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권 7화
357. 각오는 됐겠지 (3).
요한은 팔짱을 낀 채 성을 지켜 보았다.
수도를 두르고 있는 두꺼운 성 벽.
그리고 수도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
그들 사이에 서 있는 기사들을 빤히 보던 요한은 여유롭게 말했다.
“자. 그럼 나도 들어가 볼까?”
“자, 잠시 기다려 주십시오!!”
성문을 지키던 기사들은 당황하 며 그를 막았다.
요한이 마드모스 왕국을 적으로 돌렸다는 이야기는 이미 알려졌다.
그뿐인가?
지금 마드모스 왕국 쪽으로 바그 너 후작가의 군대가 움직인다는 소 식도 들렸다.
북쪽에서는 필로틴 제국군이 나 서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요한이 수도를 공 격하면 어떻게 하나.
기사들은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 켰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면……“이미 기다려줬잖아. 한 시간이 나. 그럼 이제 들어가도 되는 것 아닌가?”
씩 웃은 요한이 가볍게 몸을 풀 었다.
언제든지 싸울 준비를 하는 그를 향해 기사들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싸우면 이길 수 있을까?
‘그래도 이렇게 사람이 많은데 설마 석상을 꺼내지는 않겠지?’
수도 입구 주변에는 수도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그들이 있는데 설마 광기를 불러 오는 석상을 꺼낼까 싶었다.
하지만 그건 요한을 너무 얕본 처사였다.
“일단 늘 하던 대로 이것부 터……“헉!!”
그는 바로 아공간 주머니에서 성 궤를 꺼냈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상자를 본 기사들과 병사들은 경악했다.
요한이 왜 광왕이라 불리는지 모 르는 자들은 없기 때문이었다.
저 성궤 안에 있는 석상이 나오 면 그 순간 광기가 퍼져나간다.
“모,모두 무기 들어!!”
그러니 경계할 수밖에 없다.
이곳은 수도.
성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
그들 중에는 익스퍼트 이상의 강 자도 물론 있다.
하지만 대다수는 아무런 죄도 없 는 일반 백성들.
왕국의 기사 된 자로서 그들을 해할 수 있는 위험인물을 들여보낼 수는 없었다.
특히나 저렇게 분노하고 있는 자 라면 더욱 그랬다.
“요한 자작님!!”
“당장 그 상자 넣으십시오!! 당 장!!”
“자작님의 분노는 이해합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잘못한 것은 없잖 습니까!!”
그들의 말을 무시한 채 요한은 성궤를 열어버렸다.
기사들이 경악을 한 순간 그는 상자를 보여주었다.
상자 안쪽은 텅 비어 있었다.
안도한 기사들을 향해 요한은 시 큰둥하게 말했다.
“여기에 이번 일에 관련된 놈들 뼈만 넣어갈 거야. 그러니까 비켜.”
항거할 수 없는 거대한 폭력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야 할까.
비켜야 할 것인가?
아니면 싸워야 할 것인가.
고민하는 그들을 향해 요한은 씩 웃었다.
“그래. 충성 좋지.”
굳이 싸우겠다면 말릴 생각은 없 었다.
요한도 충돌이 아예 없을 것이라 는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그는 미스릴 검을 뽑아 든 채 느 긋하게 걸었다.
그가 다가오자 기사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방패를 들었다.
“절대 자작님을 치지 마라!!”
“공격해서는 안 된다!! 버텨라!!”
상대는 천하십강 중 최강이라 불 리는 요한이다.
마스터조차 되지 못한 기사들이 공격도 하지 못하고 막기만 하는 것이 가능할까?
거기에 요한은 혼자서 성문을 부 순 전적이 있는 자다.
그런데도 공격을 하지 말라니.
하지만 기사들은 그 명령을 따랐 다.
공격을 해버린 순간 진짜 적이 되어버리니 말이다.
기사들이 방패를 들어 올리자 요 한은 웃으며 검을 휘둘렀다.
-과아아앙!!!
일격에 대열이 무너져버렸다.
방패가 깨지고 뒤에 있던 기사들 이 밀려 나가떨어진다.
고통을 호소하는 그들이 일어나 려 하자 요한은 양팔을 벌렸다.
“어휴. 배짱 좋다. 우리 애들이 보고 배웠으면 좋겠네.”
“크윽……!! 이,이대!! 움직여!!”
기사들이 다시 방어진을 구축했 다.
그들을 향해 웃으며 요한이 검을 휘두르려고 할 때 성문에서 기마대 가 나왔다.
“오.”
깃발을 보아하니 왕가의 사람들 이다.
요한은 검을 든 채 여유롭게 그 기마대를 바라보았다.
잠시 후 달려온 기마대 뒤에 말 을 탄 여인이 내렸다.
“요한!! 이게 뭐하는 짓이야!?”
“뭐하는 짓으로 보이십니까?”
누가 봐도 알 수 있었다.
요한이 마드모스 왕국을 공격하 고 있다는 것을.
그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일단 달려 나온 레일라는 그를 잡았다.
“내 얼굴을 봐서라도 이번에는 물러나 주면 안 될까?”
“우리가 무슨 사이라고 얼굴을 봅니까?”
그냥 친분이 있을 뿐이지 절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당황한 레일라가 뭔가 더 말하려 는 찰나 요한은 따라 나온 기마대 를 훑어보았다.
“그런데 왕녀님만 오신 겁니까?”
“어"•… 그게.”
“있어야 할 사람이 없군요. 어디 갔습니까?”
듣지 않아도 알 것 같다.
일단 요한과 어느 정도 친분이 있는 레일라를 보내서 상황을 무마 시키려고 한 것이다.
‘그게 되겠나.’
“누가 보낸 겁니까?”
“……그건.”
“여기서 이렇게 이야기할 만한 일은 아닌 듯싶군요.”
레일라는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사정을 말하기에는 지금 사람이 너무 많다.
“길을 열어라.”
“하,하지만!! 왕녀님!”
“열라 하지 않았느냐!!”
레일라가 나서서 외치자 성을 지 키던 기사들은 결국 힘없이 길을 비켜주었다.
그녀는 요한을 데리고 수도 내에 있는 가게로 향했다.
가끔 왕성을 빠져나왔을 때 즐기 는 마드모스 왕국 최고의 레스토랑 이었다.
“난 여기 음식이 좋더라고. 분명 네 입맛에도 맞을 거다.”
“그러겠지요?”
꽤나 좋은 레스토랑이었다.
타고다 상회에서 운영하는 레스 토랑보다 훨씬 좋아 보인다.
그곳의 삼 층에 있는 VIP 룸에 들어가자 레일라는 애써 웃으며 말 했다.
“못 먹는 것은 없지?”
“없죠.”
“그럼 내가 알아서 시키도록 하 지. 혹시 따로 먹고 싶은 것은 있 나?”
“세키드 마드모스 왕자의 심장을 씹어먹고 싶습니다.”
‘이거 큰일 났군.’
전혀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다.
레일라는 입술을 살짝 깨물며 생 각을 하다가 물었다.
“마드모스 왕국을 씹어 삼키겠다 는 말은 하지 않네?”
“솔직히 왕국 하나 씹어 삼키는 건 너무 작업 소요가 많아서 말입 니다. 이번 일에 관련된 것들만 삼 키고 끝낼 겁니다.”
잠시 후 종업원이 들어오자 레일 라는 바로 주문을 시작했다.
종업원이 나가고 빠르게 요리들 이 나왔다.
커다란 테이블에 놓이기 시작한 요리를 가리키며 레일라는 빙긋 웃 었다.
“일단 먹도록 해. 배가 고프면 화가 더 나는 법이니까.”
“그러지요.”
넓은 접시의 수프를 들이마시고 따뜻한 흰 빵을 뜯었다.
새콤한 과일 드레싱이 뿌려진 샐 러드를 먹고 커다란 향어찜을 씹어 삼켰다.
이어져 나오는 다른 요리들도 요 한은 말없이 삼켰다.
“요한. 솔직히 이번 일에 대해서 는 할 말이 없어.”
“없으면 다물고 계십시오.”
“그럴 수는 없지. 미우나 고우나 왕국의 후계자이고 내 오라버니인 데.”
스테이크를 썰어 입에 넣은 요한 은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
그 시선을 마주하던 레일라는 고 개를 갸웃거렸다.
“왜?”
“왕녀님은 왜 후계자 자리에 앉 지 않으시는 겁니까?”
“하하…… 난 이래저래 바빠서. 그리고 아는지는 모르겠지만…… 내 어머니는 하급 지방 귀족 출신 이거든.”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뒷받침해줄 세 력도 없으니 계승권 경쟁에 제대로 참여조차 못 했어. 그래도 그나마 다행이지.”
정략결혼의 대상이 되기 전 해주 술사가 되었다.
거기에 아카데미에도 들어갈 수 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라면 나름대로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었다.
레일라가 와인을 한 모금 마시며 말하자 요한은 싸늘히 말했다.
“의지가 없는 겁니까? 아니면 힘 이 없는 겁니까?”
“어?”
그는 스테이크를 썰던 나이프를 내려놓고 음료를 들이마셨다.
그리고 히죽 웃으며 달콤한 제안 을 건넸다.
“지금 이 상황이 왕녀님께 딱히 나쁘지만은 않은 것 아닙니까?”
레일라는 꿀꺽 침을 삼켰다.
아카데미에 들어갈 수 있을 정도 로 현명한 그녀이기에 알 수 있었 다.
그랬다.
지금 상황은 요한의 말대로 그녀 에게 절대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요한은 마드모스 왕국을 적이라 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야.’
이번 일과 관련된 자들을 적으로 생각할 뿐이지.
그리고 그 중심에는 그녀의 배다 른 오라비이며 마드모스 왕국의 후 계자인 세키드 마드모스가 있었다.
즉 요한이 세키드를 제거해준다 면?
자연스럽게 후계자 자리가 레일 라에게 갈 수 있었다.
“너 지금 나를……“싫으십니까? 왕녀님도 나름대로 야망을 가지고 계신 것 같은데. 아 니면 말고.”
요한이 다시 스테이크를 씹어먹 자 레일라는 입을 꾹 다물었다.
싫냐고?
싫을 리가 있나.
정략결혼의 대상이 된 왕녀의 삶 은 그리 좋지 않았다.
사랑 따위는 없는 정략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그것도 타인을 위한 도구가 되는 것인데 누가 그것을 좋아하겠나.
“왕녀님께서 정략의 도구가 되지 않을 기회는 지금뿐 아닙니까?”
“그건•"… 그렇지만.”
요한을 설득하러 왔다가 설득당 하게 생겼다.
하지만 그녀가 후계자가 되기에 는 힘이 부족했다.
“아. 여기 요리 맛있군요.”
순식간에 스테이크를 다 먹은 요 한은 종을 흔들었다.
잠시 후 들어온 종업원에게 스테 이크를 더 주문한 그는 새로운 스 테이크가 나오자 만족했다.
“좋은 맛집도 소개해주셨으니. 일주일 드리겠습니다.”
커다란 스테이크를 씹어 삼킨 요 한은 여유롭게 말했다.
“그 안에 왕녀님께서도 방법을 찾아보시지요.”
“……요한.”
“그러니 왕녀님께서 할 수 있는 일을 해보시지요. 그래도 프란츠의 선배니까 이 정도 기회를 제공해드 리는 겁니다.”
“후우……요한의 말대로 이것은 기회였다.
잘만 한다면 마드모스 왕국을 그 녀가 월 수 있는 절호의 기회.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조금 도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알겠다.”
망설임은 없었다.
결정을 내렸다면 바로 움직여야 하는 법.
그녀는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당장 자신의 손을 들어 줄 사람 이 누구일지.
그리고 누구를 쳐내야 할지.
그것부터 파악하고 움직여야 했 다.
“레스토랑에 말해두도록 하지. 식사는 이곳에서 해결하도록 해. 그리고 잠은……“거기까지는 제가 알아서 하지 요. 아. 가시기 전에.”
종업원을 불러 깃펜과 양피지를 가져오게 한 요한은 그것을 내밀었 다.
레일라는 침을 꼴깍 삼켰다.
‘설마 이번에 손을 잡은 일의 증 거를 남길 생각인가? 요한. 무서운 녀석이구나.’
만약 이번 일이 잘된다면 레일라 는 후계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머지않은 시일 내에 여왕 의 자리에 오를 수 있을 것이다.
그 대가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른 다.
레일라는 빠르게 계산했다.
로드만 왕국에 내어 줄 영토와재社그 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한 레 일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그럼 적어주십시오. 저에게 주 실 수 있는 모든 것을.”
침을 꿀꺽 삼킨 레일라는 생각해 둔 줄 수 있는 것들을 적었다.
꽤 많은 금과 영토를 양피지에 적혔다.
그것을 넘겨받은 요한은 히죽 웃 었다.
“그리고 왕녀님께서 저를 위해서한 가지를 더 해주셔야겠습니다.”
할짝.
요한은 입술을 핥았다.
그것을 본 레일라는 의아해하다 가 흠칫 놀랐다.
“……또 뭘 원하는 것이지? 헉! 너 설마!?”
자신을 아내로 삼아 마드모스 왕 국을 삼켜버리려는 것이 아닐까?
그녀는 얼굴을 붉히며 요한을 노 려 보았다.
“나를 가지려는 것이냐! 뭇! 아 아…… 마드모스 왕국을 위해서라면…… 이 한 몸. 더럽혀지는……“마드모스 왕국 맛집의 리스트도 좀 적어주십쇼.”
“……응?”
“……음란마귀는 좀 자제하시고.”
순간 레일라는 얼굴을 붉게 물들 였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