지도 모르지.”
유희가 말한 대로 파벌이 안 생길 수도 있었다.
하지만.
“김유희.”
“어?”
“난 그 혹시나 하는 가능성도 만들고 싶지 않아. 그리고. 난 혼자가 편해. 너도 그건 알잖아.”
“음.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어쩔 수 없지.”
“그래도 걱정 마. 네가 만들면 서포트는 해 줄 테니까.”
“그래. 사실 그것만 해도 충분해.”
대화가 끝난 뒤 나는 앉아서 유희가 다 먹길 기다렸다.
얼마나 지났을까?
“후아~ 배불러.”
유희는 남아 있던 음식들을 싹 다 먹어 치우곤 내게 물어 왔다.
“근데 돈 좀 꽤 썼나 봐? 먹으니까 능력치가 올라가던데?”
“아. 그건 돈을 써서 그런 게 아니고, 저 낚시터에서 내가 잡은 물고기를 음식으로 내놓은 거라서 그런 거야.”
“아~ 돈 써서 그런 게 아니구나.”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친구를 보다 나는 식당에 있는 벽시계를 쳐다봤다.
식당에서 꽤 오랜 시간을 소모해 버렸다.
“다 먹었으면 슬슬 일어날까?”
“응.”
나는 유희와 함께 지하층을 벗어나 위층 로비로 올라갔다.
그리고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말했다.
“그만 올라가서 쉬어.”
“벌써?”
“어. 지금 자고, 한 새벽 4시쯤 일어나.”
“왜. 그때 뭐 있어?”
“5층 미션은 확인했지?”
“응. 확인했어.”
“그때, 미션에 그놈들이 올 거야.”
“아~ 그래서…… 오케이! 안 그래도 온종일 몸을 굴렸더니 피곤하긴 했어. 근데 넌?”
“아, 나는 잠깐 카운터에 볼일이 있어.”
“그럼. 나 먼저 올라간다?”
“그렇게 해.”
마지막으로 유희는 내게 몇 층 몇 호인지 물어봤다.
“1005호. 무슨 일 있으면 찾아와.”
“난 1009호니까. 바로 옆이네.”
나는 유희가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걸 확인하고 카운터로 이동해 마리를 불러 달라 말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가 헐레벌떡 달려 나왔다.
“허억. 헉. 어떤 일을 도와드릴까요?”
“경매에 물품을 등록하고 싶은데, 예약 좀 해 줘.”
“경매요?”
“그래. 내가 알기로 이 호텔과 제휴를 맺은 경매장이 있는 걸로 아는데.”
“아, 네! 있어요.”
“그럼 부탁하지.”
나는 이번에도 심부름값을 손에 쥐어 줬다.
그러자 마리가 밝게 웃었다.
“맡는 본분을 다할게요!”
그리 말을 하곤 날다람쥐처럼 눈앞에서 사라졌다.
나는 그 모습에 피식 웃음을 흘리곤, 이젠 정말 휴식을 취하기 위해 방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곧바로 취침에 들었다.
* * *
삐비빅. 삐비빅. 삐비빅.
반복되는 알람음에 잠에서 깬 준석은 몽롱한 얼굴로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순간, 지구에서 살던 집이 떠올랐다.
집은 사라진 지 오래일진대.
그는 비릿한 미소를 머금곤 곧 창가 쪽으로 이동했다.
어둑한 달빛 아래, 밝은 불빛이 비친 도심지가 보인다.
길거리는 한적함을 나돌았다.
거기에 약한 안개가 껴서인지, 차갑고 싸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모두가 잠이 든 새벽.
찰칵.
준석은 ‘경고! 열면 위험할 수 있음!’이라고 쓰여 있는 창문을 거침없이 열어젖혔다.
후우우웅ㅡ!
방 안으로 찬 바람이 세차게 파고들었다.
이어서 그는 다시 하늘을 올려다봤다.
곧 저 멀리…… 날개를 펼친 그림자가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낸다.
그것은 까마귀.
하지만 지구의 까마귀와는 약간 달랐다.
덩치는 두 배쯤 크고, 빨간 두 눈동자와 썩어 있는 피부는 흉악했으며, 펼친 날개는 강철 깃털처럼 날이 서 있었다.
“까악까악!”
“깍! 까악!”
합창을 하듯 소리를 지르기 시작한 스니어 떼 수천 마리가 어느덧 도심지 위를 활공했다.
광경을 지켜보던 준석은 5층의 미션을 상기하듯 시야에 미션창을 띄워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