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8화
28화 악재 구슬 (1)
변화는 다른 곳에도 있었다.
가슴에 난 상처가 말끔히 아물어 버렸다.
그것도 흉터 하나 없이.
“카앙!”
다크 울프가 이쪽을 향해 뒤뚱뒤뚱 걸어온다.
그 모습이 전투할 때와는 너무나도 상반되어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새어 나왔다.
“캉!”
-그 웃음은 뭐지? 내가 지금 작아졌다고 비웃는 건가?
혹시 육체가 작아지며 정신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반응을 보아하니 그렇지는 않은 듯하다.
하마터면 애 하나 키우는 심정이 될 뻔했다.
‘아니지. 육체는 어려졌으니 애 하나 키우는 게 맞나.’
나는 힘겹게 몸을 움직여 뒤뚱거리고 있는 다크 울프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녀석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와…… 가까이서 보니 더 작네.”
“크아응!”
-그저 몸집이 작아졌을 뿐이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변한 게 없긴. 힘도 약해졌고 완전 애기네.”
“캬아악!”
-애기!? 영겁의 세월을 산 내게 애기라니……!
콱!
다크 울프가 분노에 소리치며 내 팔을 이빨로 깨물었다.
하지만 아프긴커녕 간지럽다.
괜히 놀리고 싶은 기분이었다.
“이봐. 내 살 하나 떼어 먹지도 못하잖아.”
“으아응!”
나는 계속해서 내 팔을 물고 늘어지는 다크 울프를 이내 강제로 떼어 놓았다.
주위를 보니 이렇게 놀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쿠구구구…….
싸움의 여파 때문일까?
저장고 주변이 무너지려 하고 있었다.
“캬아응!”
-놔라! 이놈!
“가만히 좀 있어.”
나는 녀석을 내 머리 위에다가 올려 두고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했다.
[선택 미션이 완료되었습니다.]
[누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타이밍 참 얄궂다.
나는 손에 들린 보상을 확인도 안 한 채 아공간에 집어넣었다.
우선은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부터 생각해야 한다.
“윽!”
하지만 몸이 거북이처럼 느렸다.
이럴 때 다크스윔이라도 사용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물론 마음만 먹으면 사용할 수도 있지만 그러기엔 몸이 너무나도 엉망이었다.
분명 큰 부작용이 따라올 터.
콰가가가……!
툭! 툭!
돌 파편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이제 더 이상 지켜보고 있을 수 없었다.
“쓸 수밖에 없나.”
나는 아공간에 있던 지정 귀환석을 꺼내 들었다.
이것이 나를 위기에서 구해 내줄 터.
우웅ㅡ
귀환석을 쥐고 있는 손의 힘을 꽉 주자 돌에서는 파란빛이 영롱이 뿜어져 나왔다.
“크아앙……?”
-이것은?
나는 찬찬히 위를 올려다본다.
“떨어지지 않게 꽉 잡아.”
그 말에 다크 울프가 내 머리를 물었다.
“아씨…….”
그냥 네 발로 잡고 있으면 될 것을.
팔을 물었을 때처럼 딱히 아프진 않지만 녀석의 침 때문인지 머리가 축축한 느낌이 든다.
‘아…… 괜히 머리에 올려 뒀나.’
곧 균열이 강하게 끌어당겨 온다.
나는 힘에 몸을 맡기며 어둠이 가득한 차원으로 빨려 들어갔다.
잠시 후…….
곧 시야로 보이는 환한 빛에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 * *
귓가에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유희는 중상을 입은 등반자를 안타까운 눈으로 쳐다봤다.
“허억. 허끄윽…….”
그를 살리고 싶었지만 구하기에는 너무 늦어 버렸다.
“미안해요.”
고개를 숙여 미리 애도를 표한 그녀가 자리에서 일어난다.
“케엑!”
그리고 수풀에서 튀어나온 코볼트를 재빠르게 낚아채 방패로 짓이겨 버린다.
그 과정에 피가 얼굴에 튀었으나, 그다지 신경을 쓰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내 근처서 서성이던 그림자가 그녀에게 다가온다.
“유희 씨. 주변 정리는 다 끝냈습니다.”
“수고했어요. 성태 씨.”
2층에서 뒤늦게 합류한 하성태가 머리를 긁적이며 뒤를 흘깃 쳐다봤다.
어떤 여자가 자신의 몸집만 한 책을 짊어지고 뛰어온다.
“언니!”
3층으로 올라가는 도중에 만난 등반자 박자린은 유희를 친근하게 언니라 부르며 그녀에게 다가섰다.
“언니! 곧 있으면 끝날 거 같아요!”
“뭐가?”
“서바이벌이요!”
그녀의 말에 유희는 남은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00:01:16]
“정말이네.”
수풀만 가득한 이 숲에서 살아남은 지도 벌써 하루는 꼬박 넘었다.
대체 언제 끝나나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드디어 막을 내리려고 하고 있었다.
얼마 안 가, 그녀 앞으로 메시지가 올라왔다.
[서바이벌이 종료됩니다.]
[코볼트를 가장 많이 처치하였습니다.]
[함정을 가장 많이 파괴하였습니다.]
[숨겨진 보스를 홀로 처치하였습니다.]
[이에 따른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후~”
유희는 나지막이 숨을 토해 냈다.
그리고 묶어 뒀던 머리를 풀어헤쳤다.
땀을 얼마나 많이 흘렸는지 땀방울이 사방으로 튄다.
“고생 많았어요. 언니.”
“아냐. 다들 고생했지.”
유희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박자린을 다독이며 그간 보이지 않았던 계단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을 지켜봤다.
드디어 올라가는 길이 생겨났다.
설마 3층에 도달하는 데, 이리도 오래 걸릴 줄이야.
그녀가 먼저 계단을 향해 발을 내뻗는다.
이어서 하성태와 박자린도 뒤를 따랐다.
지금쯤 준석은 무얼 하고 있을까?
유희는 먼저 올라간 친구 녀석을 떠올리며 하염없이 계단을 올랐다.
그리고 끝에 이른 순간, 다음 무대로 이동됐다.
“들판?”
3층은 시원하게 뻥 뚫린 들판 길이 펼쳐져 있었다.
저 멀리는 큰 마을도 보인다.
하나, 그녀의 시선은 금방 다른 곳을 향했다.
바닥에 힘없이 주저앉아 있는 한 남자.
고개를 숙이고 있어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어딘가 낯이 익었다.
“……이준석?”
목소리에 반응하듯 남자가 고개를 치켜든다.
상태가 엉망이었지만 분명 그 녀석이었다.
자신에게 하나뿐인 베프, 이준석.
그는 자신을 보더니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기어가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왔냐.”
들려온 목소리에 그녀도 같이 웃었다.
짧은 한마디일 뿐이었지만 그만큼 반가운 한마디도 없을 것이다.
* * *
나는 2층에서 막 올라온 유희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그새 많은 변화를 겪었는지 용모만이 아니라 입고 있는 옷도 바뀌었다.
전에는 무거워서 입지 못했다고 했던 갑옷이었다.
그리고 얼굴은 크게 바뀐 건 없지만 뭐랄까…… 곱상함에서 조금 더 거칠어진 느낌이랄까?
이제 나름 탑의 등반자 같았다.
곧 가까이 다가온 유희가 양 허리에 팔을 걸친 채로 입을 뗀다.
“야. 넌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몸이 그 모양이야? 아주 피떡이 됐네. 피떡이 됐어.”
“그런 일이 좀 있었어.”
말은 그리해도 걱정이 됐는지 내 몸 여기저기를 살펴본다.
“야야. 괜찮아. 괜찮다니까?”
“씁! 가만히 있어 봐.”
“아악!”
등짝까지 때려 가며 기어코 몸 상태를 체크한다.
‘이럴 때 보면 꼭 하는 짓이 엄마 같다니까.’
“상처가 안 난 데가 없네. 기다려 봐. 얕은 상처들은 내가 치료해 줄게.”
“뭐?”
“가만히.”
“어, 어.”
언제 배웠는지 몰라도 유희는 신성력을 이용해서 내 몸을 치료하고 있었다.
긁히고 베인 상처들이 아물어 간다. 그리고 약간이지만 피로감이 덜어진 기분이 들었다.
“너 언제 힐을 배웠냐. 것보다 신성력을 다루는 게 좀 익숙해졌네.”
“힐은 2층 보상으로 받은 거야. 신성력은 계속 컨트롤 연습하다 보니 뭐…… 이 정도는 기본으로 해. 그보다 어때? 몸은 움직일 만해?”
나는 몸을 일으켜 세워, 팔다리를 움직여 봤다.
“그럭저럭.”
그런데 아까 전부터 나를 쳐다보고 있는 저 여자는 누굴까?
나는 유희 뒤에 서 있는 여자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저쪽은 누구?”
“아! 소개가 늦었네. 이쪽은 박자린. 자린아. 인사해. 이쪽은 내가 말했던 친구. 이준석.”
160센티 정도 되는 조그만 키에 자기 몸집만 한 책을 지닌 그녀가 천천히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박자린이라고 해요. 언니한테 말씀은 많이 들었어요.”
서로 말을 놓은 걸 보니 하루 이틀 사이 꽤 친해졌나 보다.
“이준석입니다.”
“자린이는 버프를 주는 서폿 계열이야. 그래서 오는 길에도 도움이 많이 됐어.”
“그래?”
서로의 포지션이 겹치지 않는다는 건 좋은 일이다.
물론 포지션이 겹쳐서 좋은 일도 있긴 하지만 대체적으론 겹치지 않는 것이 시너지 효과가 컸다.
그리고…… 아직 인사를 하지 못한 녀석이 한 명 더 있었다.
“넌 어디를 갔다가 이제야 나타나?”
“하하…… 형님, 그게…….”
하성태는 그동안 어디서 뭘 했는지 자초지종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결론은 2층에 몇 없는 함정에 걸려들어 길을 헤매다 뒤늦게 합류한 것이었다.
“그래도 재주껏 잘 빠져나왔네? 걸린 함정이 꽤 깊었을 텐데.”
“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죽는 줄 알았습니다.”
“이미 죽은 놈이 뭘 더 죽어.”
“형님! 제가 비록 뱀파이어가 되긴 했어도 마음만은 살아 있는 휴먼입니다! 그것만은 알아주십쇼!”
“죽었더니 개그까지 늘었어? 아주 쇼를 한다.”
“쇼라뇨. 형님. 너무합니다!”
눈물 흘리는 흉내를 내는 그를 보며 나는 피식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래도 다시 보니 조금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런데 준석아. 너 머리 위에 있는 건 뭐야?”
“아, 이거. 늑대 새끼.”
“늑대 새끼?”
나는 머리 위에 있던 다크 울프를 가슴 아래로 내려 상태를 체크했다.
“그앙…….”
지금도 여전히 의식이 없다.
원인은 자세히 모르겠으나, 아무래도 이동 멀미를 하고 있는 것 같았다.
물론 신수가 멀미를 한다는 얘기를 들어 본 적은 없지만 말이다.
“야. 이준석!”
“어, 어.”
“물었잖아. 소환수냐고.”
“뭐. 그거랑 비슷한 거지.”
녀석이 신수라는 것은 말하지 않았다.
주위에 유희만 있다면 모를까.
다른 사람들도 있으니 입조심을 해야 했다.
만일 녀석이 신수라는 게 입 밖으로 새어 나간다면 추후 신수를 노리는 놈들이 따라붙을 수도 있었다.
“근데 진짜 귀엽다……. 나 한 번만 만져 봐도 돼?”
“아, 뭐…….”
나는 녀석을 유희에게 넘기려다가 이내 다시 손을 되돌렸다.
“야. 뭐야? 왜 갑자기 건네주려다가 말아.”
“아니, 아무래도 안 될 거 같아서.”
“안 된다니. 그게 무슨 소리야?”
순간 건네는데 녀석이 무의식중에도 몸을 바들바들 떨어 댔다.
아마 상성상 거부감을 느끼는 것일 터.
“얘 속성이 어둠이거든.”
“그거랑 만지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상관있지. 넌 신성력을 가지고 있잖아.”
“아…….”
유희는 굉장히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람들이 이 녀석에 대해 더 묻기 전에 주제를 바꿔 미션 얘기를 꺼냈다.
“김유희. 하성태. 3층 미션이 뭔지는 확인했어?”
“응.”
“예. 확인했습니다.”
“힝…… 여기 저도 있는데.”
“저기 보이는 안개 낀 마을을 함락시키면 미션 진행은 끝이야. 이미 미션은 상당히 진행이 됐고. 그래도 아주 늦지는 않았으니까 조금이라도 보상을 받고 싶으면 빨리 움직여야 돼. 안내는 내가 할 테니까 따라와.”
원래는 조금 쉬었다가 움직이려고 했지만 유희 덕분에 그럴 필요가 없게 됐다.
나는 일행들을 데리고서 곧장 오르크 마을로 향했다.
어느덧 정문 앞이다.
나는 진입하기 직전, 뒤따라오는 일행들을 멈춰 세웠다.
“여기서 잠깐만 기다려.”
“뭐 하려고?”
나는 앞으로 나서려는 유희에게 손을 뻗어 제지한 후 홀로 마을 안으로 들어갔다.
이대로 일행들을 입장시키게 되면 백 퍼센트 확률로 레드 포그 독에 중독이 된다.
중독이 되지 않으려면 둘 중 하나를 해야 하는데…….
오크의 심장을 먹거나 아님 레드 포그를 없애는 것이다.
그리고 그 레드 포그를 없애는 방법은 곳곳에 숨겨져 있는 유지 장치를 파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선택 미션으로 받았던 보상.
나는 그것을 꺼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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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 구슬
내용: 매우 불길한 기운을 품고 있다.
효과: 악(惡) 기운 흡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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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 전에도 몇 층에서 발견됐는지, 그리고 어떻게 얻어 낸 것인지 항상 출처가 불분명했던 아이템.
악재 구슬.
이것을 여기서 얻은 것은 뜻밖의 행운이었다.
“덕분에 일이 쉽게 풀리게 됐어.”
곧 악 기운의 냄새를 맡은 구슬이 붉게 타올랐다.
치이익…….
구슬이 빨갛게 달아올라, 손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지만 상관없었다.
구슬 속에서 불꽃이 소용돌이친다.
그 한가운데는 검은 덩어리가 생겨 불꽃에 섞여 들었다.
회오오ㅡ
고요하게 시작된 폭풍은 점차 커져 마을을 뒤덮는다.
이윽고.
마을을 뒤덮은 폭풍이 붉은 안개를 움직였다.
화아아아악!
구슬은 모든 것을 빨아들일 기세로 악 기운이 넘치는 안개를 차례로 빨아들여 나갔다.
안개에 가려졌던 마을이 서서히 드러남에 따라, 그동안 마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는지 그 진풍경이 드러났다.
그리고 업적 메시지도 함께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