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5화
5화 1.5층 (2)
광활한 공간.
유희는 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어…… 분명 나보다 먼저 들어갔을 텐데…… 왜 없지?”
주위를 아무리 둘러봐도 자신은 혼자였다.
있어야 할 준석과 하성태가 없었다.
꿀꺽.
갑자기 홀로서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감이 올라갔다.
심지어 주변에는 수십의 골렘 석상들이 우뚝하니 서 있었다.
당장이라도 움직여 자신을 노릴 것 같은…… 그런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저도 모르게 검과 방패를 치켜들었다.
경계하는 눈빛으로 골렘 석상들을 주시하는 그때.
메시지창이 올라왔다.
[숨겨진 골렘 사원에 들어왔습니다.]
[타임 어택이 발생합니다.]
[정해진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은 황금 골렘을 찾아 부수십시오.]
[시간 종료 후에는 자동으로 1.5층에서 추방됩니다.]
[난이도와 시간은 1층 기여도순위에 따라 결정이 됩니다.]
[난이도: 하]
[남은 시간: 00:10:00]
유희는 메시지 내용을 빠르게 읽어 내려갔다.
그리고 주시하던 골렘 석상들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걸 보고 최대한 심호흡을 하며 상황판단을 했다.
골렘은 앞서 만난 미니골렘보다도 작은 형태.
자신과 키가 비슷했다.
저 정도면 상대가 가능할 것 같긴 하지만, 문제는 숫자가 너무 많았다.
혼자서 수십 마리의 골렘을 감당해 내야만 한다.
‘아니야. 미션을 보면 다 상대할 필요는 없어.’
황금 골렘을 잡으라는 메시지보다 시간이 종료되면 이 층에서 추방된다는 메시지가 눈에 띄었다.
남은 시간은 10분.
그동안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한다.
유희는 우선 도망칠 만한 장소를 찾았다.
하나 어디로 가든 골렘들은 있었다.
정면 충돌은 피할 수 없는 상태.
“후~ 해 보는 거야. 김유희. 할 수 있어.”
비록 원하던 상황은 아니었지만, 이 난관을 혼자서 헤쳐 나가지 못하면 결국 나중엔 준석에게 짐만 될 뿐이었다.
마음을 굳게 먹은 유희는 코앞에 다가오는 골렘에게 뛰쳐나갔다.
그대로 골렘에게 접근하는 데 성공한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며 검을 휘둘렀다.
탕!
힘을 잘못 실은 걸까? 아님 골렘의 맷집이 센 것일까?
아무튼, 검이 튕겨져 나왔다.
당황한 유희는 재빨리 뒤로 물러서려고 했지만 골렘의 주먹이 훨씬 빨랐다.
급하게 방패를 앞으로 세웠다.
퍽!
“끄으윽!”
제대로 막지 못해 몸의 중심이 완전히 무너지며 그대로 3, 4미터를 밀려났다.
“구어어…… ¦.”
그녀가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뒤에서 골렘이 접근해 온다.
넘어진 유희는 급급히 방패를 머리 위로 치켜들었다.
퍽! 퍽! 퍽!
“끄윽! 안 돼…… ¦!”
연타로 들어오는 공격!
한 방 한 방이 버거웠다.
견디는 몸이 더 이상 견디지 못하겠다고 비명을 질러 온다.
곧 다른 골렘이 와서 공격에 합류한다.
유희의 표정이 심각히 일그러졌다.
둘이 해 오는 공격을 한꺼번에 막아 내기란 불가능해 보였다.
‘안 되겠어.’
……그녀를 중심으로 황금 장막이 펼쳐졌다.
그러며 그녀의 몸에서 새하얀 빛이 흘러나왔다.
힘이 넘친다.
“으으으으아!”
유희는 강하게 짓누르는 무게들을 이겨 내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리고 정면에 있는 골렘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서걱!
이번엔 막힘없이 팔을 베는 데 성공했으나, 골렘은 죽지 않고 움직였다.
‘핵을 노리라고 했지…… ¦’
“후우우~”
‘집중하자. 유희야.’
손이 덜덜 떨려 온다.
하나 맞서 싸울 수밖에 없었다.
성역을 펼친 순간부터 모든 것을 건 것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마나가 언제까지 견딜지 모르지만 그녀는 두려움을 애써 잊은 채 무기를 찔러넣었다.
* * *
미션을 확인하자마자.
쿠과가가가!ㅡ
사원 전체가 흔들렸다.
그리고 주위로 서 있던 골렘 석상들에 금이 가고 있었다.
안 봐도 저것들을 상대해야 했다.
상대하기에 숫자가 많았지만 큰 문제는 아니었다.
미션은 어디까지나 황금 골렘을 찾아 부수는 것.
저것들을 전부 다 부수는 것이 아니었다.
하지만 그런 미션을 다 떠나서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시간이 종료되면, 이곳에서 추방된다는 메시지.
미션에 주어진 시간도 30분이지만 동시에 여길 살펴볼 수 있는 시간도 30분밖에 되지 않는다는 의미였다.
1.5층에 아무것도 없다면 추방이 되든 말든 상관이 없지만, 현재 이곳에는 점지 스킬이 발동 중이었다.
[근처 어딘가에 엄청난 보물이 숨겨져 있다.]
들어오기 전에 봤던 메시지와는 다른 내용이었다.
사원의 보물.
이곳에서의 보물이라면 떠오르는 것은 단 하나밖에 없었다.
고대골렘 마나핵.
회귀 전에 등반자들 사이에서 초고가에 거래되는 걸 한 번 본 적이 있다.
아무도 그것이 어디서 났는지 출처는 몰랐지만 소문으로는 1.5층 사원에서 얻었다는 얘기가 떠돌던 아이템.
고대골렘 마나핵은 거의 무한에 가까운 마나 에너지를 가진 결정체.
만약 그런 걸 얻게 된다면 수준급의 마법 아이템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반드시 찾아야 돼.’
그런데 앞서 해야 할 일들이 많았다.
강제로 흩어져 버린 일행도 찾아야 하고, 눈앞에 있는 미션도 진행을 해야 한다.
“쿠워어…… ¦.”
어느덧 내 키의 두 배는 되는 골렘들이 나를 에워싸고 있었다.
시야로 보이는 것은 온통 회색 골렘뿐.
시야 확보가 먼저였다.
나는 양쪽에 치고 들어오는 공격을 피해, 한 골렘 녀석 머리 위로 올라갔다.
높은 곳에 올라서자, 보이지 않아 답답했던 시야가 시원스럽게 드러났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골렘 녀석들의 공격에선 자유로울 수가 없었다.
재빠르게 벽과 천장 주변을 살폈다.
좌측 끝에 사람이 서 있을 수 있는 튀어나온 벽이 보인다.
난 다른 골렘들의 머리를 밟아 가며 그 벽 위로 올라갔다.
상당한 높이라서, 골렘 녀석들이 손을 뻗어도 여기까지는 닿지 못했다.
그래서 여유롭게 주변을 둘러볼 수가 있었다.
‘없어.’
일단 이 광활한 곳에는 유희와 하성태는 보이지 않았다.
찾아보니 딱히 다른 통로로 가는 길도 없었다.
그렇다면 생각해 볼 수 있는 건 두 가지다.
다른 어딘가로 가는 통로가 숨겨져 있거나 혹은 내가 완전히 차단된 공간에 떨어진 것이거나.
지금 상황을 보았을 때 숨겨진 통로를 찾아 나서는 것보다는 홀로 차단된 공간에 놓였다고 생각하는 게 더 편했다.
‘일이 꼬였네.’
혼자 있을 유희가 신경이 쓰였다.
지금으로선 혼자 잘해 나가길 믿어 보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실수를 해도 죽지는 않을 테니.
‘일단 미션에만 집중하자.’
황금 골렘은 어렵지 않게 찾아 낼 수 있었다.
수많은 회색 골렘들 사이에 껴서 몰래 숨어 있는 황금 골렘 녀석은 다른 놈에 비해 덩치가 작았다.
파직! 파지직!
망설일 것도 없이 나는 다크볼트 하나를 생성해 내 녀석에게로 날려 보냈다.
콰아앙!
골렘은 공격이 날아들어 왔는지도 모른 채 폭발에 휘말린다.
곧 시야 하단에는 남은 시간과 함께 숫자표시가 떴다.
[처치 수: 1]
[남은 시간: 00:28:58]
아마도 처치 수에 따라 보상도 달라질 터.
이내 또 하나의 황금 골렘을 찾아냈다.
나는 앞서 처리한 녀석과 같은 방법으로 황금 골렘을 처리했다.
[처치 수: 2]
너무 쉬웠다.
또 내 레이더망에 걸린 두 마리의 황금 골렘.
이번엔 두 놈을 동시에 노렸다.
그런데 한 놈이 공격이 날아드는 것을 인지하고 도망을 쳤다.
재빠른 몸놀림.
작은 덩치만큼 요리조리 잘 피해 다녔다.
하지만 상대를 잘못 만났다.
나는 다크볼트를 끝까지 컨트롤해 녀석의 뒤를 쫓게 했다.
집중력이 흐트러져 한 번이라도 실수를 하면 애꿎은 회색 골렘만 맞추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상대도 마찬가지.
잘못된 판단을 하는 순간 녀석도 끝이었다.
‘잡았다.’
미리 녀석이 움직이는 방향을 읽어 냈다.
콰아앙!
폭발과 함께 올라가는 처치 수.
벌써 넷이나 잡아냈다.
그리고.
[마법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마법컨트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법을 다루는 솜씨가 능숙합니다.]
[마법컨트롤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나 총량이 늘어나며 마법컨트롤 스킬 레벨도 2레벨이나 올랐다.
레벨이 오르면 오를수록 점점 마법을 시전하는 시간도 줄어든다.
그걸 증명하듯 처음에 다크볼트를 사용할 때보다 두 배는 더 빨리 시전이 되고 있었다.
전투에 있어서 마법 시전 시간은 매우 중요한 요소.
하지만 시전 시간만큼 사용하는 공격마법의 레벨도 중요했다.
파지직! 파직!
다크볼트.
[마나볼트 레벨이 올랐습니다!]
마나컨트롤 스킬 레벨이 가파르게 오르듯 마나볼트 스킬 레벨도 가파른 기세로 오르는 중이었다.
마나볼트와 다크볼트는 동일선상의 마법 스킬.
마나볼트 스킬 레벨이 오르면 다크볼트 스킬 레벨도 똑같이 적용이 됐다.
‘또 하나 발견.’
슈우우욱ㅡ 콰아앙!
레벨업을 하며 이전보다 더 큰 폭발력을 발휘했다.
구체 크기와 파괴력에 영향력을 끼쳤을 뿐만 아니라 날아가는 속도 또한 이전보다 빨라졌다.
이제는 황금 골렘이 미리 공격을 인식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 * *
“후우~”
나는 숨을 내쉬며 하단에 적힌 숫자와 시간을 확인했다.
[처치 수: 35]
[남은 시간: 00:20:15]
어느덧 미션을 시작한 지 10분이 지났다.
이쯤 되니 눈에 보이는 황금 골렘은 확연히 줄어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나가 다 떨어져 간다.
‘마나 회복을 하려면 시간이 필요해.’
하나 그동안 가만히 죽치고 있을 생각은 없었다.
혹시나 어딘가에 숨겨져 있는 이동 통로가 없는지 확인하고, 고대골렘 마나핵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물론 무작정 찾아 나서는 건 시간 낭비.
황금 골렘들을 처리하는 과정에 왠지 숨겨진 통로가 있을 것 같거나 중요한 물건이 숨겨져 있을 것 같은 곳을 세 군대쯤 봐 두었다.
먼저 가장 가까운 곳부터 확인해 보자.
“읏차!”
“우어어…….”
땅밑으로 착지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골렘들이 달려들었다.
나는 재빠르게 골렘들 가랑이를 지나치며 목적지를 향했다.
“없어.”
이후 두 번째 목적지도 마찬가지였다.
“세번째는 뭐라도 있어야 하는데.”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그곳은 골렘들이 몰려 있는 곳이었다.
접근하길 시도하다가 위험에 빠질 수도 있었다.
그러나 리스크 없이는 얻어내는 것도 없다.
비록 내 육체파는 아니지만.
팍!
상대하는 골렘들의 수준은 그리 높은 수준도 아니니 발이나 주먹으로도 충분히 견제가 가능했다.
‘다 왔다.’
거의 삼, 사백미터 길이를 돌파해 온 나는 여타 골렘들하고는 다른 규모의 크기를 지닌 골렘 석상을 올려다봤다.
세월이 오래 지난 듯 때가 탄 표면.
그리고 석상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위압감 같은 게 느껴졌다.
하나 그런 걸 보자고 이곳까지 온 게 아니었다.
난 골렘 머리에 번쩍 빛나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거다!’
멀리서 봤을 땐 반신반의했지만 가까이서 보니 확신이 들었다.
저게 바로 내가 찾던 고대골렘의 마나핵이었다.
마나핵에서 뿜어져 나오는 형용할 수 없는 빛이 내 시선을 사로잡는다.
“우어어…….”
나는 금방 다가서는 골렘의 팔을 밟고서, 녀석의 머리끝까지 올라갔다.
그리고 고대골렘이 서 있는 곳을 향해 뛰어올랐다.
“허업!”
워낙 크기가 커서 굽혀져 있는 허리까지밖에 뛰어오르지 못했지만 상관없었다.
그대로 한 번 더 도약해, 머리 위에 도착한 나는 앞머리 끝에 툭 튀어나온 암석을 중심으로 손으로 매달렸다.
보인다.
골렘 눈에 박혀 있는 보물이.
근데 크기가 워낙 컸다.
‘이대로 가지고 가는 건 무리 같은데…….’
공간 팔찌에 보관할 생각으로 마나핵에 손을 대는 순간.
우우웅ㅡ
붉은빛이 강하게 새어 나오며 점점 크기가 작아지고 있었다.
어느새 한 손으로도 쥘 수 있을 만큼 작아졌다.
‘좋아.’
나는 그것을 그대로 끄집어내 아이템 정보를 확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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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골렘 마나핵
내용: 엄청난 마나 에너지를 품고 있다.
효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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뭔가 설명된 부분은 초라하지만 손에 쥐는 순간 한 가지를 깨달을 수 있었다.
‘마나가 회복되고 있어.’
그것도 기존보다 백 배는 빠른 회복률이었다.
이대로라면 다 떨어졌던 마나도 몇 초 후면 차리라.
겨우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런 효과를 보다니.
1.5층에 온 보람이 있었다.
쿠구구구구……!
고대골렘의 석상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힘으로 형태를 유지하고 있던 마나핵이 사라져 버렸으니 이는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거대한 석상에 묻히기 전에 재빨리 밑으로 뛰어내렸다.
“우어어!…….”
밑에 있던 골렘들이 달려들었지만, 아까완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졌다.
다크볼트.
콰아앙!
마나핵 덕분에 빠르게 마나가 회복되고 있으니 마법을 아낄 필요가 없어진 것.
나는 다가오는 골렘들을 다크볼트로 처리해 가며 골렘들이 손에 닿지 않는 곳으로 이동했다.
앞으로 남은 시간은 15분.
아무리 찾아 봐도 이동 통로가 될 만한 곳이 없는 것으로 보아 일행을 찾는 건 완전히 포기해야 했다.
대신 여태까지는 마나가 부족해 황금 골렘만 찾아내서 처리했다면.
이젠 마나 회복도 빨라졌으니 마법을 난사해 회색 골렘들 틈 속에 쥐새끼처럼 숨어 있는 황금 골렘 녀석들을 전부 다 찾아내 보이리라.
* * *
[마나 순환율이 과다합니다.]
[한계치에 이릅니다.]
[마나 탈진에 걸렸습니다.]
[일시적으로 마나 회복률이 감소합니다.]
[일시적으로 마나 총량이 감소합니다.]
마나 탈진.
오랜만에 들어 보는 말이었다.
육체에 순환하는 마나가 비워지고 회복하고를 빠르게 반복하다 보면 피로가 누적되어 가끔 이렇게 탈진이 일어난다.
육체가 강하면 일어나지도 않을 일이지만, 현재 가지고 있는 능력치로는 이 정도도 버티기가 힘들었다.
탈진 때문에 온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으나, 나는 이미 목적을 달성했기에 크게 개의치 않았다.
[처치 수: 100]
[남은 시간: 00:00:00]
무려 100마리.
말 그대로 사원에 있는 골렘들을 거의 다 쓸어 버린 셈이다.
[타임 어택이 종료됩니다.]
[등반자들 중 최초로 사원에 있는 황금 골렘을 모두 처치하였습니다!]
[황금 골렘을 처치한 수에 따른 차등 보상과 함께 모두 처치한 업적으로 특별 보상이 주어집니다.]
나는 살짝 눈을 치켜떴다.
설마 등반자들 최초로 황금 골렘을 모두 처치했을 줄이야.
무엇이든 최초 타이틀을 얻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그만큼 탑은 오래전부터 존재해 왔기에.
한데 최초 타이틀을 거머쥐었다면 분명 특별 보상이라는 것은 기대 이상의 것일 가능성이 컸다.
잠시 후, 고대하던 보상이 드디어 손에 주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