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22화
372. 그자가 일어나면 (3).
“뭐 더 질문 있는 사람 있으면 물어봐봐.”
요한이 심드렁한 표정으로 말하 자 플로란스는 주먹을 꽉 쥐었다.
어찌 되었든 나팔수가 나팔을 불 면 세상이 멸망한다는 것 아닌가.
그럼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것쯤 은 쉽게 알 수 있었다.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에 나타 난다고? 그럼 그곳에서 대비를 해야겠군.”
“도브다만 왕국에 협조를 요청하 지. 아니…… 교율이 직접 가서 명 령하면 되는 것 아닌가?”
“하하하…… 난 거기에 손을 댈 수 없어.”
교율은 냉정하게 부정했다.
한 걸음 물러난 그는 양팔을 벌 렸다.
“나 같은 오래된 자들은 아버지 의 뜻을 거스를 수 없고,아버지의 힘 앞에 고개를 조아릴 수밖에 없 으니까 말이야.”
그렇기에 전조를 해결할 때 손을 댈 수 없었던 것이다.
교율은 여유롭게 말했지만 플로 란스와 레이몬,에밀리는 화들짝 놀랐다.
“교율. 당신…… 오래된 자였습 니까?”
“날 추종하는 자들은 없지만.”
씩 웃은 교율이 자리에서 일어나 오려고 하자 요한은 싸늘히 말했다.
“거기서 무릎 꿇고 손들고 있으 라니까 그러네. 은근슬쩍 일어나려 고 하지 말고.”
“쳇.”
투덜거리며 다시 자세를 바로 한 교율이 입술을 삐죽거렸다.
요한과 교율.
둘을 번갈아 바라보던 플로란스 는 묵직한 한숨을 쉬었다.
“그럼 우리의 힘만으로 해야 한 다는 건가?”
“아니.”
요한은 냉정했다.
그는 무덤덤하기 그지없는 시선 으로 셋을 보며 말했다.
“이제 당신들이 할 일은 끝났 어.”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히죽 웃었 다.
“이제 모든 것이 끝날 때가 되었 으니까.”
“……설마. 요한. 당신 혼자 가려 는 건가?”
“혼자는 아니고. 플로란스. 너는 날 좀 도와야겠다.”
에밀리의 표정이 굳었다.
그녀가 무언가 더 말하려는 찰나 플로란스는 인상을 잔뜩 찡그렸다.
“날 또 탈것으로 이용해먹으려는거냐?”
‘아. 그런 건가.’
플로란스는 노루로 변신해서 빠 르게 이동할 수 있다.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까지 거리 는 상당하다.
유적을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쉽 게 갈 만한 거리는 아니다.
그러니 플로란스의 도움을 받으 면 확실히 빨리 갈 수 있을 것이 다.
‘으음…… 이걸 어떻게 생각해야 할지……갈등하는 에밀리를 무시한 채 요 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야. 내가 빨리 안 가면 엘도만 영지도 박살 날 것이고 도브다만 왕국도 무너질 거야.”
그뿐인가?
녹색 산맥도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의 영역에 닿아 있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분명 문제가 생긴다.
“그러니까 좀 태워줘. 뭐 이리 비싸게 굴어?”
“하아……“플로란스 님. 부탁드리겠습니다.”
이런 것은 자신이 도와줄 수 없 었다.
에밀리가 고개를 숙이자 플로란 스는 얼굴을 살짝 쓸어 만졌다.
"교율의 도움을 받으면 되는 것 아닌가? 그를 타고 간다면……“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을 자신 의 영역으로 삼고 있는 교율이 왜 여기에 와 있을까?”
요한은 무릎 꿇고 손들고 있는 교율을 가리켰다.
그가 반색하자 레이몬은 쓰게 웃 었다.
“교율도 도망쳤다고 봐야 하는 건가?”
“정답. 교율은 오래된 자이고. 그 나팔수를 만나게 된다면 그를 도와 야 합니다. 애초에 오래된 자는 아 버지를 거역할 수 없으니까.”
그렇기에 교율은 아예 그쪽에서 떨어져 버린 것이다.
플로란스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 다.
“교율도 도망쳐야 하는 것과 싸 워야 하는 것인데…… 너 혼자서 가능해?”
“전조를 막는 것을 실패했다면 나도 혼자서는 힘들었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전조를 거의 완 벽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잘 막아왔다.
그런 만큼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한이 자신 있는 얼굴로 말하자 플로란스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거기까지 데려가 주 지.”
그녀가 답하자 에밀리는 요한을 보았다.
“왜?”
“다른 건 해줄 일이 없을까?”
“딱히? 아. 한 가지 있다.”
“뭐지? 내가 도울 수 있는 것이 라면 뭐든 돕고 싶어.”
진지하게 자신을 응시하는 에밀 리에게 요한은 씩 웃었다.
“도브다만 왕국에 가기 위한 허 가증 좀 받아줘.”
도브다만 왕국의 명예 귀족이기 는 하지만 그래도 절차는 밟는 것 이 낫다.
요한이 웃으며 말하고 나가자 에 밀리는 살짝 입술을 깨물었다.
남은 이들은 서로를 힐끔거렸다.
다들 알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는 것을.
이 모든 것을 알고 있는 요한.
그의 정체가 무엇인지.
그들의 시선이 자신에게 꽂히자 교율은 히죽 웃었다.
“아무도 모르는 알람이. 가장 위 대한 자가 설정한 알람이. 울리기 도 전에 끄려는 자가 누구인지 생 각들 해보게나.”
* * *탈무의 연구실에서 나온 요한은 빌헬미나를 찾았다.
그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 일까?
요한이 들어오자 빌헬미나는 웃 으며 그를 반겼다.
“어서 오렴. 배고프지?”
“예.”
“앉으렴. 금방 준비해줄 테니까.”
콧노래를 훙얼거리며 빌헬미나는 요리를 준비했다.
그사이 먹기 위해 둔 커다란 빵 을 우물거리던 요한은 담담하게 말 했다.
“할머니. 저 좀 다녀올 곳이 있 어요.”
“어딜 또 가려는 것이니?”
스튜를 젓던 국자가 멈춰졌다.
하지만 잠시뿐이다.
그녀는 다시 경쾌하게 국자를 휘 저었다.
보글거리는 붉은 스튜 안의 커다 란 고기가 국자에 걸렸다.
그것을 접시에 담아 국자로 꾹 누르자 부드럽게 풀려나간다.
“잠깐 도브다만 왕국에요.”
“거긴 왜?”
“해결해야 할 일이 있거든요.”
주방으로 들어온 요한은 빈 접시 를 내밀었다.
커다란 빵을 순식간에 먹어치워 버렸다.
빌헬미나는 슬쩍 요한을 보았다.
“키가 많이 컸네?”
“하하하……“몸도 많이 커졌고.”
"할머니 덕분이죠.”
처음 빌헬미나와 만났을 때 요한 은 보는 사람 누구라도 불쌍하다 생각할 정도로 말랐었다.
키도 크지 않고 덩치도 작은 아 °1.
마스터의 경지에 올랐다고는 하 지만 누구도 그렇게 보지 않는 안 타까운 소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잘 먹고 매일 훈련을 한 덕분일 까?
요한의 키는 어느새 빌헬미나를 훌쩍 넘을 정도로 커 있었다.
어깨는 떡 벌어졌고 팔과 다리는 두꺼워져 있었다.
빌헬미나는 요한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어이구. 이러니까 얼마나 보기 좋아. 그래도 좀 더 먹어야 할 것 같구나.”
“할머니 요리야 언제까지라도 먹 고 싶죠.”
“후후. 다른 사람들이 많이 먹어 주는 것도 좋지만 난 네가 많이 먹 었으면 싶구나.”
예전에는 요한이 어디 가는 일 없이 영지에 머무르며 잘 먹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요한이 영지에 머무는 날이 적었다.
요한이 천하십강에 오른 이후부 터 그는 정말 바쁘게 움직였다.
그때마다 빌헬미나는 그가 걱정 되었다.
끼니는 제대로 챙기고 다닐지.
잠은 잘 자고 있을지.
후계자도 아니면서 후계자보다 더욱 바쁘게 움직이는 그가 안쓰러 웠다.
“난 네가 좀 더 쉬었으면 하는구 나. 사람이 항상 열심일 필요는 없 단다.”
빌헬미나가 하는 말이기에 더욱 와 닿았다.
그녀는 항상 열심이었다.
자신을 돌보지 않고 목표를 이루 기 위한 삶만을 살았다.
그것이 얼마나 허망한 것인지 빌 헬미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다음에는 소풍이라도 가지 않으 련? 윌카스트 후작님과 프란츠,엘 마도 데리고. 바그너 영지 쪽에 괜 잖은 곳이 있더라.”
바그너 영지에 있을 때 왔던 사 냥꾼들이 말해준 곳이었다.
넓은 호수가 무척이나 아름다운 곳이다.
그곳에서 바비큐 파티를 하는 것 이 어떨까 싶었다.
“윌카스트 후작님께선 낚시도 잘 하신다고 하니까…… 호수에서 고 기를 잡는 거야.”
그리고 그 고기로 생선찜을 만들 어 주겠다.
밥을 먹고 난 후 배가 부르면 잠 깐 숲이라도 산책하는 것은 어떤가 싶었다.
“엘마와 프란츠에게도 보여주고 싶은 것들이 많아.”
“하하하…… 이제 저희 바그너 가문 분이 다 되셨네요.”
“후후…… 주책없지?”
빌헬미나는 멋쩍은 미소를 지으 며 국자를 잡았다.
그녀를 끌어안으며 요한은 작게 속삭였다.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요.”
까끌거리는 손이 요한의 손을 맞 잡았다.
그녀가 기뻐한다는 것을 아는 요 한은 상냥한 어조로 말을 이어나갔 다.
“할머니가 저희 가족이 되는 것 은 모두가 바라고 있으니까……“……말만으로도 정말 고맙구나.”
살짝 젖은 목소리로 답한 빌헬미 나는 요한을 밀어낸 후 빙긋 웃었 다.
“밥은 금방 해줄 테니 잠깐만 앉 아 있으렴. 어…… 다른 요리 가……그때 과자집의 문이 열렸다.
안으로 들어온 유아랑은 요한을 잡고 다급히 말했다.
“자작님. 큰일입니다.”
“그래. 이런 연락이 올 것 같았 지.”
네 번째 전조가 끝나고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에서 나팔수가 등장했 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녹색 산맥에서 가 장 먼저 발견할 수 있을 터.
그것을 보고 연락을 했을 것이 다.
유아랑이 놀라자 요한은 빌헬미 나를 가리켰다.
“할머니가 금방 요리 끝낼 거야. 저것만 먹고 가자.”
“에…… 하지만 그쪽도 꽤 급해 보이던데……유아랑이 작은 어조로 말하자 요 한은 인상을 구겼다.
“야. 먹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잖냐. 먹고 가자고.”
“알겠습니다.”
지금 가나 밥먹고 가나 이미 벌 어진 일이 되돌려지지는 않을 것이 다.
요한은 걱정하는 빌헬미나에게 씩 웃어 보인 후 유아랑을 앉혔다.
“나 없는 동안 네가 할 일이 많 을 거다.”
“도브다만 왕국에 가실 생각이십 니까?”
놀라는 그에게 요한은 고개를 끄 덕였다.
이것을 위해서 지금까지 노력해왔는데 당연히 가야 하지 않겠나.
그는 스튜를 들고나온 빌헬미나 의 표정에 두려움이 섞이자 환한 미소를 지었다.
“할머니. 별일 없을 거니까 걱정 마세요.”
“아니 그래도.”
“저 요한입니다. 그러니까 아무 런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언제나 자신만만한 요한은 그릇 에 담긴 스튜를 퍼먹기 시작했다.
* * *식사를 끝낸 요한이 저택으로 돌 아오자 프란츠는 딱딱히 굳어 있었 다.
야민이 보여 준 수정구 안에서는 하늘을 뚫을 정도의 검은 빛의 기 둥이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형님…… 저건 뭡니까?”
"이 통신마법. 누가 보낸 거냐?”
“사이먼에 있는 엘프 레닌입니 다. 그녀가 지금 통신마법을 쓰고있습니다.”
[요한 자작님! 보고 계십니까!?]
수정구 안쪽에서 날카로운 목소 리가 들렸다.
꽤나 다급한 모양이다.
화면에 비친 레닌은 두려워하며 검은 기둥을 가리켰다.
[저거!! 계속 넓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막대한 마력과 힘이 느껴집 니다! 저곳에 있으면…… 엄청난 힘을 얻을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아니! 이미 얻었습니다!]
“그래?”
레닌은 심각한 표정으로 검은 기 둥을 보고 외쳤다.
[그것 때문에 홀려 들어간 엘프 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도 못 나왔다고?”
[예!!]
“저기 들어가지 말라고 그래. 상 아탑을 통해 알리기도 할 거니까 걱정 말고. 그냥 가까이 가지마.”
[알겠습니다!]
통신마법이 종료되자 프란츠는 떨었다.
검은색 빛의 기둥은 수정구로 본 것만으로도 진한 두려움이 느껴지 고 있었다.
“혀,형님. 저게 도대체 뭡니 까……?”
“저희 영지는 괜찮을까요……?”
“도대체 이건……자리에 모여 있던 이들의 표정이 굳었다.
귀족도,엘프도,마법사도,하플 링도.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검은 기 둥을 보며 두려움을 느꼈다.
그들을 둘러보던 요한은 자리에 서 일어나며 말했다.
“별것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말고 할 일들이나 해.”
그는 아무것도 아닌 양 말한 후 그대로 나가버렸다.
그리고 그 뒤를 플로란스가 쫓았 다.
“요한.”
그의 뒤를 쫓아 나간 플로란스는 서류를 내밀었다.
에밀리가 구해 준 서류다.
그것을 확인해 품에 넣은 요한이 바로 떠날 준비를 하려 하자 플로 란스는 차분하게 물었다.
“걱정되지 않나??”
“걱정?”
요한은 히죽 웃었다.
“일 다 끝나고 뭘 하고 놀 지가 더 걱정된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