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한 탑 등반자 1화
1화 회귀
‘시발…… 시발! 시발……!’
나는 속으로 몇 번이고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녀석에 대한 분노와 나 자신에 대한 분노가 뒤섞여 나온 탓일까?
복잡한 감정이 느껴졌다.
‘어떻게 내 일격이…….’
방금 한 공격은 내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일격이었다.
하지만 그 공격을 맞은 데카인은 멀쩡했다.
고작 이마에 한 줄기의 피를 흘리게 한 게 다였다.
내게 조금만 더 힘이 있었더라면.
그렇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대체 어디부터 잘못된 것일까?
잘못된 것은 없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달려왔기에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었다.
다만 만난 상대가 더 강했을 뿐.
녀석이 두 눈에 호선을 그린다.
“퉤!”
재수 없는 얼굴에 침을 뱉었다.
“큭큭큭. 크하하하!”
데카인은 기분 나쁜 웃음소리를 내더니 이내 무표정한 눈길로 내 목을 붙잡았다.
“꺼억……!”
“이곳까지 올라온 것은 가상하나, 다시 땅끝으로 끌어내려 주지. 그것이 너의 운명이다.”
숨통을 조여 오는 악력에 시야가 흐릿해져갔다.
발버둥이라도 치고 싶었지만 차마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정말, 정말로 이게 끝이라고?’
죽는 순간까지도 강한 삶의 염원을 느꼈다.
어떻게든 살아서, 저 녀석에게 복수를……
아니. 그보다 내가 왜 이곳에 있는 거지?
지금에서야 처음, 이 탑을 올랐을 때를 떠올렸다.
한때 생명으로 가득 찼던 지구.
사람들이 모여 사회를 일구고 도시국가를 세웠던 그때.
보고 싶었다.
스며들고 싶었다.
다시 그렇게 살아가는 일상에.
단 한순간만이라도.
그뿐인데.
바람과 달리 난 그 소원을 이루지 못했다.
이렇게 감겨 오는 두 눈조차 난 막을 수가 없었다.
* * *
더웠다.
몸에 흐른 땀 때문에 답답하고 껄끄러울 만큼 더웠다.
“으으!”
몸부림치다 결국 나도 모르게 몸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눈을 떴다.
“여긴…….”
낯이 익은 공간이 눈에 들어왔다.
‘죽었을 텐데?’
그때.
“준석아!”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야! 이거 봐 봐!”
다가와, 내 팔을 툭툭 치는 여자.
“김유희……?”
분명 30년 전에 본 것이 마지막인 내 친구였다.
그런데 얘가 어떻게 내 눈앞에 있는 거지?
‘아니. 그 전에 내가 어떻게 살아 있지?’
“아직 잠이 덜 깼냐? 이거 보라니까? 너 이거 보여? 내 눈앞에 있는 이 메시지창 말이야!”
녀석은 내게는 보이지 않는 창을 보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많이 본 장면 같은데…… 아!’
오래 전이지만 기억이 났다.
녀석이 어떤 메시지창으로 무슨 초대장을 받았다면서 난리를 치던 그때이다.
‘그게 탑이 준 초대장이었지.’
그런데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건 30년 전에 있던 일……
머릿속이 어지러웠다.
그런데 혼란을 느낄 새도 없이 내 눈앞에도 메시지가 보였다.
[희망의 탑에 당신을 초대합니다.]
[탑을 올라 현재 죽어 가고 있는 세상을 구원하십시오.]
[선택은 당신에게 있습니다.]
메시지들 맨 하단에는 탑에 들어가기 위한 수락 버튼이 있었다.
그 버튼을 보면서 난 전율이 일었다.
‘꿈이 아니야.’
“야! 듣고 있어!?”
짝!
뜬금 유희가 내 뺨을 갈겼다.
다른 의미로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야! 갑자기 왜 때리고 그래!”
“이제야 정신 차리네. 아무리 덥고 먹은 게 없어도 견뎌야지! 우리 여태까지 잘해 왔잖아! 너마저 넋을 놓으면 어떻게.”
난 눈앞에 있는 유희를 보며 확신했다.
내가 회귀를 했다는 사실을.
죽음의 순간, 기억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아직도 정신 못 차렸어? 한 대 더 때려 줘?”
나는 팔을 번쩍 들고 있는 유희의 손을 붙잡았다.
“아니, 정신 차렸어. 괜찮아. 그냥 며칠 굶었더니, 조금 멍 때렸나 봐.”
“후…… 그래. 조금만 참아 봐. 오늘은 트랩에 걸려 든 쥐들이 몇 마리 있을 거야. 분명.”
날 안심시키려는 말이었다.
이젠 근처에 돌아다니는 쥐마저도 거의 없다는 것을 유희나 나나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것보다 이것 봐 봐. 보여?”
“아니. 네 건 안 보이는데. 나도 비슷한 게 보여.”
나는 다시 수락 버튼을 쳐다봤다.
이곳이 현실이고 그리고 회귀를 한 것이라면…….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하나였다.
다시 탑에 들어가는 것.
어차피 이곳에 남아 봐야 지상으로는 올라가지도 못한다.
그저 이 어둠 깊숙한 곳에서 언제 죽을지 모른 채 뜨거운 열기를 견뎌가며 가끔씩 건지는 쥐와 두더지를 먹는 삶을 연명하는 것뿐이었다.
‘그래. 답은 정해져 있어.’
다만 회귀를 하기 전처럼 같은 결정을 내리면 아니됐다.
그럼 조금 달라질 순 있어도 결국엔 또 같은 미래를 볼 뿐이다.
이전과는 다른 결정을 내려야 했다.
“김유희.”
“어?”
“난이도 고를 때 이지 말고 하드 택해라. 다른 거는 고르지 말고.”
“엥. 대뜸 그게 무슨 소리야!?”
나는 이미 알고 있다.
유희도 같이 탑에 들어갈 것이라는 걸.
그리고 이대로 내버려 두면 1층에서 허무하게 죽을 것이라는 사실도.
“1층에 가게 되면 함정들이 있을 거야. 아무것도 하지 말고 소환된 자리서 기다려. 내가 갈 거니까. 그리고 기억해 둬. 근처에 있는 시체엔 절대 가까이 다가가지 마. 죽어.”
“야! 이준석!”
난이도가 바뀌어서 다른 위험한 요소가 존재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까지는 나도 커버할 수가 없었다.
“자꾸 뚱딴지 같은 말 할 거야?!”
“그럼 나 먼저 가 있는다, 김유희.”
조언은 이 정도면 충분했다.
나는 얼마 남지 않은 시간에, 수락 버튼을 눌렀다.
곧 눈앞에는 난이도 선택이 떴다.
이지. 노멀. 하드.
이 중 어떤 난이도를 선택해도 멸망한 이 세상을 구원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미 나는 이지 난이도를 택했었다.
거기서 난 실패했다.
그러나 단순히 다른 난이도를 택한다고 해서 내 미래가 그리고 이 세상이 구원받을 수 있을까?
아니다.
탑 정상에 있는 그 녀석을 죽이기 위해선 난이도만이 아니라 반드시 다른 변화도 필요했다.
일단은 난이도에 따라 주어지는 혜택이 달라진다.
무엇보다 난이도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숨겨진 히든피스가 더 많겠지.’
하나 그만큼 미션도 어려워지며, 상대하는 적도 강할 것이다.
‘그렇다고 물러설 순 없지.’
난이도를 택한 이후 달리할 수 있는 건 크게 두 가지였다.
나 말고 다른 일행을 만들어 정상까지 함께 오르는 것.
회귀 전에 난 혼자였다.
그리고 정상에 있을 데카인을 상대로 맞춤형 전투와 마법을 새로 구축하는 것.
이 두 가지만 바뀌어도 충분히 승산이 있었다.
나는 반투명한 창에 새겨져 있는 난이도를 다시 쳐다봤다.
‘노멀은 아냐.’
어중간한 것보다는 무조건 하드가 나았다.
그리고 지금이라면 하드 난이도로 탑을 오를 자신이 있었다.
[하드 난이도를 선택하셨습니다.]
[하드 난이도는 이지. 노멀 난이도와 기본은 같지만 헤쳐 나가야 할 난관이 보다 어려워지며 예측하지 못할 변수가 많이 발생합니다.]
[단 극복해 내기 어려운 만큼 그만큼의 혜택이 주어집니다.]
[그래도 하드 난이도를 선택하겠습니까?]
“그래.”
[한번 한 선택을 되돌릴 수 없습니다.]
애초에 되돌릴 생각은 없었다.
옆에서는 유희가 계속해서 내게 말을 걸고 있었다.
난 친구 녀석에게 마지막으로 해 줄 수 있는 한마디를 해 주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초대장은 곧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어서 선택해. 그리고…… 꼭 살아남아라. 이번엔 반드시 살아서 보자.”
“그니까 대체 아까부터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고오오!!”
그거야 곧 알게 된다.
[희망의 탑으로 이동합니다.]
감회와 같은 감정은 별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그저 탑에 들어가면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또 생각할 뿐이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탑을 정복하고 말리라.
‘데카인 이 개자식. 기다려라. 내가 금방 찾아갈 테니까.’
잠시 후, 몸은 포근한 구름에 안긴 것처럼 빛에 감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