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23화
373. 그는 더 자야 한다 (1).
요한과 플로란스가 영지를 떠나 려고 할 때 페드로는 다급한 표정 으로 달려 나왔다.
“광왕!! 잠시만요!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의 기둥 때문에 교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무슨 연락?”
“백왕과 함께 교단으로 와달라는 요청입니다.”
바론 교단의 본부는 로드만 왕국 의 동북쪽 끝.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과는 꽤 떨어진 곳이다.
그곳까지는 가는 것도 일이다.
요한이 귀찮다는 표정을 짓자 페 드로는 진지하게 말했다.
“교단에서 이번 일을 성전으로 이끌어갈 수도 있습니다.”
“오. 그럼 곤란하지.”
바론 교단에서 성전을 언급한다 면 그때부터 바론을 따르는 모든 이들이 모인다.
그 과정에서 물자의 비축과 더불 어 각 나라에 혼란이 발생한다.
그것을 무시하며 힘을 모아 한 번에 위기를 해소한다.
그것이 바로 성전이다.
지옥문 사태 때도 선언하지 않았 던 성전 선포를 하려고 한다면 막 아야 했다.
‘마왕은 그냥 내가 혼자 잡을 수 있는데 괜히 일 크게 만들 필요는 없다.’
일 다 끝내고 열심히 놀려면 어 느 정도 안정된 상황이 만들어져야 한다.
마왕을 잡고 나왔더니 대륙이 개 판 나 있으면 뭐 하고 놀겠나.
소일거리 삼아 다른 나라 침략하 는 정도라면 괜찮지만 방어전 하겠 다고.
그리고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반 란 진압하겠다고 돌아다니는 일은 사양이 다.
요한은 페드로를 잡고 말했다.
"하이마스 주교님은?”
“지금 교단 본부에 계십니다.”
“연락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려 나?”
“그건……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주교회의에 참석하시면 적어도 며칠은 연락을 할 수 없습니다.”
바론 교단 본부에 있는 중앙회관 에 모여 며칠 동안 회의를 한다.
그리고 그 의견들을 조율하여 결 정을 내린다.
이번 안건은 성전에 관한 것일 테니 분명 시간이 걸릴 것이다.
요한은 얼굴을 감싸 쥐었다.
“아오. 진짜 일 좀 빨리 끝내려 고 했더니……“어쩌실 생각이십니까? 바로 가 보시는 것이 나을 것 같습니다 만……“그럴 필요는 없지. 페드로 당신 이 좀 가서 얘기를 해줬으면 하는 데. 그 기둥은 내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까 성전 같은 거 하지 말라고 전해줘.”
“하지만……그 기둥은 페드로도 보았다.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함이 느껴 질 정도였다.
이미 거기에 들어갔던 이들이 나 오지도 못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분명 위험한 것이다.
본능적으로 알 수 있는 공포심에 페드로가 머뭇거리자 요한은 그의 어깨를 꽉 잡았다.
“나 요한이야. 요한.”
“아……“그러니 뒷일은 믿고 맡기도록 하겠어.”
그의 어깨를 토닥여 준 요한은 바로 밖으로 나갔다.
그가 나가는 것을 보던 페드로는 한숨을 쉬었다.
“그럼 이럴 때가 아니지.”
* *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에서 치솟 아 대륙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검 은 기둥은 빠르게 대륙 각지의 사 람들에게 알려졌다.
거기에 검은 기둥이 나타난 지 며칠 만에 기둥은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을 전부 잠식했다.
그것 때문일까?
대륙 각지에서는 난리가 나 버렸 다.
특히나 가장 큰 난리가 난 도브 다만 왕국은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다.
지옥문 사태가 벌어진 지 얼마나 됐다고 또 이런 일이 생겼단 말인 가.
도브다만 왕국의 국왕 에인스타 인은 인상을 찡그렸다.
“하아…… 어째서 이런 일이……지옥문 사태가 일어나고 수습은 되었다.
하지만 피폐화된 국토는 아직 회 복되지 못했다.
각지에는 도적이 들끓고 있었고 반란을 생각하는 귀족들도 있을 정 도다.
그런데 또 이런 일이 벌어져 버 렸다.
이제는 국왕을 따르는 귀족들도 불안해하고 있었다.
“토도 백작. 어찌 생각하시오?”
지옥문 사태 이후로 많은 자금을 풀어 왕국을 안정시키고 국왕파의 최측근이 된 토도 백작을 향해 에 인스타인은 조심스레 물었다.
조언을 구하는 그를 향해 토도 백작은 난감함을 감추지 못했다.
“글쎄요……“귀족원에서는 뭐라고 말하고 있 소?”
토도 백작은 차마 말을 꺼내지 못했다.
도보다만 왕국의 귀족원에서 하 는 말은 같았다.
왕이 문제다.
국왕이 뭔가 죄를 지었고 그 죄 를 심판하기 위해서 바론님이 벌을 내리시는 것이다.
그것이 아니라면 두 번이나 이런 큰일이 일어날 리 없잖은가.
몇몇 불만이 가득한 귀족들 중에 는 왕가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이야 기를 하는 자도 있었다.
거의 반역이나 다름없는 발언이 나왔는데도 귀족원은 그것을 나무 라지 않았다.
그 정도로 도브다만 왕국은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어찌해야 할지……“일단 바론 교단에 요청을 해놨 습니다.”
“바론 교단이라면 해결이 가능하 다고 생각하시오?”
“혹시 몰라 상아탑과 연금술사 길드,모험가 길드에도 요청했습니 다.”
“으음……“녹색 산맥의 엘프들에게도 문의 를 해보았습니다. 며칠 안에 엘프 들이 왕궁으로 찾아올 것입니다.”
이런 일은 과거의 문제에서 답을 찾아야 하는 법이다.
분명 과거에도 이런 일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그때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파악 한 후 해결 방안을 찾자.
그것이 귀족원이 내린 답이었다.
“내 목을 치자는 이야기는 안 하 는구려.”
“그들도 답답해서 해본 말일 것 입니다. 폐하께서는 너무 낙담하지 말아 주십시오.”
왕가를 갈아치운다고 점점 커져 가는 저 기둥이 사라지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토도 백작이 나서 서 국왕에게 제안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 니 결국 남는 것은 조사와 분석밖 에 없었다.
“하아…… 이를 어찌해야 할 지…… 토도 백작. 미안하구려.”
“아닙니다.”
“그대의 딸이 약혼을 했다는 좋 은 소식을 듣고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은 그저 축하밖에 없다 는 게 서글프군.”
왕가의 보물이나 재산을 팔아 지 옥문 사태로 피해를 본 이들을 돌 봤다.
토도 백작의 자금까지 빌려서 처 리를 했는데 일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다.
그러니 에인스타인 국왕으로서는 차마 자신의 신하에게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무 심려치 말아 주십시오. 폐 하. 제가 원해서 한 일입니다.”
“하아……에인스타인 국왕은 또다시 땅이 꺼지라 한숨을 내쉬었다.
오랜 기간 이어진 도브다만 왕국 의 명맥이 어쩌면 자신의 대에서 끊어질지도 모른다.
그 생각 때문일까?
마음이 무겁고 정신이 사나워졌다.
그때 였다.
“폐하. 녹색 산맥에서 엘프들이 찾아왔습니다.”
“어서 들라 해주시게.”
잠시 후 들어온 것은 세 명의 엘 프였다.
중년의 남자 엘프 하나와 미녀 엘프 둘.
그들이 에인스타인 국왕에게 살 짝 묵례했다.
“사이먼의 촌장. 베르도 사이먼 입니다. 이쪽은 저의 호위를 위해 함께 온 이들입니다.”
"세이논이라고 합니다.”
“레닌입니다.”
둘의 인사를 들은 에인스타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만나서 반갑소. 베르도 촌장. 혹 시 저 기둥에 대해서 뭔가 알아낸 것이 있소?”
에인스타인은 꽤나 간절한 표정 으로 물었다.
뭔지를 알아야 조사를 하든 피하 든 하지 않겠나.
걱정하는 그에게 베르도는 짧게 혀를 차며 답해주었다.
“껍. 저희 엘프들의 기록에도 저 검은 기둥에 대해서는 전해지는 것 이 없습니다.”
“하아아……"하지만 저것을 아는 이가 있다 더군요.”
“그게 누굽니까!?”
정신이 들었다.
번쩍 고개를 든 에인스타인이 묻 자 베르도는 며칠 전 받았던 전언 을 떠올렸다.
“저 기둥은…… 멸망의 기둥이라 고 합니다. 그리고 저 안에 세상을 멸망시킬 나팔수가 있다더군요.”
“……그게 무슨?”
“저희도 그것만 들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최대한 기둥 근처에 접근하 지 말라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누가 그런 이야기를 한 겁니까??”
“암왕과 백왕,그리고 광왕입니 다. 상아탑을 통해 대륙 각지에 알 렸더군요.”
그렇다면 그들은 뭔가 아는 것 아닐까?
에인스타인의 표정에 약간의 화 색이 돋았을 때 벌컥 문이 열리며 기사 하나가 들어왔다.
“큰일입니다!!”
“뭔가?”
“톨리간 백작이 기사들을 이끌고 검은 기둥 근처에 도착했다고 합니 다.”
“뭣이라!?”
토도 백작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 났다.
톨리간 백작은 대놓고 왕가를 싫 어하는 자였다. 언제나 왕가에 대 한 불만이 강했던 자.
하지만 강력한 기사단과 병사를 보유하고 있는 데다가 백작 자신도 마스터이며 휘하에 두 자루 명검이 라 불리는 뛰어난 인재를 데리고 있다.
그런 이가 갑자기 거기로 왜 갔 단 말인가.
당황한 토도 백작은 마법사를 불 렸다.
“당장 톨리간 백작에게 연락해 라!! 어서!!”
“하지만 코드를……“그와 직통으로 연결되는 코드는 내가 알고 있다!! 어서 연락해!!”
비록 왕가에 불만을 가지고 있기 는 하지만 그 또한 도브다만 왕국 의 힘이다.
거기에 검은 기둥으로의 접근은 백왕과 암왕,광왕 셋이 직접 막은 일이다.
괜히 거슬리게 했다가 그들과 척 을 지게 된다면?
그럼 도브다만 왕국의 미래가 불 투명해진다.
토도 백작이 다그치듯 외치자 잠 시 후 왕가의 마법사가 들어왔다.
[오!! 토도 백작님 아니시오!!]
자신감이 넘쳐나는 인상의 중년 인이 수정구에 나타났다.
그를 보며 토도 백작은 강하게 외쳤다.
“톨리간 백작! 거기서 뭘 하는 겁니까!!?”
[뭘 하긴. 저 기둥에 관한 탐사를 시행하려고 하오. 알고 있소? 저 기둥에서 막대한 힘을 얻을 수 있 다더군. 익스퍼트가 며칠 동안 머 무르면 마스터가 된다 하더이다. 하하.]
“뭐?”
그의 뒤에 있던 기사들 중 몇몇 이 오러를 보였다.
개중에 하나는 토도 백작도 아는자였다.
분명 유저 수준에 불과했던 자가 검에 오러를 담고 있었다.
[토도 백작. 지금 도브다만 왕국 은 도전받고 있소이다. 왕가의 부 덕함으로 인해서 지옥문이 발생했 소. 그 지옥문이 바론님의 은총으 로 사라졌지만 왕가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지.]
“……정신을 못 차리다니. 그게 무슨 말인가?”
에인스타인 국왕이 침울한 어조 로 물었다.
그를 보던 톨리간 백작은 경멸의 시선을 보냈다.
[자신들의 부덕함을 깨닫고 왕위 에서 물러나지는 못할망정…….]
"윽. 하지만 그건.”
[거기에 타국의 귀족에게 명예 귀 족 자리까지 내어 주며 꼬리를 흔들 고 있으니…… 그것을 정신 차리지 못했다고 하지 뭐라고 하겠소?]
존대조차 없었다.
명백하게 왕가에 대한 반역을 생 각하고 있었다.
토도 백작은 인상을 찡그리며 외 쳤다.
“말이 너무 심하잖소!! 당장 사 과하시오!!"
[토도 백작. 나는 오랫동안 이 나 라에서 살아오며 많은 백성들을 돌 봤고,많은 귀족들을 이끌고 있소.]
“그래서? 반역이라도 하시겠다 고? 내가 가만히 있을 것 같소?”
토도 백작이 으르렁거리자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는 없지. 토도 백작. 나는 저 기둥을 얻어 지배해볼 생 각이라오.]
“……이런 미친.”
[그리고…… 새로운 영광이 자리 하겠지.]
“뭐? 영광?”
보기만 해도 불길하고 위험해 보 이는 저 검은 기둥을 보라.
막대한 힘을 지녔지만 공포를 느 끼게 하는 저 기둥을 보라.
만약 저것을 차지한다면?
저 기둥의 막대한 힘을 손에 넣 는다면?
세상 모든 이들이 자신을 다시 볼 것이다.
지금 움직이지도 못하고 멋대로 명령만 한 천하십강 따위보다 말이 다.
“톨리간 백작!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소!! 돌아오시오!! 저건 위험하 오!!”
[하하하!!! 모두 똑똑히 지켜보시 오! 초대 스키트 왕국의 신왕! 톨 리간 스키트와 그를 따르는 영웅들 의 모습을!! 시작해라!!]
토도 백작의 간절한 외침을 무시 한 채 그는 가볍게 명령했다.
잠시 후 몇몇 마법사들이 수정구 를 들었다. 다른 곳에도 자신들의 위업을 알릴 생각이었나 보다.
[오늘!! 새로운 신화가 성립할 것 이다!! 이 톨리간 스키트를 따르는 마스터 부대의 탄생을 알릴 것이 다!!]
한참 연설을 한 후 그와 그의 군 대가 검은 기둥 안으로 들어갔다.
그외고.
이 자리에 있는 모두는 수정구를 보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수정구에 비치는 것은 끝없는 넓 은 황야였다.
그리고 그 황야에는 거대한 나팔 을 들고 있는 아름다운 흑발의 여 인이 멍하니 서 있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