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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33화 (33/230)

회귀한 탑 등반자 33화

33화 회색 띠

유희는 지금 살짝 후회하고 있는 중이었다.

‘건드리지 말았어야 했나.’

괜히 욕심을 냈다가 상황이 악화된 상황.

금방 끝날 줄 알았던 몬스터와의 격전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내가 먼저 쓰러질 거야.’

누군가의 도움이 절실했다.

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사람이라고는 서포터의 힘을 지닌 박자린뿐.

그래도 도움이 됐다면 모르지만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게 되면서 아예 도움이 되지 않는 상태이다.

“캬하옹!”

다시금 재규어를 닮은 몬스터 녀석이 달려든다.

힘겹게 방패를 치켜든 유희는 충격에 대비했다.

한데 그녀의 예상을 벗어나,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갑자기 한 검은 형체가 개입을 하더니 녀석의 입속으로 쏙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에 움직임을 멈춘 재규어 녀석이 어쩔 줄 몰라 하는 듯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뭐지?’

영문은 모르겠지만 유희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빠르게 앞으로 달려 나가 녀석의 목을 찔렀다.

푸욱!

“커허엉!”

그토록 자신의 목을 내주지 않던 재규어 녀석이 허무하리 만큼 쉽게 목을 내줬다.

“허억. 헉…….”

[화이트잭을 처치하였습니다.]

[특별보상이 지급됩니다.]

[5,000포인트가 지급되었습니다.]

‘포인트가 너무 짠 거 아니야?’

상대한 놈의 힘에 비하면 매우 적은 보상이 들어왔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애초부터 그녀가 관심을 가진 건 이런 보상이 아니었다.

화이트잭이 지니고 있던 하얀색 띠.

미션에는 나오지 않은 색깔의 띠였다.

분명 4층의 히든피스와 연관이 있을 터.

그걸 손에 쥐자 자신의 몸 크기에 맞게 띠가 변화한다.

유희는 뒤늦게 희열감이 밀려들었다.

하지만 그런 기쁨도 잠시.

“꺄아아악!”

뒤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유희는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언니!”

“자린아!”

웬 두 명의 남자가 박자린을 붙잡고서 목에 흉기를 들이밀고 있었다.

곧 눈썹에 칼 흉터를 지닌 남자가 앞으로 나섰다.

“저 괴물 녀석을 처리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짝짝짝.

박수를 친 그가 말을 이었다.

“아주 대단해. 그냥 몬스터 힘을 좀 빼놓기만 하는 용도로 써먹으려고 했건만. 오히려 좋아. 이렇게 편하게 밥상을 차려 주었으니.”

유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한참 전부터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 같다.

“자. 우리 평화롭게 가자고. 이 여자를 살려 줄 테니, 방금 얻은 거 포함해서 네가 가지고 있는 띠 다 내놔.”

역시나 그들의 목적은 색깔 띠였다.

‘어떻게 하지.’

유희는 고민했다.

이 상황에 잘못 판단해서 움직이면 모든 일이 꼬여 버린다.

자칫 띠들을 잃을 뿐만 아니라 동료도 잃을 수도 있었다.

“야야. 머리 돌아가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네.”

그가 험상궂은 표정을 지으며 경고를 했다.

“3초 주지. 그 전에 넘겨. 아니면 이 여자를 죽이고 네년도 죽여 주겠어. 피를 보고 싶진 않지만, 말을 안 들으면 어쩔 수 없잖아?”

숫자를 세기 시작한다.

“하나. 둘. 세…….”

“줄게! 주면 되잖아!”

“그래. 진작에 그렇게 나올 것이지.”

“자! 와서 가져가!”

유희는 가지고 있던 띠 네 개를 빼서 그들에게 건네듯 손을 뻗었다.

하지만 이걸 진심으로 줄 생각은 없었다.

어떻게 얻어 낸 것인데 이리 쉽게 내어 줄 리가.

한 놈이 가까이 다가오면 녀석을 기습해서 제압에 나설 작정이었다.

“하~ 뻔히 보이네. 뻔히 보여. 이년이 머리 굴리고 있어. 속이 뻔히 보이는 짓거리는 그만하자고. 가까이 가면 뭔 짓을 할 줄 알고. 그러지 말고 빨리 이쪽으로 던져!”

“칫…….”

그러며 유희는 일부러 녀석들이 닿지 않는 바닥을 향해 던졌다.

다행히도 이번에는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는 표정이다.

남자들이 경계감 없이 앞으로 걸어 나오고 있었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유희는 빈틈을 타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

그녀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깜짝 놀란 눈썹에 칼 흉터를 지닌 남자가 옆에 서 있는 남자에게 소리쳤다.

“제길! 빨리 그 여잘 죽여!”

하지만 그의 말에 대답해야 할 남자는 대답이 없었다.

“뭐 하고 있어!? ……어?”

무언가 잘못됐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은 이후였다.

뒤늦게 옆에 쓰러져 있는 동료를 발견했다.

“대체 이게 뭔…….”

퍼억!

그 사이, 그에게 가까이 접근한 유희가 녀석의 면상에 방패를 세게 가격했다.

“커헉!”

강한 충격에 뒤로 넘어진다.

하지만 그는 재빨리 일어서서 급히 숲을 내다봤다.

“김오혁! 이달수! 뭐 하고 있어! 당장 튀어나와!”

아무래도 그에게 또 다른 일행들이 있는 듯했다.

유희도 같이 숲 주변을 쳐다봤다.

하지만 그가 찾는 지원군들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때. 그의 예상과는 전혀 다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툭! 툭!

숲 안에서 웬 사람 두 명이 던져지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그의 동료들인 김오혁과 이달수였다.

그리고 그들 사이를 유유히 걸어 나오는 한 남자가 있었다.

갑자기 튀어나온 그를 보며 가장 먼저 반응한 건 눈썹에 칼 흉터를 지닌 남자가 아니었다.

그 옆에 같이 서 있던 유희였다.

* * *

준석은 자신이 땅에 내던진 남자 둘을 내려다봤다.

‘쥐새끼 같은 놈들.’

숨어서 기회를 노리는 건 일종의 전략이기도 하지만 당하면 그만큼 기분 나쁜 일도 없었다.

물론 그가 직접적으로 당한 건 아니었지만 친구가 당할 뻔했으니 자신이 당한 것처럼 똑같이 기분이 나빴다.

그는 다시 앞을 내다봤다.

“이준석!”

유희의 목소리가 우렁차게 들려온다.

하지만 지금은 서로 아는 체를 하기보다 눈앞에 있는 상대부터 제압하는 게 우선이다.

“옆을 봐!”

그 말에 유희가 즉각 반응한다.

실력을 보면 굳이 자신이 나서지 않아도 됐다.

금방 제압을 끝낸 유희가 이쪽으로 다가온다.

“대체 언제 온 거야?”

“시간상으로는 온지 얼마 안 됐어. 그보다…….”

준석은 인질로 붙잡혔던 박자린을 흘겨봤다.

“언니!”

바로 유희 옆에 찰싹 달라붙는 그녀를 보며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 차가운 눈길을 보냈다.

심지어 눈물까지 찔끔 흘린다.

“이봐. 너.”

“예, 예? 저요?”

“그래. 너. 박자란이라고 했나.”

“박자란이 아니고 박자린이요!”

“아무튼. 그리 질질 짜는 행동은 그만두지. 동료에게 도움이 되지 못할망정 피해를 준 것도 모자라 동정심까지 바라는 거야?”

“예……? 지금 뭐라고 했어요?”

“귓구멍까지 막힌 건 아니겠지. 지구에선 그런 식으로 생존해 왔을지 몰라도 탑에선 소용없어.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 그렇게 기생충처럼 딱 붙어 있어 봐야 목숨부지도 어렵단 얘기야.”

“준석아, 조금은 말을 순화해서…….”

유희가 도중에 다그쳤지만 준석은 멈추지 않았다.

“상황을 지켜보니 서포트 능력을 잃어 아예 도움도 안 되는 것 같던데. 누군가에게 기댈 생각보다 스스로 강해질 생각을 해. 위험에 처한 동료를 구하는 건 당연하지만 그렇다고 무능해도 된다는 뜻은 아니야. 내 말 잘 새겨들어. 이건 나나 유희 때문에 말하는 게 아니라 어찌 보면 너 자신을 위해서 말하는 거야.”

“…….”

그녀는 화를 내며 답하는 대신에 더욱 눈물을 글썽였다.

‘결국 끝까지 그렇게 나가겠다는 건가.’

저게 살기 위한 악어의 눈물인지 순수한 눈물인지는 굳이 파고들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더는 말하길 포기하고 준석은 유희를 따로 불러냈다.

“야, 너. 저 여자 계속 데리고 다닐 생각이야? 언젠가는 너한테 독이 될 거야.”

“아니. 당분간만이야. 자린이가 여기에 조금 적응한 것 같으면 서로 각자 갈 길을 가려고 했어. 나도 네 말을 어렴풋이 느끼고는 있었거든.”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탑에서 어설픈 동정심은 그냥 독이 될 뿐이야. 기억해라, 유희야.”

“알았어. 명심할 게. 그보다…… 아까 몬스터를 잡는데 도운 거 너지?”

스르륵ㅡ

타이밍에 딱 맞게 그의 어깨 위로 아까 봤던 검은 형체가 나앉았다.

“역시.”

“조금 도움이 필요해 보이길래.”

“이게 필요해서 도와준 건 아니고?”

유희가 먼저 하얀색 띠를 내밀었다.

“눈치 하난 빨라.”

“네가 히든피스에 관심이 많다는 걸 알고 있으니까.”

준석은 하얀색 띠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그걸 얻어서 알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아무런 것도 얻지 못해. 빨, 주, 노, 초, 파, 남, 보 그리고 하얀색과 검은색이 있어야 의미가 생기지.”

그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검은색 띠를 보여 줬다.

“그럼 이거 하나만 있으면 넌 원하는 걸 얻겠네.”

“그렇지.”

“음…….”

“그냥 달라는 건 아니야.”

준석은 아공간에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이건……?”

“오르크 비전 검술책. 이전 층에서 얻었어.”

“좋은 거야?”

“나름 쓸 만하지. 너한테는 큰 도움이 될 거야.”

원래는 갖다 팔려고 했지만 유희에게 넘겨주는 것도 그리 나쁜 선택은 아니었다.

“자.”

유희는 검술책을 받아 들고서, 망설임 없이 그에게 하얀색 띠를 건넸다.

띠를 받은 그는 이내 그것을 팔목에 둘렀다.

그러자 총 아홉 개의 띠에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해당 층에 있는 색깔의 띠를 전부 모으는데 성공합니다!]

[띠의 형태가 변화합니다!]

무지갯빛을 띠기 시작하는 띠는 영롱한 기운을 뿜어냈다.

[레인보우 띠를 얻었습니다.]

준석은 띠 옵션을 바로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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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띠

효과: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내구성 증가

조건부 효과: 24시간에 한 번씩 띠의 색깔이 변화한다. 그리고 변화한 색깔에 따라 마법 증폭률이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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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보우 띠는 마도사에게 있어 반드시 필요한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마법 증폭률 증가와 아이템 내구성 증가.

우선 색깔에 따라 변화하는 증폭률은 총 아홉 개의 종류로 나뉘어져 있었다.

가장 높은 증폭률을 보이는 색깔은 무지개 색. 그리고 현재 색깔도 마찬가지로 무지개 색이었다.

앞으로 24시간 동안 쭉 이런 상태일 것이다.

하지만 별로 큰 의미가 없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마법 스킬을 사용하지 못하니까.

“그게, 이 층의 히든피스야?”

유희의 질문에 준석은 짧게 대답했다.

“어.”

“엄청 예쁘네.”

“난 예쁜 건 관심 없어. 그냥 효과가 내가 필요하던 거야.”

“너야 그렇지. 그래서 효과가 뭔데?”

“마법 증폭률 증가와 그리고 착용하고 있는 아이템 내구성 증가.”

“어? 아이템 내구성 증가면 나도 필요한데!”

“이미 늦었어. 돌려 달란 말은 하지 마라.”

“치사하게 안 해! 그냥 하는 말이지.”

“그보다. 이걸로 끝이 아닐 텐데…….”

하드 난이도인 만큼 무언가가 더 있거나 변수가 존재할 터.

새로 생긴 지역에 한번 가 보면 그에 대한 답이 나올지도 몰랐다.

하지만 그 답은 그가 그곳으로 향하기도 전에 바로 눈앞으로 찾아왔다.

[돌발미션이 발동합니다!]

[가장 많은 띠를 모은 사람에겐 새로운 회색 띠가 주어집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준석의 팔목에는 회색 띠가 생겨났다.

그리고 띠에 찍혀 있는 숫자는 0이 아닌 10만.

[회색 띠는 자신이 필요한 색으로 변할 수 있는 아주 귀한 아이템이며 투자된 포인트는 무려 10만입니다.]

[이미 모든 것을 다 잃은 자들은 앞으로 회색 띠를 가진 자를 찾아 회색 띠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 보십시오.]

준석은 흥미롭다는 듯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그러더니 이내 입꼬리를 올린다.

“이제야 좀 재밌어지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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