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23화
398. 에필로그 (2).
“아니 자작님! 그걸 말씀하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말 안 했어. 재가 했지.”
요한은 뒤를 가리켰다.
에밀리,세이논과 함께 있던 엘 마는 혀를 날름거리며 웃었다.
그 모습조차도 사랑스러워 유아 랑은 부르르 떨기만 할 뿐이었다.
“어쩌다가 저런 소악마가 된 건 지……"소악마 치고는 좀 크지 않냐? 그냥 악마라고 해라.”
“제가 보기에는 아직 어립니다.”
"그런 어린 애의 고백을 냉큼 받 아 준 너도 참 대단하다. 이 소아 성애자 자식. 경비 아저씨! 여기에 요! 여기!”
요한이 빈정거리자 유아랑이 할 말을 잃고 머쓱해 했다.
그와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의 방 에 들어간 요한이 앉자 유아랑은 조심스레 물었다.
“그래서 이제는 얼마나 머무실 생각이십니까?”
“글쎄. 당분간은 강철의 혼도 만 들어야 하고. 미식클럽 쪽 일도 해 야 해서 나가긴 좀 그러겠다.”
"그럼 영지관리는……“내가 미쳤냐? 그딴 걸 하게.”
종말을 막은 이후 요한은 아예 대놓고 놀았다.
영지의 관리 업무에는 손도 대지 않는다.
기사 중 장래성 있는 자를 훈련 시키는 정도가 영지를 위해 하는 일의 다다.
그러다 보니 유아랑으로서는 아 까울 수밖에 없었다.
지금까지 요한이 한 일이 있는데 그 실력을 썩히고 있는 것 아닌가.
"마드모스 왕국에서 지원을 요청 하기도 했습니다.”
"알아서 하라고 그래.”
결국 레일라는 여왕의 자리에 올 탔다.
네 번째 전조 때 실행한 혁명이 성공적으로 흘러간 덕분이다.
거기에 요한이 날뛴 덕분에 재기 와 복수를 꿈꾸던 왕자파의 중심 세력이 거의 무너졌다.
그 틈을 그녀는 놓치지 않았고 결국 정권을 획득.
순조롭게 여왕의 자리에 올랐다.
그리고 난 후 애완동물 겸 애인 인 킬리안과 거의 대놓고 연애질을 하고 있었다.
물론 정권의 강화를 위해서 정략 결혼을 하기는 했지만.
상대 역시 따로 사랑하는 이가 있기에 별다른 문제는 없는 듯 보 였다.
"도브다만 왕국 쪽은 어떻게 합 니까?”
“나보고 어쩌라고.”
도브다만 왕국은 그래도 명맥은 유지하게 되었다.
하지만 두 번이나 큰일이 났기 때문일까?
가뜩이나 약한 왕권이 크게 약화 되었다.
그것을 수습한 것이 바로 토도 백작이 었다.
그는 가문의 자금을 활용하여 빠 르게 도브다만 왕국을 장악했고 귀 족들의 인망을 샀다.
이후 후작위를 받아 도브다만 왕 국의 실세가 되었다고 한다.
“프란츠 처가는 프란츠보고 알아 서 하라고 그래.”
"그럼 남부는……“남부 노예상들? 개들이 엘프들 건드렸냐?”
“아뇨.”
“그럼 냅둬. 알아서 자기들끼리 치고받고 싸우게.”
"그럼……“아 거!!”
결국 요한이 벌컥 화를 내버렸 다.
유아랑이 민망해하자 그는 방문 을 가리켰다.
“가서 빵이나 가져와. 차도 좀 타오고.”
“하하하…… 알겠습니다.”
요한의 성질을 이기지 못하는 것 은 유아랑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나가자 요한은 긴 의자에 몸을 눕혔다.
‘바쁜 일도 끝나고 한가롭구만.’
각성하여 자신의 의무를 깨닫게 된 이후로.
마왕을 처치하고 종말을 막은 후 에는 항상 이렇게 한가롭게 시간을 보냈다.
좋다.
지금도 딱히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지만 격렬하게 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그때 문이 열렸다.
“뭐 해?”
“아무것도 안 해.”
“후후. 너무 그렇게 누워만 계시 는 것도 몸에 좋지는 않습니다.”
"냅둬.”
"오라버니. 또 누워 계세요?”
"왜 나 이렇게 노는 거 가지고 다들 뭐라고 하지?”
에밀리,세이논,엘마.
셋의 타박에도 요한은 자세를 바 꾸지 않았다.
더 열심히 눕는 그를 향해 에밀 리는 쓰게 웃었다.
"검은 요새에서 연락이 왔어.”
"왜? 그쪽 몬스터 토벌 도와달라 디?”
"그건 아니고. 필로틴 제국 쪽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가 봐.”
결국 헤르듀크와 율초아는 결혼을 해서 연합국을 만들어냈다. 로드만 왕국의 국왕 헤르듀크. 필로틴 제국의 여제 율초아. 둘의 연합을 반기는 이들도 있지만 싫어하는 이들 역시 당연히 있 었다.
“필로틴 제국 쪽 사치르 장군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가 봐.”
에밀리가 준 양피지를 받은 요한 은 피식 웃었다.
유아랑이 보낸 자료다.
"반란 성공하면 그때 얘기하라고그래.”
"야아. 넌 그렇게 있을 수 있지 만 난 안 된다고.”
“너 이제 로디악 기사단 부단장 도 아니잖아.”
에밀리는 결국 요한과 결혼을 한 후 로디악 기사단에서 탈단했다.
로드만 왕가에서는 무척이나 아 쉬워 했다.
어쨌든 천하십강의 자리에 오른 기사이니 말이다.
그런 그녀를 보내고 싶지는 않았 지만 결혼 때문에 관둔다는데 어쩌 겠나.
거기에 그의 남편인 요한이 어떤 존재인지 아는 헤르듀크는 결국 시 원스레 허락해줬다.
하지만 그것에도 조건이 있었다.
"나 그만둘 때 왕국에서 요청하 면 받아주기로 했단 말야.”
"그래서?”
"같이 가자고.”
에밀리는 쪼그려 앉아 요한을 내 려다보았다.
요한은 젊었을 때와 비교해서 전 혀 변하지 않았다.
마치 혼자만 늙지 않는 것 같다.
"넌 왜 이렇게 피부가 좋아?”
요한은 는을 돌렸다.
세이논이 생글거리고 있자 그는 그녀를 가리켰다.
"세이논도 피부는 좋은데?”
“엘프랑 인간을 비교하면 되니? 어휴. 난 맨날 피부가……“엘마도 그래.”
"드라이어드잖아!”
“전에 왔던 플로란스는……“•…"그분은 논외로 하자. 진짜 안 늙더라.”
"그러겠지. 개는 불로니까.”
"불로?”
“어. 왜? 너도 그거 해줘? 젊게 한 후에 불로 정도는 이뤄 줄 수 있는데. 참고로 불사는 힘들어.”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어 성궤 를 꺼냈다.
마지막 하나 남은 뱀들의 아버지 의 석상.
그곳에 생명과 피를 바쳐 영원한 젊음을 만들어 낼 수 있었다.
“으음……“그런데 너 전에 싫다면서.”
그때는 요한과 함께 늙어가고 싶 었다.
애초에 에밀리는 요한보다 나이 가 많다.
예전에는 그것을 신경 쓰지 않았 지만 시간이 흐르니 마음이 쓰일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요새는 젊음이 부럽긴 해. 나이 들어가는 것이 보이니 까……“그럼 진작 말할 것이지.”
요한은 석상을 꺼낸 후 손바닥을 쓱 긁었다.
그의 손바닥에서 흘러내린 피를 머금은 석상에서 빛이 난다.
그 빛은 요한의 주문에 반응하다 에밀리에게 달라붙었다.
"어!?”
에밀리는 황급히 거울을 보았다.
거울 안에 있는 에밀리는 깜짝 놀랐다.
그녀의 전성기 때 얼굴로 돌아와 있게 된 것이다.
"진짜 이게 되는 거였어?”
“이 정도야 우습지.”
"이 정도면…… 전능 수준이 아닌가요?”
세이논은 경악하며 요한을 보았 다.
그는 석상을 회수해 넣으며 고개 를 저었다.
“그 정도는 아니야. 결국 이거도 대가를 받는 거거든.”
“대가라면……“저번에,그리고 이번에 잡은 놈 들 생명을 전부 썼어.”
“그런 아까운•"…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은 전혀 아쉬워하지 않았다.
“살다 보면 열심히 죽이고 다니 면서 또 모으겠지.”
“아버님께는 안 해 드려?”
윌카스트도 꽤나 늙었다.
은퇴를 한 그는 전에 비해 흰머 리도,주름도 늘었다.
강인했던 팔의 근육에 힘이 빠진 것을 보았다.
에밀리가 걱정하며 말했지만 요 한은 고개를 저었다.
“이미 여쭤봤는데 싫으시다더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고 하 시더라고.”
괴물을 동경하여 괴물의 옆에 서 고 싶어 했던 에밀리와 달랐다.
윌카스트는 요한을 단 한 번도 괴물로 본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그는 사람답게 살아가 고 싶었다.
"시간이 흐르면 늙고 죽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하시더라.”
그는 요한에게 대놓고 경고했었 다.
만약 빌헬미나에게 했던 것을 자 신에게도 한다면 결코 용서하지 않 을 것이라고.
몰래 윌카스트의 수명을 늘려 놓 으려 했던 요한은 그때만 생각하면 무척이나 아쉬웠다.
"그리고 사람의 마음도 못 바꿔.”
“그럼 저희 아이는요? 아이도 낳 을 수 없는 건가요?”
"그건 이거랑 상관없는데?”
“그렇다면 전 아이를 갖고 싶어 요.”
세이논이 결국 입을 열었다.
그녀의 진지한 표정을 마주하던 요한은 어깨를 으쏙였다.
‘그것도 나쁘진 않겠지. 애 낳고사는 것도 즐거움이라면 즐거움일 테니까'
* *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법.
요한과 에밀리,세이논 사이에서 아이가 생겨나고.
프란츠와 헤이로나 사이에서 아 이가 나와 바그너 가문의 후계가 안정되었다.
그 이후에도 시간은 흘렀고.
바그너 가문의 정신적 지주나 다 름없는 윌카스트에게도 죽음은 찾 아오고 말았다.
“후우…… 후우……침대에 누워 있는 윌카스트는 힘 없이 숨을 내쉬었다.
그의 옆에 앉아 있던 야스진은 신성력을 퍼부으며 말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말을 들은 프란츠는 울었다.
헤이로나는 그를 끌어안았다.
하인스를 비롯한 바그너 기사단 의 간부들은 침통한 표정을 지우지 못했다.
그와 친분이 있던 이들 모두 우 울해 했다.
그만큼 윌카스트는 대단한 사람 이었다.
온화하며,또 현명한 귀족.
모두가 존경해 마지않는 위대한 귀족.
윌카스트 바그너의 죽음에 모두 가 비통해하고 있었다.
단한명.
요한만을 제외하고 말이다.
“요한.”
플로란스는 요한의 어깨를 잡았 다.
그의 옆에는 요한의 딸이며,윌 카스트가 직접 이름 지어 준 헤미 니 바그너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 었다.
"헤미니. 엄마에게 가 있으렴.”
"네. 플로란스 아주머니.”
그녀에게 꾸벅 고개를 숙인 헤미 니가 뒤에 있는 에밀리에게 안겼다.
실제 나이에 비해 훨씬 젊어 보 이는 그녀는 헤미니를 살짝 끌어안 으며 눈물을 닦았다.
“스킬라. 너도 가 있어.”
‘‘ 기o ~Or .”
요한과 세이논의 아들인 스킬라 가 타박타박 걸었다.
그가 세이논의 품에 안기는 것을 본 플로란스는 진지하게 물었다.
“수명을 늘려드리진 않는 거냐?”
그녀는 힐끔 빌헬미나를 보았다.
그녀는 인간치고는 오래 살았다.
그것이 요한이 한 일이라는 것쯤 은 플로란스도 알고 있었다.
“안 해.”
“왜?”
“아버지가 원하지 않으셨으니까.”
“네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 다고?”
애초에 요한이 남의 말 듣는 사 람이 었던가.
플로란스는 진지하게 바라보며 말했지만 요한은 고개를 저었다.
"사실 할 수는 있어.”
요한은 이후로도 꾸준히 사고를 치며 다른 자들을 죽여나갔다.
그리고 피와 생명을 모아 두었 다.
이 정도라면 적어도 십 년은 윌 카스트의 수명을 늘릴 수 있으리라.
그럼에도 요한이 하지 않는 이유 는 단 하나였다.
"사실 한번 했다가 걸렸거든. 한 번 더 하면 아버지가 바로 자살해 버리신다더라.”
“뭐?”
“후우…… 다…… 나가고…… 요 한과 프란츠…… 너희들만 남아다 오.”
윌카스트가 숨을 몰아쉬며 말하 자 모두가 나갔다.
플로란스는 요한을 보다가 씁쓸 해하며 몸을 돌렸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나가자 월카 스트는 요한과 프란츠에게 손을 뻗 었다.
"내 아들들…… 내 전부……“……아버지…… 아버지……결국 울음을 터트린 프란츠는 어 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그에 반해 요한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았다.
“아버지.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 습니다.”
요한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 었다.
그가 꺼낸 성궤를 보자 윌카스트 는 힘없이 웃었다.
손을 들어 요한의 머리를 쓰다듬 어 준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이제 너희들의 어머니를…… 율 리아를 만나러…… 갈 시간이구나. 그걸 방해한다면…… 요한. 너라고 하더라도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윌카스트가 눈을 감자 프란츠는 간절히 말했다.
요한의 도움을 받으라고.
수명을 늘리자고.
다른 자의 피와 생명 따위는 얼 마든지 바쳐주겠다고.
하지만 윌카스트는 고개를 저었 다.
"사람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이란다…… 프란츠…… 네 형 이…… 네 형이 폭주하지 않게 막 아다오……“예…… 예. 아버지……“요한. 너도……윌카스트는 요한의 손을 꼭 잡았 다.
"너무 많은 생명을 빼앗지 말아 다오…… 바론님께선…… 모든 것 을 지켜보고……마지막 말을 남긴 윌카스트가 눈 을 감았다.
그가 축 늘어지자 프란츠는 결국 포효했다.
그 소리를 들은 야스진이 벌컥 들어와 확인하고 눈물짓자 다들 울 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서 요한은 쓰게 웃었다.
‘바론이 잘 지켜보고 있으니까 좋은 데 가십쇼. 아버지.’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