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권 5화
330. 마음을 알 필요는 없다 (1).
오래간만에 온 요한을 배려해주 기 위해서일까?
평소라면 한두 명 이상의 손님이 있을 과자집에 더 이상의 손님은 없었다.
“많이 먹으렴.”
푸짐하게 담긴 스튜에는 커다란 고깃덩어리가 들어 있었다.
하플링의 방식으로 푹 끓인 스튜 다.
잘 익은 순무를 스푼으로 썰어 씹으며 요한은 차분히 말했다.
“할머니.”
“음? 왜 그러니? 모자라면 더 줄 게.”
반쯤 스튜가 사라진 그릇에 다시 스튜를 담았다.
거기에 빵을 푹 찍어 세 번 만에 해치운 요한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재는 왜 여기 있는 겁니까?”
다른 이들은 요한을 위해 과자집 에 오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도 쓰지 않는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요정 파헬벨이었다.
“에이〜 그러지 마〜”
테이블에 앉아 애플파이를 뜯어 먹던 파헬벨은 손사래를 쳤다.
엘마와 함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그녀가 과자집에 남아 있다는 것이 요한은 그것이 꽤나 거슬렸다.
“좀 가라.”
“갈 거거든? 나중에 엘마 오면 갈 거거든? 너무 그러지 말아 줄 래?”
그녀를 응시하던 요한은 볼을 긁 적거 렸다.
그리고 손을 뻗어 파헬벨을 잡았 다.
“저녁도 먹고 갈 거지?”
« o w■o'.
“저녁 먹으면 바로 갈 거냐?”
“그래야 해. 안 그래도 여왕님이 부르셨어.”
그럼 다행이다.
만약 자고 간다고 했다면 성궤 안에 가둬두려고 했었다.
그가 풀어주자 파헬벨은 날개를 파닥거리며 빵을 잡았다.
“그런데 왜?”
“그냥.”
평소라면 이런 것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을 텐데 요한이 왜 저러 는 것일까.
의문을 품은 파헬벨이 물었지만 그는 아무렇지 않게 고개를 돌렸다.
“후후. 너무 그러지 말렴. 오늘은 아단도 오지 않는다고 하는데. 꽤 나 바쁜 모양이더구나?”
“예. 사열 준비 때문에 정신없을 겁니다. 그런데 그럼 할머니 혼자 주무셔야 하는데. 괜찮겠어요?”
“정령들도 있으니까 괜찮단다.”
‘그러고 보니 여기는 정령의 집 이기도 했지.’
과자집은 정령들이 머무는 집이 기도 했다.
거기에 빌헬미나는 뛰어난 정령 사.
그런 만큼 과자집과 그 근처에서 만큼은 그녀를 이길 수 있는 자는 없다고 봐야 했다.
화덕에 있는 불의 정령.
우물가에 있는 물의 정령.
환풍기에 있는 바람의 정령.
정원에 있는 대지의 정령.
사대 원소의 정령들이 떡하니 과 자집을 지키고 있다.
아무리 빌헬미나가 함부로 마법 을 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령들 은 그녀를 지키기 위해 무슨 짓이 든 할 것이다.
‘귀찮게 됐군.’
“왜 그러니? 무슨 걱정되는 것이 라도 있니?”
빌헬미나는 상냥한 미소를 지었 다.
그 미소를 마주하며 요한은 스튜 를 한 모금 마셨다.
“아무것도 아니에요.”
* * *사열이 끝나고 저녁 시간이 되자 요한은 광약과 함께 과자집을 찾았 다.
나름대로 즐겁고 유쾌한 식사를 마치고 후식까지 먹은 후에야 파헬 벨은 돌아갔다.
그녀가 간 것을 본 요한은 품에 서 향을 꺼냈다.
필로틴 제국의 경매장에서 구매 한 향이었다.
“이게 뭐니?”
설거지를 끝내고,다과와 차를 타온 빌헬미나는 요한이 꺼낸 향을 보며 의아해했다.
금박이 새겨진 포장을 보던 그녀 는 조심스레 포장을 뜯었다.
“향이네? 음〜 향기가 좋구나.”
“예. 이번에 필로틴 제국에 다녀 왔잖아요? 거기서 사온 겁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한 선물들도 물 론 사기는 샀다.
하지만 개중에 가장 비싼 것이 바로 이 향이었다.
필로틴 제국의 황족들만이 쓴다 는 그 귀한 향을 가져온 요한은 싱 글벙글 웃었다.
“이 향이 뭔지 아세요?”
“글쎄……? 이거 꽤나 고급스러 워 보이는데……“숙면의 향이라는 거에요. 필로 틴 제국의 황족들은 업무, 혹은 자 신의 의무에 짓눌려 불면증에 시달 린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예. 할머니. 늦게 주무시고 일찍 일어나신다면서요? ”
빌헬미나의 밤은 매우 늦다.
다음 날 아침에 찾아올 손님을 위한 요리 준비 때문이다.
그리고 아침 또한 빠르다.
요한이 훈련을 마치고 돌아올 때 를 맞춰 요리를 하기 때문이다.
물론 요한이 오지 않는다고 하더 라도 다른 사람들이 아침 식사를 위해 찾아오곤 했다.
그들을 먹이기 위해서 빌헬미나 는 언제나 아침 일찍 일어난다.
그것을 들어 알고 있는 요한이 말하자 그녀는 씁쓸해했다.
“괜히 너에게 걱정을 끼친 것 같 구나.”
“아뇨. 그건 할머니가 판단할 일 이니까요. 그래서 이걸 사온 거예 요.”
숙면의 향은 적게 잠을 자도 빠 르게 피로를 풀어주는 향이다.
이것을 피워놓고 잔다면 거의 기 절한 듯 잘 수 있다.
요한이 향을 밀며 말하자 빌헬미 나는 빙긋 웃었다.
“꽤나 비싸 보이는데…… 후작님 께 드리는 게 낫지 않겠니?”
“아버지 것은 따로 샀어요. 그러 니까 이건 할머니 쓰세요. 아니면 제가 드리는 건데 못 쓰시겠다는 건 아니죠?”
“그럴 리 없잖니. 전에 네가 준 것들도 아주 소중하게 보관하고 있 단다.”
그러고 보니 요한이 선물한 장신 구나 옷은 특별한 날에만 쓸 뿐이 었다.
요한은 그녀를 보다가 씁쓸해했 다.
“아무튼 이건 오늘부터 꼭 쓰도 록 하세요. 아. 그리고 창문은 열어 놓으시고.”
“왜?”
“밀폐된 공간에서 쓰면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고 하더라구요.”
빌헬미나는 향 하나를 꺼내고 코 에 가져가 보았다.
좋은 꽃의 향기가 그녀의 코를 즐겁게 만들었다.
“확실히 좋은 향이구나. 후후. 고 맙구나.”
“뭘요. 그럼 할머니. 전 이만 가볼게요.”
“벌써 가려고?”
“예. 할 일이 있어서……“그럼 이거 가져가서 먹으렴. 오 늘도 늦게까지 일할 생각이지?”
“하하. 예.”
빌헬미나는 커다란 바구니를 내 어주었다.
바구니 안에는 꽤나 많은 샌드위 치와 주스가 담겨 있었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빌헬미나가 직접 만든 소시지나 햄도 꽤나 들 어 있었다.
이정도면 되겠다 싶은 요한은 싱 글벙글 웃었다.
“늘 고마워요.”
“후후. 그런 소리 말렴.”
“할머니.”
상냥하게 웃는 그녀를 마주하며 요한은 진지하게 말했다.
“수명을 늘리는 것. 생각해보셨 어요?”
“……그 이야기는 하지 않았으면 싶구나.”
“제물로 사람을 쓰지는 않을 거 예요. 그럼 괜찮지 않을까요?”
요한은 별다른 기대 없이 빌헬미 나에게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저 을 뿐이었다.
“요한.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도…… 너에게는 더 많은 힘 이 필요할 거야.”
영지에서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 를 들었다.
요한이 하는 일은 많다.
그 과정에 분명히 많고,강한 적 들이 나타날 것이다.
만약 자신의 수명을 늘릴 힘이 있다면 그것을 요한을 위해 써줬으 면 좋겠다.
그것이 빌헬미나의 마음이었다.
부드럽지만 확실한 거절.
그것을 마주하며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할머니 뜻이 정 그러 시다면야. 그럼 할머니도 오늘은 일찍 주무세요.”
“고맙구나. 그럼 내일 보자. 아침 에 올 거지?”
“물론이죠. 좋은 밤 되세요.”
밝게 웃으며 말한 요한은 과자집 을 나오자마자 웃음기를 지웠다.
그리고 몇 발짝 물러나 과자집을 보았다.
‘저기를 들어가려면 쉽지 않겠군. 하지만……무표정하던 얼굴에 웃음이 드러 났다.
하지만 그 웃음은 조금 전 빌헬 미나를 상대할 때의 웃음과는 판이 하게 달랐다.
* * *저택에서 일 처리를 하고.
탈무의 연구실로 돌아온 요한은 호라이즌 큐브를 사용했다.
이번에 나온 것은 놀랍게도 보물 고블린이 었다.
하지만.
“쯧.”
보물 고블린의 주머니에서 나온 것은 한 자루 장검에 불과했다.
“거 더럽게 안 나오네.”
매일매일 호라이즌 큐브를 쓰는 데도 여전히 안 나온다.
요한은 아쉬워하며 붉은 아공간 에서 나왔다.
아공간 바깥에는 그의 명령을 받 고 찾아온 광약이 서 있었다.
“왔냐?”
“예. 로드. 그런데 무슨 일로 부 르신 겁니까?”
“말했잖아. 나 좀 가드하라고.”
광약이 검을 옆에 내려놓자 요한 은 바구니를 바라보았다.
“하는 김에 차도 좀 준비해. 그리고 소시지도 굽고.”
“알겠습니다.”
그가 준비를 하는 사이 요한은 바닥에 마법진을 그렸다.
소시지 굽는 향기가 금방 연구실 안을 메웠다.
준비가 다 되자 요한은 마법진 안으로 들어가 아공간 주머니에 손 을 넣었다.
그의 손에서 나온 것은 검은색 핵이었다.
‘자…… 그럼 해볼까.’
■■쿠우우웅!!!
세 개의 핵이 빛이 되어 사라지 며 그의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와 동시에 요한의 몸이 변화하 기 시작했다.
-우두둑!! 우둑!!
근골이 뒤틀리며 혈맥이 바뀐다.
오러로드가 확장되고 육체가 전 투에 더욱 용이해지고 있었다.
지금까지 쌓아 둔 근육이 그 고 통을 버려내는 동안 요한은 여덟 번째 벽이 파괴되는 것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치솟는 막대한 기운 이 심장에 모였다.
“쿨럭!!”
한 차례 검은 피를 토해냈다.
육체에 남아 있는 부정적인 기운 이 피와 섞여 흘려내리고 있었다.
인위적으로 몸을 바꿔나간다.
철을 제련하듯 전신을 넘쳐흐르 는 힘으로 교정하는 사이 요한의 온 몸은 땀으로 젖어버렸다.
“쿨럭!! 커억!!”
그도 쉽게 버티기 힘들 정도의 고통이 몰려들었다.
그것을 간신히 버려낸 요한은 털 썩 뒤로 쓰러졌다.
“후우우우……“로드. 이건 도대체……“……샌드위치…… 부터 가져 와……여덟 번째 코어를 다 만들었다.
이번에는 마법진의 도움을 받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여덟 번째 코어를 만드는 일은 결코 쉬 운 일이 아니었다.
‘이제 한 번 남았다.’
몸에 남아 있는 것은 단 하나의 벽뿐.
그것을 느끼며 그가 미소 지었을 때 광약은 황급히 샌드위치를 가져 와 그의 입에 물려주었다.
-우적! 우적!
게눈 감추듯 물려 있던 샌드위치 가 사라졌다.
그가 입을 벌리자 광약은 다시 샌드위치를 넣어주었다.
"으…… 소시지도……“아. 예.”
어미 새가 주는 먹이를 받아먹듯 요한은 광약의 무릎에 머리를 올린 채 입만 벌렸다.
그가 넣어 준 샌드위치와 소시지 를 먹고 스푼으로 떠먹여 주는 차 까지 마셨다.
그렇게 바구니에 가득 들어 있던 음식들이 사라지고 나서야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휴. 이제야 좀 살겠네.”
“도대체 뭘 하시는 겁니까?”
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다.
광약이 궁금해하자 요한은 어깨 를 으쓱였다.
“절맥 치료.”
“아…… 그런데 왜 호위를 시키 시는 겁니까? 음식을 먹이는 것 때 문에 그런 것이라면……다른 이들이 낫지 않나 싶었다.
광약은 머뭇거리며 조심스레 말 했다.
“솔직히 저와 이런 건 좀 맞지 않는 듯싶어서……돌보는 일은 다른 자들이 더 잘 할 거다.
차를 끓이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땀과 피를 닦아주는 것도 그렇다.
광약은 싸우는 자.
그러니 요한이 만족할 수준은 되 지 않을 것이다.
미안해하는 그에게 요한은 심드 렁하게 답했다.
“뭔 소리야. 그나마 믿을 만해서 너를 붙여 둔 건데.”
“어…… 그,그러십니까?”
어쩐지 웃음이 나왔다.
광약이 히죽거리자 요한은 가볍 게 손사래를 쳤다.
“아무튼 중요한 건 그게 아니 고.”
그에게는 은근히 중요한 일이었 는데 부정당하자 광약은 살짝 시무 룩해졌다.
“과자집에 잠입해야겠어.”
그 말을 들은 그는 바로 정신을 차렸다.
애초에 잠입할 필요가 있나 싶었 다.
“빌헬미나 님을 깨우면 들어갈 수 있는 것 아닙니까?”
“그렇긴 한데. 할머니 수명 늘리 러 가는 거거든.”
“하지만 빌헬미나 님께선 거절하 셨잖습니까.”
“알아. 할머니가 이걸 아시면 꽤 나 마음 쓰시겠지.”
그럴 힘 있으면 요한이 쓰라고 하는 빌헬미나다.
자신의 수명을 늘리는 데 썼다고 하면 꽤나 싫어할 거다.
그렇기에 요한은 선택했다.
“그러니까 몰래 하자. 몰래. 할머 니 걱정하실 테니까.”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