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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34화 (34/230)

회귀한 탑 등반자 34화

34화 문지기 (1)

“준석아, 너 그 회색 띠…… 괜찮겠어?”

같은 메시지를 본 유희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당장에 다른 놈들이 전부 다 달려든다고 해도 괜찮아. 오히려 내 입장에선 찾으러 다니는 수고를 덜어 낸 셈이니 이득이지.”

“넌 마법이 특기잖아. 지금은 스킬 사용도 못할 텐데. 생각보다 많이 몰려들면 내가 어느 정도는 커버 쳐 줄 수 있어.”

지켜본 바에 의하면 유희는 분명히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저 뒤에 서 있는 박자린이 변수였다.

‘저 여자가 따라붙으면 유희의 발목도 같이 묶여 버릴 수 있어. 물론 유희가 그러지 않는다고 했지만 혹시 모르지.’

유희가 남에게 쉽게 정을 주는 편은 아니나 그렇다고 해서 자신보다 냉정함을 지닌 것도 아니었다.

‘최대한 변수는 없애고 가는 게 좋겠지.’

준석은 박자린을 힐끔 쳐다보며 얘기했다.

“난 따로 움직일 게. 너는 네가 계획했던 대로 움직여.”

“음…… 자린이 때문이야?”

눈치 빠른 유희가 자신의 속내를 금방 알아챘다.

그 말에 딱히 부정하지 않자, 유희는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 네 뜻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김유희.”

“응?”

“띠는 최대한 일곱 개를 다 모아. 그리고 기억해. 같은 색깔의 띠는 중복으로 가질 수 없어. 다만 더 높은 숫자를 지닌 띠로는 교체가 가능해.”

“그럼 최대한 높은 숫자들을 가진 띠들로 일곱 개를 모으면 상당수의 포인트를 얻을 수 있겠네?”

“그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띠를 쳐다본 유희가 말을 잇는다.

“네 말 대로 투자하길 잘했어.”

“얼마나 투자했는데?”

“8만.”

그가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치였다.

“그동안 많이 모았네.”

“네가 가진 거에 비하면 얼마 안 되는 거지. 29만? 거의 30만 가까이 되네. 완전 괴물이네. 괴물.”

준석은 대화를 이어 나가려다 말고 한쪽 손을 들었다.

“쉿.”

느껴지는 기척이 여러 개다.

‘다른 등반자들인가.’

저들 중에 전부는 아니지만 아마 회색 띠를 가진 자를 찾아 나선 놈들도 있을 것이다.

유희도 기척을 느낀 것인지 주변을 경계한다.

“이만 떨어지자. 내가 시선을 끌 테니 그동안 저 여자 데리고 빠져나가. 보니까 잠시라도 몸을 좀 추슬러야 할 것 같은데.”

준석은 몸에 상처가 난 부분들을 가리켰다.

“이 정도는 괜찮아.”

그러며 먼저 등반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뛰쳐나간다.

“하여간.”

그도 이어서 등반자들이 있는 곳을 향한다.

인근에 이르렀을 때 준석은 멈춰 서서 느긋이 입을 뗐다.

“회색 띠 찾으러 온 사람?”

그 한마디에 단숨에 시선이 집중됐다.

“회색 띠다!”

“저 녀석 잡아!”

준석은 지금 당장이라도 그들을 제압에 나설 수도 있었지만 그러면 소란을 일으켜 줄 대상이 사라져 버리기에 그러지 않았다.

일부러 그들이 쫓아 올 수 있도록 속도조절을 하며 도망을 쳤다.

그런 줄다리기하기를 반복.

점점 사람이 모여들며 소란이 커져 갔고 어느덧 그를 쫓는 등반자들이 수십 명 이상에 이르렀다.

‘이쯤하면 됐겠지.’

달리던 그는 나무들이 우거진 숲을 벗어나 수풀이 없는 땅 위에 멈춰 섰다.

멈춰 서기 무섭게 그를 둘러싸는 등반자들.

빠져나가지 못하게 할 속셈인지 둥그렇게 원을 그리고 섰다.

한데 그들 중 몇 명이 준석을 알아보고 동요했다.

“저 사람, 그 사람 아니야? 이전 층에서 30대1로 맞짱 떠서 이긴.”

“맞네. 나 현장에서 봤어. 아주 압도적으로 찍어 누르던데.”

“그런데 상대가 가능하겠어? 괜히 덤볐다가 뼈 하나 나가는 거 아니야?”

“그래도 스킬 사용이 불가능하니 해볼 만할지도…….”

싸울지 말지 망설이던 이들도 결국 무기를 들었다.

모두 그가 스킬만 사용하지 않으면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크나큰 착각이라는 것을 알게 되는 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 *

[빨간색 띠를 얻었습니다.]

[일곱 개의 띠를 전부 모으는데 성공합니다!]

[특별보상이 지급됩니다.]

[10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일곱 개의 띠를 누구보다 빨리 모았다는 생각에 흡족한 표정을 짓던 안수찬은 잠시 후에 뜬 돌발미션에 시선을 돌렸다.

“가장 많은 띠를 가진 사람이 회색 띠를 가진다고? 그럼 당연히 나잖아.”

그의 경쟁자이던 이준석은 포탈을 타지 않았으니 당연히 자신에게 회색 띠가 주어질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자신에게 회색 띠가 주어지지 않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았다.

‘나보다 많은 띠를 가진 사람이 있다고? 어떻게?’

설사 자신보다 띠를 빨리 모았다고 해도 최대 개수는 일곱 개이다.

같은 색깔의 띠는 하나 이상 가질 수가 없기 때문에 일곱 개를 넘어서는 건 불가능했다.

그때 그의 머릿속으로 떠오른 건 미션에 알려지지 않은 띠가 존재한다는 사실이었다.

그리고 그 띠를 가진 자가 회색 띠를 얻었을 터.

자신보다 더 빨리 일곱 개의 띠를 모으고 알려지지 않은 띠까지 얻은 그 자가 누구인지 궁금했다.

‘새로운 경쟁자인가.’

그리 생각하며 회색 띠를 찾아 헤매던 그는 큰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곳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다수의 목소리가 들려오는 걸 보면 분명 회색 띠를 가진 등반자를 쫓는 게 분명하다.

안수찬도 곧바로 그 뒤를 쫓았다.

이후 드디어 회색 띠 주인의 얼굴을 본 그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설마설마 했지만…… 진짜 그쪽이었어?”

아주 적은 가능성의 이야기.

포탈을 타지 않고 계단을 이용한 그가 빠르게 올라와 자신보다 더 많은 띠를 모았을 가능성.

그 희박한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실제로 그 낮은 가능성과 맞닥뜨리게 되니 소름이 돋으면서도 이기고 싶다는 경쟁심이 끓어올랐다.

“이준석.”

스킬을 사용할 수 없는 지금, 그를 이길 수 있을까?

모른다.

하지만 물리적으로 치고받는 싸움이라면, 어쩌면 그를 이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승부욕을 자극했다.

‘재고 있을 때야? 남자라면 한번 부딪혀 보는 거지!’

끝내 망치를 손에 든 그가 준석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 * *

앓아눕는 소리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서 있는 놈들은 그저 허수아비 역할. 내게 덤벼들 생각도 없는 겁쟁이들이었다.

하지만 그중에도 몇 명은 아직 때를 기다리며 공격할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캬하하하!”

그때 다칼이 괴이한 웃음소리를 냈다.

-대가리 숫자만 믿고 덤비면 어떻게든 될 줄 알았던 이들의 말로를 오랜만에 보는군.

그 말에 나는 답했다.

“사람은 원래 그런 존재야. 머릿수가 많아지면 뭐든 이겨 낼 수 있다고 착각하지.”

-어리석지 않은가? 숫자로 밀어붙이면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게. 그런 세상이었다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보다 더 단순했을 거다.

“난 그렇게 생각 안 해. 오히려 그렇게 생각하고 살아갔기에 그 어떤 생명체보다 더 질기게 살아남을 수 있었지.”

다수가 가진 힘은 강력하다.

하지만 때로는 그 다수가 질 때도 있다.

그것이 이 세상의 순리였다.

“슬슬 끝내 볼까.”

방어적으로만 행동을 취하던 나는 스스로 껍질 밖을 나서듯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대치 상태로 있던 등반자들이 움찔하며 뒤로 물러나는 기색이다.

나는 바닥에 쓰러져 있는 등반자들 사이를 빠르게 지나며 차례대로 서 있는 등반자들을 제압했다.

대다수는 반응도 해 보지 못한 채 바닥에 몸을 눕혔다.

“윽, 으아아!”

뒤늦게 겁을 먹은 이들이 헐레벌떡 도망을 친다.

하지만 아직 마지막 상대가 남아 있었다.

안수찬.

그가 날 향해 망치를 겨누고 있었다.

싸움의 의지를 드러낸 것.

덜컥 기습했던 주안나 때와는 상황이 달랐다.

그는 정당하게 내 회색 띠를 빼앗기 위해서 망치를 들고 있었다.

‘아니. 띠는 핑계일지도 모르지.’

하지만 최소한 이 싸움의 정당성만큼은 부여 받은 셈이다.

“흐아아아!”

그가 먼저 접근을 해 왔다.

역시나 접근하는 속도부터가 다른 등반자들과는 달랐다.

‘빨라.’

하지만 딱 그뿐이다.

-결과는 이미 나왔군.

내리찍는 망치를 피해 옆으로 이동한 나는 돌려차기로 그를 걷어찼다.

펑!

힘을 조절했던 이전 등반자들과는 달리 그에겐 전력을 다했다.

십여 미터 가까이 날아간 그가 겨우 중심을 잡고서 몸을 일으켜 세운다.

그리고 투구 자세를 취하며 망치를 앞으로 집어 던졌다.

후웅- 후웅- 후웅-! 팍!

나는 묵직한 소리로 날아드는 망치를 어둠을 두른 주먹으로 쳐 내며 곧바로 거리를 좁혔다.

아직 방어 준비가 안 된 그를 향해 주먹을 내뻗는다.

퍽!

“커헉!”

손아귀에 묵직한 타격이 느껴진다.

턱을 맞고 공중에 떠오른 그가 날 노려봤다.

충격을 받았을 것이 분명한데 눈빛이 살아 있었다.

다시 한번 공중에 돌려차기를 가한다.

쾅! 콰직……!

나무기둥에 부딪혀 나무가 아래로 꼬꾸라졌다.

그리고 안수찬은 움직임의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기절한 척이군.’

우웅ㅡ!

이내 저 멀리 떨어져 있던 망치가 다시 날 향해 날아들었다.

난 그것을 정면으로 받아 냈다.

망치 모퉁이를 그대로 손에 쥔 채 앞으로 달렸다.

떨림이 가득한 망치가 내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을 친다.

‘어림도 없지.’

더욱 악력을 꽉 쥐며 뒤늦게 자리에서 일어선 안수찬을 바라봤다.

서로의 주먹이 교차했다.

나는 빗겨 나간 공격을 뒤로 하고 덩어리 채로 모인 어둠을 그물망처럼 펼쳐 그의 얼굴에 날려 보냈다.

“윽!”

상대 시야가 가려진 틈을 타서 내 손아귀에서 빠져나가려는 망치를 주인에게 돌려보냈다.

퍽!

“으억!”

자신의 망치에 맞고서 허리를 굽히는 그.

나는 그 빈틈을 놓치지 않았다.

찰나, 스무 대도 넘게 턱과 몸. 다리. 등을 주먹과 발로 노렸다.

“어어억…….”

안 맞은 데가 없는 안수찬이 짧은 신음을 흘린다.

그러더니 날 바라보며 내게 손을 뻗더니 이윽고 다음을 이어 가지 못한 채 풀떼기처럼 옆으로 쓰러져 버렸다.

‘기절했군.’

결국 안수찬 마저도 전력을 다한 연타공격은 견디지 못했다.

솔직히 변화한 내 신체능력을 보며 살짝은 감탄을 금하고 있는 중이었다.

안수찬보다 강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이게 다 찬란한 어금니 증표 덕분인가.”

모든 능력치를 상승시켜 주는 덕분에 놀라울 정도로 강한 신체를 얻었다.

주먹을 쓰는 격투가라고 해도 믿을 정도다.

하나, 힘에 대한 감탄도 잠시.

나는 정신을 차리고 쓰러져 있는 등반자들의 띠를 보고 다니며 가장 높은 수치를 지닌 색깔 띠들을 찾아다녔다.

대다수는 수치가 천 단위에 불과했다.

간혹 만 단위 이상이 나오기는 했는데 그래봐야 서너 명에 불과했다.

난 그것들을 위주로 회수작업을 했다.

마지막으론, 기절해 있는 안수찬에게 다가가 띠들을 확인했다.

역시 다른 등반자들보다는 그 수치가 높았다.

‘자기가 가지고 있던 건 십만이 넘네.’

유희보다 높은 수치.

하지만 난 확인만 하고 뒤로 물러섰다.

굳이 빼앗을 필요성은 못 느꼈다.

미래의 동료로서 하는 배려가 아니라 십만이 넘는 띠가 보라색이기 때문이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게 더 높은데 바꾸는 건 멍청이나 할 짓이다.

모든 회수를 마치고서 발걸음을 옮겼다.

금방 도달한 곳은 처음부터 신경 쓰였던 호수 지역.

근방에는 사람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이쯤이면 다음 층으로 올라갈 사람은 다 올라갔을 시간.

지금까지 남아 있는 인간들은 욕심쟁이들뿐이다.

“너무 고요한데.”

난이도 변경으로 인해 새롭게 생긴 지역치고는 이곳에서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그때.

호수에 잔잔한 파동이 일었다.

그냥 튕긴 돌이나 주변 환경에 의해 일어난 작은 파동이라 생각했는데.

쿠구구…….

그 파동 물결이 점차 빨라지더니 파도가 거세게 몰아치기 시작했다.

무언가가 수면 위로 올라오고 있다.

그리고 내가 끼고 있던 회색 띠에서 칙칙한 회색빛이 새어 나왔다.

[회색 띠가 본래 주인을 불러냅니다!]

쏴아아아!

메시지가 나타나자마자 호수를 뚫고 고개를 내미는 거대한 생명체.

반짝이는 회색 비늘과 기다란 몸체. 그리고 메두사 같은 눈빛과 긴 혓바닥.

그리고 이마 한가운데 새겨진 저것은…….

‘오스트 문양.’

저 문양은 층을 오르며 간혹 마주치는 탑의 층 문지기들이 가지고 있는 문양이었다.

보통 층 문지기가 등장하는 것은 계단 통로를 지나칠 때뿐.

한데 그런 녀석이 이곳에 있다는 건, 단 한 가지 이유밖에 없었다.

‘4층에는 계단 통로가 없는 것으로 유명해. 그래서 다들 포탈로 이동해 5층으로 가지. 간혹 하드 난이도에서 통로를 타고 올라온 녀석들이 있다는 얘긴 들었는데.’

설마 이런 곳에 숨어 있었을 줄이야.

“키아아ㅡ!”

입을 벌린 뱀은 자신의 아가리 속을 훤히 드러냈다.

그리고 나는 그 속 안을 들여다보며 확신했다.

‘저 녀석이 통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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