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권 10화
285. 평화의 끝 (3).
하이마스는 플로란스에 대해 알 리는 것을 주저했었다.
하지만 그의 성격상 숨기지는 않 았을 것이다.
그런데도 미나가 모른다는 것은 보고를 밷은 바론 교단 내에서 숨 겼다는 이야기다.
‘아무리 모두가 선한 것은 아니 라지만……하이마스처럼 진실된 성직자도 있고.
또 교단의 위세만을 위한 성직자 들도 있다.
회귀 전 아하스나 세레나가 그랬 던 것처럼 말이다.
요한은 미나를 보다가 빙긋 웃었 다.
‘굳이 밝히지 않겠다는 거 내가 나서서 알릴 필요는 없겠지.’
묵시록의 구원자와 바론 교단이 어떤 사이이든 요한이 알 바는 아 니다.
플로란스도 자신이 묵시록의 구 원자임을 알릴 생각이 없다.
바론 교단에서도 그것을 감추려 한다.
그렇다면 굳이 요한이 나서서 알 릴 필요가 있겠나.
적당히 맞춰주면 될 것이다.
‘그쪽 일은 그들이 알아서 하게 하자.’
바론 교단도 미치지 않고서야 플 로란스를 잡으려는 짓은 하지 않을 거다.
어쩌면 그들은 계속 묻어두려고 할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문제 될 것도 없으니 그냥 속 편하게 구경만 하면 된다.
요한은 한결 가벼워진 마음을 가 졌을 때 쯤.
헤로도톤은 심각한 어조로 말했 다.
“묵시록의 종말이 뭡니까?”
“몰라?”
“어…… 바론 교단의 성녀님께 드릴 말씀은 아닌데…… 모르겠습 니다.”
그가 어색하게 존대하자 미나는 빙긋 웃었다.
성녀가 되고 나서 야민도 이랬었 다.
그때의 어색함을 떠올리며 그녀 는 살갑게 말했다.
“헤로도톤. 우리는 친구잖아. 그 렇게 존대할 필요는 없어.”
“아니 그래도……“그리고 너는 바론 교단의 신도 도 아니니까.”
“으음…… 그래. 알았어. 아무튼 묵시록에 나오는 종말이 뭔데?”
“묵시록에는 네 번의 경고와 함 께 세상에 종말이 찾아온다고 나와 있어,신학을 공부한 사람들이라면 다 들 알만한 이야기다.
하지만 신학은커녕 신전에는 배 급,그리고 회복을 위해서만 찾아 가는 헤로도톤이다.
율리아 영지의 신전에도 가지 않 는 그가 알 리가 있나.
헤로도톤은 미나의 말을 경청하 기 시작했다.
“세상은 영원하지 않고,그 끝이 있으니. 그것을 종말이라 한다. 하 지만 자비로우신 바론 님께서는 그 종말을 막을 수 있는 자를 내려주 셨으니. 그를 구원자라 한다.”
“그리고 그 구원자와 함께 네 번 의 경고가 내려질지니. 첫 번째 경 고는 굶주림이니라.”
미나의 말을 이어받으며 솔라가 말했다.
첫 번째 경고인 굶주림.
그것을 들은 헤로도톤은 고개를 갸웃거 렸다.
“설마 그 굶주림이 대기근을 말 하는 거야?”
“응. 묵시록은 예전에는 정설로 취급되지 않았는데…… 대기근 이 후 묵시록은 중요한 성서로 자리 잡았지.”
누구도 그 원인을 알 수 없는 대 기근이 발생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중에는 종말 이 찾아올 것이라며 묵시록을 들고 떠드는 자들도 있었다.
그들에 의해서 묵시록은 거의 정 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다.
“그리고 두 번째 경고는 바로 역 병이니. 수많은 이들이 치료될 수 없는 병에 걸려 바론 님의 곁으로 가게 되리라.”
낮은 어조로 미나가 말했다.
그것을 들은 요한은 다음 구절을 말했다.
“이후 세 번째 경고는 전쟁이니. 살아있는 자들의 끝없는 싸움이 시 작될 것이다.”
“모든 전쟁이 끝난 후 거대한 위 험이 찾아올 것이니. 네 번째는 방 문일지어다. 죽음이 세계에 방문하 여 모든 이들을 이끌어갈 것이고. 구원자는 그들과 싸워나가게 될 것 이니라.”
묵시록의 구절을 전부 설명한 미 나는 한숨을 쉬었다.
“아직까지 두 번째 경고는 시작 되지 않았으니까……‘어쩌면 묵시록에서 말하는 두번째 경고가 시작되었고,이미 끝 났을지도 모르지.’
백색병.
누구도 치료할 수 없는 병은 이 미 시작되었고,빠르게 끝났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아는 것은 몇 명 되지 않는다.
‘어쩌면 시간이 흐르고 나서 그 것과 묵시록을 연결할 수도 있겠지 만……묵시록에 나오는 것처럼,그리고 대기근처럼 위험하다 싶을 정도의 죽음은 없었다.
그러니 바론 교단에서도 단순한 해프닝이라 생각하고 넘길 수도 있 었다.
“그 두 번째 경고가 시작되기 전 까지 우리는 구원자를 찾아야 해.”
“그렇구나•…" 자작님. 뭔가 아 시는 것 없으십니까?”
요한의 밑에서 꽤 일했기 때문에 헤로도톤은 알고 있었다.
그가 알고 있는 지식은 어지간한 전문가를 넘어선다는 것을.
아카데미의 연금술 교관이었던 엘레나도 요한에게 연금술을 물으 러 간다.
드워프인 헤갈도 야금술과 대장 기술에 대한 조언을 받는다.
농부들도,숲지기들도.
가죽 장인이나 행정적인 처리를 하는 자들도.
모두 요한에게 조언을 구하는 경 우가 많았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는 순순히 설 명해주었다.
단 한 번도 망설이지 않고 말이 다.
그러니 이번에도 뭔가 알 것 같 았다.
기대감을 품은 모두를 둘러보며 요한은 시큰둥하게 답했다.
“나라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 니지.”
“쩝. 그렇겠죠?”
헤로도톤은 아쉬워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에게 빙긋 웃어 준 요한은 가 법게 박수를 쳤다.
“어쨌든 뭐…… 구원자를 찾든 뭘 하든. 열심히들 해라.”
“어라? 자작님께서는 함께 하시 는 것 아니십니까?”
“내가 그걸 왜 해?”
솔라와 요미안은 당황했다.
미나와 함께 구원자를 찾아달라 는 바론 교단의 의뢰를 받았을 때.
그들은 일단 요한에게 조언을 구 하자고 생각했다.
그리고 덤으로 도움도 구하자고 생각했었다.
“저희는 자작님만 믿고 있었는 데……“날 왜 믿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까지 자작님께서는 많은 것 을 해결하셨으니까요.”
“아까 말했지만 나라고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야.”
차를 한 모금 마신 요한은 자리 에서 일어났다.
더 할 말이 없으니 가서 훈련이 나 하려는 것이다.
“요한 자작님! 도와주실 수 없으 신 겁니까!?”
“나도 이래저래 바쁘거든. 공식 적으로 바론 교단에서의 의뢰가 들 어온다면 모를까……그것이 아니라면 거론할 가치도 없다.
그리고 요한이 함께 구원자를 찾 는 행위는 바론 교단도 딱히 원하 지는 않을 것이다.
‘재들에게 은 등급의 직위를 준 이유를 알겠군.’
바론 교단 내에서도 알고는 있는 것이다.
이미 구원자는 찾았고,그 구원 자가 바론의 신자조차 아니라는 것 으그러니 일부러 동 등급 수준의 모험가를 은 등급으로 만들어 맡긴 것이다.
솔라와 요미안은 아직 은 등급이 되기에는 모자라다.
그런만큼 구원자를 절대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은 등급 두 명이라면 성녀를 수 행하기에도 걸맞으니까 보기에도 알맞다.
‘결국 이용당한다는 거군.’
솔라와 요미안을 물끄러미 바라 보던 요한은 무덤덤하게 말했다.
“때가 되면 구원자와 만나게 되 겠지. 너무 집착하지 말고 편하게 들 생각하면서 살아. 그럼 수고들 해.”
말을 마친 요한은 그대로 나가버 렸다.
* * *다음 날이 되자 요한이 이끄는 수송대는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
그 수송대에 인원이 추가되었다.
“야민이 자작님 밑에서 일하고 싶답니다.”
“그래? 안 그래도 마법사가 필요 했는데 잘됐네.”
아단 혼자 고생하는 것이 안쓰러 워 마법사를 요청하려 했었다.
요한은 웃으며 야민을 받아들였 다.
“참고로 말하는데 내 밑에서 일 하는 건 결코 쉽지 않다. 각오는 해둬.”
“예!!”
어젯밤 솔라와 요미안에게 들었 다.
하지만 힘들어 봤자 얼마나 힘들 겠냐는 생각이었다.
그녀 역시 상아탑에서 공부하며 성격 나쁜 선배들의 수발을 든 적 이 있었다.
그때 고생을 많이 했으니 요한 정도라면 괜찮을 것이라 판단한 것 이다.
“그럼 각자 갈 길 가자고. 안녕 이다.”
“어어어어!? 자작님!”
“왜.”
“수도까지 가시는 것이면 함께 가시면 안 됩니까?”
“상관은 없는데…… 왜?”
“헤로도톤도 만났으니까 하이마 스 주교님을 좀 만나 뵈려고 합니 다.”
“왜?”
“하이마스 주교님께 가르침을 받 고 싶어서요.”
바론 교단에서도 뛰어난 신성력 과 인자한 성품으로 유명한 그다.
그에게 가서 인사를 하고 가르침 을 받고 싶다.
미나의 요청에 요한은 수레를 가 리 켰다.
“함께 가고 싶으면 일해.”
“짐 나르기인가요? 그거 견습 사 제 시절에 꽤나 하던 일이었는 데…… 그립네요.”
성녀고 뭐고 요한은 가차 없었 다.
그녀에게도 일을 시킨 요한은 요 미안과 솔라에게도 말했다.
“너흰 뭐하냐?”
“호위라도 할까 해서……그들의 임무는 성녀의 수행과 호 위다.
미나가 요한의 수송대에 합류하 기로 했다면 그들도 붙어야 했다.
그들이 수레 근처에서 서성거리 자 요한은 콧방귀를 뀌었다.
“너희가?”
요한은 오러 블레이드를 뽑았다.
“너희도 가서 짐이나 옮겨.”
“아. 예.”
은 등급 모험가든 뭐든 요한의 앞에서는 그냥 노동자일 뿐이다.
결국 솔라와 요미안,미나는 짐 꾼으로 고용되어 요한의 수송대에 합류하게 되었다.
그들을 합류시킨 요한의 수송대 는 그대로 수도로 출발했다.
* * *별다른 문제 없이 수송대는 수도 에 도착했다.
캐슬 오브 로디악의 앞에는 꽤나 많은 수송대가 있었다.
세금의 수송을 위해 각지에서 지 방 귀족들이 몰려오는 것이다.
호위,그리고 가문의 위세를 자 랑하기 위해.
혹은 자신의 편의를 위해.
각 수송대는 꽤나 많은 인원들을 자랑했다.
개중에는 고작 세 대의 수레밖에 없으면서 인원은 수백인 수송대도 있었다.
“이렇게 보니 저희가 참 초라해 보이는군요.”
“냅둬. 어중이떠중이 모아봐야 어디에다가 쓰냐?”
수레에 앉아 있던 요한은 성문이 열리고 검문이 시작되자 아래로 내 려 갔다.
그가 나서자 기사는 요한의 얼굴 을 보지도 않고 물었다.
“캐슬 오브 로디악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가문의 인장을 보여주시겠습니까?”
“날 보고 가문의 인장을 보여달 라는 기사는 또 처음이군. 너 로디 악 기사단 소속 아니냐?”
“이 목소리는!?”
기사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기겁하며 뒤로 주춤 물러 났다.
“요,요한 자작님!?”
그의 외침이 주변에 퍼져나갔다.
그것을 들은 몇몇 귀족들은 눈을 빛냈다.
이곳에 있는 수송대 중 가장 초 라한 수송대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수송대가 어쩌면 최강 의 수송대일 줄은 누가 알았겠나.
“바그너 가문의 인장만 있고 기 사단도,사람도 없어서 대리인이 온 줄 알았는데……“설마 요한 자작이 직접 왔을 줄 이야.”
흥미를 느낀 이들의 시선을 받으 며 요한은 인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기사는 공손히 예를 갖췄다.
“직접 수송하러 오신 것입니까? 바쁘실 텐데……“바빠도 와야지. 그리고 이래저 래 할 일도 있고. 그나저나 오래 기다려야 하나?”
“아,아닙니다. 바로 보내드리겠 습니다.”
요한이 가져온 것은 바그너 후작 가의 세금이다.
로드만 왕국에 단 둘 있는 후작 가의 수송대이니 그들이 먼저 간다 고 불만을 가지는 이들은 없었다.
성문에서 나온 기사들과 병사들 이 길을 열자 솔라는 씩 웃었다.
“역시 강자 밑에 붙는 것이 제일 이라니까요.”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히야. 호가호위라지만 좋군요.”
모두가 굽신거리니 높은 직위의 귀족이라도 된 듯싶었다.
의기양양해 하는 둘을 요한은 한 심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딴 소리 하다가 나중에 칼 맞 는다. 귀족들 중에는 호가호위를 싫어하는 자들도 많아. 너무 나만 믿지 말라고/“저희도 그 정도는 알고 있습니 다.”
수송대가 움직이고 금방 검문이 끝났다.
여유롭게 수도에 들어오게 된 요 한은 수레를 툭 치며 물었다.
“그럼 너희는 어쩔 거냐? 우리는 일단 저택으로 갈 생각인데.”
“음…… 저는 하이마스 주교님을 만나러 가려고 합니다. 그리고……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같은 곳에서 머무르고 싶은데…… 안될까요?”
미나가 공손히 묻자 요한은 상냥 하게 답했다.
“안돼.”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