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권 3화
378. 늘 하던 일 (3).
수정구를 보며 요한은 그사이 있 었던 일에 대한 회상을 끝냈다.
“다 익었다.”
육즙이 흘러나오는 사슴고기를 씹어 삼킨 그는 다음 고기로 손을 뻗었다.
“어차피 그놈. 거기서 안 죽었어 도 우리 손에 죽었을 거야.”
플로란스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 다.
요한뿐만 아니라 자신도 들어가 지 말라고 했다.
그 말을 어긴 데다가 대놓고 자 기가 들어갔다고 널리 알리기까지 했다.
그런 만큼 톨리간 백작이 거기서 살아나왔어도 플로란스는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사람의 말에는 무게가 실리는 법이지. 그 무게를 감당할 자신이 없다면 따르는 게 맞아.”
냉정하게 그녀가 말하자 토도 백 작은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요한 자작. 자네는…….]
"방침은 변한 것 없습니다. 거기 접근하지 말라는 것뿐.”
그럴 리는 없지만 저 나팔수를 해치울 수 있다면?
그럼 감사할 따름이다.
중요한 것은 나팔이 울리지 않게 하는 것뿐이니까.
"자. 그럼 저희는 밥 먹어야 하 니까 나중에 또 얘기하지요!!”
요한은 수정구를 잡고 히죽 웃었 다.
그 웃음을 본 토도 백작이 더 말 하려는 찰나 요한은 그대로 통신마 법을 종료시켜버 렸다.
“레이몬. 좀 드시죠. 고기가 아주 좋네.”
막 잡은 사슴고기라 그런지 노린 내가 좀 있지만 무척 신선하다.
그가 구워진 고기를 내밀자 레이 몬은 자리에 앉았다.
“아까 그여인은 죽었다.”
목이 잘렸는데 살아남을 수 있을 까?
궁금해하는 레이몬을 향해 요한 은 고기를 내밀며 말했다.
“고작 그런 것으로 죽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아쉽게도 죽지는 않았을 겁니다.”
“그럼?”
"애초에 그 여자는 죽일 수도 없 는 존재입니다. 그 나팔에 종속된 거라서 나팔을 부숴야 하지.”
회귀 전에도 멋모르고 그 여자와 싸우면서 체력을 날리기도 했었다.
죽이고 죽이고 또 죽여도 그녀는 되살아났었다.
그러다가 몰래 빠진 유결이 나팔 을 공격했고 그때부터 진짜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나저나 헛짓할 놈들이 생기지않을까 걱정이네.”
“무슨 소리야?”
플로란스가 툭 내뱉자 요한은 고 개를 갸웃거렸다.
궁금해하는 그를 향해 플로란스 는 피식 웃었다.
“요한. 너의 적은 많아.”
"알아.”
“그리고 내 적도 많지.”
“으......,,"o" .
“뿐만 아니라 레이몬의 적도 많 고,네 부하인 광약의 적 역시도 많아.”
강자를 질시하는 이들은 많다.
그러다 보니 그들은 이런 생각을 했을지도 모른다.
저 기둥에 가까이 가면 힘을 얻 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안에 정체불명의 여인 이 있었다.
그렇다면 그 여인이 힘을 주는 존재가 아닐까?
그런 허튼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는 것이다.
“만약 그 장면에서 무시무시한 괴물이 나왔다면 이야기는 달랐겠 지만…… 그 여자는 너무 평범해 보였지.”
만약 수정구에 나타났던 여인이 괴물처럼 생기거나,혹은 위협적으 로 생겼다면 경계했을 것이다.
하지만 수정구에 나타난 여인은 힘 하나 없이 선량해 보이는 인상 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안심하고 검은 기둥이 있 는 곳으로 갈 자들이 있을지도 모 른다는 것이다.
"그 톨리간 백작처럼 기둥을 얻 기 위해서. 그것도 아니면 그냥 우 리가 해야 할 일을 훼방 놓기 위해 서 그곳으로 향할 수도 있어.”
“내 적들은 다 쳐 죽여놨으니까 다른 사람들의 적이 문제겠군.”
요한이 자신만만하게 말하자 에 밀리는 획 고개를 돌렸다.
그녀의 반응을 본 요한은 인상을 찡그렸다.
“뭐야? 그 반응은?”
“아니…… 로드만 왕국에도 널 싫어하는 사람들은 아직 많으니까.”
그가 없어지면 바그너 가문의 힘 이 약화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가진 것을 얻을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는 귀족들은 상당 히 있었다.
“좀 착하게 살지 그랬어•"…에밀리가 촉촉한 눈으로 바라보 자 요한은 반색했다.
“나중에 개들 명단 좀 적어줘.”
‘일 다 끝나면 그놈들도 죽여주 지.’
"그리고 내 적도 많다.”
플로란스 역시 과거 오래된 자의 힘을 얻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녀가 천하십강이라서 그냥 넘 어갔지 만약 그게 아니었다면 그녀 를 찢어 죽이려 했을 사람도 얼마 든지 있다.
당연히 레이몬 역시도 마찬가지 다.
“에이. 설마. 머릿속이 꽃밭이 아 닌 이상에야 그렇게 긍정적인 사고 방식을 가지고 있지는 않겠지. 이 유도,근거도 없잖아.”
“그러니까 인간이라는 거다. 자 기들 멋대로 희망을 상상하고 그 희망을 원하는 거지.”
“허.”
즉 내버려두면 요한,플로란스, 레이몬의 적들뿐만 아니라 일반인 들도 검은 기둥으로 몰릴지도 모른 다는 이야기다.
요한은 잘 익은 고기를 들어 올 려 씹었다.
“에이. 설마. 난 그 정도로 정신 나간 놈들이 많다는 생각은 안 할 래. 아무리 힘을 원해도 뻔히 위험 한데 가는 정신 나간 놈들이 많겠 어?”
플로란스의 말을 들으며 요한은 부정적인 판단을 내렸다.
* * *“……그렇게 생각했던 때도 있었 지.”
사람들이 신경 쓰지 않을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던 요한은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플로란스의 말대로 사람들이 몰 리고 있었다.
- 천하십강인 그들이 그 여인을 손에 넣으려고 하는 것이다.
- 검은 기둥이 보유하고 있는 힘 을 독점하려는 것이다.
- 그 여자는 나의 어머니가 되어 줄 여자다.
- 그 여자를 만나고 톨리간 남작 의 부하들이 미쳐버렸다. 어쩌면 그 여자도 광왕 요한이 쓰는 것과 같은 힘이 있을지도 모른다. 어떻 게든 같은 편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 외에 다수의 이야기들이 퍼지 고 있었다.
모험가들,그리고 귀족들.
심지어 마법사나 연금술사들도 검은 기둥을 향해 다가간다는 이야 기를 들었다.
"와. 세상에. 어찜 이렇게 멍청할 수가.”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마을에 들러 정보를 확인한 요한은 감탄했다.
톨리간 백작이 퍼트린 이후로 꽤 나 많은 이들이 검은 기둥으로 몰 리고 있었다.
“그들이 죽은 것은 분명히 확인 했을 텐데도……정말 불나방이 따로 없다.
레이몬도 질렸는지 떨떠름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톨리간 백작이 알린 이후로 도 브다만 왕국에 들어오는 이들이 늘 었다더군요. 거기에 상아탑에서 저 희가 한 일도 있고.”
차라리 몰랐다면 괜찮았을 것이 다.
하지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아 버리니 두려움이 줄어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쓸데없는 희망이 되었다.
에밀리는 점원이 다가오자 그녀 에게 은화를 내어주었다.
빠르게 테이블에 깔린 요리들을 우물거리며 요한은 인상을 구겼다.
"그래서. 도브다만 왕국이 때아 닌 호황이라 이거지?”
여행자들을 위한 주점에는 벌써 꽤나 많은 이들이 있었다.
신분을 숨기기 위해 로브를 뒤집 어쓴 자들도 있었고 바이저나 가면 으로 얼굴을 가린 자들도 있었다.
"크흐흐…… 검은 기둥 안에 있 는 그 나팔을 손에 쥐면 천하십강 도 이길 수 있다더군.”
"아니. 그뿐인가? 그 여인을 취 하는 자가 세계의 지배자가 될지도 모른다.”
"무려 천하십강들이 원하던 것이잖아? 그들이 알기 전에 먼저 들어 가면 되는 거야.”
"그 여자. 내 취향이야……이 자리에 천하십강 셋이 있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한 모험가들과 용 병들이 떠들었다.
그것을 어이없다는 듯 보던 레이 몬은 요한을 보았다.
“저걸 그냥 놔둘 생각이냐?”
“자살하겠다는데 뭐하러 말립니 까.”
“아니 그래도……“그냥 내버려두죠. 지금 이런 꼴보니 그 기둥 쪽에 가면 바글바글 할 텐데.”
명령을 어긴 것에 대한 처분은 그때 몰아서 하면 된다.
요한이 잔에 있는 음료를 홀짝였 을 때 주점의 문이 열렸다.
그곳에서 들어온 것은 하얀 로브 를 입은 소녀와 두 명의 여기사였 다.
"저…… 여러분들께서는 검은 기 둥으로 향하고 계신 겁니까?”
꽤 맑은 목소리였다.
그것을 들은 주점의 용병들과 모 험가들은 히죽 웃었다.
“오. 거기 아가씨도 함께 가시려 는 건가?”
“이리 오라고. 우리가 잘 놀아줄 테니까.”
“우리는 세븐 용병단이다. 귀족 들도 손꼽아서 고용하려고 하는 강 자들만 모였지.”
자기 자랑을 하며 떠드는 이들을 향해 소녀는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것을 본 요한은 흠칫 놀랐다.
‘아니 재는 왜 저기 있어?’
“여러분. 그곳에 가면 안 됩니다. 그 검은 기둥은 아주 위험한 것입 니다. 광왕께서도 말씀하셨잖습니 까.”
검은 기둥에 접근하지 마라.
그 경고를 결코 무시해서는 안 된다.
“저는 바론 교단의 성녀 미나입 니다. 저는 여러분을 구하고 싶습 니다. 부디 그곳에는 가지 말아 주 십시오.”
꽤나 간절한 어조였다.
그 말을 들은 몇몇 모험가들과 용병들은 당황했다.
황급히 성호를 그은 그들이 예를 보였다.
하지만 바론 교도가 아닌 이들은 미나를 향해 비웃음을 던졌다.
“천하십강이고 지랄이고. 우리가 가고 싶어서 간다는데 어쩔 거야?”
“아니. 그걸 떠나서. 바론 교단의 성녀가 왜 광왕을 따라?”
"바론 교단이 광왕의 개라도 된 건가?”
“무례하다!!”
"미친 자식이 감히 바론님을 모 욕해!?”
주점에 있던 바론 교도들이 으르 렁거 렸다.
그런 그들을 향해 떠들던 이들은 킬킬 비웃음을 던졌다.
“신을 따르느니 난 돈을 따르겠 어.”
"바론은 날 구원해주지 않았는데 내가 왜 바론을 존중해야 하나?”
순식간에 불신자들과 신자들의 싸움이 시작되었다.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서 한 남자가 입을 열었다.
“그걸 떠나서 요한이 그렇게 말 했다고 바로 뜻을 함께하다니. 그 애송이 놈이 뭐가 무섭다고 그러는 건지 모르겠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는 왕도 욕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그는 싱글거리며 손을 내밀었다.
“광왕이 사람들을 미치게 한다 고? 그딴 거. 내 오러 블레이드 한 번이면……푸른 오러 블레이드가 그의 손에 맺혔다.
“그 검은 기둥을 손에 넣고 이 검성 월르크 님이 요한 그 애송이 의 목을 획 따주지. 흐흐흐……“어우 야. 그건 좀 너무 나간 것 아니냐?”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천하십강 을 저렇게 욕하다니.
잘못하다간 진짜 죽는다.
같은 자리에 앉아 있던 몇몇 용 병들은 당황하며 잔을 들고 다른 자리로 향했다.
하지만 윌르크에게 동조하는 몇 몇 용병들과 모험가들도 있었다.
"하!! 그놈은 그냥 석상 하나 다 루는 미친 놈에 불과하잖아? 그리 고 플로란스? 풀 쪼가리 들고 다니 는 드루이드 나부랭이가 뭐가 무섭 다고. 레이몬은 그냥 늙은이고.”
"그분들을 욕하지 마세요!!”
미나는 얼굴을 붉히며 화를 냈 다.
그녀에게 있어서 요한은 경애해 마지않는 영웅이다.
악마를 쓰러트리고 대악마를 지 옥으로 되돌려보낸 영웅.
거기에 그녀의 스승인 하이마스 는 플로란스 역시 존경받아 마땅한 사람이라고 했다.
그런 이들을 욕하고 무시하는 것 을 용납할 수 없었다.
“어이구. 어쩌시게? 치시려는 건 가? 그 고운 손으로?”
히죽 웃은 윌르크는 미나에게 다 가갔다.
그리고 그녀의 옆에서 이를 드러 내고 있는 기사들을 비웃으며 얼굴 을 가까이 가져갔다.
"어디 한번 쳐보시지!? 성녀님의 주먹에 맞으면 얼마나 아프려나?”
“어,어이!! 월르크! 너무 심해!!”
"그만하라고!”
너무 과하다 싶었다.
이 정도 모욕이면 바론 교단에서 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만류했지만 만취한 윌르크는 멈추지 않았다.
“왜? 내가 잘못을 했다면 성녀님 께서 그토록 자랑스럽게 여기시는 광왕과 백왕이 날 심판하러 오겠지. 응? 안 그래?”
실실 웃는 그를 향해 미나는 주 먹을 쥐었다.
분노한 그녀가 뺨을 후려치려는 순간.
-쯔즈즈즉 11주점에 있는 화분들과 벽면의 이 끼 그리고 대들보에서 덩굴이 돋아 그의 몸을 감쌌다.
그리고.
“그냥 내가 때리면 안 되냐? 그 작은 손으로 때려봐야 아플 것 같 지도 않고.”
씩 웃으며 요한이 나무 의자를 질질 끌고 이 층에서 걸어 내려왔 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