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8화
18화 3층 (2)
포탈을 타고 다음 층으로 올라온 등반자들이 소환 장소에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다들 새로운 미션을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건만.
단 한 명만은 무언가를 찾듯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다.
“안 보이네.”
아무리 둘러봐도 보이질 않았다.
이 층에 먼저 올라와 있던 준석은 포탈을 타고 올라오는 이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을 확인하곤 다른 가능성을 떠올렸다.
“설마. 계단을 선택한 거야?”
유희가 이 자리에 없다는 것은 둘 중에 한가지였다.
2층에서 죽었거나 아님 포탈 대신 계단을 선택했거나.
하지만 죽지 않았음은 확신할 수가 있었다.
만일 유희가 죽었다면 기여도 순위가 공개되었을 때 순위권에 들었다 할지라도 명단에서 배제되었을 것이다.
여전히 보이지 않는 하성태 역시 명단에는 있었으니 살아 있기는 마찬가지.
하지만 의외였다.
“포탈로 올 줄 알았더니.”
개인적인 심경의 변화가 있었는지 아님 원래 그러려고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는 그 선택을 존중했다.
탑을 어떻게 오를지는 자기 자신이 선택을 하는 것이니까.
일행들 찾는 걸 포기한 준석은 이내 다른 등반자들을 쳐다봤다.
‘포탈을 타고 올라온 인원은 대략 이백 명. 계단을 택한 이들이 얼마나 될지는 몰라도 얼추 삼백은 되겠군.’
이지 난이도 때와 비교하면 한 백여 명 정도가 부족했다.
그러나 현재 난이도를 생각했을 때 이 정도도 많이 살아남은 것이었다.
‘그렇담, 이삼백 명 정도 되는 인원으로 천 마리가 넘는 오크들을 상대해야 하는 건가?’
오르크가 대마을이라 불리는 이유.
끽해야 수십 마리쯤 있던 작은 마을들과는 다르게 최소 천은 넘는 병력이 있었다.
‘그것도 최소로 잰 수치야. 증표를 보면 상대해야 될 숫자가 더 많아졌을 거고 일부는 전투력도 세졌을 거야.’
이런 상황에서 등반자들이 각자도생을 해 버리는 상황이 나온다면 2층에서 절반 이상이 죽어 버리는 최악의 상황이 나올 수도 있었다.
거스 마을만 남겨 둔 채 나머지 마을들을 모조리 태워 버린 것은 잘한 선택이었다.
최대한 많은 등반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 결집력을 만들기도 좋고 합을 맞추기도 쉽다.
되레 반대로 분란이 더 크게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지만 각자 마을에 흩어지는 것보다는 그것이 낫다는 판단이었다.
잠시 후.
미션을 확인한 등반자들이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
기존에 그룹이 있던 사람들은 새로운 협력자들을 구하러 나섰고.
그룹이 없던 사람들 또한 기존에 있던 그룹에 들어가기 위해서 행동하거나 자신이 새로운 그룹을 만들어 냈다.
하지만 언제나 사람들 틈에 섞이지 못하고 밖을 나도는 이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스무 명 정도 되는 인원이 눈에 띄었다.
스스로가 그렇게 되길 원한 이들도 있었지만 대다수는 강제로 고립당해 아웃사이더가 된 이들이었다.
어찌 보면 당장에 같이할 일행이 없는 자신 또한 아웃사이더에 속했다.
준석은 상황을 지켜보며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그룹을 주목했다.
머리를 노랗게 염색한 청년 리더가 있는 그룹이 현재로서 가장 규모가 컸다.
포탈을 타고 온 인원의 삼 분의 일가량이 저 청년이 있는 그룹에 들어간 상황이다.
저렇게 많은 인원을 이끄는 리더라면 회귀 전에도 그 이름을 어디선가 들어 봤을 터.
그의 이름은 엿들어서 금방 알 수 있었다.
‘박영수라…….’
아무리 생각해 봐도 들어 보지 못한 이름이다.
그렇다는 것은 층을 오르는 도중에 쥐도 새도 모르게 죽었거나 추후 특출 난 점이 부각되지 않아 유명세를 떨치지 못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딱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군.’
박영수가 이끄는 그룹이 움직임을 보였다.
가는 방향을 보니 작은 마을들이 있는 쪽이었다.
아무래도 대마을에는 바로 갈 생각이 없는 듯했다.
현명한 판단이다.
현재, 대다수의 등반자들은 지쳐 있었다.
이곳에 올라오기 전까지 계속해서 전투를 치렀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하지만 하나라도 더 이득을 취하기 위해서 곧바로 대마을로 향하는 이들도 있었다.
무모하지만 성공하면 다른 이들보다 앞서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그런데. 아까 전부터 몇몇 그룹들이 자신을 흘겨보고 있었다.
그중 한 그룹이 가까이 접근해 왔다.
“안녕하십니까. 등반자님.”
준석은 그가 무슨 말을 해 올지 대충 짐작은 가지만 일단은 대응해 줬다.
“예. 용건이 뭡니까?”
“아, 예. 다른 게 아니고 저희와 함께 다니는 건 어떻습니까? 등반자님이 2층에서 활약하신 건 다 봤습니다. 한꺼번에 몹을 쓸어버리는…….”
“거절하겠습니다.”
단칼에 거절하자 사내는 살짝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잠깐만, 그러지 마시고……. 보다시피 인원은 적지만 하나하나 정예로만 꾸렸습니다. 다들 코볼트 좀비는 혼자서 수십 마리도 거뜬히 잡을 수 있죠. 물론 등반자님이 오시면 저희를 이끌 수 있는 리더 직도 넘겨 드릴 수 있습니다. 이 정도면 만족하실 거 같은데……?”
숫자는 일곱 명.
그가 말한 대로 저들 모두가 일당백 역할을 한다면 꽤 괜찮은 그룹임은 자명했다.
하지만 준석은 다시 한번 거절 의사를 밝혔다.
“아니! 이 정도면 꽤 괜찮은 그룹인데, 왜 거절하시는 겁니까!?”
“그야 내가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서.”
“예……? 원하는 사람이 아니라니. 그게 무슨…….”
사내는 살짝 빈정이 상한 듯 금세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쪽이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혼자서 하는 건 한계가 있을 텐데요.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죠. 괜히 나중에 가서 후회하지 마시고.”
“후회할 일 없을 것 같은데. 지금도, 나중에도.”
“하아~ 씨…… 진짜…… 좋게 말하니까 자기가 뭐라도 된 줄 아나.”
일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지 않자 본색을 드러낸다.
“두고 봐. 그쪽이 언제까지 그럴 수 있나 지켜볼 거야.”
뒤에 서 있는 일행들도 각자 그에게 경고의 제스처를 날렸다.
준석은 그들의 뒷모습을 흘겨보며 비웃었다.
‘병신들.’
정말로 뭐라도 된 줄 아는 건 저들이다.
이미 자신들을 소수정예라 표현하는 것도 그렇고.
남들이 그룹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추후 후회를 한다거나 거들먹거리는 것이 이미 몸에 배어 있었다.
그런 놈들에겐 애초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좋았다.
어차피 위로 올라가면 대다수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을 조무래기 놈들이다.
이후에도 준석은 여기저기서 들어와달라는 제의를 받았지만 전부 거절했다.
그의 관심은 오직 아웃사이더 진영에 서 있는 한 남자에게 가있었다.
똑같이 여기저기서 들어와 달라는 제의를 받고 있지만 거절하고 있는 등반자 안수찬.
그는 탑을 올라갈수록 점점 엄청난 재능을 보이며 층의 거의 끝자락까지 올라간 자였다.
다른 자들과 다르게 탄탄한 미래가 보장되어있었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준석은 그를 자신의 동료로 삼고 싶었다.
이미 동료 하나에 부하같은 동료 하나, 둘을 데리고 있기는 하지만 사람의 인연이란 게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다.
지금도 그렇듯이 각자의 선택으로 흩어진 상황이지 않는가?
그것이 좋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때론 혼자서 움직여야 할 수 있는 것이 있고 성장을 하기도 하니까.
아무튼. 지난 30년동안 깨달은 점이 있다면 탑을 오르며 괜찮은 인연을 최대한 많이 만들어두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회귀 전에는 그리 하지 못해 손해를 보는 일이 많았다.
그리고 층의 정상에서 혼자 남은 것도 인연을 쌓지 않았기에, 한계에 부딪혀 있는 사람들을 이끌어주지 않았기에 생긴 일이었다.
물론 그렇다고 아무나 인연을 쌓을 생각은 없었다.
그에게 유희야 챙겨야 될 가족 같은 친구 중에 하나이고, 우연히 꼬여든 하성태는 말그대로 우연히 꼬여들었을 뿐이다.
그가 원하는 동료나 인연은.
조금만 이끌어주면 마지막층까지 도달할 가능성이 있는 자들. 그러면서 도중에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자들.
생존력이 강하고 임기응변이 능한 자들.
이것에 부합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안수찬 저 남자, 동료를 만들지 않고 혼자 다니기로 유명했지. 아마.’
한때 그는 솔로 등반자라고도 불렸다.
실제로 그렇게 부른 사람들은 하나같이 뚝배기가 깨져나갔지만.
‘음?’
그런데 그런 그 곁에 누군가가 붙어있다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여태까지는 그의 등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다.
안수찬은 어떤 여자와 익숙하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언제부터 일행이 있었던 거지? 그래서 앞서 제의들을 거절한 건가?’
그보다 동료를 만들지 않는 편으로 알고 있는데.
소문이 잘못된 것일까?
아니었다.
그렇다면 이전에는 주변에 동료를 두었다는 건데.
일행이 있는 건 의외이긴 했으나, 그에게는 크게 상관없었다.
대화를 하는데 걸림돌이 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결정을 내린 준석은 곧장 그가 있는 곳으로 이동했다.
한데. 준석이 먼저 말을 걸기 전에 안수찬이 먼저 그를 보고 아는 체를 해왔다.
“어, 준석 씨!”
안수찬이 다가오더니 말을 잇는다.
“미션이 끝나고 코빼기도 안 보이시길래 어디갔나 했는데. 여기에 계셨네요.”
‘당연하지. 먼저 올라와있었으니까.’
그는 자연스럽게 웃으며 대답했다.
“아마 포탈이 생기는대로 바로 넘어와서 못 본 걸겁니다.”
몇 시간 전에 이곳에 미리 올라와 있었다는 얘기는 굳이 하지 않았다.
아직은 신뢰를 쌓은 관계가 아니기도 하고, 앞으로의 계획을 옮기는 데 있어서도 불필요한 부분이었다.
“아. 그런가 보네요. 확실히 제가 좀 늦게 포탈이 있는 곳에 합류해서.”
이내 준석은 시선을 뒤로 돌렸다.
“으음. 근데 뒤에는 누구...?”
“아, 소개를 안 했구나. 이쪽은 주안나. 동네에서 알고 지내던 친한 동생이에요. 안나야. 인사드려. 내가 전에 말했던 그 사람이야.”
‘역시 그런 건가. 여기서 만난 게 아니라 탑에 들어오기 전부터 친했던 관계 인거야.’
그렇다면 이 상황들이 이해가 됐다.
‘그런데 왜 그에게 친한 동생이 있단 얘길 못 들었지?’
의문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녀의 이름을 들으니 누군가가 떠올랐다.
회귀 전에도 직접 얼굴을 본 적은 없지만 많이 들어봤던 이름 주안나.
얼음여왕이라 불리며 탑의 명성을 떨친 등반자이다.
‘그래. 들었던 생김새도 매우 비슷해.’
바로 떠올리지 못했던 건 지금의 모습이 소문의 얼음여왕과는 사뭇 달랐기 때문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채로 인사조차 건네기 어려워하는 걸 보면 매우 소극적인 성격이었다.
하지만 얼음여왕은 전혀 소극적이지 않았다.
“안나야.”
안수찬이 한 번 더 인사를 권해보지만 그녀는 더욱 그의 뒤에 숨어들었다.
“인사는 안 받아도 괜찮습니다.”
“하아~ 얘가 낯을 좀 많이 가려서 그렇지, 좋은 애입니다.”
‘분명히 그 여자는 맞아. 다만... 아직 내가 알던 얼음여왕은 아니군.’
일단 좋은 애라는 건 인정하지 못하겠다.
딱히 나쁜 짓을 벌였던 건 아니지만 적에게 꽤나 잔인한 성정을 지닌 여자로 알려져 있으니까.
그래도 안수찬과 주안나가 탑밖에서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다니.
뜻밖에 정보를 알게 됐다.
그리고 그 정보로 인해 한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둘의 소문이 안 났던 이유는 도중에 둘이 따로 다녀서인가. 그렇다면 둘 사이에 뭔 일이 있었군.’
이내 안수찬이 주변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다들 같이 다닐 사람을 구하느라 바빠 보이네요.”
“예. 미션이 대마을 하나를 함락시키라는 거니까 안전하게 최대한 숫자를 모으는 거겠죠. 그러고 보니 그쪽도 몇 번 제의를 받은 것 같던데.”
“아~ 그건 그냥 우연히 2층에서 절 좋게 본 분들이 있어서 그런 거고, 오히려 저보다 준석 씨가 제의를 더 많이 받은 거 아니에요?”
“뭐. 그래봐야 맘에 들지 않는 사람들 투성이라.”
안수찬은 동감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사실 찾아온 사람들이 그닥 썩 내키질 않았습니다. 이렇게 둘이 있는 게 편하기도 하고. 그러는 그쪽은 일행 없습니까? 앞으로 탑을 올라가려면 필요할 텐데.”
“있죠. 다만 아랫층에서 계단을 타고 올라는 바람에 아직 안 올라온 것 뿐입니다.”
“아... 그럼 여기서 동료들을 기다릴 생각입니까?”
“아뇨. 그냥 먼저 움직일 생각입니다. 언제 올라올지도 모르고.”
“그건 그렇네.”
잠깐 둘 사이에 침묵이 흘렀다.
준석은 생각했다.
말하려면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슬슬 본론을 꺼내들었다.
“음. 갑자기 뜬금없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안수찬 씨 혹시 내기 좋아합니까?”
“예....? 내기요?”
“네.”
“내기라…… 솔직히 안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전 좋아합니다. 가끔 여기 있는 안나랑도 하는 편이에요.”
“그럼 저랑 내기 하나 하는 거 어때요?”
“응? 무슨 내기를……?”
“3층 미션을 클리어했을 때 누가 더 많은 기여도를 챙겼는지, 실력을 겨루는 겁니다. 물론 누군가의 도움없이요. 그러면 의미가 없으니까. 그래서 공정성을 위해 이번 미션을 진행하는 동안에만 같이 다니는 겁니다.”
“오~ 그거 재밌겠네요? 근데 벌써부터 너무 이겼다는 표정을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이전 층들에서는 이미 이겼으니 자신이 없는 게 이상하죠.”
준석은 일부러 그를 자극했다.
그러자 안수찬의 얼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좋습니다. 마침 저도 그쪽 실력을 한번 보고 싶었던 참인데. 이참에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근데 내기하면 보상인데, 서로 뭘 걸까요.”
“탑을 오르다가, 딱 한 번에 한해서 어떤 도움이든 도움을 청하면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상대를 돕는 거 어떻습니까?”
“그거 좋네요. 그렇게 하시죠.”
준석은 이 내기를 말하기 전부터 그가 이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란 걸 확신했다.
다른 건 몰라도 안수찬은 내기를 좋아하고 승부욕이 강하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그것에 강한 집착을 보였었는데 준석은 그런 점을 이용한 것이다.
‘지금 당장에 동료로 만들 필요없어. 오히려 나한텐 이 정도 거리감으로 접근하는 게 딱 좋다. 그리고 이번층에서 같이 움직이면 충분히 안면도 쌓아놓겠지.’
그리고 내기에 이겨서 추후 그의 도움이 필요해질 때 이때 받은 보상을 유용히 써먹으면 됐다.
물론 지키지 않아도 되는 구두계약에 불과했지만 별로 걱정이 들지 않았다,
그는 다음 승부나 내기를 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말한 것을 이행하려고 들 테니까.
곧 안수찬이 망치를 어깨 위로 올렸다.
“내기를 시작했으니, 슬슬 움직여 볼까요. 근데 먼저 어디로 갈지는 정했습니까? 지역이 꽤 커 보이는데.”
준석은 손가락으로 저 멀리를 가리켰다.
오르크 대마을이었다.
“다른 건 별 볼일 없는 것 같고 함락시키라는 마을이 저긴 것 같은데. 저기로 바로 가죠.”
* * *
오르크 대마을에는 입구가 정문과 후문, 각각 한 개씩 존재한다.
3층 미션에 참가한 등반자들 중, 나름 선발대라 불리는 인원들이 모여 후문을 공략하기 시작했다.
후문 성벽 위를 지키고 있는 오크들이 적은 틈을 타서 노린 기습 공격이었지만 상황은 예측과 다르게 흘러갔다.
금방 뚫을 거라 생각했던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성벽의 문은 매우 견고했다.
선발대의 리더 오진후, 그는 자신의 오른팔 역할을 자처한 유덕진의 목을 조르며 소리쳤다.
“야! 너 성 덕후라며! 성에 대해서 잘 안다며!? 이 미친 새끼야! 저길 보라고! 어딜 봐서 문이 제일 약해!? 저리 때리는데 왜 안 부서지냐고!”
“그, 그게! 아무래도 문에 마법이 걸려 있어서…….”
“에이, 씨팔! 그런 것 정돈 미리 파악하고 있으라고!”
화를 못 이긴 오진후가 유덕진을 바닥에 내동댕이친다.
그러고는 다른 돌파구를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성벽 안으로 들어가는 방법은 세 가지.
성벽을 올라서 들어가거나, 성벽을 부수거나, 아님 성문을 부수는 것뿐이었다.
그것도 아님 비밀 통로를 찾아내 들어가야 하는데.
일행 중 한 명이 후문 근처를 다 돌아보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그런 곳은 찾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남은 선택권은 한 가지.
성벽을 부수거나 성벽을 올라야 했다.
하지만.
성벽을 부수자니 두께가 20미터도 넘어 동료들이 마법을 써도 살짝 흠집만 갈 뿐.
아무런 영향도 주지 못했다.
“흐미. 시발. 그럼 올라가는 것뿐인데. 올라가는 것도 문제인데, 저 위에 있는 병력은 어째?”
높이 30미터에 이르는 장벽을 올라서서, 서로 뭉쳐 있는 오크들을 상대해야만 한다.
결국.
“후퇴해! 당장 후퇴해!”
벌써 선발대 인원의 절반이 부상을 당하거나 일부는 죽임을 당했다.
이대로 있다가는 성벽 위에서 날아든 화살에 모조리 죽임을 당할 터.
도저히 타파할 방법이 없으니 일단은 물러서고 계획을 다시 세워야만 했다.
그런데 그때.
“어. 저놈들은 뭐야? 후퇴 안 하고 왜 반대로 들어가?”
남자 둘과 여자 한 명, 총 세 명이 후퇴는커녕 성문 쪽으로 돌파하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선발대 인원이 아니었다.
“저 사람은…….”
다른 얼굴은 몰라봤지만 맨 앞에 지팡이를 들고 있는 사내의 얼굴은 알고 있었다.
2층에서 큰 활약을 했던 남자.
그러나 눈에는 크게 띄지 않으려고 했던.
‘이름이 이준석이라고 했나…….’
여관에서 누군가가 얼핏 말하던 게 기억이 난다.
하나, 아무리 날고 기는 놈이라도 저 견고한 성벽을 뚫고 들어갈 수는 없을 터.
“겨우 셋이 뭘 하려고, 대체…….”
오진후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잠시 후 벌어진 광경은 그의 고정된 생각을 완전히 부숴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