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권 17화
267. 맛있냐 (2).
비록 핵을 요한이 회수했다고 하 더라도.
전성기에 비하면 형편없는 힘을 보유하고 있다 하더 라도.
크림슨 우드는 오래된 자의 반열 에 있던 존재였다.
막대한 양분을 보유하고 있던 크 림슨 우드의 사체를 엘마는 즐거워 하며 먹어치웠다.
그렇게 크림슨 우드의 사체가 완전히 말라 비틀어졌을 때.
엘마의 형태가 바뀌어 있었다.
기존에 팔뚝 정도 크기였던 엘마 는 열 살 남짓한 어린아이 수준의 크기로 자라버렸다.
“배불러요!”
“그래. 어차피 이제 먹을 것도 없어. 그나저나 엘마.”
“네!”
요한은 엘마의 머리를 쓰다듬으 며 밑을 가리켰다.
크림슨 우드가 죽었음에도 불구 하고 여전히 숲은 붉게 물들어 있 었다.
“처리해.”
“네!”
엘마가 손을 들어 올리자 붉어졌 던 숲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그것을 본 요한은 엘마의 머리를 계속 쓰다듬었다.
“뭐 이상한 기분 같은 건 없지?”
“배불러서 졸려요〜”
생글거리던 엘마는 요한의 등에 달라붙었다.
금방 잠들어버린 엘마에게서 새근거리는 소리가 들린다.
‘좋아. 이 정도면 괜찮고……:이제 이 주변에 남은 것은 없었 다.
있는 것이라고는 말라 비틀어져 건드리면 부서질 나무들뿐.
이제는 오래된 자도 아니고 뭣도 아닌 사체들이다.
그것을 짓밟아 박살 내버린 요한 은 몸을 돌렸다.
“뭐 또 볼 일 있으신가?”
“……네놈은 도대체 뭐냐. 어떻 게 크림슨 우드를 제거한 것이지?”
“그 전에 우리 통성명이나 하는 게 낫지 않겠냐? 너희는 나를 아는 데 나는 너희들이 올드원이라는 것 밖에 모르거든.”
“……올드원의 수장 케이론이다.”
“좋아. 케이론. 아까 했던 질문이 뭐였지? 아. 크림슨 우드를 어떻게 잡았냐고?”
그를 마주하던 요한은 씩 웃었 다.
다들 너무 어렵게만 생각하고 있 었다.
“오래된 자라고 너무 경계하는 데. 결국은 몬스터에 불과할 뿐이라고.”
그저 너무 강력하기에 숭배의 대 상이 되었을 뿐.
그 본질은 몬스터에 불과했다.
“위대한 자가 아닌 단순한 오래 된 자는 신도 악마도 아니야. 그러 니 잡을 수 있는 거지. 거기에 추 종자도 없으면 더 그렇지.”
고작해야 엘프 마을 하나나 둘정 도의 추종자들 뿐이다.
그나마 있던 추종자들도 대부분 죽었다면?
당연히 크림슨 우드의 힘은 약해 질 수밖에 없었다.
“고작해야 몬스터 하나 못 잡아 서야 천하십강이라고 불리는 것도 웃긴 일이지.”
“크......«“궁금증은 풀렸나? 그럼 나도 묻 자. 크림슨 우드가 어떻게 살아남 은 거야? 아니,크림슨 우드 같은 오래된 자들이 또 있냐?”
요한의 질문에 케이론은 고개를 저었다.
크림슨 우드가 특이한 경우일 뿐 이제 이 세상에 오래된 자들은 남 지 않았다.
“우리 올드원의 기록에 따르면……더 이상 생존한 오래된 자는 없다.”
“그럼 너희도 이제 끝장이겠네? 나한테서 석상을 빼앗든가. 아니면 다른 석상을 찾아야겠지만……이제 요한이 알기로 남은 석상은 단둘뿐이다.
둘 다 어디에 있는지는 안다.
‘하지만 얼굴 없는 자의 석상은 구할 수 없겠지.’
얼굴 없는 자의 석상이 있는 곳 은 필로틴 제국의 북부인 죽음의 대지다.
그곳은 들어가면 무조건 죽는다 고 봐야 하는 곳.
요한조차 들어갈 엄두도 못 낸 곳이 바로 그곳이었다.
‘회귀 전에 율호가 어떻게 들어 갔는지는 모르겠지만…… 뭔가 방 법이 있을거야.’
하지만 굳이 힘써가면서 들어갈 필요가 있을까?
그 귀찮은 과정은 올드원들이 해 결해줬으면 싶었다.
요한은 케이론을 향해 여유롭게 말했다.
“남은 오래된 자의 석상이 어디 에 있는 줄 알고 있나?”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를 바라보던 요한은 싱긋 웃었 다.
“너희들의 한심함에 감탄하며 말 해주지. 죽음의 대지에 얼굴 없는 자의 석상이 있다. 가서 찾아보렴.”
“……그게 정말인가?”
케이론은 눈을 가늘게 뜨며 요한 을 의심했다.
죽음의 대지라니.
들어가면 죽는 곳에 그것이 있다 는 것을 어떻게 믿겠나.
“믿기 싫으면 관두고. 너희들이 안 먹을 거면 내가 먹을 거니까.”
“우리가 그것을 가져와 주길 바 라는 거군.”
케이론은 싸늘히 이를 드러냈다.
죽음의 대지는 그렇다고 치더라 도.
그곳에 가려면 필로틴 제국을 통 과할 수밖에 없었다.
“필로틴 제국에서 생긴 내전 때 문에 너는 필로틴 제국에 들어갈 수 없을 테니까.”
“어? 거기 내전이 벌어졌냐?”
그 정보는 듣지 못했다.
놀라는 요한을 보며 케이론은 고 개를 저었다.
“모르면 됐다.”
“그래. 뭐 그 정도 정보야 복귀 하면 얼마든지 들을 수 있겠지.”
‘설마 율호 그 자식도 거기에 휘 말린 건 아니겠지?’
차라리 내전에 휘말려 죽었다면 안심하겠다.
하지만 행방불명이라도 되어 생 사조차 불분명하다면?
그럼 그것만큼 골치 아픈 일이 없었다.
‘길로틴과 세레나도 운이 좋아서 잡은 건데…… 그게 아니면……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황위 경쟁에서 밀려난 황족은 기 회를 노리기 위해서라도.
아니면 암살자를 피하기 위해서 라도.
어떻게든 몸을 숨겨야 한다.
작정하고 숨어버리면 요한도 찾 는 일이 쉽지가 않았다.
‘제발 그런 일은 없기를…… 바 론님! 도와줘!’
속으로 기도를 마친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다.
“내전이 벌어졌으면 더 좋네. 바 그너 후작가에서 내전을 지원하며 길을 열 수 있을 테니까.”
“흥. 로드만 왕국에서 그것을 허 가할까?”
“내가 허가받고 움직일 사람으로 보이냐?”
도브다만 왕국 쪽에서 활동할 때 허가를 받은 이유는 그게 편해서일 뿐이다.
왕국의 허가를 받지 못해도 갈 방법 따위는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에 요한은 딱히 부담을 느 끼지 못했다.
“그리고 내가 가겠다는데 허락 안 해줄 것 같아?”
정 뭐하면 예만의 멱살을 잡고 허가 내달라고 하면 된다.
그의 발언에 케이론은 아무런 답 도 꺼내지 않았다.
“어디 한번 가서 구해봐라. 그거 라도 있어야 내가 가진 석상들을 어떻게든 빼앗겠지.”
느긋한 어조로 건네는 도발에 케 이론은 이를 갈았다.
하지만 그의 말이 틀린 것은 아 니었다.
상대는 오래된 자도 잡아버리는 괴물.
석상을 이용해 힘을 얻지 않고서 는 결코 상대할 수 없었다.
“그럼 우리도 계산할 게 남았 지?”
요한은 성궤들을 꺼냈다.
불의 흡혈귀의 석상.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
차원을 이동하는 개의 석상.
그리고 이번에 얻은 황색의 왕의 석상.
네 개의 석상이 들어 있는 성궤 를 가리키며 요한은 싱글벙글 웃었 다.
“이거 탐나지 않아? 날 이기면 이걸 다 얻을 수 있을 텐데.”
탐난다.
아니 그 전에 황색의 왕의 석상 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올드원의 것이었다.
그것을 자신의 것인 양 떠드는 요한의 모습에 분통이 터졌다.
하지만 그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다시 찾아오겠다. 그때까지 석 상은…… 너에게 맡겨두겠다.”
“워. 누가 보내준다던? 엘마! 저 놈 잡아!”
“쿨……“에이.”
깊게 잠든 엘마에게 혀를 찬 요 한은 단검을 던졌다.
그 단검에 몸이 꿰뚫린 남자는 그대로 쓰러져버렸다.
‘껍데기에 불과한 것뿐인가.’
쓰러진 남자를 툭툭 쳐봤지만 별 다른 변화는 없었다.
요한은 아쉬워하며 어깨를 으쏙 였다.
‘하긴 바보도 아니고 직접 모습 을 드러내지는 않겠지.’
요한은 그의 목을 베어낸 후 주 머니에 손을 꽂고 토가림 족의 마 을로 내려갔다.
마을을 뒤져 약초를 캐기 위한 삽,그리고 약초를 담을 상자.
그 외에 이끼나 솜 같은 것들을 구해낸 요한은 등을 가볍게 튕겼다.
“엘마. 더 잘 거냐? 슬슬 일어나 지그래?”
“으으으으응......”
잠투정을 부리듯 엘마는 요한의 등에 얼굴을 비볐다.
“에헤헤헤〜 졸려요…… 더 이렇 게 있고 싶어요.”
“업어는 줄 테니까. 혹시 이 근 처에서 강한 약초의 느낌은 안나?”
“저기 있어요!”
단번에 찾아내 버렸다.
엘마가 밝게 외치자 요한은 그곳 으로 향했다.
숲으로 얼마나 들어갔을까?
풀 한 포기 없는 공터가 보였다.
그곳에는 한뿌리의 청색 꽃이 자 라나 있었다.
“찾았다.”
토가림 족이 기르고 있었던 청삼 이다.
요한은 땅을 천천히 긁어냈다.
잔뿌리 하나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성스레 캐낸 요한은 청삼을 보고 만족했다.
‘이건 하인스 가져다주면 좋아하 겠군.’
이걸로 그가 마스터에 오를 수 있다면 좋다.
하지만 오르지 못한다 하더라도 문제 될 것은 없었다.
어쨌든 요한은 약속을 지킨 셈이 니 말이다.
“요한님. 저 배고파요.”
그의 등에서 훌쩍 뛰어내린 엘마 가 칭얼거렸다.
자신의 손을 잡은 채 엘마가 입 술을 삐죽거리자 요한은 그녀의 머 리를 꽉 잡았다.
“참으렴.”
“여기 있는 것들 먹으면 안 되나 요?”
“안 돼.”
“힝……시무룩해졌지만 엘마는 순순히 요한의 말을 따랐다.
크림슨 우드의 사체를 먹어치우 고 힘이 강해졌지만 엘마에게는 요 한이 주인으로 각인되어 있었다.
그렇기에 엘마는 배고파하면서도 식욕을 억제했다.
“나가다 보면 나무들 많을 거다. 개들은 먹어도 괜찮아.”
크림슨 우드의 지배에 있었던 나 무들이 다.
내버려둬 봤자 좋을 것이 없다.
그럼 굳이 남겨 둘 필요 있겠나.
요한이 허락하자 엘마의 표정은 금방 밝아졌다.
* * *사이먼에서 노심초사 기다리던 세이논은 요한이 복귀하자 기뻐하 며 반겼다.
“다행입니다! 무사하셨군요!”
“예. 그나저나 소라본은 다 됐습 니까?”
“……그게 문제입니까!? 어디 다 치신 곳은 없지요!?”
세이논은 요한의 몸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그녀의 과한 걱정에 요한은 쏙 유아랑을 보았다.
그는 딱히 걱정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세상에. 내 밑에서 일하는 녀석 은 신경도 안 쓰는데 다른 사람이 이렇게 걱정을 하네!?”
“공자님은 걱정해봤자 손해잖습 니까.”
어디 가서 맞고 들어온 적이 있 어야 걱정을 하지.
혼자서 잘하는 사람을 뭐하러 걱 정하나.
유아랑은 어이없어하다가 손을 들 었다.
“그런데 개는…… 설마 엘마입니 까?”
떠날 때까지만 해도 팔뚝 정도 크기였던 엘마다.
그런 엘마가 이제는 열 살 남짓 한 사랑스러운 소녀가 되어 있었다.
“에헤헤〜 유아랑〜”
“엘마!? 진짜 엘마야? 어떻게 이 렇게 커졌어!?”
“맛있는거 많이 먹었거든!”
기쁘게 말한 엘마는 유아랑의 품 에 안겼다.
그가 그녀를 보듬어주는 사이 요 한은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베르도는?”
“아. 지금 경비병들과 함께 주변 정리를 하고 있습니다. 움직이는 나무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사이먼에는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간다.
그러니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라 도 주변 정리는 해놔야 했다.
“아! 그러고 보니 공자님. 이틀 전에 왔던 여행자가 말했는데 필로 틴 제국에……“내전이 발생했다고?”
“그건 또 어디서 들으셨습니까?”
“올드원에게 들었지. 안 그래도 그거 나도 궁금했다. 어떻게 된 거 야?,’
유아랑은 자신에게 얼굴을 비비 는 엘마를 떼어냈다.
불만스러운 듯한 엘마가 다시 요 한의 등에 업혔다.
그 사이 유아랑은 들었던 내용을 설명했다.
“일황자 율무기가 본격적으로 움 직였다고 합니다. 황도 내에 있는 경쟁자들을 잡고……“무슨 근거로?”
“반역 혐의입니다. 제 이황녀 율 사인이 후계권이 없는 황족과 손을 잡았다고 하더군요. 그리고……“그리고?”
“율호라는 황자가 로드만 왕국과 내통했다 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 어. 그래……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율사인은 결국 잡혀 처형당했다.
율호는 아슬아슬하게 필로틴 제 국을 탈출했고 검은 요새의 타로트 에게 보호를 받고 있다.
‘그나마 다행이군.’
“그런데 로드만 왕국의 누구와 내통한 것일까요?”
유아랑의 의문에 요한은 씩 웃었 다.
‘예모가 일 처리를 잘해놨군.’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