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6화
16화 좀비 학살자
“후우~.”
지팡이에 흐르는 핏물을 바닥에 털어 내며 주위에 널브러진 시체를 둘러봤다.
“쯧쯧.”
왜 항상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하는 놈들이 나오는 건지.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에 고개를 저었다.
특히 마지막에 나보고 살려 달라고 말하던 여자.
날 두 번이나 죽이려고 해 놓고 뻔뻔하게 그런 말을 하다니.
예상은 했지만 저런 인간들에게 자비는 필요 없었다.
“살려 두면 또 같은 행동을 하려고 들겠지.”
대체로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금세 그들을 머릿속에서 지워 버리곤 다시 발길을 돌렸다.
“크엉!”
목적지에는 해당 층의 마지막 보스, 코볼트 스로우가 은코볼트들의 호위를 받고 있었다.
한데 그 호위 숫자가 이전에 비해 두 배는 많아 보였다.
총 여덟.
마법을 사용하면 녀석들을 금방 제거해 낼 수 있을 테지만 그것은 지금 불가능하니 직접 파고드는 수밖에 없었다.
사정거리 안으로 들어서자 적들의 시선이 이쪽을 향했다.
“커엉! 컹!”
먼저, 맨 앞에 서 있는 네 마리의 은코볼트가 달려들었다.
나름 포위망을 구축했지만 내 눈엔 어설펐다.
움직임이 가장 느린 한 녀석을 선택해, 가랑이 사이로 빠르게 지나친다.
그리고 나머지 녀석들과 마주했다.
뒤에 남아 있는 넷은 각자 들고 있는 철퇴 무기를 이용해 접근 자체를 막으려고 했다.
하지만 이는 전혀 좋은 방식이 아니었다.
자칫 잘못하면 서로의 공격이 엉클어질 수 있었다.
스윽! 촤르륵!
그저 둘이 서 있는 곳을 지나치려고 시도했을 뿐인데, 예상처럼 철퇴 두 개가 서로 뒤엉켜 버렸다.
“커헝!?”
두 놈이 헝클어진 무기를 푸는 동안 나는 더욱 안으로 파고들었다.
드디어 녀석이 보인다.
나는 코볼트 스로우에게 근거리까지 접근해, 있는 힘껏 지팡이를 내려쳤다.
탕!
일반적인 공격과 다른 소리가 났다.
‘그게 터진 건가.’
머리끝부터 전신으로 퍼져 나가는 강한 파동 물결이 눈에 담겼다.
그리고 그 파동의 충격파가 내 뺨을 훑고 지나갔다.
“커어어엉……!”
코볼트 스로우가 괴로운 듯 몸을 잘게 떨었다.
[‘좀비 학살자’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일정 확률로 터지는 칭호 효과가 제대로 적용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코볼트 스로우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탁! 탁! 탁! 탁! 탕! 탕!
[‘좀비 학살자’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좀비 학살자’ 효과가 발동하였습니다!]
연달아 터지는 칭호의 효과!
“커어어어어엉!”
더 큰 충격에 이젠 크게 울부짖기까지 한다.
“크헝!”
녀석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반격을 해 왔다.
하지만 누적된 충격에서 아직 헤어 나오지 못한 상황.
나는 여유롭게 공격을 피하며 거리 재기로 한 번 더 뒤로 물러섰다.
녀석의 머리는 마치 혹이 달린 것처럼 탱탱 부어올라 있었다.
조금만 더 상대하면 될 것 같지만 그 전에 제치고 왔던 은코볼트들이 먼저 달라붙었다.
“커엉!”
“컹!”
나는 곧장 녀석들을 피해 캐터펄트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캐터펄트 앞으로 모인 은코볼트들은 생각 없이 철퇴를 휘둘러 댔다.
콰앙! 콰강! 콰앙!
여덟 마리가 모두 철퇴를 사정없이 내리치니 캐터펄트가 부서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멍청한 놈들.”
아마 지금 자신들이 무슨 짓을 벌였는지도 모르고 있을 것이다.
녀석들은 지금 나를 노려보고 있어야 할 게 아니라 뒤에 서 있는 저 녀석을 봐야 했다.
“크르르……!”
탱탱 부어올라 기형적인 머리가 되어 버린 코볼트 스로우가 두 어금니를 드러내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었다.
슥!
녀석이 이내 털 주머니에서 다른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리고 손에 가득 쥐고 있는 작은 구슬들을, 자기편인 은코볼트 무리를 향해 던지는 것이 아닌가?
물론 그곳에는 나도 같이 서 있었기에 재빨리 자리를 벗어났다.
콰가가가강!
순식간에 주변을 휩쓸고 지나가는 폭발!
폭발력이 얼마나 강력한지 그 단단한 맷집을 지닌 은코볼트들마저도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뭐. 덕분에 내 수고는 덜었지만 말이다.
코볼트 스로우가 캐터펄트를 애지중지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그것을 건들면 설사 같은 편이라고 할지라도 망설임 없이 죽일 것이란 것도 예상하고 있었다.
“너무 잘 따라와 주니까. 좋네.”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던 것도 잠시.
“크아아아앙!”
녀석이 포효하며 날 째려봤다.
금방 녀석의 손에 쥐어진 것은, 세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구슬.
그 많은 구슬 폭탄이 위로 던져지는 순간, 나는 이를 악물고 앞으로 달려 나갔다.
약 50미터의 거리.
파파파팡!
아슬아슬한 차이로 뒤에 폭격이 이어진다.
하지만 여파까지는 막아 낼 수 없었다.
“큭.”
충격파 때문에 몸이 앞으로 쏠렸다.
그러나 헬라의 목걸이 덕분인지 가해지는 힘이 덜한 느낌이었다.
이번에도 녀석이 구슬 폭탄을 꺼내 든다.
다가서려는 날 제지하려는 것일 터.
‘어림도 없지!’
더욱 속도를 높여 공격하기 어려운 지근거리까지 접근했다.
이렇게 가까우면 자신에게도 피해가 되니 폭탄을 던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 녀석은 은코볼트처럼 뒷일 따윈 생각하지 않았다.
자신도 피해를 입을 수 있음에도 제자리에 폭탄을 던졌다.
‘바보 같은 놈.’
머릿속에 생각해 둔 변수로, 이런 행동을 할 수도 있다고 생각은 했지만.
직접 눈앞에서 보니 이만큼 어리석은 놈도 없었다.
변수를 생각해 두었다는 건 대책도 세웠다는 것.
나는 녀석의 머리를 지팡이로 가격한 후 아래를 내려다봤다.
신발에 달린 날개에 빛이 서렸다.
앞으로 몇십 보만 더 걸으면…….
[날개 달린 목동의 신발 조건부 효과의 조건이 충족되었습니다.]
[효과 ‘효과 증폭’이 발동합니다!]
[효과: 이동방해면역, 이동속도 600% 증가, 민첩x6]
수우욱!
발동과 동시에 뒤로 물러나는 움직임이 바람처럼 빨라졌다.
그리고 여전히 제자리에 남아 있는 그 녀석은.
콰가가가강!
후폭풍이 밀려들어 온다.
“쿨럭쿨럭!”
나는 입안에 들어간 흙먼지를 털어 내고 앞을 내다봤다.
“……커흐윽 ……커흐윽.”
자멸의 결과를 낳은 코볼트 스로우가 가늘고 짧은 숨을 토해 낸다.
온몸은 갈가리 찢겨져 만신창이가 됐지만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건 머리였다.
내게 맞은 머리는 어느새 시커멓게 변해 있었다.
폭발이 아니더라도 녀석은 결국 어둠에 침식되어 죽었을 터다.
지팡이에 있는 어둠 속성은 비단 마법에만 적용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타격을 가해도 적용이 됐다.
그렇게 침식한 어둠은 빠르지는 않지만 타격한 부위를 점차 취약하게 만든다.
근육과 뼈를 쇠퇴시키며 살이 썩어 들어가게 만든다.
“커어응…… 커어응…… 커어…….”
겨우 숨을 내뱉던 녀석은 끝내 생명의 끈을 붙잡지 못하고 숨이 멎어 버렸다.
[코볼트 스로우 좀비 보스를 처치하였습니다!]
[45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금광석을 얻었습니다.]
[금광석을 얻었으므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숨겨진 미션의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광산의 모든 보스를 처치하였으므로 미리 다음 층으로 갈 수 있는 권한을 얻게 됩니다!]
“후~”
나는 코볼트 스로우의 시체를 내려다보다 이내 고개를 치켜들었다.
곧바로, 다음 층으로 향할 수 있는 포탈이 열려 있었다.
우우웅ㅡ 우우웅ㅡ
포탈에서 나는 소리는 마치 재촉을 하는 것만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저 멀리 떨어진 곳에 터널이 하나 생겨났다.
계단으로 가는 통로였지만 이번에는 그리로 갈 생각이 없었다.
애초부터 다른 등반자들보다 먼저 3층에 올라가기 위해 얻은 권한이다.
계단을 타고 올라가면 얻을 수 있는 보상이 있겠지만 3층에 먼저 올라가서 다른 등반자들보다 유리한 고점을 차지하는 게 더 낫다는 판단이다.
지금 당장 포탈을 타고 다음 층으로 향할 수도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않고 뒤로 돌아섰다.
가기 전에 만나고 가야 할 녀석이 있다.
곧장 마을로 향한 나는 얼마 가지 않아 녀석을 찾아낼 수 있었다.
“김유희!”
“어? 준석아!”
난 석탑의 계단에 앉아 있는 유희 옆에 앉았다.
“너답지 않게 왜 이리 힘없이 앉아 있어.”
“하아~ 몰라. 석탑에 신경 쓰다가 지쳤나 봐. 도중에 미션이 실패하는 줄 알고 얼마나 놀랐는데.”
“매사 긍정적이던 놈이 실패를 생각해? 그리고 벌써 지치면 탑 꼭대기까지는 어떻게 올라가?”
“칫. 네가 해 보던가! 얼마나 쫄리는데. 거기다, 이거 꽤 힘들거든!? 은근히 계단 올라갔다 내려갔다 반복하는 게 장난 아니야.”
투정을 안 부리던 애가 부리니 여기서의 싸움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상상이 됐다.
그런데 그런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되레 웃음이 나왔다.
못 보던 귀한 장면을 봐서 그런가.
이럴 때는 친구로서 위로를 해 주는 게 좋을 듯싶었다.
나는 유희 머리에 손을 얹으며 말했다.
“고생했어.”
“어이구. 이제 와서?”
“진심이야.”
“어울리지 않게 진심은. 그보다 너는 할 일 다 해결하고 온 거야?”
“뭐. 그렇지. 그래서 말인데…… 김유희.”
“응?”
나는 남은 시간을 체크하며 말을 이었다.
“앞으로 여기서 3시간 정도 버티면 다음 층으로 올라가게 될 거야. 그 시간 동안 잘 버티고 올라와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마치 떠날 사람처럼 말한다?”
대답 대신 내가 입을 꾹 다물자 유희는 입을 벌리며 두 눈을 치켜떴다.
“뭐야? 정말로?”
“2층 보스들을 전부 처리한 덕에 먼저 다음 층에 올라갈 수 있는 권한을 얻었거든.”
“그럼 지금 나 혼자서 있다가 가야 한다고?”
“혼자라니. 성태 있잖아.”
“아니, 그 사람은 아까 전부터 코빼기도 안 보이던데. 어디서 문제 생긴 거 아니야?”
“이전이었으면 몰라도 여기서 걔가 죽을 일은 없어. 어디서 딴짓거리를 하는 중이겠지. 아무튼…….”
난 자리서 일어나 유희를 내려다봤다.
“이만 가 봐야겠다.”
그 말에 유희가 날 올려다본다.
“언젠가 너랑 떨어질 줄은 알았는데, 이리 빨리 떨어질 줄은 몰랐네.”
“야. 그래 봐야 광산에서처럼 몇 시간 못 보는 건데. 오바는.”
“아, 내가 너무 오바했나?”
유희는 다시 이전같이 장난기 있는 얼굴로 해맑게 웃었다.
“그래~ 먼저 가 있어. 금방 뒤따라갈 테니까.”
“어. 그럼 나중에 보자.”
“나중에 봐.”
마지막은 서로 손을 흔들며 헤어졌다.
금방 포탈이 있는 곳으로 되돌아온 나는 혹시 근처에 하성태가 있진 않을까 살폈다.
“녀석하곤 인사를 못하겠네.”
대체 혼자서 뭘 하고 다니는 건지.
어차피 위로 올라오면 자연스레 알게 될 터.
곧 포탈에 시선을 고정한 나는 앞으로 발을 내디뎠다.
환한 빛이 나를 감쌌다.
귀환석을 썼을 때처럼 몸이 잠시 부유하다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
잠시 후.
빛에 휩싸여,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시야가 되돌아온다.
삭막했던 검은 땅은 사라지고, 상쾌한 느낌이 드는 풀밭 초원이 광활하게 펼쳐졌다.
“스읍. 하아~”
나는 공기를 들이마시며 멀리까지 내다봤다.
초원 풀밭 한가운데 둥그렇게 둘러싼 성벽이 보였다.
성벽 내부로는 이전 층의 마을보다 세 배는 큰 규모의 대마을이 있었다.
한데 그곳에는 이미 누군가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다름 아닌 오크 부족.
앞으로 내가 상대해야 할 적들이기도 했다.
이외에도 초원길에는 성벽이 없는 작은 마을들이 간간이 보인다.
더 자세히 살펴보려고 했으나, 그 전에 메시지가 올라왔다.
[3층 클리어 조건이 생성됩니다.]
[성벽으로 둘러싸인 오르크 대마을을 함락하십시오.]
[시간제한은 없습니다.]
2층은 방어를 하는 거였다면 3층은 우리가 공격을 하는 것이 주목적이었다.
그리고 시간제한이 있던 2층과 달리 3층은 시간제한이 없었다.
시간적인 여유가 있으니 미션도 쉬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내가 이곳에 먼저 오려고 했던 이유.
오르크 대마을을 함락시키는 건 문제도 아니었다.
살아남은 등반자들이 전부 다 달려들면 어떻게 하든지 이겨 낼 수 있었다.
문제는…… 공략하는 동안에 필요한 식량. 이곳에서는 잘 곳도 부족하고 음식도 부족했다.
이전엔 그것 때문에 사람들끼리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러니 우선 식량을 독점하여 통제할 필요성이 있었다.
그래야 3층에서 허둥대지 않고 미션을 빨리 클리어할 수 있을 테니까.
나는 곧 인근에 있는 작은 마을 하나를 주시했다.
저 마을은 대마을에서 쫓겨나 떠돌이 생활을 하고 있는 오크들이 만들어 낸 거처.
이 드넓은 초원을 아무리 돌아다녀 봐야 먹을 수 있는 음식을 찾기란 어렵다.
모래알 속의 바늘 찾기랄까.
하지만 음식이라면 있었다.
바로 오크들이 사는 마을의 창고, 난 지금부터 그곳을 털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