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12화
237. 지금 만나러 못 갑니다 .
(3)
상아탑에는 각 나라로 이어지는 게이트들이 있었다.
물론 모든 게이트가 수도로 향하 는 것은 아니 었다.
필로틴 제국과 로드만 왕국은 다 른 지역에 게이트가 있다.
하지만 나머지 게이트들은 모두 수도와 인접한 곳에 게이트가 있었 다.
“요한 공자님과 수행원인 유아랑 씨다. 허가증은 있으니까 바로 게 이트를 이용하게 해줘.”
“요한 공자님. 타국에 입국하기 위한 허가서를 가지고 계십니까?”
“허가서를 가지고 오지는 않았는 데.”
“그렇다면 게이트를 이용하실 수 없습니다.”
콜 도브다만 쪽에 있는 콜 유적 의 관리자는 떨떠름히 말했다.
그를 향해 요한은 어깨를 으쓱였 다.
“하지만 허가증 정도는 사후에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어.”
“그 보증은 어떻게 합니까?”
"바그너 가문이 보장할 거다. 이 정도면 되지 않나?”
로드만 왕국의 후작가에서 보증 한다면 할 말이 없다.
그런 만큼 막무가내로 안된다고 만 할 수는 없었다.
“그럼…… 이 서류에 서명을 부 탁드립니다.”
타국 입국 허가에 대한 문제는 상아탑과 관련이 없다는 서명.
그리고 이 일로 문제가 발생 시 요한이 상아탑에서 십 년간 일해주 기로 한 각서다.
딱히 문제 일으킬 생각이 없기에 요한은 순순히 서명을 해주었다.
“감사합니다. 그럼 바로 들어가 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여행 되십 시오.”
정중히 인사를 한 그에게 고개를 끄덕인 요한은 솔라리오에게 손을 내밀었다.
“덕분에 쓸데없는 절차를 거치지 않을 수 있었군.”
"어휴. 뭘요. 그저 잘 부탁드린다
는 말씀 외에는 드릴 것이 없군요.”
“나중에 율리아 영지로 와. 빚을 진 셈이니까 갚아야지.”
“강연 초청만 해주시면 됩니다.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그래. 그래.”
그와 인사를 하고 요한은 게이트 로 들어갔다.
그를 따라 들어온 유아랑은 안도 했다.
“다행히 별일 없었군요.”
“그러게 말야.”
회귀 전에는 이런 것은 상상도할 수 없었다.
그때는 절차란 절차는 다 겪고 나서야 게이트를 활용할 수 있었다.
지금이야 후작가라는 것과 레이 몬의 인연.
거기에 하이데의 눈을 치료해준 것이 알려진 덕분에 이렇게 쉽게 갔을 뿐이다.
‘확실히 이번에는 굉장히 쉽군.’
힘과 권력을 가지고 있으니 일의 진행이 편하다.
요한은 느긋하게 걸으며 씩 웃었 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쉽게 갔 으면 좋겠네.’
게이트를 통과해 나와 그곳의 관 리자에게 허가증을 보여주었다.
그것을 끝으로 유적 밖으로 나온 요한은 살짝 망토를 들었다.
그의 망토에 숨어 있던 엘마는 시무룩한 표정이었다.
“배고파요. 요한 님.”
“기다려봐. 근처에 몬스터가 좀 있는 것 같으니까.”
몬스터들은 마력에 이끌린다.
게이트 자체에 강한 마력이 있으 니,그것을 노린 몬스터가 있을 것 이다.
산에서 내려오며 요한은 주변을 뒤졌다.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길목에 서 몬스터의 흔적을 발견한 그는 차분히 걸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건장한 오크와 고블린 무리를 발견했다.
‘뭐지?’
몬스터들은 인간을 발견하면 바 로 공격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들은 달랐다.
요한에게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만 보였 다.
‘상관없지.’
-서걱!!
“키 엑!?”
“캬아아아!!”
한 마리 오크의 머리가 날아가고 나서야 몬스터들이 움직였다.
그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들자 요 한은 오러 블레이드를 휘둘렀다.
간단히 몬스터들을 모두 쳐내고.
엘마는 덩굴을 뻗어 몬스터들의 시체를 흡수했다.
“후아〜 배부르다〜”
“이걸로 만족해?”
“네!!”
“그럼 됐다. 가자.”
양분을 빼앗겨 바짝 말라버린 몬 스터 시체를 걷어차 부숴버렸다.
흔적을 완전히 지운 요한은 기다 리던 유아랑과 합류하며 말했다.
“일단은 수도인 콜 도브다만에 들어가자고.”
"예? 왜 거기로 갑니까?”
“솔라리오가 말했잖아. 악마들이 나타난 것 때문에 초청받았냐고. 분명 로드만 왕국 쪽에도 요청이 들어왔을 거야.”
저번에 사자로 왔던 토도 엘도만 백작이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 모른 다.
하지만 대충은 예상할 수 있었 다.
‘분명 문제가 생기면 지원해달라 는 것이겠지.’
왕가에서 내어 줄 수 있는 지원 은 성철쇄 기사단과 로디악 기사단 정도.
그들이 콜 도브다만에 있다면 통 행증을 발급받을 수 있을지도 모른 다.
“못 받으면요?”
“못 받으면 그냥 모험가 신분 이 용하면서 가야지 어쩌겠어?”
요한과 유아랑.
둘 다 일단은 모험가 길드에 등 록되어 있었다.
활동에 제약이 생길 수도 있지만 통행증 없이 다니는 것보다는 낫다.
유아랑은 요한이 꺼내 든 흑색 인식표를 보며 쓰게 웃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바로 가시죠.”
* * *콜 도브다만 앞에 도착하니 꽤나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악마들을 피해 도망친 피난민으 로 보였다.
“이런 광경은 처음 보는군요.”
“영지를 지켜야 할 군대가 무너지면 저런 모습이 나오지.”
하지만 드문 일이다.
피난민들이 수도까지 도망치는 경우는 정말 보기 힘들다.
대부분 피난민이 생기면 주변 영 지로 이동하니 말이다.
“그렇다는 것은 수도 근처의 영 지도 피해가 생겼다는 건데.”
‘회귀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지. 이 또한 나비효과라고 봐야 하는 건가.’
요한은 턱을 쓰다듬으며 생각하 다가 고개를 돌렸다.
“성안으로 들어가고 싶어 하는 자들이 꽤 있군요.”
“잘됐다.”
“예?”
“저 상황을 이용하면 검문 없이 들어갈 수 있겠어.”
엘마를 숨기려면 검문을 받지 않 는 것이 낫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지금 성문에 저리 사람들이 몰리는 것은 요한에 게 꽤나 이득이 되는 일이었다.
"어쩌시려는 겁니까?”
“보고만 있어.”
유아랑에게 말을 맡긴 요한은 성 큼성큼 걸었다.
성문 근처에서는 피난민과 병사 들 사이에서 험악한 분위기가 풍기 고 있었다.
“들여보내 주십시오!!”
"성안으로 보내주세요!!”
“악마들이 몬스터들을 이끌고 공 격합니다! 제발! 저희 아이만이라 도!!”
필사적으로 외치는 사람들에게 병사들은 창을 겨눴다.
그들의 표정 역시 그리 좋아 보 이지 않았다.
“지금 도브다만 왕국군이 악마들 과 싸우고 있다!”
“백왕 플로란스께서도 직접 나서 셨으니 대기하라!!”
“하지만……!”
어떻게든 성벽의 보호를 받고 싶 어 하는 피난민들.
그리고 그들이 성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병사들.
두 무리의 갈등이 심화되고 있었 다.
그곳으로 향한 요한은 차분히 말 했다.
“문 열어라.”
“귀하께서는 누구십니까.”
거지꼴을 하고 있는 피난민들과 다르게 요한의 복장은 깨끗했다.
그렇기에 병사들은 최대한 공손 히.
하지만 경계심을 잃지 않은 채 물었다.
“로드만 왕국의 요한 바그너다.”
“……광왕 요한!?”
새롭게 천하십강의 자리에 오른 요한이 자신을 밝혔다.
그 이야기에 몰려 있던 피난민과 병사들의 관심이 그에게 쏠렸다.
“왜. 내가 요한이 맞는지 의심 가 나 보지? 그럼 증거를 보여주지.”
씩 웃은 요한이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것을 본 피난민들은 기겁하며 물러섰다.
요한에게 광왕이라는 이름이 붙 은 이유는 하나.
오래된 자의 석상을 이용해 사람 을 미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괜히 옆에 있다가 자기도 미칠까 봐 피난민들은 얼른 성문 근처에서 벗어났다.
“요한 공자님께서 여긴 어떻 게……?”
“볼일이 있어서 왔지. 안에 로드 만 왕국에서 온 사람들이 있나?”
“그,그렇습니다.”
“누가 왔지?”
“그게…… 나마스 왕자님께서 성 철쇄 기사단과 로디악 기사단을 이 끌고 참전해주셨습니다.”
“그래? 잘됐네. 나도 들어가 보 지.”
“아,알겠습니다! 그런데 검문 으......w"검문? 날 검문하겠다고? 야. 내 가 지금 재들 편에 서면 어떻게 될 것 같냐?”
씩 웃은 요한이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그의 손에서 오러 블레 이드가 치솟았다.
그것을 본 병사들의 표정은 굳었 다.
만약 요한이 피난민들과 합류해 서 성문을 공격하기라도 한다면?
콜 도브다만의 주변에 있는 피난 민들이 모두 성안으로 들어갈 것이 다.
그리되면 검문은커녕 콜 도브다 만에서 엄청난 혼란이 시작될 거다.
“아,아닙니다.”
“현명한 선택이야.”
빙긋 웃은 요한은 손을 들었다.
그의 신호에 유아랑이 말을 이끌 고 다가왔다.
“우리 둘 들어갈 테니까 그렇게 알아둬.”
“저…… 공자님.”
“알았어. 문제 안 일으킬 테니까.
그리고 고생들 하는데 이걸로 퇴근 하면서 맥주라도 한 잔씩 사 먹고.”
요한은 품에서 천 골드짜리 전표 세 장을 꺼내 병사의 손에 올려 주 었다.
뇌물.
그리고 적절한 협박.
두 가지 무기에 공격당한 병사들 은 힘없이 성문을 열어주었다.
"자. 그럼 가볼까? 아. 그런데 로 드만 왕국의 지원군은 어디에 있 지?”
“왕궁에 계실 겁니다.”
병사의 설명을 듣고 요한은 유아 랑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 안쪽은 바깥과 다르게 꽤나 조용한 편이었다.
“왕궁으로 바로 갑니까?”
“응. 굳이 시간 끌 필요는 없지.”
“지도라도 받아 올 것을 그랬습 니다.”
난감해하던 유아랑이 말하자 요 한은 고개를 저었다.
이쪽의 길은 알고 있었다.
“저기 대로에서 쭉 가면 바로 왕 궁이 나와.”
“콜 도브다만의 길을 아십니까?”
“기본적인 건 알지. 자. 가자고.”
유아랑의 등을 툭 친 요한은 말 에 올라 대로를 걸었다.
그가 멀어지는 것을 보며 유아랑 은 감탄했다.
“도대체 여기 지도는 언제 보신 거야?”
요한이 능숙하게 길을 찾아 왕궁 근처에 도착했을 때쯤.
유아랑은 깃발 하나를 발견했다.
“저기 로드만 왕국의 깃발입니 다.”
“그래. 저긴가보다.”
익숙한 깃발이 있는 곳으로 향했 을 때 아는 얼굴이 보였다.
커다란 건물 앞에 나와 있는 기 사들을 보며 요한은 손을 들었다.
“야! 오래간만이다!”
성철쇄 기사단의 기사이며 나마 스의 부하.
로도 바이론 준남작이었다.
그는 요한을 보자 흠칫 놀라며 주춤거 렸다.
“요한 공자!? 당신이 왜!?”
“내가 못 올 곳 왔나?”
“아니 그게……“나마스 왕자님 계시지?”
“지금 왕궁에 가셨소. 좀 기다리 셔야 할 것 같소만……“그래? 그럼 기다리지. 안에 들 어가도 되냐?”
"그......w로도가 망설이자 요한은 의아해 했다.
그가 요한을 꺼릴 이유는 없었 다.
그런데 왜 이러는 것일까.
그때 요한의 뒤에서 익숙한 목소 리가 들렸다.
“안에 들어가는 것은 좀 참아줬 으면 하네.”
천천히 몸을 돌린 요한은 어이없 어하며 물었다.
“네가 왜 여기 있냐?”
목소리의 주인은 로디악 기사단 의 부단장인 에밀리 크롬웰 자작이 었다.
그녀는 요한을 빤히 보며 대놓고 물었다.
“그건 내가 할 말인데. 너는 왜 여기 있지? 바그너 가문에는 지원 요청서를 보내지 않았는데.”
“뭐야. 도브다만 왕국에서 정식 으로 요청한 건가?”
“음. 그렇지. 아무튼 지금 들어가 는것은 좀 참아줘.”
“왜?”
요한의 질문에 에밀리는 작게 한 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손짓하여 그를 불렀다.
그가 다가오자 에밀리는 귓가에 손을 가져갔다.
남이 들으면 곤란한 이야기인가 보다.
주변을 의식하며 그녀는 작은 어 조로 말했다.
“지금 안에 악마가 잡혀 있어.”
“악마라……그런데 왜 못 들어가게 하는 것 일까.
요한은 악마를 이긴 경험이 있 다.
그렇다면 오히려 환영해야 하는 것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요한은 천 천히 물었다.
“나마스 왕자님은 어디 계시지?”
그의 말에 에밀리의 표정이 굳었 다.
“왕자님께 악마가 씌었군.”
“함부로 말하지 마시오.”
어느새 다가온 로도가 으르렁거 렸지만 요한은 그저 심드렁할 뿐이 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