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12화
387. turn off (3).
어쨌든 요한의 말대로 문제 될 일은 없다.
검은 기둥이 사라졌고 종말은 중 지되 었다.
“이제 더 볼 일 없지? 그럼 각자 할 일 하러 가자. 야. 프란츠. 너 가서 일해. 할 일 많으니까.”
“아. 예.”
요한 찾으러 갔다가 시간만 날려 먹었다.
떨떠름해 하며 프란츠는 자리에 서 일어나 나갔다.
“레이몬. 바그너 영지에서 할 일 많을 텐데 여기 계실 겁니까?”
“끙......
너무 당당한 모습 때문에 지금까 지 걱정했던 것이 아깝다.
한 대 쥐어박고 싶지만 빌헬미나 도 있는 데다가 요한이 맞아 줄 것 같지도 않다.
짧게 신음한 그도 벌떡 일어나 나간다.
“플로란스. 넌 여기서 뭐 할 일있냐?”
"흠…… 딱히 없군.”
"그럼 내 일이나 도와. 엘마에게 드루이드의 기술을 좀 가르쳐줘. 그리고 나서도 할 일 없으면 바그 너 영지 가서 숲 관리하고.”
“보수는?”
“정확히 책정해서 지급하도록 하 지.”
“하아. 알겠다.”
슬쩍 헤이로나를 본 그녀는 그녀 와 함께 나갔다.
남은 것은 에밀리뿐.
어쩔 줄 몰라 하는 그녀를 보던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수도로 복귀해야 하지?”
“어? 어. 그렇지.”
“그럼 같이 가자. 나도 수도에 볼일 있으니까.”
“무슨 볼일?”
“양유위 만나서 앞으로 할 일에 관해서 얘기를 좀 해보려고.”
“할 일?”
이제 요한이 더 할 일이 있는 것 일까?
의아해하는 그녀에게 요한은 씩 웃었다.
“그런 게 있어.”
* * *탈무의 연구실 중앙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던 요한은 한숨을 쉬 었다.
‘이제 다 끝났으니까…… 정리할 것들은 정리해놔야겠군.’
일단은 가장 거슬리는 문제부터 치우자.
요한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 었다.
그는 차곡차곡 성궤를 꺼냈다.
이제 쓸 일도 없는 잡다한 물건 들부터 처리해야겠다.
그리 생각한 요한은 첫 번째로 얼굴 없는 자의 석상을 꺼냈다.
"하. 이 자식.”
회귀 전에 이놈 때문에 고생했 고,회귀 후에도 이놈 때문에 고생 했다.
얼굴 없는 자의 석상을 노려보던 요한은 손바닥을 쓱 그었다.
붉은 피가 흘러나와 석상을 적신 다.
자신의 피로 완전히 물들어버린 석상을 응시하던 요한이 주술을 펼 치려는 순간.
발소리가 들렸다.
“뭐야?”
안으로 들어온 것은 에밀리였다.
꽤 진지해 보이는 그녀를 힐끔 본 요한은 손을 들었다.
“거기까지. 뭔데?”
“넌 뭐하는 건데?”
“위대한 자의 석상 봉인시키려 고. 아공간 주머니 자리만 차지해 서 말이지."
완전히 피로 물든 석상을 이리저 리 살펴본 요한은 주술을 발동시켰 다.
검은색 스파크와 함께 번쩍이던 석상이 형태를 잃어가기 시작한다.
세 개의 다리를 가진 괴물의 모 습이 일그러져버리자 요한은 주술 을 멈췄다.
“주술도 쓸 줄 알아?”
"정확하게 말하면 저주받은 비술 인데. 뭐 주술의 성향이 짙으니까 주술이라고 해두지.”
명칭 따위가 뭐가 중요한가.
봉인된 석상을 발로 툭 쳐 옆으 로 치운 그는 다른 석상도 꺼냈다.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
황색의 왕의 석상.
불의 흡혈귀의 석상.
차원의 개의 석상.
남은 것은 뱀들의 왕의 석상뿐이 었다.
"그건 안 해?”
“어.”
뱀들의 왕의 석상은 따로 챙겨 둔 요한은 성궤도 부숴버렸다.
그가 작업을 다 끝낸 듯하자 에 밀리는 그에게 다가갔다.
“검사가 손을 이렇게 막 쓰면 어 떡 하냐.”
“뭐 어때. 힐링 포션 뿌리면 치 료되는데.”
옆에 둔 힐링 포션을 들어 손에 뿌리자 상처가 부글거리기 시작했 다.
꽤 아플 텐데도 요한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넌 진짜 괴물이구나?”
“지금까지 뭐라고 생각했어?”
교율에 의해서 사정을 알게 되었 다.
아니,그걸 떠나서 검은 기둥에 서 봤던 것을 생각한다면 확실히 괴물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깝지 않아?”
"뭐가? 저거 봉인한 거?”
위대한 자의 석상을 하나 빼고 전부 봉인시켰다.
저것들이 있다면 그때의 힘을 다 시 쓸 수 있을 텐데.
요한은 조금도 아쉬워하지 않고 있었다.
"맛있는 요리는 집착하면서. 힘 에는 집착하지 않네.”
"이제 저딴 거 없어도 되니까. 애초에 지금의 날 잡을 수 있는 자 도 없을 테고.”
아홉 개의 코어를 완성한 마당에 무서울 게 뭐가 있겠나.
거기에 만약을 대비해 하나는 남 겨뒀으니 됐다.
심드렁한 표정의 그를 보던 에밀 리는 검을 들었다.
“뭐야. 내 목 따러 왔냐?”
“아니.”
에밀리는 슬쩍 눈을 돌렸다.
그녀의 시선에 닿은 것은 구석에 앉아서 명상을 하던 광약이었다.
“투왕과 대련을 해보고 싶어.”
"오〜! 천하십강에 올라가겠다고? 안 그래도 새로운 천하십강을 정해 야 했는데.”
아니면 이름을 아예 바꿔버리든 가.
열 명도 아닌데 천하십강이라고 아직 이름이 남아 있는 것이 웃긴 다.
“지금 자기가 인왕이 된다고 떠 드는 놈이 마드모스 왕국에 있다더 라.”
“알아. 들었어. 그리고 해왕의 자 리를 차지하겠다며 남부에서 날뛰 는 모험가도 있다던데? 이름이…… 킬하이츠라던가.”
들어 본 이름이 나왔다.
요한은 볼을 긁적거리다가 어깨 를 으쏙였다.
“그래서?”
“일단은 투왕에게 도전해봐야겠 지.”
그리고 그 도전은 오늘 치러질 것이다.
얌전히 있다가 갑자기 도전을 받 게 된 광약은 눈을 뜨며 일어났다.
"도전하겠다면 말리지는 않겠다. 하지만 봐주지 않을 텐데. 자신 있 나?”
가르치는 것이 아닌 자격을 증명 하기 위한 싸움이다.
어쩌면 이 싸움을 하다가 서로에 게 큰 상처를 입힐 수도 있었다.
“상관없습니다.”
“그럼 로드.”
"해. 하고 싶다는데 뭐라고 하겠 냐. 그리고 에밀리도 꽤 강해.”
“알고 있습니다.”
그녀는 절치부심하고 노력해왔다.
괴물의 옆에 서기 위해서.
그 노력을 결코 무시할 수는 없 었다.
저번에 균열에서 싸울 때 에밀리 의 실력을 봤던 광약은 고개를 끄 덕이고 검을 들었다.
"싸우는 데 연주가 필요하겠지?”
탈무의 연구실은 거의 광약의 방 처럼 쓰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그가 만든 꽤나 많은 악기들이 있었다.
요한은 류트 하나를 잡았다.
“자. 시작.”
가볍게 류트의 현을 튕긴 순간 광약이 달려들었다.
요한에게 영향을 받아 강해지길 원하고 노력한 것은 에밀리뿐만이 아니다.
처음 요한과 만난 이후.
그때부터 광약은 언제나 노력하 며 싸워왔다.
그런 만큼 패배할 생각 따위는 없었다.
“하아아압!!”
거센 기합성과 함께 내리쳐지는 검을 에밀리는 이를 악물고 받아냈 다.
* * *검과 검이 맞부딪히며 만들어지 는 소음.
그리고 그 소음을 감싸는 류트 연주.
요한이 다섯 번째 곡의 연주를 시작했을 때 광약은 오러 블레이드 를 휘둘렀다.
빠르고,매서운 검격이었다.
그것을 오러 블레이드로 막아낸 에밀리는 그의 가슴을 어깨로 들이 받았다.
"흥!!”
가녀린 여자의 몸으로 자신 정도 의 덩치를 받아내려 하다니.
광약이 그것을 버텨내려고 한 순 간.
-쿠우웅!!!
에밀리는 강하게 땅을 밟았다.
그것이 체술을 사용하려는 것임 을 안 광약은 움찔했다.
만약 제대로 된 체술이라면 버텨 내는 것은 무리다.
상대가 약하기라도 하다면 모르 겠지만 진지하게 천하십강을 노리 는 자.
그렇다면 맞아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이미 늦었다.
- 퍼어억!!!
팔꿈치 공격이 명치를 후려치고, 이어서 그녀의 등이 광약의 가슴을 후려쳤다.
"크억!!?”
광약은 주춤거리며 물러났다.
그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생 긴 방심.
그것이 승부를 갈랐다.
“……졌습니다.”
에밀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겼다고 생각했다.
그가 물러나며 만들어진 빈틈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광약이 더 빨랐다.
그는 물러나면서도 검로를 잃지 않았고 오히려 뒤돌아 공격한 틈을 노렸다.
“후우…… 훌륭했다. 만약 내가 패왕과 싸워보지 않았다면 그대로 당했겠지.”
“한 끗 차였네.”
연주가 멈춰진다.
요한은 광약을 향해 씩 웃으며 말했고 그는 얼굴을 붉혔다.
알고 있었다.
이번 승부.
조금만 긴장을 풀었어도 승패를 자신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아까 그 공격…… 어디서 배운 거지?”
“가로무의 기술을 훔쳤습니다."
딱히 숨길 생각은 없었다.
전에 균열에서 싸울 때 공부할 틈은 얼마든지 있었다.
요한의 검은 괴물 같아서 훔치기 어렵다.
하지만 광약이나 가로무의 검과 체술은 충분히 가능성이 있었다.
그렇기에 항상 염두에 두고 있었 다.
‘아까웠다.’
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이길 수 있었다.
광약을 꺾고 인정받아 천하십강 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
가로무가 사용하던 체술을 제대 로 훔쳐내고,그것을 제대로 연마 할 수 있었다면.
오늘 새로운 천하십강이 탄생했 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여유는 없었다.
균열이 닫히고 나서 검은 기둥이 나타났고,그 이후로 요한을 쫓느 라 수련할 시간이 없었다.
‘만약 그걸 좀 더 연마했다 면"•…등으로 치고 난 후 빠르게 몸을 돌려 공격을 이어가야 했다.
하지만 익숙지 않은 동작은 검로 를 꼬이게 만들었다.
에밀리가 입술을 꽉 깨물며 고개 를 숙이자 광약은 웃었다.
“훌륭했다. 당할 뻔했어.”
“당하지는 않으셨네요.”
“그 기술이 좀 더 숙련되었다면당했을 거다.”
광약이 알고 있는 지적을 했다.
에밀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광약 은 빙긋 웃었다.
"다음에는 안 통할 거다.”
몰랐으니까 이렇게 된 것이지 아 는 이상 의미는 없었다.
대비는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의 답을 들은 에밀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대련 감사합니다.”
에밀리는 차마 요한을 보지 못했 다.
그의 옆에 서겠다고 그렇게나 잘 난 척을 했는데 결국 광약 하나 이 기지 못했다.
“......우냐?”
"아,아무것도 아니에요.”
자신의 한심함에 눈물이 나왔다.
차라리 요한을 따라가지 않았다 면?
그 시간 동안 수련을 했다면?
“사람이 살면서 어떻게 계속 이 기기만 하냐? 야. 울지 마. 다음에 이기면 되는 거지.”
“……내가 바라는 것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니까.”
“허. 참나.”
요한이 달래주는 것조차 동정으 로 느껴질 정도다.
에밀리는 주먹을 꽉 쥐었다.
‘그를 따라가는 게 아니었어.’
그 시간 동안 수련을 했어야 했 다.
요한이 알아서 잘할 것이라 믿고 있었어야 했다.
자신의 방만함이,욕망을 위해 움직인 것이 패배의 원인이 되었다.
"……다음에는 안 져요.”
주먹을 꽉 쥐며 에밀리가 말하자 광약은 씩 웃었다.
핏발 선 눈으로 한차례 요한을 본 에밀리가 나가버렸다.
그녀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광약 은 요한을 보며 말했다.
“좋은 사람입니다.”
“나쁜 사람이라고 한 적 없어.”
“패배하고 자신의 잘못을 깨닫 고,다음을 노리려는 모습. 멋지지 않습니까?”
"반했냐?”
“……그런 의미가 아니잖습니까. 로드. 전 저분이 로드께 잘 어울린 다고 생각합니다.”
대답하는 대신 그가 팔짱을 끼자 광약은 피식 웃었다.
"아니 그리고 결혼할 분도 안 계 시잖습니까.”
“야. 나한테 들어오는 정혼장이 얼마나 되는 줄 아냐?”
“그것도 이제 거의 끊겼습니다.”
옛날에는 요한의 인기가 대단했 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상대가 너무 거물이 되어버린 것 이다.
이제 요한과 어울릴 만한 상대는 일국의 왕족 수준이 아니면 턱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 왕녀들은 대부분 정 혼자가 있더군요. 없는 분이 레일 라 왕녀뿐인데……“그 여자는 내가 싫어.”
“그러니 없다는 겁니다. 또 있습 니까? 로드께 저렇게 들이대는 여 자가?”
요한의 저 더러운 성격을 안아주 며 살아갈 사람이 누가 더 있을까?
그가 훈훈하게 웃자 요한은 인상 을 썼다.
“뭐냐? 그 웃음은?”
"아뇨. 있을 때 잘하라는 말이 떠올라서 그런 겁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