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23화
23화 돌발 이벤트 (2)
구아아아ㅡ!
절규 어린 혼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전운에 감도는 기운은 오직 절망과 공포뿐.
어둠에 집어삼켜진 영혼들이 벗어나 보려고 온갖 발악을 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하지만 반지에서 뻗어 나온 어둠을 이겨 내기엔 역부족이었다.
영혼들은 마치 감옥에 끌려 들어가는 죄수들처럼 반지에 빨려 들어갔다.
휘오오오!
휘몰아치는 소용돌이.
검은 소용돌이 중심에 서 있는 나는 몸의 중심을 잡으며 정신을 바짝 부여잡았다.
영혼들을 흡수하는 것은 반지였지만 최종적으로 반지를 통제하는 것은 나였다.
만일 반지를 통제하는 내가 정신력에서 밀린다면 더 이상 나는 내가 아니게 될 것이다.
어느덧 수십의 영혼이 빨려 들어갔다.
아직까지는 통제하기가 수월했다.
그러나 절반쯤 흡수했을 때쯤, 슬슬 한계가 오기 시작했다.
[커져 가는 반지의 힘을 버텨 내기에 정신력이 부족합니다!]
[커져 가는 반지의 힘을 버텨 내기에 정신력이 부족합니다!]
[커져 가는 반지의 힘을 버텨 내기에 정신력이 부족합니다!]
…….
손끝에서부터 느껴져 오는 저릿함.
서서히 고통이 엄습해 온다.
그것이 온몸으로 퍼져 나갔다.
“크윽!”
어느덧 머릿속까지 침투해 온 고통은, 반지에서 나온 어둠이 만들어 낸 고통이었다.
수시로 내 정신을 갉아먹으려고 하고 있었다.
[어둠에 정신이 침식되어갑니다!]
반지는 날 이겼을 것이라 확신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크나큰 착각이었다.
백을 가뿐히 넘어선 정신력은 쉽사리 어둠을 들여보내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위험한 도박을 대비 하나 없이 했을까?
무리다 싶으면 영혼들의 흡수를 그만두면 되었다.
물론 한번 시작된 흡수를 멈추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도 아니었다.
아예 반지를 빼 버리면 되니까.
그럼 아까운 영혼들을 상당수 잃게 되겠지만 통제권을 다시 되찾을 수는 있었다.
어지러웠다.
시야는 흐릿했다.
“큭…….”
생각한 것보다 흡수한 영혼들의 힘이 강력했다.
오크의 선조들 힘을 너무 무시한 탓일까?
‘더는 안 돼…….’
머릿속으로는 이미 안 된다고 외치고 있었지만 나는 나를 더 궁지로 몰아붙였다.
간당간당할 때까지.
그 순간.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정신력이 올랐습니다!]
…….
…….
정신력이 한계점을 넘어서며 급성장을 하고 있었다.
어둠이 드리워, 과부하가 걸렸던 머리는 점차 가벼워져 가는 느낌이다.
묘한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보통은 노력에 의해서 오르는 능력치는 이렇게 비약적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오히려 능력치는 아이템이나 비약 혹은 칭호 같은 걸로 도움을 받아 올리는 것이 훨씬 더 쉬웠다.
그러나 그런 능력치 상승에도 꼼수는 존재했다.
아니, 꼼수라기보다 일종의 도박이라고 해야 할까.
가지고 있는 해당 능력의 한계를 최대한 끌어 올려 위기 상황에 직면하면 됐다.
그리하여 일정 한계점을 넘어서면 둘 중 한 가지 결과가 나온다.
해당 능력이 대폭 상승하거나 아님 그대로 무너지거나.
‘무모한 방법이긴 하지만…… 이보다 확실하게 올리는 건 없지.’
계속해서 오르던 정신력은 거의 삼십 가까이 상승하고 나서야 멈추었다.
덕분에 여유가 생겼다.
머릿속으로 침투해 오던 어둠을 몰아냈고, 반지에 대한 통제권도 다시 되찾아왔다.
“후~”
나는 참았던 숨을 내쉬곤 다시 정신을 집중했다.
여유가 생겼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이 아니었다.
항상 갈무리가 중요한 법이다.
우우웅ㅡ
수백의 영혼을 모두 흡수한 반지가 만족스러움을 드러내듯 강하게 진동을 일으켰다.
그리고 박혀 있는 검은 보석에서 음울함이 섞인 탁한 회색빛이 감돌았다.
[어둠의 반지에 변화가 생깁니다.]
[어둠의 반지 효과에 어둠 지배력이 추가됩니다.]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반지에 각인된 스킬의 일부를 습득합니다.]
[다크소울(Lv1)을 배웠습니다.]
새로 개방된 힘인 어둠 지배력과 다크소울, 두 개 모두 내게 필요한 필수 능력들이었다.
어둠 지배력은 주변의 어둠을 끌어와 어둠 속성 마법의 힘을 증폭시키거나, 말 그대로 어둠을 조종할 수 있는 힘이었다.
현재는 어둠 지배력이 낮아 기껏해야 마법의 힘을 살짝 증폭시키는 정도일 것이다.
어둠을 조종하는 능력도 반경 2미터 이내도 되지 않을 터.
다만 다크소울은 달랐다.
필살기 하나를 얻어 낸 셈이었다.
다크소울은 반지에 깃든 영혼들의 힘을 내 몸에 강제로 끌어와 사용하는 스킬이었다.
엄청난 정신력과 상당한 양의 마나가 요구되지만 그만큼 강력함이 따라왔다.
앞으로 예상치 못한 위험이 닥치면 이 스킬이 큰 힘이 되어 줄 것이다.
“쿠하아아!”
그때 눈앞에서 분노하는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니 내가 밀쳐 냈던 오크 주술사가 자기 가슴팍을 주먹으로 때리고 있었다.
“취익! 감히 신성한 제사장에 행패를 부린 것도 모자라! 우리 조상들의 혼을 무참히 유린하다니! 용서할 수 없다!”
오크 주술사가 지팡이를 들어 주술을 사용했다.
삐이이이ㅡ!
갑자기 피리랑 비슷한 소리가 마을에 울려 퍼졌다.
그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귀가 아플 정도였다.
나는 곧바로 마법을 시전했다.
주변은 온통 새카만 어둠.
그것이 반지 능력의 발동 조건을 충족시켜 주었다.
[어둠의 반지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고속캐스팅’이 발동합니다!]
다크볼트.
파직!
파직!
연달아 시전이 된 두 개의 구체를 녀석에게 날려 보냈다.
그러나 오크 주술사는 이미 그 자리를 벗어난 상태였다.
이전의 움직임과는 달라진 모습에 어떤 주술을 사용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몸에 보랏빛 기운을 둘렀어. 일시적으로 민첩에 몰빵한 건가.’
녀석은 소환 의식과 저주, 그리고 모든 능력치를 하나의 능력치에 올인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마지막 능력은 가히 사기적이라 할 수 있지만 크나큰 단점도 존재했다.
콰강! 쾅! 쾅!
나는 속도전을 펼치듯 시전한 다크볼트를 계속 퍼부었다.
그리고.
“취하악. 취하악…….”
쥐새끼처럼 도망을 치던 오크 주술사는 몇 초도 가지 않아 지쳐서 숨을 헐떡댔다.
모든 능력치를 민첩으로 돌렸다는 건 체력이 쓰레기가 됐다는 뜻.
나는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녀석에게 다가가 시커멓게 물든 검을 소환했다.
“취익! 살, 살려……!”
서걱!
녀석의 목을 베곤 제사장 주변을 돌아보았다.
여기저기서 붉은빛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녀석이 죽기 직전에 냈던 피리음이 오크들을 불러들인 것이었다.
‘목적은 달성했다.’
녀석들을 상대치 않고 조용히 빠져도 상관이 없었다.
하나, 다가오는 오크들의 계급장을 보니 생각이 바뀌었다.
일부 몇 마리가 어금니 증표 소유자이다.
“증표가 있는데 그냥 갈 수야 없지.”
그중에도 꽤 강력한 놈들이 보였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어둠이 깔린 지금이라면 승기를 잡고 있는 것은 나였다.
* * *
주안나는 준석이 사라진 곳을 멀뚱히 쳐다봤다.
“…….”
이내 정문을 벗어나 후문으로 향하는 그녀.
병력이 적은 정문과 달리 후문에는 오크들이 잔뜩 있었다.
주안나는 무심한 눈길로 입구에 서 있는 오크들 숫자를 헤아린다.
그러고는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을 아래로 늘어뜨리며 힘찬 움직임으로 땅을 박차기 시작했다.
“취익! 침입자다!”
쩌저적!
순식간에 적진 안으로 파고들어 적들을 얼어 버렸다.
주안나는 적들이 뒤쫓지 못하게 바닥에 얼음으로 선을 긋고 부서진 잔해 속으로 숨어들었다.
이후 마을의 음식을 찾고 다녔다.
꼬르륵.
그녀가 얼굴을 붉힌다.
밤새 굶주렸던 배를 손으로 문지르곤 다시 음식을 찾아 나선다.
하지만 근처에서는 발견하지 못하니 조금 더 안쪽으로 파고들었다.
중앙에 이르자 경계를 서고 있는 오크들이 늘었다.
그러나 건물들을 뒤져 겨우 음식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그녀는 눈을 빛내며 그렇게 하나씩 찾아 나갔다.
직후, 몇 시간이 흘렀다.
혼자서 일주일은 먹을 수 있는 양을 챙긴 그녀가 아공간에 담긴 음식을 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그러다 시야에 올라온 메시지를 보곤 두 눈을 찡그렸다.
[돌발 이벤트가 발생합니다!]
[오크 주술사가 선조들의 힘을 끌어오려고 하고 있습니다. 오크 주술사가 힘을 끌어오지 못하게 막으십시오!]
‘돌발 이벤트……?’
미션이 아닌 이벤트가 발생한 것은 처음이지만 그녀의 머릿속 생각은 하나로 귀결됐다.
보상.
‘기회야. 찾자.’
하지만 이 넓은 마을에서 오크 주술사 한 놈을 찾기는 어려웠다.
그녀는 길 잃은 나그네처럼, 혼자서 헤매고 또 헤맸다.
콰아앙!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렸다.
‘저기다.’
주안나는 본능적으로 소리를 쫓았다.
그리고 발견했다.
전투의 현장을.
콰앙! 콰광!
수많은 오크들에게 둘러싸여 전투를 치르고 있는 한 남자.
그는 숫자에서 압도적으로 밀리고 있었다.
‘이준석.’
주안나는 망설일 것 없이 뛰쳐나가 전투에 참여했다.
“취익!”
서걱! 서걱!
하나둘 정리해 나간다.
하지만 그녀는 곧 그가 도움이 필요치 않다는 걸 깨달았다.
안수찬도 하나를 잡는 데 고생했던 증표를 가진 오크들을 상대로 전혀 밀리지 않고 있었다.
‘증표 가진 놈이 열 놈이 넘어.’
금방 그 인원들을 잡아낸 그는 여유로운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더니 이내 자리를 벗어났다.
‘오크들이 남았는데…….’
그보다 상황을 보아하니 이벤트는 이미 종결이 된 것 같았다.
할 일이 없어진 주안나는 그의 뒤를 쫓았다.
끝내 도달한 정문.
앞서가던 준석은 성벽 위를 힐끔 보더니 지면을 세게 박찼다.
쿵!
“!?”
단숨에 날아올라, 성벽 너머로 사라지는 그의 모습을 본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더니 이내 좋은 아이디어를 떠올린 듯 토끼 눈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뜬다.
혹 결연한 의지가 엿보였다.
탓!
도약을 시도하는 그녀.
그의 점프력에 비하면 약한 도약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벽의 중간 지점까지는 도약하는 데 성공했다.
도중.
쩌저적!
성벽에 검을 내리찍어 중심을 잡은 그녀가 검을 지지대 삼아 다시 한번 더 위로 도약을 시도한다.
그처럼 한 번에는 도약하지는 못했어도 두 번의 도약으로 성벽을 넘는 데 성공한 그녀는 벽 너머를 넘어온 뒤 흐뭇함에 입을 벌렸다.
그러고는 이미 저 멀리 가 버린 그의 흔적을 쫓아 고개를 치켜들었다.
꽈악…….
그녀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얼핏 투지 혹은 집착과 비슷한 눈빛으로 그가 사라져 가는 걸 지켜볼 뿐이었다.
* * *
해가 뜬 오후.
준석은 뒤에서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주안나를 힐끗 쳐다봤다.
‘음…… 새벽에 자기를 버리고 갔다고 삐진 건가?’
아님 저렇게 자신을 째려보고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의 시선이 따갑긴 했으나 애써 모른 척하고 있었다.
괜히 건드려 봐야 좋을 것이 하나도 없으니까.
그보다 오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다.
배고픔에 굶주렸던 등반자들은 하이에나 무리가 된 것같이 단체로 마을에 쳐들어갔다.
대비도 없이 가면 피해만 생길 뿐이지만 이번은 달랐다.
본능적인 움직임 때문이었는지 크게 승리를 맛보고 온 등반자들이 기쁨을 즐기고 있었다.
“그 도중에 나타난 수장 놈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마을을 전부 함락했을걸? 안 그래?”
“하하하! 맞지! 근데 그 수장 놈은 대체 어떻게 정리하지? 보니까 존나 강하던데.”
“수장과 같이 다니는 놈들도 장난 아니었어. 괴물 녀석들.”
“됐어! 지금은 그냥 그런 거 다 잊고 먹는 데만 집중하자고! 어제 하루 종일 굶었잖아!”
“그래그래! 그런 건 나중에 신경 쓰자고!”
거진 축제 분위기 현장이었다.
가끔은 이런 분위기 전환도 필요하기에 그리 나쁜 행동들은 아니었다.
다만 너무 승리에 취해 있다 보면 오히려 그것은 독이 될 수 있다.
준석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자신과 함께하는 동료 중에는 그런 동료가 없는 것 같으니까.
새벽에 열심히 달리고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는 주안나와 그리고 밤사이 벌어진 일들을 뒤늦게 듣곤 뒤처질 수 없다며 마을에 가 버린 안수찬까지.
둘 다 자기들 나름대로 자아 도취하지 않고 발전을 도모하고 있었다.
그리고 준석은 때를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새벽에 무리한 것도 있고, 피곤함을 없애기 위한 것도 있었다.
하나, 그 휴식도 얼마 가지 않아 깨져 버렸다.
[오르크 대마을의 절반 이상이 함락되었습니다!]
[오크들의 사기와 분노가 올라갑니다!]
[오크들의 저항이 더욱 거세집니다!]
[돌발 미션이 발생합니다!]
[오크 마법사들이 작당을 모의해 커다란 재앙을 준비합니다.]
[그들을 찾아 곧 있음 닥칠 재앙을 저지하십시오.]
[남은 시간: 02: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