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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한 탑 등반자-13화 (13/230)

회귀한 탑 등반자 13화

13화 몬스터 웨이브 (1)

나는 다급히 다가가 유희를 부축했다.

비에 흠뻑 젖어 몸이 차가웠다.

“괜찮아?”

“어, 어. 괜찮아. 그냥 긴장이 풀려서 그래.”

“일단 몸부터 치료하자.”

큰 상처들은 없었지만 자잘한 상처들이 많았다.

물론 치료할 필요 없이 그냥 내버려 둬도 되지만 어딘가 내상을 입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난 뒤에 서 있는 하성태를 보며 말했다.

“너도 괜찮아?”

뱀파이어라 회복력도 빠를 테니 물을 필요는 없었지만 예의상 넌지시 물었다.

“예! 전 괜찮습니다. 형님.”

“그럼 먼저 여관에 가서 쉬고 있어. 난 유희랑 신전에 다녀올 테니까.”

“저도 따라가도 됩니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언데드나 마찬가지인 하성태를 괜히 같이 끌고 가면 그 여신의 반발만 살 터.

“됐어. 방해되니까 그냥 가서 쉬고 있어.”

“그렇게 해요. 성태 씨.”

그제야 그는 알겠다며 아쉬운 발걸음을 한다.

둘만 남자, 유희는 내게 궁금한 걸 물어 왔다.

“넌 언제 온 거야?”

“나? 한 3시간 전쯤?”

“그렇게 빨리!?”

“처음이 아니니까. 오히려 너네들보다 늦는 것이 더 이상하지.”

유희가 고개를 끄덕인다.

“그건 맞네.”

말하는 사이에 신전 근처에 다다랐다.

비록 튜토리얼에 존재하는 신전이라고 하나,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형식은 전부 갖춰져 있었다.

잘 다듬어진 회색 대리석으로 만든 건축물이 마을 중앙의 한 축을 담당했다.

조금 더 다가가자 여관에서 그랬듯이 포인트를 요구하는 메시지가 떴다.

[신전을 이용하려면 30포인트가 필요합니다.]

[포인트를 지불하겠습니까?]

이런 일을 처음 겪어 보는 유희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내게 물었다.

“뭔가 떴어. 이게 뭐야?”

“시설을 이용하려면 내야 하는 기본적인 포인트야. 사냥해서 얻은 포인트나 광석으로 얻은 포인트 있지?”

“응.”

“총 얼마나 가지고 있어?”

“어…… 4만 포인트 정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 1~2만 포인트쯤 있을 줄 알았는데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이 모았다.

“그 정도면 신전을 이용해도, 간에 기별도 안 갈 거야. 지불해.”

[이용료로 30포인트가 차감되었습니다.]

먼저 이용료를 내고 그 뒤 유희도 따라서 지불했다.

처음으로 발을 들인 신전의 내부는 한적했다.

아무래도 출입하는 것만으로도 포인트를 소모해야 하다 보니 꼭 필요로 하는 사람이 아님 출입을 하는 경우가 드물 것이다.

“와…….”

옆에 있는 유희는 신전 내부를 보며 넋을 놓고 감탄했다.

특히 신전의 받침목이라고 불리는 거대한 석상을 보며 나지막이 말한다.

“예쁘다…….”

나도 같이 그 석상을 올려다봤다.

다만 유희와 다르게 나는 인상을 찌푸렸다.

축복의 여신 크레아.

아름다운 외형만큼이나 인품도 고우면 좋겠지만, 그녀를 아는 자라면 그녀가 부리는 광기에 혀를 내두를 것이다.

그래서 어지간하면 크레아의 신전을 출입하고 싶지도 않았지만 뭐 치료하는 능력 하나만큼은 뛰어나니 눈 한 번만 딱 감고 친구를 치료만 하고 나갈 생각이었다.

이내 신전 끝에 놓여 있는 치료상에 유희를 눕혔다. 대리석으로 된 치료상에는 하얀 천이 깔려 있었다.

곧 정자세로 누운 유희가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그냥 이러고 누워 있으면 되는 거야?”

“어. 가만히 있어. 그럼 자연스레 치료가 될 거야.”

말이 끝나기 무섭게 치료상을 향해 환한 빛이 내려왔다.

마치 신이 축복을 내리듯이.

빛에 감싸인 유희는 눈을 감으며 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곧 몸에 나 있던 상처들이 아물기 시작한다.

그리고 크레아가 유희가 마음에 들었는지 더러워진 옷을 깨끗하게 만들어 줬을 뿐만 아니라 젖은 걸 말려 주기까지 했다.

유희는 한결 나아진 얼굴로 치료상에서 내려와 내게 말했다.

“야. 이거 정말 기분 이상한데? 뭔가 이런 말하기 좀 그런데…… 완전 새로 태어난 것 같아.”

“축복을 받았으니 당연하지. 근데 그녀는 안 돼.”

“응? 그게 무슨 소리야?”

“자세한 얘기는 나가서 하자.”

“어? 어. 알겠어.”

금방 신전에서 나온 나는 유희에게 자세히 설명했다.

“앞으로 튜토리얼이 끝나면 네가 신이라고 부르는 작자들이 계약을 하자고 접근해 올 거야. 그중에 다른 놈들은 몰라도 축복의 여신 크레아와는 계약하지 마.”

“설마 저 안에 있던 석상이 네가 말한 크레아야?”

“맞아. 얼굴은 온순하고 착하게 생겼지만 성격은 전혀 그렇지가 않거든. 계약한 등반자들한테 몹쓸 짓도 많이 하는 걸로 유명하고.”

“음…… 알았어. 참고할게. 그것보다 배고픈데 어디서 뭐 먹을 거 없나?”

아무래도 공복 상태로 오래 있다 보니 배가 엄청 고플 터다.

“따라와.”

나는 유희를 데리고 바로 여관으로 이동했다.

* * *

“와아~! 음식이야! 음식!”

유희는 멀쩡한 음식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에 환호했다.

그동안 주식으로 조미료도 안 쳐져 있는 쥐나 두더지를 먹었었으니.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나 또한 처음 탑에 들어왔을 때 저것과 비슷한 반응을 보였었으니 말이다.

“와. 대박…… 나 쌀밥 보는 거 20년만이야.”

유희는 필요한 양 이상으로 고기와 밥을 가져다 놓고서 가장 먼저 밥에 손을 댔다.

하얀 밥 알갱이를 씹는 유희는 한동안 아무런 말없이 씹기만 했다.

그러더니 이내 내 어깨를 세게 붙잡고 흔들었다.

“맛있어! 대박~! 대박이야! 야! 너도 먹어 봐!”

“난 먹었어. 너나 많이 먹어.”

유희의 목소리에 옆 테이블에 있는 등반자들이 술렁거렸다.

“으음!”

“야. 조용히 좀 하고 먹어.”

“맛있는 걸 어떻게 하라고! 말리지 마!”

“하아~”

기분을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기에 그냥 내버려 두기로 했다.

“흑, 흑…….”

한편 같이 밥을 먹으며 눈물을 흘리는 하성태.

“넌 또 왜 그래?”

“형님! 이 순간을 평생 꿈꿔 왔는데 밥이 맛이 없습니다…… 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뭘 어떻게 하긴 어떻게 해. 앞으로 그 꿈은 접어야지.”

“어떻게…… 어떻게…… 고기 맛에 비린내가 가득하고 역할 수가 있지!? 으아아아!”

나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둘을 보고 있자니 뭔가 다른 의미로 피곤했다.

“오. 이 스프도 맛이 대박!”

유희는 한 끼를 먹은 것도 모자라 두 끼, 세 끼. 네 끼를 배 속에 채워 넣었다.

그동안 먹을 걸 안 찾고 다닌 게 신기할 정도.

유희가 음식에 빠져 있는 동안 나는 남은 시간을 체크했다.

[남은 시간: 36:07:32]

곧 있으면 몬스터 웨이브가 진행된다.

‘슬슬 다시 움직여 볼까.’

드르륵.

“어디 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밥을 먹다 말고 유희가 물어 온다.

“산책 좀 하고 오려고.”

“밖에 비 오는데?”

“먹고 있어.”

“형님! 같이 가요!”

음식을 앞에 두고 못 먹는 하성태가 따라나선다.

“어디에 가시려고요?”

하성태를 쳐다보며 말했다.

“곧 웨이브가 들이닥칠 거야.”

“웨이브요?”

“그래. 몬스터 웨이브. 수천은 넘는 몬스터들이 여기저기서 쏟아져 나올 거야.”

“그럼 저도 싸울게요.”

“아니. 너는 유희랑 여기에 있으면서 좀 쉬고 있어.”

“그 많은 놈들을 형님 혼자 상대하시게요?”

“아니. 난 동쪽만 맡을 거야.”

“그럼 다른 데를 저랑 유희 씨가 맡아야 하지 않을까요?”

“쉬는 것도 전투의 일환이야. 너희들은 지쳤어. 서쪽을 제외하고 나머지 남쪽과 북쪽은 다른 등반자들이 알아서 해 줄 거야. 그러니까 넌 다시 들어가서 쉬어. 그리고 혹시나 해서 말하는데, 여관방을 잡을 때 최고급실로 가라.”

“최고급실이요? 형님도 최고급실입니까?”

“아니. 난 프리미엄실.”

“그럼 저도 프리미엄실로…….”

“안 돼. 프리미엄방은 하나밖에 없거든. 그건 내가 이미 쓰고 있고.”

“아…… 아깝네.”

나는 곧 동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러며 말을 잇는다.

“유희한테도 내 말 전해 주고.”

“알겠습니다. 형님. 조심히 다녀오세요!”

누가 누굴 조심하라는 건지.

나는 피식 웃으며 금방 마을의 입구를 지났다.

동쪽 광산이 보인다.

우리가 털었던 광산은 반대편에 있는 서쪽 광산.

그곳은 이미 해결했으니 몬스터들이 들이닥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서쪽과 남쪽. 그리고 북쪽.

세 군데였다.

한데. 내 입장에서 잡몹을 아무리 많이 잡아 봐야 크게 이득을 볼 것도 없는데 이리 나선 이유는 단 하나였다.

서쪽 광산에 있는 보스를 잡았듯이.

다른 광산에 있는 보스들을 잡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파고 들어가면 보스가 기다리고 있는 서쪽 광산과 다르게 동쪽 광산에 있는 보스는 일정 조건을 충족시켜야 등장시킬 수가 있었다.

[남은 시간: 36:05:00]

앞으로 남은 시간은 5분.

나는 광산과 100미터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지팡이를 치켜들었다.

어스월. 아니 어둠 속성이 적용된 다크월을 시전한다.

쿠구구구!

매섭게 치솟아 오르는 어둠의 땅.

폭 5미터에 높이 5미터에 이르는 네모난 벽이 불길한 어둠의 기운을 흘려보내며 모습을 드러낸다.

작은 것 같으면서도 큰 어둠의 벽은 광산의 입구를 틀어막았다.

‘녀석들을 막고 있기엔 하나로는 부족해.’

아직 스킬 레벨이 낮은 것을 고려하면 벽의 내구도가 현저히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양으로 승부를 보는 수밖에.

나는 바로 다른 벽을 형성했다.

입구를 막고 있는 벽 뒤에 형성한 벽은 마치 앞에 있는 벽에 기대듯이 형태를 구부러트렸다.

이후에도 같은 방식으로 남겨진 틈을 메워 나갔다.

어느새, 여러 벽들이 모여 탄탄한 반구 형태를 띤다.

‘이쯤이면 됐어.’

저 정도면 충분히 내가 원하는 시간만큼, 나오려고 하는 몬스터들을 막아 낼 수 있을 터다.

다만 다크월을 계속 지속하려면 그걸 유지하는 마나가 충분해야 했다.

한 번 마나를 소모하면 더 이상 소모하지 않는 다크볼트 마법과 다르게 다크월은 사용 시 계속 마나를 소모해야만 하는 지속형 마법이었다.

프리미엄실 효과 덕분에 마나가 상당히 늘어난 것도 있지만 골렘의 핵 덕분에 지속형 마법은 크게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었다.

댕! 댕! 댕!

뒤에 있는 마을에서 종소리가 크게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는 웨이브가 시작됐다는 신호.

쿠웅!

종소리가 나기 무섭게 광산입구를 막고 있는 벽에서 충돌음이 들렸다.

쿠웅! 쿠웅!

몬스터들이 벽을 부수고 나오려는 소리가 점차 커져 간다.

하지만 정성스럽게 쌓은 벽인 만큼 쉽사리 무너지지 않았다.

강한 충돌을 견고하게 견뎌 낸다.

그 사이 다른 곳에서는 몬스터들이 밀려 들어오고 있었다.

뒤늦게 웨이브가 시작된 걸 깨달은 등반자들이 마을을 나와 싸웠다.

쿠웅! 쿠웅!

한편 내가 막고 있는 동쪽 방향은 한가롭기 그지없다.

그저 긴장감 넘치는 소리만이 울려 퍼질 뿐이다.

나는 천천히 벽으로 막은 광산입구로 이동했다.

퍼석!

차츰 시간이 지나 안에 있는 벽부터 금이 가는 소리가 들렸다.

난 시간을 확인했다.

[남은 시간: 35:52:14]

‘앞으로 2분.’

2분만 견뎌 내면 된다.

쿠웅! 쿠우웅!

계속되는 충돌음.

불안하면서도 잘 견뎌 내주던 그때.

퍼서석!

“커엉! 커엉!”

벽의 일부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러며 드러난 코볼트 좀비의 얼굴.

코볼트 좀비가 뚫려 버린 공간을 이용해서 빠져나오려는 것을, 나는 재빨리 다른 벽을 세워 그 빈틈을 메웠다.

하지만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격.

다른 벽들에도 금이 가면서 빈틈이 생겨난다.

그때마다 벽을 세워 그 빈틈을 메워 나갔다.

하지만 이리 계속 시도하다 보면 메워야 하는 부피가 커지고 그럼 한계가 찾아오기 마련이었다.

[어스월 레벨이 올랐습니다!]

다행히 스킬 레벨이 오르며 벽의 크기와 내구도가 한층 더 높아졌다.

그리고 고대하던 10분.

‘됐다.’

이걸로 동쪽 광산의 보스를 등장시키는 조건은 충족시켰다.

이젠 녀석이 튀어나올 때까지 버텨 내기만 하면 됐다.

뚫고 막는 공방이 계속 이어졌다.

그러며 슬슬 막는 데 한계가 온다.

그때.

쿠우웅! 쿠우웅!

안에서부터 들려오는 충격음이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놈이다.’

콰아아앙!

코볼트 좀비 무리가 힘겹게 뚫던 벽을, 서너 번 만에 부수고 나오는 녀석.

“쿠어엉! 쿠어엉!”

코볼트 워리어 좀비가 붉은 눈을 번뜩이며 나를 내려다봤다.

그리고 이어 지체 없이 대검을 높이 치켜들더니.

후우우욱! 쿵!

녀석은 내가 아닌 같은 편을 공격해 자신의 몸을 피로 적셨다.

다른 등반자들이 이를 목격했다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이해가 안 갈 테지만 난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녀석의 고유 스킬인 버서크.

치이익…….

몸에 묻은 피가 곧 수증기가 되어 증발한다.

그리고 전신에 붉은 기운이 피어오른다.

몸에 피를 묻히면 묻힐수록 강해지는 능력을 가진 녀석은, 몸에 힘을 줘 자신의 몸집을 크게 부풀린 후 내게 묵직한 대검을 휘둘러 왔다.

거대한 덩치만큼이나 큼지막한 대검은 약 4미터에 이르렀다.

하나 아무리 흉포한 무기도 맞지 않으면 그만.

후우웅!

다크스윔으로 제자리 순간이동을 한다.

파직. 파직!

그리고 다크볼트를 손에 쥔 채 녀석의 품에 파고들었다.

입고 있는 단단한 갑옷 탓에 빈틈을 공략하는 게 빠를 터.

그 빈틈이라면 이미 알고 있었다.

어느덧 가랑이 사이로 파고든 나는 위로 바라보며 다크볼트를 쏘아 보냈다.

콰아앙!

폭발과 함께 벌리고 있는 두 다리를 안으로 접는 녀석.

나는 다크스윔으로 빠져나와 녀석을 쳐다봤다.

“쿼어어억!…….”

엄청 괴로운지 짧은 비명에 이어 무릎을 꿇는다.

‘오우. 보는 내가 다 아프네.’

“커엉! 컹……!”

몇 번 더 괴로워하는 소리를 내더니 곧 엄청난 출혈을 일으킨다.

애써 나를 노려보며 투지를 불태우지만, 급소를 맞은 코볼트 워리어에겐 다시 공격할 기회 따윈 주어지지 않았다.

[코볼트 워리어 좀비 보스를 처치하였습니다!]

[40포인트를 획득하였습니다.]

[금광석을 얻었습니다.]

[금광석을 얻었으므로 10,000포인트를 획득합니다.]

금방 싸늘한 시체가 되어 버린 코볼트 워리어.

나는 보스를 처치한 후 곧장 앞으로 이동했다.

광산 앞엔 아직 처리해야 할 잔챙이 놈들이 남아 있긴 했지만 녀석들을 무시하고 그대로 광산 안으로 들어갔다.

어차피 뒤에 처리하러 온 등반자들이 있기에 알아서 할 것이다.

그동안 나는 빈집을 털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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