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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32화 (32/230)

회귀한 탑 등반자 32화

32화 꼬리잡기 (2)

“으윽! 으으으!”

나는 땅속에서 빠져나오려고 안간힘을 쓰는 주안나를 위에서 내려다봤다.

“너무 안간힘 쓰지 마. 어차피 내가 짓밟고 있는 이상 빠져나오지 못할 텐데.”

“…….”

주안나가 말없이 날 노려봤다.

“그렇게 노려볼 필요 없어. 이런 상황을 자초한 건 다름 아닌 너잖아.”

“……띠를 가져간 걸로는 충분하지 않았나 보네.”

“아니. 충분해. 다만…… 내가 어찌 보면 그쪽한테 생명의 은인이기도 한데. 고맙다고 하지 못할망정 이리 나오는 게 괘씸해서 말이야.”

“……그건 나도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뭐라고 하는지 분명히 듣기는 했지만 목소리가 작았다.

나는 한쪽 귀를 앞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뭐? 잘 안 들리는데.”

여태까지 고개를 빳빳이 들던 그녀가 고개를 숙인다.

“……고마웠다고.”

“아주 엎드려 절 받기네. 됐어. 애초에 고맙단 인사를 바라고 한 행동은 아니니까.”

“…….”

난 이내 자세를 풀고 슬금슬금 뒤로 발걸음을 뗐다.

그러며 말을 이었다.

“그쪽이라면 혼자서 금방 빠져나오겠지. 띠도 열심히 움직이면 찾을 수 있을 거야. 그래도 혹시 모르니 서두르라고. 아, 수찬 씨한테도 안부 전해 주고.”

그녀에게 대답은 돌아오지 않았다.

-이제는 뭘 할 거지?

어느새 어깨에서 머리 위로 올라간 다칼이 물어 온다.

난 머리 위쪽을 눈알만 움직여 올려다봤다.

“뭘 하긴. 몰라서 물어? 당연히 화이트잭과 블랙퍼를 잡아야지.”

꼬리잡기 게임에는 숨겨진 변수가 존재한다.

그것은 빨간색 띠와 보라색 띠 사이에 하얀색 띠와 검은색 띠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다만 등반자들이 가지고 있던 일곱 개의 띠와는 다르게 하얀색 띠와 검은색 띠는 몬스터가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회귀 전엔 그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서 여기에 숨겨진 히든피스를 먹지 못했어.’

만약 그때 점지가 발동했다면 미리 알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은 스킬이 발동하지 않는 지역.

당연히 고유 스킬인 점지 또한 발동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하나 지금은 다르다.

어떤 걸 노려야 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었다.

‘우선은 가까운 곳에 있는 검은색 띠를 가진 블랙퍼부터 공략하는 거야.’

그다음엔 하얀색 띠를 가진 화이트잭까지.

그렇게 숨겨진 히든피스를 취하고 나면 이후엔 새롭게 생겨나 있던 호수 구역을 가 볼 생각이었다.

쿠웅! 쿵!

대략 이삼백 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충격음이 들려왔다.

‘난전인가?’

순간 저 멀리, 나무가 뽑혀서 공중에 날아가는 모습이 발견했다.

이어서 다른 나무가 이쪽을 향해 날아온다.

쿠우웅!

그대로 바닥에 꽂힌 나무에는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사람의 손자국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거대했다.

‘블랙퍼.’

곰과 닮은 몬스터인 그 녀석은 단순한 몬스터라기보다 보스 몹에 가까웠다.

느릿느릿한 몸집으로 엄청난 힘을 보유하고 있는 것이 특징.

나는 서둘러 소란이 일어나고 있는 현장으로 달려갔다.

“크흐으아아아아!”

약 10미터에 이르는 나무 높이만 한 키를 지닌 블랙퍼가 포효한다.

블랙퍼를 둘러싸고 있는 다섯 명의 등반자들.

모두 띠를 최소 세 개 이상은 소유 중이었다.

거기다 모두 빨간색 띠를 가지고 있었다.

‘블랙퍼가 가지고 있는 띠를 얻으면 뭔가 있단 걸 눈치챈 건가.’

하지만 서로 협동하는 모습은 보여 주지 않고 있었다.

견제하는 것이었다.

검은색 띠는 하나.

그렇다면 그걸 얻을 수 있는 이도 한 명이란 뜻이니까.

또한 지금은 서로가 적이다.

방심하는 순간 자신의 띠를 빼앗기게 될 터.

나까지 끼면 경쟁자는 여섯 명.

한데 그중에는 하성태도 같이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지 못하게 된 그는 뱀파이어가 되며 신체능력이 올라간 덕분에 강한 힘을 발휘했다.

뿐만 아니라 스킬에 해당하지 않는 정령의 힘도 이곳에서는 큰 힘이 되었다.

‘기본 이상은 갖춘 건가.’

“다칼, 혹시 혼자서 공간이동을 할 수 있나? 어둠으로 변해서 말이야.”

-이전처럼 멀리 이동은 불가능해도 가까운 거리는 아마 가능할 거다. 그런데 그건 왜 묻지?

“내가 타이밍을 만들 테니 녀석의 몸속으로 들어가.”

“캬하앙……?”

-뭣이……? 지금 날 보고 저런 하등생물에 가까운 짐승의 몸속으로 들어가란 소리인가?

“어쩔 수 없잖아. 그게 녀석을 제압할 수 있는 가장 빠른 방법인데. 몸속으로 파고들어 어둠을 내뿌리고 중요한 장기들을 집어삼키거나 부패, 쇠락시키는 거지. 알고 있겠지만 블랙퍼는 몸 전체가 단단한 방벽이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방어력을 지녔어. 그런 놈을 상대로 박투전을 벌여 때려눕힌다는 건 어려워. 물론 내 능력으론 가능하겠지만. 그럼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크항, 크앙! 크앙!”

-그럼 난 오래 걸리는 길을 선택하지. 짐승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건 죽어도 못한다! 설사 그게 동행자의 부탁이라 해도.

“흠…….”

아무래도 안 하려고 단단히 마음을 먹은 것 같은데.

‘그럼 어쩔 수 없지.’

계획을 바꾸었다.

나는 무작정 앞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쿠하아아!”

블랙퍼가 난리를 치고 있는 현장 속으로 파고들자 온 시선이 이쪽으로 끌렸다.

블랙퍼도 예외는 아니었다.

녀석은 날 보더니 이내 양쪽에 있는 두 나무를 뿌리째로 뽑아 내게 집어 던졌다.

쿵! 쿵!

날아드는 나무들을 가볍게 피해 낸 후, 블랙퍼의 한쪽 다리 부근에서 추진력을 무기로 삼아 높이 뛰어올랐다.

그 와중에 팔목에 끼고 있는 검은색 띠가 보인다.

녀석의 크기에 맞춰진 거대한 띠였다.

작아서 쉽게 빼앗았던 등반자들 것과는 달리 저것을 빼앗으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터.

녀석의 가슴 위까지 뛰어오른 나는 옆으로 강하게 회전하며 뒤돌려 차기를 시도했다.

퍼억!

“커허엉!”

묵직한 공격이 가해지며 녀석의 몸이 뒤로 밀려나고 있었다.

하지만 예상한 것보다 더 맷집이 강력한지, 이 정도로도 쓰러지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원하는 상황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하면…… 나는 아공간 속에 집어넣어 뒀던 악재 구슬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 그것을 바로 녀석의 몸에다가 가져다 댔다.

이걸로도 녀석을 제압하긴 어려울 터다.

“커헝!?”

하지만 흠칫하게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낯설고 불길한 기운을 품고 있는 악재 구슬이 몸에 닿자 녀석은 화들짝 놀라 몸의 중심을 잃어 갔다.

난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기울어진 배 위에 올라타 땅을 내리찍듯 발을 내리찍었다.

콰앙! 쾅! 쾅쾅!

쓰러질 때까지 연달아 발을 찍어 눌렀다.

그리고 기울어진 각도를 보았을 때. 쓰러질 것이 분명하자 망설임 없이 앞으로 달려 나갔다.

금세 녀석의 배에서 목 부근까지 이르렀다.

“자~.”

난 머리 위에 앉아 있던 다칼을 손으로 집어 잠시 마주 봤다.

-네놈! 지금 뭔 짓을 하려고……!

“이미 알잖아. 내가 뭘 할지.”

다칼을 보며 씩 웃었다.

“조금만 고생하라고.”

-마음대로 될 것 같나! 그대가 날 던진다 해도 바로 빠져나오면 된다!

“낙원에 가고 싶지 않아?”

“크르릉…….”

-이제 보니 내가 악마의 속삭임에 넘어갔구나.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리고 동행자라면 무릇 상대의 인정을 받아야 하는 법. 나도 네게 인정을 받았듯이 너도 어디 쓸모가 있는지 보여 줘야지. 그래야 동등한 관계 아니겠어?”

휙!

나는 블랙퍼가 벌리고 있는 아가리 속을 향해 다칼을 집어 던졌다.

“캬하아아ㅡ!”

-너어이이이이놈!

그래도 내 말을 헛말로 듣지는 않았는지, 블랙퍼가 먼저 입을 닫기 전에 다칼은 어둠이 되어 안으로 침입했다.

이제 내부에 치명적인 것을 심어 뒀으니, 녀석을 꼼짝 못하게 제압하는 일은 시간문제였다.

쿠우우웅!

나는 쓰러진 블랙퍼 몸 위에서 내려와 느긋이 녀석의 상태를 지켜봤다.

“쿠어어어!”

뿔이 날 대로 뿔이 난 녀석이 타깃을 가리지 않고 주먹과 발을 내지르며 난동을 부렸다.

그때 한 남자가 나섰다.

하성태.

그가 높이 뛰어올라 일격을 가한 뒤 옆에 같이 있는 정령이 불꽃을 뿜어냈다.

녀석은 경직에 걸린 것처럼 순간 움직임을 멈추었다.

그러나 아주 잠시 멈춘 것에 불과할 뿐.

녀석이 다시 거침없이 몸을 움직였다.

다시 반격을 준비하던 하성태도 녀석의 주먹을 맞고 힘없이 나가떨어진다.

이번엔 꽤 충격이 큰 것인지 바로 일어서지 못하고 있었다.

다른 등반자들의 상황도 마찬가지였다.

제대로 제압하지 못해 나가떨어지기 일쑤.

그럼에도 나는 나서지 않고 기다렸다.

적절한 타이밍이 오기를.

“쿠헝?”

한창 난리를 피우던 블랙퍼가 갑자기 이상한 증세를 보이기 시작한다.

‘시작됐나.’

안에 침투했던 다칼이 본격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그럼…….”

나는 다시 정면에 맞서서 녀석과 부딪혔다.

퍼억! 퍽!

분명히 같은 공격이었지만 처음과는 반응이 달랐다.

“크허어억……!”

공격을 버티질 못하고 녀석이 피를 토하면서도 아직 살기를 드러내고 있었다.

마지막 발악이라도 하듯 날카로운 손톱을 내밀어 앞으로 내뻗는다.

하지만 닿지 않았다.

“후으읍!”

뒤로 물러선 나는 크게 숨을 들이쉬곤 아공간에 있던 검 한 자루를 꺼내 들었다.

사용하게 되면 상품가치가 떨어지니 어지간하면 사용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지팡이도 없고 마법도 사용하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이거라도 사용하는 수밖에 없었다.

탓!

톱날검을 손에 들고 스프링처럼 다시 위로 뛰어오른다.

그리고 나는 녀석의 한쪽 눈을 노렸다.

푸욱!

“크하아악!”

그것이 발단이 되었다.

녀석이 중심을 잃고 몸부림을 치기 시작하더니 끝내 내부에서 진행된 공격이 극적인 효과를 나타냈다.

“구어어어……!”

외마디의 괴성과 함께 드러누운 블랙퍼.

하지만 금방 다시 일어설 수도 있기에 나는 그 틈을 타 녀석의 오른팔로 이동했다.

이어서 팔목에 둘러져 있는 띠를 녀석의 몸에서 떼어 냈다.

“읏차!”

띠가 벗겨지는 순간.

크기가 줄어들기 시작하며, 서서히 내 덩치에 맞는 크기로 변해 갔다.

[검은색 띠를 획득하였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툭!

블랙퍼의 입에서 온갖 액체와 비말을 뒤집어쓴 다칼이 귀엽게 인상을 찌푸리며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네 다리로 겨우 중심을 잡더니 이내 어둠이 되어 날아왔다.

내 목에 찰싹 달라붙은 녀석은 이빨로 날 꽉 깨물었다.

-내 이빨이 조금 더 뾰족했다면 네놈의 목을 물어뜯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게 내 천추의 한이군.

“천추의 한은 무슨. 동행자끼리 서로 돕고 사는 거지. 그리고…….”

짝짝짝!

나는 박수를 치며 말했다.

“인정해 줄 게. 덩치는 작아졌어도 역시 신수는 다르군.”

“캬하응!”

-그런다고 내가 좋아할 것 같은가!

“반응을 보니 그런 것 같은데?”

“캬하하아!”

-절대 아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라고 했어. 솔직해지라고.”

“캬하아!”

-절대로 아니다! 동행자의 말을 믿지 않는 것인가!?

그러면서 점점 다칼의 표정이 좋아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절대 내 착각이 아니리라.

“이제 그만 물고 중심 잡아. 아직 잡아야 될 한 놈이 더 남아 있다고.”

블랙퍼는 아직 숨이 붙어 있었지만 그냥 내버려 뒀다.

녀석을 잡아도 딱히 크게 얻는 것은 없었다.

자잘한 포인트 정도.

난이도가 바뀌었다고 해도 그보다 조금 위인 수준일 터.

그 시간에 하얀색 띠를 소유한 화이트잭을 잡는 게 훨씬 더 이득이었다.

‘여유 부리다 괜히 띠를 누구에게 가로채기라도 당하면 일이 골치 아파질 거야.’

그래서 서둘러 발을 뗐다.

하나, 그래도 가기 전에 하성태와 짧은 대화라도 나누고 싶었다.

“하성태.”

“형님…… 오셨습니까.”

“그래. 몸은 괜찮아?”

“예.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그나저나 움직임이 많이 좋아졌던데?”

“하하, 형님에 비하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그 정도면 많이 발전한 거지.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으니까.”

진심 어린 조언을 해 준 뒤 그의 어깨를 툭툭 두들겨 줬다.

그러자 하성태가 고개를 살짝 숙여 대답했다.

“어떻게 살려 주신 목숨인데. 당연히 열심히 해야죠!”

누구와는 다르게 은혜를 아는 녀석이다.

“그래. 그럼 나중에 보자고.”

“예! 형님!”

“아, 그리고 이 주위에 있던 놈들. 띠에 새겨 준 숫자들이 꽤 되던데. 놓치지 말고 잡아. 너한테 도움이 될 거야.”

“그거라면 형님이 챙기시는 게 맞지 않을까요?”

“난 괜찮아.”

이내 내 띠를 확인한 그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형님 게 저 녀석들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을 거 같은데요?”

“그래서. 나 잡으려고?”

하성태가 빠르게 두 손을 휘저었다.

“아, 아잇! 무슨! 그런 소름 돋는 소릴! 괜히 덤볐다가 뼈도 못 추릴 것 같구만.”

“왜? 함 덤벼 보지.”

“하하. 제가 갑자기 할 일이 생각나서. 전 이만 가 보겠습니다! 형님! 나중에 봬요!”

말 끝나기 무섭게 뒤꽁무니 빠지게 도망가 버린다.

그 모습에 절로 헛웃음이 나온다.

이후 내가 한 말은 잊지 않았는지, 같이 블랙퍼를 상대하던 등반자들에게 접근해 띠를 빼앗길 시도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음을 먹은 모양이다.

‘지금의 녀석이라면 넷이 덤벼도 이기겠지.’

난 내 갈 길을 가자.

금방 다음 목적지인 화이트잭이 서식하고 있는 장소에 이르렀다.

예상한대로 그곳에는 이미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중이었다.

서너 명이 블랙퍼를 상대하는 중이었으니 화이트잭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고는 생각했다.

화이트잭은 재규어처럼 날렵한 몸놀림을 지닌 대신에 약한 맷집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체력을 지닌 몬스터이다.

그렇다고 해도 쉽게 잡히는 놈이 아니었다.

몸놀림이 빠르니 되레 공격을 맞추기가 어렵고.

매순간 지능적인 판단과 행동을 해 어디로 튈지 모르는 녀석이었다.

이를 증명하듯 주변에는 벌써 시체들이 널려 있었다.

하지만 아직 살아남은 두 명이 녀석을 상대하는 중이었다.

‘아니, 제대로 싸우고 있는 건 하나인가.’

방패와 검을 들고서 자신의 살을 내주고 뼈를 취하는 방식을 택하고 있는 한 여성.

그 여성은 나도 아는 얼굴이었다.

‘김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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