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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30화 (30/230)

회귀한 탑 등반자 30화

30화 천고의 벽

[천고의 벽을 무너뜨렸습니다.]

[조건이 충족됩니다.]

[윤회 서고의 출입 권한이 주어집니다.]

준석은 멍한 눈길로 무너진 벽 너머에 있는 웅대한 문을 바라보았다.

탑에서도 저렇게 거대한 문을 마주하기는 쉽지 않은데.

문에서는 심상치 않은 기운이 느껴졌다.

그저 압도된다고 말할 수밖에…….

그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문에는 탑을 묘사한 그림이 새겨져 있었다.

드높은 높이를 자랑하듯 문 천장까지 치솟은 탑은 절로 고개를 들게 만들었다.

쿠구구구……!

지근거리까지 접근하니 땅이 진동을 하며 문이 열리기 시작한다.

환한 빛에 눈이 부셔 손을 들어 올린 준석은 눈살을 찌푸리면서도 앞을 내다보려 노력했다.

쿵!

크게 떨던 진동이 멎었다.

그리고 멀었던 눈은 서서히 주변에 적응을 해 나간다.

뚜벅. 뚜벅. 뚜벅.

준석은 묵직한 발소리를 내며 다시 천천히 발을 내디뎠다.

그러며 차차 드러나기 시작한다.

베일에 싸여 있던 서고의 모습이.

“…….”

그저 입이 벌어진다.

여기를 봐도, 저기를 봐도, 온통 책장들뿐이다.

그것도 수백 층 높이에 달하는 무수한 책장들이 빛이 쏘아져 내려오는 천장을 중심으로 길게 뻗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빛이 내려온 중심 바닥에는 다른 책들과 비교가 되지 않는 크기의 거대한 책이 놓여져 있었다.

책장이 넘겨져 있는 그 거대한 책은, 비치는 빛과 상반되게 붉은빛을 발하고 있었다.

저절로 그곳을 향해 발걸음이 떨어졌다.

책에 그가 손을 데려는 순간.

“저라면 그 책, 안 만질 것 같습니다만.”

고개를 돌리자 거기엔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긴 은백색 머리의 미남형 얼굴인 그는 무채색 미소를 띠며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를 보자마자 준석은 자신의 표정이 일그러지고 있다는 걸 느꼈다.

‘왜 이곳에 탑 관리자가…….’

딱히 자기소개를 하지 않았건만.

준석은 그가 탑 관리자라는 것을 단박에 알아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이렇게 심연의 바닥을 들여다보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하는 건 오직 그들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는 이 서고를 책임지고 관리하는 사서, 마크라고 합니다.”

‘그냥 희귀한 마법책들이 쌓여 있는, 단순히 보기 드문 서고라 생각했는데. 잘못 생각했다. 이건 예상한 것보다 더…….’

“혹시 실례가 안 된다면 그쪽 이명을 알려 줄 수 있겠습니까?”

준석은 속으로 고개를 저었다.

이명을 밝히는 순간 자신이 회귀했다는 것을 그가 자연스레 알게 된다.

탑 관리자에게 그 사실을 밝혀 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기에 그는 기존의 이름을 언급했다.

“이준석.”

“흠…… 이준석. 흥미로운 이름이군요.”

다른 이명이 무엇이냐고 다시 물어볼 법한데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거리를 좁히더니 두 눈을 마주 보며 입을 뗀다.

“그거 아십니까? 새로운 등반자가 이곳에 온 건 정말로 오랜만입니다. 대략 한…… 이백 년은 됐을까…….”

거짓이 아닐 터다.

마지막 층까지 다다랐던 자신조차도 그때는 이곳에 들어오지 못했으니까.

“아무튼. 환영한다는 말을 거추장스럽게 늘어놓았군요. 이곳에 들어왔다는 건 이 서고를 이용할 수 있는 자격을 얻었다는 뜻.”

그는 두 팔 벌려 서고의 책들을 가리켰다.

“여기에 있는 어떤 것이든, 딱 하나 가지고 나갈 수 있습니다. 천천히 둘러보고 선택하세요. 잘만 선택하면 앞으로 탑을 오르는 데 큰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다면…… 저 책도 가능합니까?”

준석은 아까 전에 만지지 못했던 거대한 책을 바라보고 있었다.

“음. 그것은 사서로서 개인적으로 추천드리지 않습니다만.”

“사서가 추천하지 않는 책도 있습니까.”

“물론 책을 사랑하는 사서라면 어떤 책이든 동등이 봐야 하는 것이 맞지만…… 저 책을 손에 쥔 자들은 하나같이 끝이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 책을 추천하고 싶지는 않군요.”

추천하지 않는다.

끝이 안 좋다.

분명 부정적인 말들뿐이다.

그런데 왜일까?

점점 더 저 책이 끌리는 이유는?

아마 그가 한 얘기들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탑 관리자는 등반자에게 호의를 드러내지 않으나 그렇다고 적의를 드러내지도 않는다.

중립에 가까운 존재들.

그렇기에 그의 말을 완전히 무시하는 것도 좋은 처사라고 볼 수는 없었다.

잠시 후 마크가 말을 이었다.

“정말로 저 책을 선택하시겠다면 말리지는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 한 가지는 말씀드리죠. 보통 책과 다르게 저 책은 단순히 배우고 가진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닙니다. 취한 순간부터 내내 목숨을 놓고 당신을 괴롭힐 겁니다.”

무슨 얘기를 하고 있는 건지 자세히 이해는 되지 않았지만 저 책을 가지는 순간 고행길이 열린다는 것쯤은 이해가 됐다.

‘재밌겠는걸.’

“제 충언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럼 저는 뒤로 물러나 있을 테니 책 중 하나를 선택하시면 말씀해 주시길.”

그가 뒤로 물러난다.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길 기다리던 준석은 고개를 돌려 그 거대한 책에 손을 뻗었다.

충고는 충고이고.

일단은 어떤 책인지 확인하고 싶었다.

책장에 손이 닿았다.

파아아ㅡ!

책을 감싸고 있던 붉은빛이 한순간에 그의 팔을 휘감는다.

무슨 짓이라도 하나 싶었지만 우려와는 달리 아무런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이내 책 정보창을 열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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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가 교환 마법책

내용: 머릿속에 떠올린 자신만의 마법을 구사해 사용할 수 있다. 단, 구성한 마법의 힘이 소모한 마나보다 크다고 생각할 경우 다른 매개체를 통해 대가를 치르게 된다.

스킬 습득: 등가 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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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매개체라…….”

왜 그가 이 책은 위험하다고 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다른 매개체라는 건 내 피가 될 수도, 영혼이 될 수도, 육체가 될 수도 있다는 거군.’

함부로 사용하기에는 엄청난 리스크를 짊어진 스킬임이 분명했다.

자칫 잘못 사용했다가 순식간에 목숨을 잃는 것도 헛말이 아니다.

하나, 그 정도로 위험한 만큼 매력적이기도 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마나만 크다면 이보다 강력한 스킬은 없다.’

정해진 틀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만들어 낸 마법을 구축한다.

그것은 마도사들에게 있어 꿈과 같은 일이었다.

마음에 든다.

이미 이 책에 마음이 반은 빼앗긴 상태였지만 바로 선택할 수는 없었다.

다시는 없을지도 모르는 기회.

책을 선택하는 데 있어 더욱 객관적이고 냉정히 살펴봐야 할 필요가 있었다.

지금 바로 이걸 선택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혹시나 이보다 더 좋은 스킬이 있을지도 모른다.

준석은 사방에 놓인 책들을 찬찬히 훑어보기 시작했다.

‘역시…….’

이곳에 있는 책들은 하나같이 탑에서 구하기 힘든 것들이었다.

물론 흔한 스킬 마법책들도 존재했지만 회귀 전엔 보지 못했던 마법책들이 한가득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여기에 있는 모든 걸 가지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 서고의 사서가 만만치 않은 인물이다.

탑 관리자.

신좌들조차 건드리지 못하는 그들은 탑에서 막강한 힘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 자를 누르고 여기의 것을 다 취하기엔 자신이 가지고 있는 힘이 약했다.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했다.

과도한 탐욕은 좋지 않다고.

여기 있는 모든 걸 취해도 과연 자신이 이걸 전부 녹여낼 수 있을지는 미지수이다.

준석은 수십 권의 책을 펼쳐 보다 이내 더 살펴보기를 포기했다.

계속 봐야 고민만 늘 뿐이었다.

“결정했습니다.”

“어떤 책으로 하시겠습니까?”

귀신같이 나타난 마크가 그에게 물었다.

“전 저걸 선택하겠습니다.”

“흠…… 결국에는. 그걸 선택하는군요.”

준석은 거침없이 나아가 서고 한가운데에 놓인 거대한 책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아까 전과는 다르게 메시지가 올라온다.

[등가 교환 마법책을 얻었습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마법책에 각인된 스킬을 습득합니다.]

[등가 교환(Lv-)을 배웠습니다.]

스킬 획득과 함께 책은 모습을 감추었다.

“이로써 되돌리고 싶어도 되돌릴 수 없게 됐습니다.”

“되돌릴 생각은 없습니다. 신중히 고민하고 선택한 겁니다.”

“그래 보입니다.”

마크는 그를 똑바로 응시했다.

그러더니 이내 그의 어깨에 앉아 있는 다크 울프를 쳐다본다.

“그나저나 참 흥미로운 녀석을 달고 다니는군요.”

“뭐. 어쩌다 보니 늑대 새끼 한 마리 키우게 됐습니다.”

“늑대 새끼라고 하기엔 꽤 케케묵은 냄새가 나는데요.”

“크르르!”

-케케묵은 냄새!? 핫! 재수 없는 놈! 예부터 관리자 놈들은 마음에 들지 않았단 말이지. 동행자여. 빨리 저 녀석의 얼굴을 치워 버렸으면 좋겠군.

준석은 다크 울프의 머리를 쓰다듬어 다독이곤 마크를 쳐다봤다.

이미 그는 녀석이 신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탑 관리자인 만큼 모를 리가 없을 터.

이번엔 마크의 시선이 다른 곳을 향한다.

“그리고 그 반지를 보니 이미 계약도 끝마친 것 같고.”

마크는 게슴츠레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더니 이내 짧게 숨을 내뱉는다.

“아깝네요.”

“무엇이 말입니까?”

“그쪽이 활약하는 모습을 지켜봤으면 좋았을 텐데. 보다시피 사서의 일을 맡고 있는 터라.”

“봐도 재미없었을 겁니다.”

“흐음. 그리 보이지는 않는데……. 뭐. 당사자가 그리 말한다면야.”

이내 마크는 말없이 문이 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문 앞에서 뒤를 돌아본다.

“안타깝지만 이제 슬슬 헤어질 시간이 온 것 같습니다.”

돌려 얘기했지만 직설적으로 말하면 이제 그만 나가란 소리였다.

하지만 준석은 움직일 생각은커녕 자리서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직 무슨 볼일이 남아 있습니까?”

“예. 남아 있습니다. 아까 여기서 책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했죠?”

“네, 그랬죠.”

“그럼 선택하지 않고 얻어 낸 건 뭐든 상관없다는 말로 받아들여도 됩니까?”

“음…… 뭘 하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더 이상 다른 책에 있는 스킬을 익히지만 않으면 뭘 해도 상관없습니다.”

그 말에 준석은 아공간에 있던 책 한 권을 꺼내 들었다.

“그것은……!”

준석은 그를 보며 씩 웃었다.

“조합서입니다. 이걸로 새로운 스킬 하나를 얻어 낸다 해도 이곳에 있는 책의 스킬을 익힌 게 아니니 상관없겠죠.”

“아닛! 잠깐만……!”

마크의 표정을 보니 당황한 것이 역력해 보인다.

준석은 그를 무시한 채 이미 조합으로 생각해 두었던 책 두 권을 꺼내 왔다.

[조합할 마법으로 엘리멘탈 포스와 톨로렌스를 선택하였습니다.]

각 속성을 강화시켜 주는 마법인 엘리멘탈 포스와 각 속성의 내성, 저항력을 지니게 해 주는 톨로렌스.

[정말로 둘을 조합하시겠습니까?]

“조합하겠어.”

[조합을 시작합니다!]

화아아악!

조합서에서 환한 빛이 뿜어져 나온다.

잠시 후.

[조합에 성공했습니다!]

[엘리렌스 마법책이 탄생합니다!]

조합에 재료로 썼던 두 권의 책은 그대로였다.

준석은 자신의 것인 엘리렌스 마법책을 챙겨 들고 표정이 얼어붙어 있는 마크에게 다가갔다.

“이건 잘 받아 가겠습니다.”

이제야 자신의 볼일을 마친 그가 이곳에 들어왔던 입구 문으로 향한다.

쿠구구구……!

그가 라인을 넘자 닫히기 시작하는 문.

멍하니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마크는 이내 웃음을 터트렸다.

넓은 공동에 울려 퍼지던 그의 웃음소리는 이내 사그라들더니 나지막한 말소리가 들려온다.

“아주 재밌는 녀석이 들어왔어. 어쩌면 탑에 태풍이 불지도 모르겠군. 아무도 멈출 수 없는 강한 태풍이.”

* * *

서고에서 나오는 길.

나는 흐뭇한 표정으로 손에 들린 책을 바라봤다.

엘리렌스.

회귀 전에도 조합해서 써먹었던 스킬인데.

설마 이것을 튜토리얼 층에서 거머쥘 줄이야.

절로 입이 귀에 걸렸다.

처음부터 의도했던 것이 아니기에 기분이 더 좋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가지 안타까운 건.

[조건이 충족되지 않았습니다.]

[엘리렌스 스킬을 습득하는 데 실패합니다.]

[엘리렌스 스킬을 습득하려면 일정 조건을 충족시켜 주십시오.]

아직 이 스킬을 배울 수 없다는 것이었다.

조건이 공개되지 않았지만 이미 사용해 봤기에 그 조건을 알고 있었다.

조건은 각 속성 마법을 하나씩 다 소유할 것.

현재 가지고 있는 속성 마법은 어둠과 땅, 그리고 바람뿐.

나머지 속성인 빛과 불, 물이 있어야 이 스킬을 배울 수 있었다.

아깝지만 나중을 위해 아공간에 넣어 뒀다.

이후 4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랐다.

빠르게 올라가다 보면 어쩌면 앞서 올라간 유희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끝에 도달하기 전까지 유희와는 마주치지 못했다.

아무래도 3층과 4층 중간에 있는 계단 통로는 위험도나 난이도가 그다지 어렵지 않다 보니 막히는 구간이 크게 없었을 터.

물론 그런 덕에 나도 4층에 금방 도달할 수 있었다.

난 울창한 숲으로 되어 있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어서 밑을 내려다본다.

어느새 내 오른쪽 팔목에는 띠가 둘러져 있었다.

숫자 0이 적혀 있는 보라색 띠가.

‘시작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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