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24화
349. 싸움의 대가 (4).
정신을 차린 가로무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것만으로 등과 옆구리의 고통 이 되살아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 o O......”
“일어나셨습니까. 도련님.”
“여긴……롤드몬에 있는 경매장 안쪽의 방 이었다.
그곳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달은 가로무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또 졌다.’
첫 번째는 뭔지도 모를 기술에 휘말려 졌다.
그래.
거기까지는 인정한다.
하지만 두 번째 패배의 원인은 뭘까.
알고 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강한 기술을 써버 렸다.
그리고 그것을 요한이 받아줄 것 이라 착각하고 있었다.
“젠장……자신의 실패다.
처음 보는 기술에 홀려 쉽게 움 직여버린 자신의 실패다.
그는 이불을 꽉 쥐었다.
초보자들조차 하지 않는 이런 하 잖은 실수를 해버리다니.
그가 수치심에 부들부들 떨고 있 을 때 식사를 하던 요한은 빈 접시 를 들었다.
“이거 한 그릇 더 줘.”
“아,아! 예!!”
파블로는 다급히 요한에게 달려 갔다.
요한이 기절한 가로무를 데리고 왔을 때는 그도 기절할 뻔했다.
하지만 목숨에는 지장이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안도했다.
그리고 감사를 표했다.
그냥 그를 두고 떠나도 됐는데 요한은 순순히 그를 데리고 와줬으 니 말이다.
그 감사를 표하기 위해서 파블로 는 요한이 원하는 대로 요리를 해 주고 있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가로무는 황당 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안 간 거지?”
“너 비웃으려고.”
“크 ”
“농담이야. 아직 한 번 더 남았 잖아. 자자. 일어나. 쉴 만큼 쉬었 다면 한 판 더 뜨자고.”
약속은 세 번의 대련이었다.
돈을 꽤나 받아 다른 지역의 던 전이나 유적을 돌 시간을 줄일 수 있었다.
그렇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세 번의 대련을 해주는 것이 맞았다.
요한이 고기를 썰던 나이프를 까 딱거리며 말하자 가로무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까 그 기술 뭐지?”
“뭐. 턱에 한 방 날린 거?”
“아니. 처음. 내 공격을 고스란히 받아내고 힘을 역이용한 것 같은 데……“아. 그거. 그건 왜?”
“배우고 싶어.”
가로무는 간곡한 어조로 요청했 고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꺼져.”
알려줄 생각도 없고 가르칠 시간 도 없었다.
이화접목은 요한도 몇 차례나 환 생을 겪으며 쌓은 깨달음으로 만든 비기다.
어지간한 실력으로는 흉내조차도 낼 수 없다.
그것을 고작 한 번의 삶을 산 가 로무가 익힐 수 있겠나?
괜한 시간 낭비다.
“그리고 그걸 가르쳐줘야 할 의 리도 없어.”
가로무와 친한 사이라면 모르겠 지만 서로 줄 것 주고받을 것 받는 사이다.
그런 사이끼리 가르치고 자시고 가 뭐가 있겠나.
이미 돈도 다 받은 요한은 그저 세 번째 대련만 하는 것을 생각하 고 있었다.
“끙. 하지만.”
“어차피 요점은 다 파악한 것 아 닌가? 한번 잘 궁리해봐.”
상대의 힘을 역이용하는 것이 이 화접목의 주요 골자다.
요한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그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돈을 낸다면?”
“지금 받은 것에다가 캡슐 팔고 조금만 시간 내면 내가 원하는 수 준은 벌 수 있어.”
대전료 삼백오십만 골드.
캡슐 이백만 골드.
필로틴 제국 경매장에 이름을 빌 려주는 대가로 대략 이백만 골드 정도 받을 수 있다.
거기에 근처 유적을 돌면 더 자 금을 모으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니 더 이상 돈은 더 필요가 없다.
요한의 시큰둥한 반응에 가로무 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내가 안 가르쳐준다고 개수작질 부리지는 마라. 진짜 죽여버릴 테 니까.”
“으 ”
가로무는 어깨를 흔들었다.
그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자 요 한은 새로 나온 요리들을 천천히 먹었다.
식사가 끝나자 요한은 바로 자리 에서 일어났다.
“세 번째 대결은 언제 할 거지?”
“……요한. 네가 쓴 기술. 이름이 뭐냐?”
“이화접목이라고 하지.”
“다른 자가 그걸 익히고 있나?”
“아니.”
적어도 이 차원에는 없다.
요한의 답에 가로무는 고개를 끄 덕였다.
“알겠어. 세 번째 대련은…… 보 류다. 지금 당장은 그 기술을 꺾을 방법이 없어. 그러니까……나중을 노린다.
좀 더 훈련을 하고.
그 이화접목에 대한 연구를 하고 그것을 꺾을 수 있는 준비가 된다 면?
그때 다시 제대로 싸울 것이다.
가로무의 눈에 담긴 투지를 마주 하던 요한은 씩 웃었다.
“그러든가. 나중에 율리아 영지 로 와라.”
‘물론 그때쯤이면 나도 아홉 개 의 코어를 완성했을 테지만.’
그 준비가 끝난다고 하더라도 요한이 제대로 상대해줄지는 의문이 었다.
* * *롤드몬에서 꽤 돈을 벌었다.
나머지는 근처에 있는 유적과 던 전을 도는 것뿐.
몇 곳의 유적과 던전의 탐사를 끝낸 요한이 율리아 영지로 복귀했 다.
그가 돌아온 것을 엘마가 웃으며 반겼다.
“오빠! 오셨군요!”
잠시 못 본 사이 완벽한 귀족가 의 공녀가 되어버렸다.
누가 엘마를 보고 드라이어드라 고 하겠는가.
완벽한 예법을 보이는 그녀를 요 한은 살짝 안아 올렸다.
“그간 잘 있었지?”
“예! 후후. 일도 많이 해놨어요!”
“훌륭하다. 어디 보자. 오늘이 며 칠이 더라?”
이제 슬슬 아카데미의 여름 방학 시즌이다.
프란츠가 올 때까지 며칠 남지 않았으니 남은 기간도 엘마에게 일 을 맡기면 되겠다 싶었다.
요한은 엘마를 데리고 집무실로 향했다.
집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던 이들 의 인사를 받아 준 요한은 몇 가지 처리 사항들을 확인했다.
“몬스터 토벌은 네가 가고 있 냐?”
“예.”
유아랑이 몬스터 토벌을 시행한 다고 나와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토벌을 하는 것은 엘마였다.
그는 그저 그녀를 따라가기만 하 는 것에 불과했다.
“얼마나 해결됐지?”
“율리아 영지 근처는 완벽하게 청소가 되었다고 보시는 게 나을 겁니다. 엘마 아가씨의 영역으로 만들어 버 렸으니 까요.”
“그런 것도 가능해?”
"플로란스 님께 배웠답니다.”
별걸 다 배웠다.
하지만 나쁠 것은 없었다.
그곳을 영역으로 삼았다면 몬스 터가 발생했을 시 숲이 가만히 있 지 않을 테니 말이다.
“그럼 당분간은 몬스터 잡으러 다닐 필요는 없겠군.”
“영양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될 거 에요!”
엘마는 활짝 웃었다.
자신에게 맡겨달라는 듯 우쭐해 하는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준 요한은 냉정하게 말했다.
“유아랑. 넌 바그너 영지로 가서 엘마가 투입돼야 할 곳 찾아놔. 나 중에 내가 엘마 데리고 갈 테니까.”
“어? 그럼 율리아 영지는 누가 다스립니까?”
“며칠 후면 아카데미 방학이잖 냐. 일해 줄 녀석이 오겠지.”
그 말을 들은 유아랑은 실소를 터트리고 말았다.
“알겠습니다. 그럼 자작님. 이것 을......w요한이 없는 사이 그 대리를 엘 마가 맡았다.
아직 어린 귀족가의 공녀가 일을 얼마나 잘하겠냐고 생각하는 사람 들이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생각 이상으로 일 을 굉장히 잘해나갔다.
물론 유아랑과 아단의 도움이 있 기는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녀 는 자신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 보 이는 귀족들에게 한 번도 밀리지 않았다.
어린아이의 치기조차 보이지 않 고 귀족적인 모습을 보이며 다른 귀족들을 상대해나갔다.
그래서일까?
“에...... 살기리 자작가와 롤기백작가. 또 도브다만 왕국의 라운 칸 백작가.”
“많기도 하네.”
열 통이 넘는 친서가 와 있었다.
대부분은 엘마의 재능에 반했다 는 이야기였다.
아직 혼처가 정해지지 않은 엘마 를 자기네 가문에서 받아주겠다.
지참금 따위도 필요 없다.
그녀가 원하는 것이라면 뭐든 해 주겠다.
그러니 부디 엘마를 자신의 며느 리,혹은 손주 며느리로 삼게 해달 라는 친서였다.
“아버지한테도 갔겠지?”
“헤고만 공국의 공왕이 엘마 아 가씨를 며느리로 삼고 싶어 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월카스트 후작은 그 요청 을 칼같이 잘라내 버렸다.
비록 양녀에 불과했지만 그녀의 사랑스러움에 홀딱 빠진 월카스트 후작이 었다.
그런 엘마를 그냥 내어주겠나?
데릴사위라면 모를까 다른 곳에 시집 보낼 생각 따위는 조금도 없 었다.
“일 잘하는 얘를 어딘가로 시집 보내기는 좀 그렇지.”
요한은 엘마의 붉은 머리를 쓰다 듬었다.
그 손길이 좋았는지 엘마는 배시 시 웃었다.
이토록 사랑스럽고 아름답기는 하지만 그녀는 드라이어드다.
다른 가문에 보내봤자 좋은 소리 못 들을 건데 뭐하러 보내겠나.
“안 그래도 그것 때문에 윌카스 트 후작님께서도 고민하고 계신답 니다.”
“고민? 왜? 어떤 미친놈들이 아 버지를 압박하기라도 하나 보지?”
“아,그런 건 아니고…… 언제까 지 엘마 아가씨를 안고 있을 수는 없는 거니까요. 아가씨를 바그너 가문의 일원으로 받아들였다면 다 음도 생각해야 하니까……유아랑의 설명을 들은 요한은 엘 마를 쓰다듬던 손을 떼었다.
“그 문제는 내가 해결하지. 아무 튼 너는 이번 주 안으로 떠나.”
그의 냉정한 명령을 받은 유아랑 은 성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가서 준비해놓겠습 니다.”
* * *여름의 더위가 강해졌을 무렵 프 란츠가 바그너 영지로 복귀했다.
그가 저택에 오자 요한은 그를 웃으며 반겼다.
“오느라 고생 많았다. 내가 무슨 말 할 줄 알지?”
준비해놓은 서류뭉치들,그리고 일거리들.
거기에 이번에는 그를 위한 훈련 스케줄까지 짜주었다.
“윽. 또 여기 남으시란 말씀이십 니까?”
“내가 누누이 말하지만 너는 ,,“형님!! 저도 동생 좀 보고 싶습 니다!”
"누가 못 보게 했냐?”
“지금 못 보게 하고 계시잖습니 까!! 아니 저 벌써 몇 년이나 아버 지도 못 뵙고 있는데요!?”
“저번에 봤을 것 아니야. 사기 치지 마.”
전에 윌카스트 후작이 수도에 간 적이 있었다.
자식을 끔찍하게 아끼는 윌카스 트 후작이 수도까지 가서 프란츠를 안 보고 갔겠는가.
냉정한 공격에 프란츠는 움찔했 다.
“하,하지만 저도 엘마를 한번 보고 싶습니다. 궁금하잖습니까! 저 번에 마드모스 왕국에 갔을 때도 얘기만 들었습니다.”
바그너 가문의 양녀이고 사교계 의 달콤하고 아름다운 꽃.
성장한다면 세상에서 가장 아름 다운 여인이 될지도 모른다는 매력 적인 소녀.
그것을 프란츠는 말만 들었다.
어느 정도인지 궁금할 정도다.
아카데미에서 많은 사람들이 물 었다.
엘마가 진짜 그렇게 예쁘냐고.
동생 좀 소개해달라고.
하지만 프란츠는 그들에게 아무 런 말도 못했다.
그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 문이었다.
프란츠가 애원하듯 말하자 요한 은 슬쩍 눈을 돌렸다.
“넌 어떻게 생각하냐?”
“뭐…… 동생 보고 싶다는데 말 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프란츠와 함께 온 헤이로나는 못 말리겠다는 듯 한숨을 폭 내쉬었다.
“그러니까 요한 자작님. 한 이 주 정도만이라도 저희에게 시간을 주실 수 있으신가요? 윌카스트 후 작님을 만나 뵙고 드리고 싶은 말 씀이 있어요.”
프란츠가 아니고 ‘저희’다.
요한은 팔짱을 낀 채 그녀를 빤 히 바라보았다.
“뭐야. 너희 약혼이라도 하려 고?”
“에헤……단번에 걸려버렸다.
헤이로나가 헤실거리며 웃자 요 한은 프란츠에게 눈을 돌렸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질 을 해? 내가 너 그러라고 아카데미 에 보낸 줄 아냐?”
요한이 으르렁거리자 프란츠는 자신도 모르게 검자루에 손을 가져 갔다.
자신의 살기를 받아내는 프란츠 를 향해 요한은 피식 웃었다.
“좋아.”
“예?,’
“지킬 것이 생긴 남자는 강해지 기 마련이니까.”
자리에서 일어난 요한은 그를 꽉 끌어안아 주었다.
그리고 그의 머리를 꽉 잡은 채 으르렁거렸다.
“일단 네가 원하는 대로 엘마를 보여주마.”
“……예?”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당황한 프란츠를 보던 요한은 그 들을 데리고 나갔다.
둘을 데리고 요한은 곧장 과자집 으로 향했다.
숲을 걸어 도착한 과자집의 앞에 는 요정들과 함께 있는 아리따운 소녀가 있었다.
장미와 같은 붉은 머리칼을 지닌 화사한 소녀.
그녀가 빌헬미나의 무릎을 베고 앉아 요정들과 노는 것을 본 프란 츠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이…… 이럴 수가. 저게 엘마입 니까?”
« o ,,•方'
“내,내 동생이 이렇게나 귀엽다 니!? 도,동생만 아니라면…… 끄아 악!!”
그의 목소리를 들은 헤이로나는 프란츠의 옆구리를 콱 꼬집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