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13화
388. 할 일이나 합시다 (1).
에밀리는 다음 날이 되자 홀로 떠나버렸다.
그녀가 갔다는 이야기를 듣고 요 한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쩝.”
"형님. 너무 방심하신 것 아닙니 까? 제가 또 여자는 좀 많이 만나 봐서 아는데. 에밀리 부단장님 으......w“너나 방심하지 마라. 그거 틀렸 으니까. 이런 간단한 세금계산도 틀리면 어쩌려는 거냐? 아카데미에 서 뭐 배웠어?”
“아뿔싸.”
“넌 자식아. 자꾸 이런 거 실수 할래?”
“ —O으”
f«“그리고 여자를 많이 만나봐? 미 쳤구나? 아카데미 보내놨더니 하라 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이나 해? 야. 아단.”
“예.”
“나가서 헤이로나 데려와. 약혼 자 관리를 어떻게 한 거야?”
잠시 후 들어온 헤이로나는 아단 에게 사정을 듣고 도끼눈을 떴다.
그녀가 프란츠의 귀를 잡아당기 는 사이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머. 어디 가세요?”
“아버지께 갔다 오려고. 헤이로 나. 넌 엘마에게 율리아 영지 추수 에 대한 보고서 작성하는 거나 가 르쳐놔.”
“네! 다녀오세요!”
꾸벅 인사를 한 헤이로나는 다시 프란츠의 귀를 잡아당겼다.
신음하며 잘못했다고 비는 프란 츠를 무시한 채 요한은 신전으로 향했다.
신전의 앞에서는 꽤나 많은 아이 들이 공부를 하고 있었다.
"바론님께서는 어디든 계시고, 어디서든 우리를 지켜보고 계십니 다.”
“그럼 바론님께서 옆에 계신 거 예요?”
“그렇지요. 사람의 선행을 보시 고,사람의 악행을 보시고. 그것을 판단하여 그들이 후에 바론님의 곁 에 머물게 해주신답니다.”
율리아 영지 담당 신관으로서 그 는 영지민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이왕 가르치는 것이면 수학 같은 것을 가르쳐줬으면 좋겠지만.
야스진이 가르칠 수 있는 것은 신학 정도밖에 없었다.
"점심 식사들 해요〜!”
안에서 수녀들과 함께 야스진의 부인인 헤나가 나왔다.
신학을 가르치기 위해서 영지민 의 아이들에게 점심 식사를 제공하 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바론을 따르지 않는 이들을 교화시키려는 것.
신에 대해서 배우는 것 보다는 먹는 것에 더 관심이 있는 아이들 이 쪼르르 달려가자 야스진은 빙긋 웃었다.
"앗. 영주님.”
"이제 사제 모습을 제대로 갖추 고 있네?”
"하하…… 아직 멀었습니다. 그 런데 무슨 일이십니까?”
“바쁜가 해서. 할 일 없으면 같 이 바그너 영지에나 갈까?”
“흠•"… 바그너 영지에 가셨다가 바로 오시는 겁니까?”
"그러겠지. 아버지만 만나 뵙고 올 거니까. 왜? 거기서 뭐 할 일 있나?”
"거기서 할 일보다는 여기서 할 일이 많죠.”
아이들을 가르치는 것도 있고 주 일의 예배도 있다.
단 한 명 있는 사제가 자리를 비 우면 예배는 누가 드리나.
“플로란스 타고 갈 거니까 괜찮 아.”
율리아 영지에서 바그너 영지까 지 드루이드의 길을 쓰고 플로란스 를 타면 하루면 간다.
그 말을 들은 야스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바로 준비하지요.”
"뭘 준비해. 그냥 가면 되는 거 지.”
"하하하. 여전히 막무가내시군요.”
“그래서? 불만이라도?”
야스진은 옛날 일을 떠올렸다.
옛날부터 요한은 저랬다.
남의 사정은 신경도 쓰지 않고 다짜고짜 끌고 가는 저 성격.
말 그대로 폭군이나 다름없는 요 한을 향해 야스진은 희미하게 웃었 다.
“그런 게 있을 리 없잖습니까.”
* * *플로란스는 엘마를 가르치는 일 이 바쁘다고 했지만 추가 수당 준 다는 말에 바로 태워주기로 했다.
노루로 변한 그녀의 위에 탄 채 이동하며 야스진은 씩 웃었다.
"이제 바쁜 일은 없으신 겁니 까?”
"응. 급한 일은 다 끝났지.”
"그럼 이제부터는 뭘 하실 생각 이십니까?”
“소일거리로 할 일들이 많아.”
일단 거슬렸던 암살자들은 다 짓 밟아 둘 생각이다.
그리고 미식클럽에 가입해서 맛 있는 것이나 먹고 다녀야겠다.
영지 일은 프란츠가 알아서 잘하 겠지.
그가 무덤덤하게 말하자 야스진 은 웃었다.
“그럼 앞으로 예배드리러 자주 오시겠군요.”
그건 싫다.
물론 회귀를 시켜 준 바론에게 감사한 마음은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예배를 드릴 필요가 있을까?
“예배를 소홀히 하면 바론님께서 화를 내실 겁니다. 바론님은 어디 에나 계시고. 모두를 바라보고 계 시니까요.”
“그건 내가 바론님이랑 개인적으 로 만나서 얘기하지.”
어차피 인간의 삶을 살다가 수명 대로 가면 길어야 백 년이다.
그 이후에는 다시 바론을 만나게 될 터.
그때 사과 한마디 하면 되지 않 겠나.
‘바론이 예배 좀 안 드렸다고 성 질 낼 것 같지는 않지만.’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면 벌 받 습니다. 하하.”
“누가 날 벌하겠어? 그보다 야스 진. 요새 살만한가 보다? 너 살꼈 다.”
"윽…… 안 그래도 슬슬 금식일 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사제는 지 켜야 할 규율이 많더군요.”
“규율 지킨다고 즐기지 못하는 것도 현명한 일은 아니지. 과연 바 론님이 그런 걸 원할까?”
회귀 전 요한은 인간의 삶을 거 의 살지 못했다.
당장 맡은 임무 때문에 살아가 고,또 강해지는 것에만 집중했었 다.
이렇게 다시 얻은 인간의 삶.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는 인간의 삶은 좀 더 소중하게 써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저는 왜 데리고 오신 겁 니까?”
길동무라면 플로란스가 있는데 굳이 자신을 데리고 온 이유를 모 르겠다.
궁금해하는 야스진은 잠시 후 플 로란스가 발을 멈추자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밥 좀 해. 전에 네가 했던 밥이 생각나더라고.”
“•"…아. 예. 그런데 진짜 이것 때문에 데리고 오신 겁니까?”
"이거 말고 내가 네 도움이 뭐가 필요하겠냐? 그냥 옛날 생각나서 데리고 온 거야.”
야스진은 쓰게 웃으며 요한이 내 민 가방을 받았다.
그가 능숙하게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플로란스는 심각한 어조로 물 었다.
"야스진은 왜 데리고 온 거지?”
“어?”
"뭔가 이유가 있는 것 아닌가?”
뜬금없이 요한이 그를 데리고 온 이유를 모르겠다.
이제 종말은 끝났다.
그가 말한 대로라면 문제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야스진을 데리고 바그너 영지로 간다고 하니 의문을 품을 수밖에.
긴장한 플로란스는 지팡이를 잡 았다.
“혹시 야스진이 뭔가 있는 건 가?”
“없는데?”
“그럼 왜 데리고 온 거지?”
“밥하라고.”
플로란스는 입을 다물었다.
빤히 그를 보던 그녀는 도톰한 입술을 벌렸다.
“진짜?”
"그거 외에 뭐가 있는데? 그냥 바그너 영지 잠깐 갔다 오는 거에 뭔 의미들을 찾아.”
플로란스는 의심스러운 시선을 지우지 못했다.
하지만 요한은 그저 무덤덤하게 넘어갈 뿐이었다.
“야야. 소금 안 넣냐? 뭔 스튜를 끓이는데 소금을 안 넣어.”
“헤나에게 배웠는데 소금을 넣지 말고 짠 빵에 찍어 먹으면 더 맛있 더군요.”
“짠 빵?”
"예. 어? 모르십니까? 요새 로로 바 영지 특산품인데.”
"그런 특산품이!?”
로로바 영지라고 하니 떠올랐다.
레이카 로로바.
바그너 가문의 가신 가문 중 하 나다.
레이카라는 소녀가 가주로 있으 며 가문을 유지하고 지키기 위해 바그너 가문으로 들어왔었다.
그가 떠올리자 야스진은 빙긋 웃 었다.
“거기 여가주가 참 대단하더군 요. 이게 짠 빵입니다.”
야스진이 내민 빵은 일반 빵과는 달랐다.
그것을 빤히 바라보던 요한은 신 기해하며 말했다.
“더럽게 딱딱하네.”
"원래는 로로바 영지에서 보존식 으로 쓰이던 것이라더군요. 만들 때 여러 양념을 넣고 물기를 쫙 뺀 건데…… 이걸 이렇게.”
짠 빵을 반으로 가르자 안이 비 어 있었다.
그 안에 스튜를 담아 접시에 올 렸다.
“여기에 싱거운 스튜를 담아 드 시면 된답니다.”
“……오호. 이건 또 어디서 배웠 어?”
"로로바 영지에서 짠 빵 팔 때 알려주더군요. 모르셨습니까? 이거 맛있다고 꽤 유명한 건데.”
“난 처음 들어봐.”
그의 설명을 듣고 요한은 빵을 한입 베어 물었다.
깝짤한 빵 때문일까?
싱거운 스튜와 간이 적절히 배여 맛이 꽤 괜찮았다.
"오오…… 이거 괜찮구만.”
“로로바 영지에서 이런 요리들을 많이 만든다고 합니다.”
“거기서? 한번 가봐야겠네.”
원래는 윌카스트 후작을 만나고 나서 바로 수도로 갈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만든다면 꼭 가봐야 하지 않겠나.
요한이 스튜에 적셔져 촉촉해진 빵을 우물거리며 말하자 플로란스 는 인상을 썼다.
“난 돌아가 봐야 하는데.”
"저도 가기는 힘듭니다. 예배 준 비하려면 적어도 이틀 안에는 돌아 가 봐야 하거든요.”
냉정한 그들을 향해 요한은 인상 을 구겼다.
“치사한 것들. 됐어. 나 혼자 갈 거야.”
* * *바그너 영지에 들어가자마자 요 한은 바로 저택으로 향했다.
야스진은 온 김에 이쪽의 사제를 만난다고 했고 플로란스도 다른 일 을 본다고 했다.
어차피 로로바 영지까지 같이 갈 일도 없으니 거기서 헤어졌다.
그들을 보낸 요한은 바로 윌카스 트 후작을 찾았다.
“어서 오려무나. 네가 여기까지 올 일이 있을 줄은 몰랐구나.”
윌카스트 후작은 요한의 방문에 신기해하며 그에게 차를 내어주었 다.
녹색 산맥의 엘프들이 재배한 차 다.
사이먼 상단에 바그너 가문의 이 름을 빌려주는 대가로 받는 사치품 중 하나였다.
그윽한 차의 향을 즐기며 윌카스 트 후작이 상냥하게 웃자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아들이 아버지 보러 오는 것이 안 되는 겁니까?”
"안될 것은 없지. 하지만 너는항상 바쁘잖니.”
요한은 언제나 미친 듯이 달렸 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그는 대 륵을 떠돌며 많은 일을 해왔다.
그러니 이상한 것이다.
"혹시 뭐 부탁하러 온 것이라 면……“그런 거 없습니다.”
"그럼? 뭔가 받고 싶어서 온 것 은 아닐 테고.”
"예. 그렇죠.”
"그럼 왜 온 거니?”
"진짜 아버지 보러 온 건데요!?”
황당해하는 요한을 보며 의아해 하던 윌카스트 후작은 흠칫 놀랐다.
그리고 그를 꽉 잡으며 진지하게 말했다.
“네가 율리아 영지에서 떠난 이 후 한 노인이 나타났다.”
“……혹시 키는 이 정도에 수염 이 여기까지 오고,또 자기가 교율 이라고 하는 노인네?”
"네가 보냈니?”
맞는구나.
요한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그가 뭐라고 했습니까?”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종말을 막으러 갔다더구나.”
"망할 놈이……소일거리가 하나 추가되었다.
나중에 교율을 때려잡자는 생각 을 요한이 하고 있을 때 윌카스트 후작은 진지하게 말했다.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니…… 요한. 네가 그 존재이니?”
"확실히 있어서는 안 될 존재긴 하죠. 원래 저는 죽었어야 했으니 까.”
각성을 하여 살아났을 뿐이지.
실제로는 절맥을 이기지 못하고 죽어야 할 존재가 맞다.
요한이 대수롭지 않게 말하자 윌 카스트 후작은 놀랐다.
하지만 그를 잡은 손을 놓지는 않았다.
그저 떨 뿐.
두려워할 뿐.
“교율이 그러더구나. 검은 기둥 은 세상의 종말이며. 그 종말을 막 기 위해 있어서는 안 될 존재가 싸 워야 한다고……"아. 그 망할 놈이 진짜.”
“……그게 사실이니?”
“예.”
딱히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윌카스 트 후작은 눈을 질끈 감았다.
"그리고 네가 떠날 것이라고……“제가요?”
“……안 떠나니?”
“아버지. 제가 전에도 꾸준히 말 씀드렸지만 일 다 했다고 죽을 생 각 따위 없습니다.”
이제부터 즐길 시간인데 가긴 어 딜 간단 말인가.
요한은 인상을 쓰며 고개를 저었 다.
“아. 떠나긴 할 겁니다.”
“어디로!? 어딜 간단 말이냐!! 네 가 가는 것을 내가 용납할 것 같으 냐!! 있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있 어도 된다!! 이 아비가 말하는 거 야!! 넌 있어도 돼!!”
흥분한 윌카스트 후작은 그를 꽉 잡으며 외쳤다.
그 외침에 놀란 밖의 메이드가 들어올 정도였다.
그녀를 내보낸 윌카스트 후작은 간절히 말했다.
"떠나지 말아다오…… 아들아.”
"로로바 영지에 훌륭한 요리사가 있다고 해서 가는 건데…… 아버지 도 같이 가시죠.”
“……진작에 말하지.”
윌카스트 후작은 민망해하며 획 고개를 돌렸다.
그런 그를 향해 요한은 히죽 웃 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