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20화
270. 어서 와라. 기다리고 있었 .
다 (3)
파티장에서 나와 궁내부원에게 부탁해 방을 하나 빌렸다.
그곳에 들어가자마자 플로란스는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꿈을 꿨다.”
그녀는 꽤나 혼란스러워하고 있 었다.
불안감이 감도는 눈빛을 한 채 말하려던 플로란스보다 먼저 요한 이 입을 열었다.
“네가 꾼 꿈은 아마…… 이 세상 에 없어야 할 자들이 나타나는 것 이겠지. 오래된 자들 정도려나?”
“그래. 내가 봤던 것은•…““헤카톤케일은 나왔을 것이고.”
정확했다.
플로란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 한은 신음했다.
“내가 전부터 생각했던 건데. 너 계시를 받고 나서 바론 교단에 말 안 했냐?”
“말했다고 했잖아. 하지만 묵살당했지.”
“네 말을 무시한 게 누군지 정말 궁금하군. 이름 좀 말해봐.”
“테일론 마루 상급 사제다. 지금 은 바론 교단의 본단에서 일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좋아. 그럼 그 인간에 대해서는 나중에 알아보도록 하자. 지금 중 요한건 그게 아니니까.”
“계시에 대해서 뭔가 알고 있 나?”
플로란스의 눈이 번뜩였다.
그녀를 마주하던 요한은 고개를 끄덕였다.
“바론 교단의 묵시록에는 이런 말이 나오지. 세상이 멸망할 시기 에 구원자가 나타날 것이다.”
“……잠깐만. 그럼 너는 내가 구 원자라 말하는 건가?”
바론 교단의 사제는커녕 신자조 차 아니다.
그런 자신이 바론 교단의 구원자 다?
믿기 어려운 이야기였다.
“이번 파티가 끝나는 대로 난 캐 슬 오브 로디악으로 복귀할 거야. 그때 하이마스 주교님께 문의해보 자고.”
“토드만 주교는 불가능한 건가?”
“그야 나도 모르지. 성물이 필요 할 수도 있고…… 그냥 하이마스 주교님께 가는 게 나아.”
“네가 모르는 것도 있나?”
지금까지 요한은 누구도 알지 못 한 것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런 요한이 모른다는 말을 꺼낼 줄은 몰랐다.
놀란 그녀를 향해 요한은 피식 웃었다.
“나도 사람인데 당연히 모르는 게 있지 않겠냐?”
“네가 사람이긴 한가?”
“딱 봐도 사람같이 생기지 않았 어?”
농담하듯 말한 요한은 의자에 앉 으며 가볍게 다리를 꼬았다.
“네가 꾼 꿈…… 계시는 죽었던 자들이 되살아나는 게 아니야.”
“그럼 뭐지?”
“시간을 넘어오는 거지.”
“시간에 대한 것은……금기이고 다룰 수 없는 것이다.
말 그대로 이 세상의 규칙에 어 긋나는 것이다.
그런 것을 어떻게 할 수 있단 말 인가.
놀란 플로란스에게 요한은 피식 웃었다.
“애초에 백색병도 이 세상의 규 칙에 어긋나는 것 아닌가?”
대기근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비가 내리지 않았다.
그것을 따진다면 시간을 넘는 것 역시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라 생각 이 되었다.
“백색병의 시작을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그 현상도 막을 수 없는 건가?”
“그러지 않을까 싶어.”
‘그리고 막을 생각도 없고.’
세 번째 전조로 오래된 자들이 이 세상에 다시 나타나야 한다.
그래야 그들을 잡고 그들이 가진 핵을 세 개 얻어야 여덟 번째 코어 를 만들 수 있다.
“시간과 차원을 연구하는 마법사 들은 많아. 그들 중 하나가 시간을 제대로 건드리게 되면 시작될 거 야.”
그때 있어서는 안 될 자가 그의 몸을 차지하게 될 거다.
그리고 과거에 있어야만 할 자들 이 현실에 나타나게 될 것이다.
“어째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거 지?”
“묵시록의 말을 빌리자면 종말이 다가오기 때문이지.”
“뭐?”
“그리고 오래된 자들이 넘어오는 것은 세 번째에 불과해. 네 번째에 는 다른 차원에서 넘어올 거야.”
“다른 차원……“그러고 나서 이 세상에 있는 모 든 살아 있는 존재를 지워버리려 하는 자가 나타나겠지. 그게 아마 묵시록에서 말하는 종말 같은 데……그것이 바로 마왕이다.
그 마왕을 요한은 무려 72번이나 막아왔었다.
하지만 요한은 묵시록에서 말하 는 구원자가 될 수 없었다.
“넌 그것을 어떻게 알고 있는 거 냐.”
플로란스는 항상 가지고 있던 질 문을 던졌다.
그녀는 요한을 뚫어지라 응시하 고 있었다.
“너도 나처럼 계시를 받은 건 가?”
“계시라고 하긴 좀 그렇고.”
“그럼?”
“지금까지의 내 경험상 들은 사 람들이 좋은 결말을 맞이한 걸 못 봐서 말해주기 그렇다.”
자신의 임무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
궁금해하는 이에게 말해주지 않 은 적은 없었다.
마왕 등장의 전조.
그리고 마왕의 존재.
세상의 비밀.
대가만 받는다면 요한은 숨기지 않고 항상 말해주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처참했다.
대다수는 절망했고.
또 몇몇은 아예 의욕을 잃어버렸 다.
“모르는 게 약이다. 라는 말이 있지. 중요한 것은 헤이로나가 죽 지 않는 것 아닌가?”
오래된 자들이 세상에 나오게 된 다면 엄청난 혼란이 발생한다.
그들에 관한 연구를 한 플로란스 이기에 알 수 있었다.
그들이 판치던 암흑시대는 말 그 대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산 제물을 바치고,오래된 자의 광신도가 되어 그들의 제물이 된다.
그런 세상 속에서 과연 헤이로나 가 잘 살아갈 수 있을까?
요한이 헤이로나를 언급하자 플 로란스는 한숨을 쉬었다.
“……그것도 그렇군.”
“중요한 것이 뭔지 잊지는 않았 군. 좋아. 그럼 앞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서 말해보자.”
“현재 남아 있는 오래된 자부터 잡는 것이 어떨까? 그를 잡아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도움이 될지도 몰 라.”
“……응?”
요한이 의아해하자 플로란스는 입을 열었다.
“녹색 산맥의 토가림 족이라고 아나?”
“개들이 크림슨 우드를 키우고 있다는 거?”
이번에는 플로란스가 놀랐다.
그녀는 얼빠진 얼굴로 요한을 보 았다.
“그걸 어떻게 알았지?”
“이번에 잡고 왔거든.”
플로란스의 태도에 요한은 확신 했다.
자신의 가설이 맞았다.
회귀 전 크림슨 우드를 잡은 것 은 플로란스였을 것이다.
“너 크림슨 우드를 이용하려고 했었나?”
“음. 그래. 최악의 경우 크림슨 우드로 그녀를 지키게 하려 했지.”
그리고 백색병이 끝나면 크림슨 우드를 제거하여 헤이로나를 지키 려 했다.
하지만 요한과 손을 잡으며 그럴 일이 없어져 더 이상 관심을 두지 않은 것이다.
“그런데 크림슨 우드를 잡았다 니…… 넌 정말 괴물이냐?”
“상대법만 알면 오래된 자와 싸 우는 건 쉬워. 너도 상대할 수 있 잖아?”
“그야 그렇지만……요한은 머뭇거리며 답하는 그녀 에게 물었다.
“그런데 세이논은 문신을 뭉개버 리고도 나무가 되지 않았는데. 그 건 어떻게 한 거냐? 방법 알아?”
“크림슨 우드를 잡을 수 있으면 서도 모르다니.”
“난 그런 건 관심없어서. 뭔데?”
플로란스는 요한의 질문에 아무 렇지 않게 답했다.
“성화로 문신을 지지면 된다. 크 림슨 우드는 나무의 힘을 지녔으니 까. 바론 교단이 됐든 다른 교단이 됐든. 그쪽의 신성한 불을 써서 지 배가 풀려. 물론 엄청나게 고통스 럽겠지만 말야.”
플로란스도 일단 헤이로나에게 그 문신을 새긴 후 일이 해결되면 크림슨 우드의 지배를 풀고 크림슨 우드를 잡으려 했었다.
그녀가 설명하자 요한은 바로 납 득했다.
"아하. 그렇군.”
“그래. 뭐... 이제는 의미없는 이 야기 겠지.”
어차피 크림슨 우드는 이제 세상 에 없을테니 말이다.
“좋아. 지난 이야기는 관두자고. 좀 미래 지향적인 이야기를 해야 지.”
팔짱을 낀 채 요한은 발을 까딱 거렸다.
묘하게 여유로워 보이는 그의 태 도에 플로란스는 인상을 썼다.
“또 노동을 하라는 건가?”
“그럼 날로 먹으려고 했어? 잘 됐다. 아버지가 바그너 영지 쪽에 숲을 늘려야 한다고 하셨는데. 가 서 일 좀 해라.”
천하십강이고 이제 세상에 얼마 남지 않은 드루이드를 숲지기로 써 먹겠다.
요한의 선언에 플로란스는 한숨 을 쉬었다.
“좋아. 하지.”
“그럼 복귀할 때 같이 가자. 아. 정리는 끝났지?”
백색병을 막아낸 것으로 요한과 의 관계가 끝날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렇게 다시 그와 관계를 이어가게 될 줄은 예상 못 했다.
“그래. 이쪽에서 내가 할 일은 없다. 오래된 자들이 자료도 처분 을 끝냈고.”
“좋아. 그럼 그렇게 하자고.”
할 말은 끝났다.
요한은 자리에서 일어나려다가 그녀를 보며 퉁명스레 말했다.
“그런데 넌 그 후드 답답하지도 않냐? 좀 벗고 다녀라.”
“내버려둬.”
후드를 살짝 잡은 플로란스는 그 대로 꾹 후드를 내렸다.
그녀를 바라보던 요한은 뒤통수 를 긁적거렸다.
그가 나가자 플로란스는 또다시 무거운 한숨을 쉬었다.
* * *도브다만 왕국에서는 꽤나 놀랐 다.
플로란스가 요한이 복귀할 때 함 께 간다는 것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를 잡을 수는 없었 다.
플로란스는 필요에 의해서 도브 다만 왕국을 도왔을 뿐.
실제로 그녀가 귀족인 것도 아니 었으니 말이다.
“이거 힘이 집중되는 것도 꽤 골치 아픈 일이 되겠는데……에밀리는 작게 중얼거렸다.
이로써 로드만 왕국에 천하십강 이 무려 셋이나 되게 되었다.
“너. 그리고 플로란스 님. 광약 님. 거기에 레이몬 님께서도 가끔 와주시니……그리고 그 로드만 왕국 내에서도 바그너 후작가가 막강한 힘을 지니 게 되었다.
로드만 왕국의 천하십강들이 모 두 바그너 후작가에 속했기 때문이 었다.
“너 복귀하면 왕가에서 시비 안걸게 잘해라.”
“지금 상황에서 바그너 후작가에 시비를 걸면 바보가 아닐까 싶다.”
옛날의 바그너 가문이 아니다.
그 무시무시한 로만 후작을 쓰러 트리고.
또 타이론 후작가와 막대한 친분 을 지니고 있다.
거기에 요한은 귀족원의 원로인 예만 원장과도 꽤나 친하다.
어쩌면 바그너 가문은 로만 후작 의 게이돈 후작가 이상의 위험한 귀족이 된 것일지도 몰랐다.
“중앙귀족 측에서 시비 걸지는 않고 있지?”
“뭐. 그런 편이지.”
지금까지 요한에게 시비를 걸었 던 중앙귀족들의 말로가 어떤지는 다들 안다.
그러니 그냥 건드리지 않아버리 는 것이다.
요한은 건드리지만 않으면 얌전 한 편이니 중앙귀족들도 아예 방침 을 정해버렸다.
“윌카스트 후작님께서는 성격이 꽤나 온화하신 편이라……“아버지가 그런 편이긴 하지.”
“그런 분 밑에서 어떻게 이런 아 들이……“너 내 성격 가지고 시비 거는 거냐?”
인상을 왕창 쓰며 요한이 말했을 때.
선두에서 걷던 기사가 외쳤다.
“캐슬 오브 로디악에 도착했습니 다!”
꽤 긴 여행길이었다.
도브다만 왕국에서 로드만 왕국 까지.
거의 삼 주에 가까운 시간을 써 버렸다.
“너는 일단 로디악 기사단에서 쉬도록 해.”
“마고 후작님 저택에서 쉴 건데? 그리고 난 볼일만 보고 바로 내려 갈 거야.”
“어? 왕가의 축하 파티에는 ......
“그건 참석해야지. 언제쯤 하려 나?”
“글쎄. 적어도 십일 안에 하겠 지.”
“그럼 그거 끝나고 바로 갈 거 야.”
“왜 그렇게 빨리 가려는 거지?”
에밀리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고 있었다.
그녀를 빤히 바라보던 요한은 어 이 없어했다.
“영지 관리할 사람 없다. 지금쯤 이면 프란츠도 아카데미에 있을 걸?”
“아…… 그렇지. 넌 지방 귀족이 었지.”
“뭔 줄 알았냐r그의 퉁명스러운 대답에 에밀리 는 순간 안도했다.
조금 전에 지끈거렸던 가슴이 괜 찮아졌다.
그 기분에 에밀리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로디악 기사단과 함께 왔기 때문 일까?
별다른 검문이 없었다.
그들과 함께 왕궁에 도착하자 로 드만 왕가의 축하행사가 바로 시작 되었다.
지겹다면 지겹고,영광스럽다면영광스러운 행사다.
훈장을 하나 받은 요한은 에밀리 의 어깨를 툭 쳤다.
“그럼 나 간다.”
“어…… 그냥 가는 거야?”
“아. 그러네.”
요한은 에밀리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녀의 손등에 입 맞춘 후 씩 웃었다.
“레이디. 그럼 다음에 또 봅시 다.”
“이게 아닌데!?”
“하하하! 할 말 있으면 나중에 보자고. 나 바쁘다!”
홍당무처럼 붉어진 얼굴의 에밀 리만 남긴 채 요한은 바로 나갔다.
밖에서 기다리던 유아랑과 플로 란스를 만난 요한은 차분히 말했다.
“바로 신전으로 간다.”
일단 플로란스가 진짜 구원자인 지 아닌지부터 알아보는 게 우선이 다.
“어서 오십시오! 대자님!”
하이마스는 늘 그랬던 것처럼 반 갑게 요한을 맞이했다.
그에게 인사를 한 요한은 플로란 스를 내세우며 사정을 설명했다.
그녀가 겪은 계시에 대해 들은 하이마스는 진중한 표정이 되었다.
“드루이드이고…… 바론님의 신 자도 아니신 분이 구원자라……“혹시 모르니까 한번 해보시는 것은 어떨까요?”
“알겠습니다. 그럼……전에 요한에게 했던 것처럼 하이 마스는 신성력을 모았다.
방 안에 있는 수많은 성물들이 플로란스에게 꽂혔다.
그 빛 속에서 성물들이 공명하기 시작했다.
-우우우우웅H낮은 진동음과 함께 성물들이 강 화되었다.
그 현상을 마주한 하이마스의 표 정은 굳었다.
“정말…… 플로란스 님께서 구원 자이실 줄이야……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