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권 13화
313. 밤길 조심하랬지? ⑴.
에미즌의 말로는 이곳에 키르케 와 타로트가 머무르고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공연을 요청한 것이 둘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타로트는 이런 공연은 별로 좋 아하지 않아.’
하지만 키르케는?
그녀는 기본적으로 향락과 유희 를 즐기는 자다.
아무리 그녀가 막강한 힘을 지니 고 있다지만 망망대해에서 문제가 생기면 그녀 역시 죽을 수밖에 없 었다.
그런데도 키르케가 바다에 나가 는 이유는 항해와 탐험을 통해 얻 을 수 있는 쾌락 때문이었다.
항로를 새로 만들었을 때의 기 쁨.
모험을 통해 보물을 얻었을 때의 쾌감.
키르케는 그런 위험과 스릴에 중 독되어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얌전히 있으려니 좀이 쑤시겠지.’
그러니 이런 공연이라도 보려고 부른 것이리라.
“자자. 뒤뜰로 가라.”
그들이 안내를 따라 뒤뜰에 도착 했을 때 몇 대의 짐마차를 발견했 다.
“이건…… 다른 재주꾼과 악단의 짐마차 아닙니까.”
“뭐야. 너희들만 불렀다고 생각 한 거야? 그럴 리 없잖아.”
셀미는 까르륵 웃으며 솔바른의 등을 툭 쳤다.
그는 어찌할 바를 몰라 하며 요 한을 보았다.
하지만 요한은 그저 순순히 걸어 갈 뿐이었다.
“여기 지하로 내려가면 되나?”
“오. 그래. 그래. 그래도 저 친구 는 배짱이 끝내줘서 좋구만.”
요한과 다르게 솔바른 유랑단의 재주꾼들은 머뭇거렸다.
그들을 향해 셀미는 웃으며 천천 히 손을 음직였다.
군살 하나 찾아보기 힘든 허리 근처로 그녀의 손이 이동했다.
그곳에 있는 검자루를 본 재주꾼 들은 기겁하며 요한을 따랐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밤중에.
그것도 지하에서 공연을 해야 하 다니.
두려워하는 그들에게 요한은 심 드렁히 말했다.
“그냥 공연하라고 부른 거니까 공연만 하고 가면 되겠지.”
느긋하게 걸어 도착한 곳에서는 벌써 공연자들이 준비하고 있었다.
공연을 구경하는 것은 단 한 사 람뿐이었는지 좌석도 하나밖에 없었다.
“어? 거긴……“솔바른 아냐? 어떻게 된 거야?”
“아니 그게…… 공연을 요구받아 서……“우리도 받았는데…… 누구인지 몰라?”
안면이 있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나눴다.
그렇게 그들이 잠시 이야기를 나 누고 있는 사이 문이 열렸다.
“오! 뭐야? 많이도 모였네?”
짙은 흑발을 지닌 가면의 여인이 었다.
커다란 덩치를 가진 그녀의 옆에 는 험상궂은 인상을 한 남자들이 서 있었다.
“잘 와줬어. 아무래도 여기 있으 면 너무 심심하단 말이지.”
“그,그럼……“그냥 내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서 하는 것뿐이니까 자. 해봐. 날 재밌게 해주는 놈들에게는……-따악!!
그녀의 손가락이 퉁겨지자 철문 에서 기사들이 나왔다.
기사들의 손에 들려 있는 커다란 상자가 열리자 재주꾼들과 악단은 기겁했다.
안에 들어 있는 것은 서른 개의 금괴 였다.
“이걸 전부 주지. 좋은 거잖아?”
“그,그럼 공연만 하면 되는 겁 니까?”
“내가 너희들에게 뭘 바라겠어? 그럼 시작해봐.”
다들 눈치를 살폈다.
긴장하고 있는 그들을 향해 가면 의 여인은 손을 휘저었다.
“뭘 그리 겁먹고 있어?”
여인의 유쾌한 어조 때문일까?
긴장감이 조금씩 풀려나갔다.
머뭇거리던 한 팀이 결국 먼저 나섰다.
“에릴 악단입니다. 그…… 저희 부터 시작하겠습니다.”
“좋아! 그럼 즐겨볼까!?”
그들 중에도 눈썰미가 있는 자들 이 있었나 보다.
에미즌 자작의 아들 생일 때 연 주했던 음악이 아닌 다른 연주가 시작되었다.
“오오……!!"
그것은 항해사들을 위한 연주였 다.
거친 파도를 가르고 바다로 나가 는 자들의 음악.
웅장하고,또 경쾌한 연주와 노 래가 이어진다.
여인과 그녀의 뒤에 있던 자들은 꽤 만족했는지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아아아아〜!! 갈매기의 울음이 바다를 가르니〜!!”
낮은음으로 외친 가수가 손을 들 었다.
그가 호응을 유도하자 남자들과 여인은 힘껏 외쳤다.
“노를 저어라!! 노를 저어라!!”
“높은 파도라고 하더라도니 우리 의 열정을 막지 못하리니!!”
“칼을 들어라! 칼을 들어라!!”
“이 바다는 우리〜의〜 것니!”
“오오오오오니!”
첫 공연은 꽤나 성공적이었다.
여인은 박수를 치고 옆의 남자들 에게 말했다.
“이거 괜찮은데? 우리도 제대로 된 악단을 모집해볼까?”
“누님. 그건 좀 힘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떤 미친 악단들이 저 희 배에 타겠습니까?”
“흠…… 그런가? 그래도 뭐…… 일단 태워보면 알지 않을까?”
여인의 시선이 날카로워졌다.
그녀는 핥듯이 에릴 악단의 악단 원들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좋아. 그럼 다음!!”
첫 공연으로 분위기가 좋아지자 다들 기뻐하며 나섰다.
두 번째와 세 번째 공연 역시 나 름대로 즐거웠다.
홍이 오르기 시작했는지 그녀는 사소한 것도 신기해하며 즐거워했 다.
이 정도면 괜찮다.
좋은 분위기가 이어지자 이곳에 모인 이들이 안도하기 시작했다.
네 번째 공연을 맡은 재주꾼들의 불 뿜기와 불 넘기 재주가 끝났다.
신기해하던 그녀는 금화를 뿌려 주고 다음 공연자들을 보았다.
“아. 좋았다. 그럼 다음이군. 오 호. 피에로인가? 코미디라도 하려 나 보지?”
가면의 여인이 만족하자 피에로 들은 웃으며 나와 춤을 추고 그녀 를 웃기려 하였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말입니다! 이때 소 반 왕은 궁에 들어가기 싫어 이렇 게 말했지요!”
“구시렁. 구시렁.”
반응이 너무나도 냉담하다는 것.
점점 분위기가 안 좋아지기 시작 하자 그들은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실패했군.’
노력하기 때문일까?
오히려 더욱 우습지 않았다.
다른 재주꾼들이 걱정 어린 시선 을 보내기 시작했다.
더욱 필사적으로 피에로들은 바 닥을 구르거나,혹은 일부러 실수 를 하는 척하며 웃음을 유도했다.
하지만 모두 실패해버렸다.
“이제 비장의……!”
“아. 됐어.”
처음으로 차가운 목소리가 들렸 다.
그 목소리에 피에로들과 악단이 고개를 숙였을 때.
가면의 여인은 더없이 싸늘하게 말했다.
“재들은 먹이로 넘겨.”
“알겠습니다. 누님.”
가면 여인의 뒤에 있던 자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다가오자 피에로들과 악 단은 당황했다.
“한 번만 더 기회를 주십시오! 한 번만!!”
“반드시 웃을 수 있게 해드리 겠•"… 으아아아!!”
그들 모두 그녀가 들어왔던 문을 통해 끌려나갔다.
끔찍한 비명이 이어졌지만 그녀 는 신경도 쓰지 않았다.
잠시 후 돌아온 이들의 옷에는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
“그럼 다음으로 가볼까? 에•…" 제일 기대가 되는군. 원래 유종의 미가 중요한 법이니까 말이야.”
옆에 둔 럼주를 한 모금 마신 그 녀가 손짓하자 솔바른 유랑단의 재 주꾼들이 재주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앞선 공연이 가라앉힌 분위기 때 문일까?
아니면 돌아온 이들의 옷과 얼굴 에 묻은 피 때문일까?
여전히 분위기는 심각했다.
“아. 됐어. 너희들도 빠지고. 그 냥 악단이나 데리고 가야겠군.”
“아직 제가 남았습니다.”
“뭐…… 해봐. 별것 없을 것 같 긴 한데.”
가면의 여인이 허락하자 요한은 에레카에게 눈짓했다.
그녀에게 곡을 말해 준 요한은 바로 노래를 시작했다.
“노래? 노래는 아까 처음 악단애들이•…"
“바다가 갈라진 날〜 그곳에 있 는 위대한 지배자가 심해에서 올라 오니〜”
중후한 목소리가 시작을 알렸다.
듣기 좋다고 생각한 것일까?
일어나려던 그녀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뜨거운 열기와 함께 잊힌 곳에 서 위대한 분께서 나타나시리 라〜!!”
클로에의 입이 움직였다.
그와 동시에 약간 높은 음색의 아름다운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을 들은 이들이 놀라는 사이 요한은 느긋하게 가사를 이어 불렀 다.
완벽한 복화술을 이용한 윤창(輪 唱)이었다.
모르는 이들이 본다면 클로에가 진짜 마법이 걸린 인형인 줄 알 정 도로 말이다.
그렇게 한 곡의 노래를 마친 요 한은 천천히 허리를 숙였다.
“어떠십니까?”
“훌륭해!! 이 정도면 아까 그 악 단은 필요도 없겠군!!”
크게 박수를 치며 일어난 그녀는 가볍게 손짓했다.
그녀의 뒤에 있던 상자가 움직였 다.
“자. 약속대로 이걸 주지.”
“감사합니다.”
“음음. 만족스러웠어. 아까의 불 쾌함이 완전히 사라졌구만.”
씩 웃은 그녀는 요한에게 다가갔 다.
그리고 그의 손에 들려 있는 클 로에를 받아보았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인형일 뿐이 다.
“진짜 인형 맞지? 혹시 혼을 담 아뒀다거나……“그런 게 가능할 리 없잖습니 까.”
그저 순수하게 복화술을 썼을 뿐 이다.
요한을 보던 그녀는 가볍게 박수 를 쳤다.
“좋아. 셀미.”
“예.”
“저들은 다 돌려보내 줘.”
아까 전까지만 해도 항해에 데려 가니 마니를 떠들더니.
이제 마음이 바뀌었나 보다.
그녀는 더 이상 다른 이들에게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너. 잠깐 얼굴 좀 빌리 자.”
“얼굴 가죽을 빌리자는 말씀은 아니시 겠지요?”
“경고하는데 재미없는 농담은 관 둬. 네 녀석의 재주가 마음에 들어 서 지금은 봐준 것뿐이다.”
“흐...... wT그- •“셀미. 뭐하냐.”
가면의 여인이 다시 한 번 명령 하자 셀미는 가날픈 턱을 매만졌다.
“그냥 되돌려보냅니까? 하지만 그건……“아. 그렇지. 기분이 좋아서 잊고 있었네. 다들 보내버려.”
“알겠습니다.”
“보내버리다니? 어디로 보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건 네가 신경 쓸 필요 없는 일이야.”
가면의 여인이 자신을 잡으려 하 자 요한은 뒷걸음질 쳤다.
그를 향해 여인은 인상을 찡그렸 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제 동료들은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보내 주셨으 면 합니다.”
“흠…… 지금 거래를 하자는 건 가? 너 따위가?”
여인의 입가에 가소롭다는 기색 이 담긴 비웃음이 올라갔다.
하지만 요한은 물러나지 않았다.
그가 솔바른 유랑단의 앞에 서자 여인은 웃었다.
“배짱도 좋고. 마음에 들어. 그 래. 내 배에 타려면 그 정도 배짱 은 있어야겠지.”
요한의 의사 따위는 듣지도 않았 으면서도 그녀는 이미 결정된 듯 말했다.
“저기…… 솔바른 유랑단? 재들 은 돌려보내. 그리고 나머지는…… 거기로 보내고.”
“자,잠시만요!! 잠시만요!!”
“이런 짓은 하지 않는다고 하셨 잖습니까!! 돌려보내 주십시오!!”
아까 끌려나갔던 피에로들처럼 그들도 끌려나갔다.
남은 것은 요한과 솔바른 유랑단뿐겁에 질려 있는 그들을 향해 가 면의 여인은 싱글벙글 웃었다.
“어이. 단장. 내가 얘를 데리고 가도 괜찮겠지? 조금만 데리고 있 을 거야. 조금만.”
“그…… 그건•…"
“안 돼?”
솔바른은 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그가 눈짓하자 솔바른은 고개를 조아렸다.
“뜨,뜻대로 하십시오.”
“좋아! 훌륭해! 난 이렇게 깔끔한 거래가 좋단 말이지니 셀미!! 재 들은 건드리지 마!”
“하지만……“명령이다. 아니면. 내가 직접 네 년의 머리에 새겨줘야 할까?”
그녀는 가볍게 손을 들었다.
잠시 후 들어온 기사들은 커다란 금괴 다섯 개를 솔바른의 손 위에 올려놓았다.
“가져가. 너희들의 재주는 정말 쓰레기지만…… 저 녀석만큼은 마 음에 드는군.”
살벌한 어조로 말한 그녀는 바로 몸을 돌렸다.
“저 녀석 데리고 내 방에 가 있 어. 난 일 좀 해주고 갈 테니까.”
“알겠습니다. 누님.”
아까의 남자들이 요한을 데리고 올라갔다.
저택 이 층의 안쪽에 있는 방에 도착하고 잠시 기다리자 피곤한 얼 굴의 미부가 들어왔다.
그녀는 남자들을 내보낸 후 서 있는 요한에게 말했다.
“거기 적당히 앉아 있어. 와인이 라도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자.”
“예.”
“그 전에 내 소개조차 하지 않았 군. 좋은 기회다.”
미부는 양팔을 벌리며 호쾌한 미 소를 지었다.
“기뻐하라. 바그너라고 했던가? 너를 영광스러운 모비딕 호의 선상 악사로 만들어주마.”
“모비 딕이라면……“그래. 내가 바로 바다의 제왕. 해왕 키르케다.”
자랑스럽게 말한 그녀는 그대로 몸을 돌렸다.
그녀가 찬장에 있는 와인 병에 손을 가져가려는 순간.
“어......?”
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뚫고 나온 하얀 검을 보고 말았다.
“그건 아까 보자마자 알았고…… 예나 지금이나 멍청하건 마찬가지 군. 날 포섭하고 싶었다면 보자마 자 마안을 걸었어야지.”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