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21화
396. 내 마음의 친구야 (3).
파룬이 이런 기특한 생각을 했을 줄 누가 알았겠나.
요한은 그를 꼭 끌어안았다.
"내가 널 살린 보람이 있구나.”
"아. 아하하하……파룬은 어색하게 웃었다.
지금까지 엄청나게 노력했었다.
거기에 아버지에게 대항하며 요 한을 도우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때도 요한은 친구라는 말을 해주지는 않았다.
그런데 고작 이런 거로 마음의 친구라니.
"이,이런 거로 괜찮아?”
"내가 너한테 무슨 큰 걸 바라겠 냐.”
파룬을 놓아 준 요한은 싱글벙글 웃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진짜 기쁜 모양 이다.
“이거면 매우 충분하지. 야. 잠깐 만. 혹시 그 요리들만 모을 생각이야?”
“어…… 아니. 미식클럽에는 비 장의 레시피들이 많아.”
"저기 친구야. 혹시 미식클럽에 나도 끼워줄 수 있니?”
“그거야 어렵지 않지. 안 그래도 헬링스 자작에게 얘기를 들었어.”
요한이 미식클럽에 참가하고 싶 어 한다.
하지만 그를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이 많아 보류해두고 있었을 뿐이 었다.
“하지만 미식클럽에 가입하려면 요리를……“나 요리 잘해.”
"어? 진짜?”
그럼 자격 조건은 충분하다.
요한이 당당하게 말하자 파룬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이다.
"하긴 네가 못하는 게 있을 리가 없지.”
"이왕 하는 거 빌헬미나 할머니 도 좀 끼워주면 안 되냐?”
미식클럽에 빌헬미나도 참가시키 고. 그들의 레시피를 빌헬미나가 배우게 하고 싶었다.
요한이 요청하자 파룬은 움찔했 다.
그도 빌헬미나의 요리를 먹어 본 적은 있었다.
하지만 그녀의 요리가 미식클럽 에 들어갈 수준은 아님을 안다.
"빌헬미나 님의 요리로는 좀 힘 들 것 같은데……"친구 좋다는 게 뭐냐!? 친구야H 너 이럴 거야? 응?”
친구.
그토록 듣고 싶었던 말이다.
물론 굉장히 어이없게 친구의 자 리에 오르긴 했지만 파룬은 그래도 상관없었다.
그에게 있어서 요한은 언제나 동 경의 대상이며 빛과 같은 존재였으 니 말이다.
그런 자가 친구라고 불러주는데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그렇지? 하하하하!! 그렇고 말고!”
“친구의 할머니는 내 할머니이기 도 한 거지. 그렇게 생각 안 해?”
"어…… 그렇지!! 빌헬미나 님도 내 할머님이나 다름없지!”
"그런 할머니를 위해서 미식클럽에 가입 못 시켜드려? 너 이렇게 정 없는 놈이었냐?”
조금 전까지 피도 눈물도 없었던 요한이 정을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이 들었다면 어이없어 했겠지만 그토록 바라던 요한의 친 구가 된 파룬은 정신을 차릴 수 없 었다.
“당연히 아니지.”
“부탁 좀 할게. 야. 내가 진짜 부 탁 같은 잘 안 하는 사람이거든? 알지? 나 부탁 안 하는 거.”
요한은 어지간해선 부탁 안 한 다.
그냥 목에 칼 들이밀지.
그런데도 요한이 이렇게 말해준 다는 것이 파룬은 무척이나 기뻤다.
"알았어!! 너의 친! 구! 인 나 파 르고닌 타고다가 무슨 수를 써서라 도 해볼게!!”
"좋아!! 부탁한다!! 친구야!! 우 리 우정 앞으로도 영원히 변치 않 길 바란다!”
요한과 파룬은 서로를 다시 끌어 안았다.
그런 그들을 보며 아카데미의 교 관과 학생들은 황당해했다.
* * *수도로 복귀하며 요한은 싱글벙 글 웃었다.
꽤나 기쁜 듯 보인다.
요미안은 그의 눈치를 살피며 조 심스레 물었다.
“저. 요한 자작님. 축하드립니다. 저렇게 좋은 친구분을 만나셔서……“하하. 그러게 말이다. 이 녀석. 하하하하.”
앞서 걷는 아카데미의 학생들과 교관을 보며 요한은 흐뭇해했다.
아카데미의 학생들은.
아니 교관마저도 파룬을 부러워 하고 있었다.
“그래서 드리는 말씀인데요. 요 한 자작님. 세브의 검은 제가……"뭐. 이거?”
죽은 모험가들에게서 노획한 장 비들을 가리키며 요미안은 손바닥 을 비볐다.
그를 빤히 보던 요한은 세브의 검을 들었다.
꽤나 좋아 보이는 검이다.
강력한 신성력이 담긴 검을 이리 저리 살핀 요한은 뒤의 수레에 휙 던졌다.
"어쩌라고.”
“저 주시면 안 됩니까?”
"너 마스터에 오르면 줄게. 그리 고 네가 성검 가지고 뭐하려고?”
세브가 어디서 이런 성검을 얻었 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꽤나 강한 신성력이 담긴 검이니 이래저래 쓸 곳이 많을 거 다.
“너 마스터 오르고 검 필요하면 내가 하나 만들어줄게. 저런 건 손 대지 마라.”
"전 성검이 좋습니다.”
"왜?”
“멋있잖습니까.”
신성한 기운을 쓰는 마스터.
생각만 해도 몸서리가 쳐진다.
그가 부르르 떨자 요한은 가소롭 다는 듯 웃었다.
“이건 바론 교단에 넘길 생각이다. 그리고……그는 수레 안쪽에 있는 긴 상자 를 보았다.
상자 안에 담겨 있는 긴 지팡이 를 들어 본 요한은 지팡이를 까딱 거렸다.
"거기 교관님. 에…… 이름이 뭐 더라?”
"육 클래스 자연 마법사 리츠 시 이나입니다.”
“아. 그래. 리츠 교관님. 이거 어 떻게 할 생각입니까?”
"아카데미에서 연구를 해볼까 생 각 중입니다. 만약 이게 진짜 바론 님의 지팡이라면 아카데미에 보관 될 보물이 되겠지요.”
“그냥 바론 교단에 넘기는 게 낫 지 않겠습니까?”
요한이 말하자 리츠는 고민했다.
솔직히 싫었다.
성물이라고 해서 꼭 바론 교단에 반납하라는 법은 없었다.
물론 바론 교단에서 싫어하겠지 만.
그래도 아카데미의 발전과 위엄 을 위해서 실습 시 발견하는 성물 은 아카데미에서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리될 경우 기증자의 이 름은 아카데미에 영원토록 남게 된 다.
자신의 이름을 아카데미에 남기 고 싶었던 그는 대놓고 난감해했다.
"저걸 얻기 위해서 고생한 사람 들이 워낙 많은데 제 마음대로 그 래도 될지……“안 됩니까?”
요한은 손가락을 들었다.
세 개 들려 있던 손가락의 하나 가 접혔다.
그것을 본 리츠는 식은땀을 흘렸 다.
“……이미 아카데미에 보고를 해 놨습니다. 만약 이걸 그냥 가져가 셔도…… 문제가 생길지도 모를니 다.”
이 지팡이 때문에 바론 교단과 아카데미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그는 거의 애원하듯 공손히 말했 다.
“그걸 제가 신경 써야 할 이유가 있습니까? 그리고 제가 나선 대가 로 받아갈 수도 있는데?”
요한은 두 번째 손가락을 접었 다.
남은 것은 하나다.
"요한 자작님. 저희를 봐서라도 좀……저기 앞서 걷고 있는 학생들 중 에 그나마 봐줄 만한 것은 파룬뿐.
그 외에는 솔직히 관심 없었다.
어딘가 있는 자작가의 영애.
혹은 백작가의 공자.
또 누군가는 벌써 남작 직위를 가진 자도 있었다.
하지만 알 게 뭔가.
“이런 건 그냥 바론 교단에 바치 는 게 낫지요. 요미안. 넌 어떻게 생각하냐?”
“아무렴요. 모든 것에는 주인이 있기 마련이지요.”
옆에 있는 요미안이 한마디 하자 리츠는 사납게 눈을 뜨며 그를 바 라보았다.
하지만 요미안은 신경도 쓰지 않 았다.
결국 난감해하던 리츠는 한숨을 쉬었다.
“일단 아카데미에 보고는 하겠습 니다.”
“제대로 보고를 해줬으면 합니 다. 이 요한이 성물을 바론 교단으 로 보내고 싶다. 뭐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아카데미에서도 이해하 실 겁니다.”
“하아…… 예.”
말만 존대지 명령이나 다름 없 다.
그가 한숨을 내쉬자 요한의 옆에 있던 요미안이 물었다.
"그런데 저 지팡이가 진짜 바론 님의 지팡이가 맞습니까?”
“이 정도 신성력이라면 바론님의 지팡이가 맞을 수도 있겠지.”
"자작님도 모르시는 겁니까?”
"나라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 니니까.”
애초에 요한도 이런 게 있는 줄 몰랐다.
그리고 바론이 자신을 위해 두번 짜 선물을 준비한 것도 몰랐다.
그는 앞서 걷는 파룬을 보며 흐 뭇하게 웃었다.
"난 지금까지 바론님이 그냥 지 켜보는 자라고만 생각했거든?”
“아. 그건 저도 압니다. 하지만 그건 바론님을 따르지 않는 자들의 말 아닙니까?”
요한은 하이마스의 대자.
당연히 독실한 바론의 신자일 줄 로만 알았다.
의아해하는 리츠에게 요한은 웃 으며 말했다.
“그런데 꼭 그런 것만도 아닌 것 같아서.”
그는 지팡이를 다시 상자에 넣으 며 씩 웃었다.
"이름대로 신답게 뭔가 하긴 하 시네.”
* * *수도로 복귀하자 난리가 났다.
모험가 길드 쪽에서는 이번 일은 모험가 길드와 아무런 관련이 없다 딱 잡아뗐다.
아카데미는 당연히 이번 일에 길 드 역시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고.
그 와중에 이득을 본 것은 바론 교단이 었다.
가만히 있다가 훌륭한 성검과 성 물을 얻었으니까.
그렇게 일을 마친 요한은 수도에 서 며칠 머무르고 복귀했다.
그가 복귀했을 때는 세이논도 옆 에 있었다.
“에밀리와 지왕의 대결을 보지 않으셔도 되는 건가요?”
율리아 영지 근처에 도착하자 세 이논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에밀리가 요한을 좋아하는 것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렇게 매정하게 나가자 걱정된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그저 심드렁할 뿐 이었다.
“조만간 올 텐데요.”
“예?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그런 게 있습니다. 아. 다 왔 다.”
율리아 영지가 보이고 있었다.
요한을 수행하던 이반은 자신의 옆에 서 있는 요미안을 툭 쳤다.
“자넨 앞으로 죽었어.”
"예? 그게 무슨……멀리서 미친 듯이 달리는 이들이 있었다. 전신무장을 한 기사들이 달리고 있다.
그것을 본 요미안이 긴장했을 때.
그들의 뒤를 프란츠와 하인스가 쫓고 있었다.
"으아아악!!”
“사람 살려!! 미친 마스터들이 쫓아온다!!”
"미친 마스터라니!!”
“어허H 어디 영주 될 사람에게 그런 소리를!!”
프란츠와 하인스가 쫓고,그들에 게 쫓기는 바그너 기사단원들이 날 뛴다.
마스터를 상대로 하는 바그너 기 사들은 상대가 자신들의 단장이든.
혹은 앞으로 모셔야 할 주군이든 가리지 않았다.
이 악물고 덤비거나 욕하며 도망 칠 뿐.
이반은 그들을 훈훈하게 바라보 다가 요한을 보았다.
“자작님. 그럼 이제 저도……“너도 마스터니까 쫓는 쪽이 되 겠지. 열심히 잡아봐.”
“하하!! 예!!”
지금까지 요한이나 광약,하인스 같은 강자들에게 쫓기는 나날이었 다.
하지만 이제는 쫓는 자에 속한다.
“바로 참가해도 됩니까?”
"사람이 선 자리가 다르면 보는 것이 달라진다더니……예전에는 이런 훈련을 질색하던 이반이 다.
하지만 자기가 유리해지니 나서 려고 하는 모습이 우스웠다.
"그래. 바로 가서 참가해라.”
“예!! 어이! 요미안!”
"예?”
"자네도 참가하게. 자작님. 괜찮 겠지요?”
요한이 키워주겠다는 것은 바그 너 기사단에 넣어서 훈련하겠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이 반도 안다. 그는 당황하는 요미안 을 끌고 달려갔다.
잠시 후 바그너 기사단에서 절망 섞인 비명이 들렸다.
“……유,율리아 영지의 훈련이 꽤 독특하군요. 저렇게까지 훈련할 필요가 있을까요?”
“키워 놓으면 어딘가는 쓰겠죠.
자. 들어가시죠.”
세이논을 데리고 율리아 영지에 들어가 저택을 향해 걸었다.
거리를 지나가고 있을 때 쯤 밝 은 외침이 들렸다.
"오라버니!!”
바그너 기사단을 훈련하는 프란 츠 대신 영지를 시찰하던 엘마는 요한을 보고 활짝 웃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유아랑은 세 이논을 보고 놀랐다.
하지만 이미 이야기를 들었기 때 문일까?
그저 부드럽게 웃을 뿐이었다.
"어디 다녀오신 거예요?”
"수도에 좀 다녀왔어. 일은 잘하 고 있지?”
"예! 열심히 하고 있답니다!”
“그래. 장하다.”
그녀를 내려 준 요한은 세이논의 등을 툭 쳤다. 저기 있는 유아랑과 유역비 옆에 가 있으라는 것이다.
고개를 끄덕인 그녀가 가버리자 요한은 그들에게 간단한 보고를 받 았다.
“이정도면 내가 일 안 해도 괜찮겠구만.”
그동안 고생한 보람이 있었다.
이제는 알아서 가신들이 겨울을 날 준비까지 다 해놨다.
요한은 흐뭇해하며 보고서를 돌 려 주었다.
“그럼 올해 겨울도 잘 부탁한다. 세금 수송은 프란츠에게 맡기자고.”
“괜찮겠습니까?”
"재도 마스터야. 그리고 뭐하면 이반도 보내지.”
마스터가 둘에 기사들이 간다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리고 아예 거기서 바로 복학하 라고 하는 것이 맞겠지.
요한은 빙긋 웃고 숲으로 향했 다.
숲에 도착하자 과자집에서 맛있 는 향기가 난다. 위장을 자극하는 향기를 맡으며 요한은 과자집 문을 열었다.
“어머. 어서 오렴. 요한. 이번엔 어딜 다녀온 거니?”
빙긋 웃으며 나온 빌헬미나를 향 해 요한은 웃어 보이며 답했다.
“이번에요? 이번에는요……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