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권 10화
235. 지금 만나러 못 갑니다 .
(1)
마고 후작에게 있어서는 평생의 한이 되는 일이었다.
타이론 가문은 손이 귀한 가문이 다.
또한 마고 후작은 한평생 자신의 아내인 로라만을 사랑했었다.
“……그랬지. 그래서 나는 재혼 조차 하지 않았다. 로라가 낳은 단 한 명의 아이…… 내 딸. 내 딸을......«힘없이 말하는 그를 향해 엘레나 와 헤로도톤은 감탄했다.
마고 후작 정도 된다면 첩은 얼 마든지 고를 수 있었을 것이다.
아니,원했다면 얼마든지 새로운 부인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마고 후작이 끝까지 순 정을 지켰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요한과 이반의 생각은 달 탔다.
“그래도 가문을 위해서라도 새 부인을 받는 게 낫지 않았습니까?”
“저도 공자님 생각에 동의합니 다. 사랑도 좋지만 그래도……아직 낭만을 가지고 있는 엘레나 와 헤로도톤은 둘을 살짝 노려보았 다.
하지만 요한과 이반은 생각을 바 꾸지 않았다.
“가문을 꼭 남자가 계승 받는 것 도 아닌데 그래야 합니까?”
“저도 마고 후작님의 지고지순한 사랑은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합니 다.”
“그래. 그래. 저주받은 상태에서 잘도 가문을 이끌겠다. 나 아니었어 봐? 어쩔 뻔했어?”
투덜거리는 요한을 마고 후작은 나무라지 않았다.
그저 빙긋 웃기만 할 뿐이었다.
“해주하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 니??”
“그리 오래 안 걸립니다. 만드는 게 어렵지 해주 자체는 쉬워서.”
잠시 후 메이가 안으로 들어왔다.
그가 열어 준 문 뒤로 시녀들의 시중을 받는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 다.
검은색 바이저를 쓴 소녀.
마고 후작의 하나뿐인 딸 하이데 였다.
“……요한 공자님. 진짜 약속을 지키시려는 겁니까?”
믿을 수 없었다.
지금까지 타이론 가문에 걸려 있 는 저주를 풀기 위해 수많은 해주 술사들이 왔었다.
그들 모두가 실패했었다.
그런데 요한이 정말 가능할까?
그녀가 걱정하는 사이 요한은 엘 레나와 함께 스팅어에 시약을 뿌렸 다.
천천히,그리고 확실히.
스팅어에 시약이 모두 머금어지게 한 요한은 현자의 돌을 잡았다.
“바로 하죠.”
다른 해주술사처럼 주문을 외운다거나.
혹은 마법진을 그린다거나. 하다못해 약이라도 먹인다거나. 그런 것 따위는 없었다.
지금까지와는 다른 방식에 놀란그녀가 당황했다.
하지만 요한은 멈추지 않았다.
그는 현자의 돌을 향해 스팅어를 꽂아 넣었다.
단번에 현자의 돌에 있던 황금색 의 빛이 스팅어에 흡수되었다.
순식간에 현자의 돌이 완전히 빛 을 잃었다.
그것을 확인한 요한은 하이데를 잡았다.
“갑니다.”
“잠깐! 잠깐! 마음의 준비를……!”
“그건 나중에 하시죠.”
-푹!!
요한의 손에 들려 있던 스팅어가하이데의 이마에 꽂혔다.
그것을 본 마고 후작과 메이는 기겁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요한!!”
“이게 무슨 짓입니까!!”
그들의 경악을 무시하며 요한은 스팅어를 뽑았다.
조금 전까지 황금빛으로 물들어 있던 스팅어는 순식간에 불길한 보 랏빛을 쁨어내고 있었다.
"하이데!! 하이데! 괜찮은 것이 냐!?”
이마를 꿰뚫었던 단검이 빠져나 왔다.
당연히 머리가 꿰뚫렸을 것이라 생각한 마고 후작은 하이데를 잡고 상처를 보았다.
하지만 그녀의 깨끗한 이마에는 구멍은커녕 생채기 하나도 없었다.
“어,어떻게 된 거냐?”
마고 후작은 고개를 돌려 요한을 보았다.
요한은 보랏빛을 뿜어내고 있는 스팅어를 아공간 주머니에 넣고 있 었다.
“저주를 이 단검으로 옮긴 겁니 다.”
자세히 설명하면 몇 달은 강의를 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요한은 대충 설명만 해 주고 뒤로 물러났다.
“하이데 영애. 바이저를 벗어보 시죠.”
하이데의 몸이 딱딱히 굳었다.
들리는 숨소리.
자신을 안고 있는 마고 후작.
옆에서 들리는 목소리들.
이 자리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런 곳에서 바이저를 벗으라니.
두려워하는 하이데는 차마 손을 올리지 못했다.
“마고 후작님.”
“……요한. 너를 믿어도 되는 거 냐?”
“이제 와서 못 믿으시겠다는 겁 니까? 농담치고는 재미없습니다.”
되려 요한이 어이없다는 듯 물었 다.
마고 후작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 다.
떨리는 손으로 하이데의 바이저 를 벗긴 마고 후작은 침을 꿀꺽 삼 켰다.
“얘야. 눈을 떠보렴.”
감겨 있던 눈꺼풀이 떨렸다.
두려워하고 있는 하이데를 꽉 끌 어안은 마고 후작은 상냥히 말했다.
“괜찮단다. 괜찮아…… 그러니 눈을 떠보렴.”
애정이 듬뿍 담겨 있는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젖어 있는 그 목소리를 들은 하 이데는 살며시 눈꺼풀을 움직였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사람이 있는 곳에서 눈을 떠 본 적이 없었다.
한 번도 아버지의 얼굴을 직접 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아…… 아버지......
“그래! 그래! 얘야! 나다! 네 아 버지다!!”
이제는 볼 수 있었다.
하이데의 푸른 눈망울에 주름투 성이의 노인이 맺혔다.
보인다.
볼 수 있다.
지금까지 손끝으로만 만져왔던 마고 후작의 얼굴을 볼 수 있게 되 었다.
하이데는 오들오들 떨었다.
혹시 꿈이 아닐까?
그림으로만 봐왔고,손끝으로만 느꼈던 아버지를 볼 수 있는 것이 정말 현실인가.
너무 큰 충격에 하이데는 털썩 주저앉아버렸다.
“아가씨!!”
메이는 허둥거리며 하이데를 잡 았다.
그 손길에 그녀는 천천히 눈을 돌렸다.
“메이…… 메이……“아가씨!! 정말…… 정말 다행입 니다!”
험상궂은 기사단장의 얼굴은 눈 물과 콧물로 엉망이었다.
그는 마고 후작과 하이데를 끌어 안으며 결국 오열해버렸다.
“흐어어어어엉!!”
커다란 덩치를 가진 남자가.
그것도 기사단을 이끄는 단장이 이렇게 서럽게 우는 것은 수치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그 누구 도 그것을 나무라지 않았다.
요한을 제외한 모두가 살짝 눈시 울을 붉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는 마고 후작에게 찬물을 퍼부었다.
“그럼 약속도 지켰고 저희는 가 보겠습니다.”
“크흑…… 윽…… 응? 그,그게 무슨 소리냐?”
“아니 할 일도 다 했고……더 볼 일은 없다.
이제 돌아가서 빌헬미나가 해주 는 밥 먹고 훈련을 해야 한다.
요한의 말에 마고 후작은 어이없 어하며 외쳤다.
“하이데의 저주를 풀어주고…… 그냥 간다고!?”
“서로 줄 것 주고 받을 것 받았 는데…… 뭐 더 필요합니까?”
고개를 갸웃거리며 그가 말하자 마고 후작은 요한의 손을 잡았다.
“축제를 열 것이야!! 오늘을 기 념하는 큰 축제를 열 것이다! 그주역인 네가 참가하지 않으면……자신의 손을 잡은 주름진 손을 요한은 천천히 밀어냈다.
“바뽑니다. 야. 짐 챙겨. 집에 가 자.”
“……아. 예.”
이 감동적인 광경을 만들고 저런 반응이라니.
하지만 요한의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반과 헤로도톤은 그 의 명령을 수행하려 했다.
“엘레나. 너도 약속은 지켜야 하지 않겠냐?”
“예. 일단 이번 여름방학부터 휴 직 신청을 내겠습니다.”
현자의 돌을 연구하게 해주는 대 가로 요한의 밑으로 들어가게 되었 다.
딱히 불만은 없었다.
율리아 영지에 연금술사 길드가 없는 것이 아쉽긴 했다.
하지만 요한이 가진 지식을 배울 수 있다면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휴직계 낼 수 있어?”
“아카데미에서 십 년을 넘게 일 했으니까요. 일 년 정도는 휴직계 를 낼 수 있습니다.”
“일 년? 고작 일 년 일하겠다 고?”
“그 후에는 결혼퇴직 신청할 겁 니다. 적당히 하나 잡고 결혼하죠.”
“오. 그래. 율리아 영지 쪽에 괜 찮은 남자 많아. 너 정도면 신랑감 금방 찾겠다.”
“그렇죠?”
빙긋 웃은 엘레나는 요한의 팔을 잡았다.
그녀의 눈에 담겨 있는 시선은 꽤나 의미심장했다.
“설마 그 신랑감이 나는 아니겠 지?”
“후후후〜 전 똑똑한 사람이 좋 더라구요.”
“뭐. 능력 있으면 잘 유혹해봐 라.”
요한이 허락해주자 엘레나는 싱 긋 웃었다.
그들을 지켜보던 마고 후작은 다 급히 외쳤다.
“요한!”
“예?”
“진짜 그냥 갈 거냐?”
“그럼 뭐 더 해야 합니까? 저도 바쁜 몸입니다.”
일곱 번째 코어를 만들기 전에 더 몸을 단련하고 싶었다.
수도에 있는 동안 빌헬미나가 해 준 요리를 먹지 못했다.
거기에 제대로 된 훈련도 못 했 고.
빨리 돌아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 는 요한은 냉정히 뒤로 물러났다.
“그럼 저 갑니다! 하이데 영애! 눈 치료된 거 축하드리고…… 사교 계 가려면 춤 연습 좀 하시는 게 나을 겁니다! 하하!”
한차례 웃은 요한은 그대로 나가 버렸다.
이반과 헤로도톤,엘레나도 인사 를 하고 나가자 남은 이들은 황당 해하며 아무런 말도 못했다.
“요한 공자는…… 도대체 어떻게 돼먹은 사람인가요?”
“그…… 글쎄다.”
하이데의 질문에도 마고 후작은 제대로 답변할 수 없었다.
* * *타이론 가문에 걸려 있던 저주가 해주되 었다.
그 소식이 퍼진 것은 오래 걸리 지 않았다.
신이 난 마고 후작이 여기저기 퍼트리고 다녔기 때문이었다.
하이데가 사교계에 모습을 보이 게 된 것을 시작으로.
많은 이들이 율리아 영지에 시선 을 보냈다.
그 누구도 치료하지 못한 절맥을 치료했다.
그 누구도 해주하지 못한 저주를 해주했다.
그것만이 아니다.
천하십강의 자리에 오른 강자다.
그 때문에 많은 이들이 율리아 영지로 몰렸다.
요한이 가진 지식을 얻기 위해 서.
그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
하지만 요한은 그저 귀찮아할 뿐 이었다.
“요한 공자!! 나는 연금술사 길 드의 테오몬 학파장 오보론 갈츠라 고 하오!! 연금술사 길드를 대신하 여 그대의 지식을 얻고자 찾아왔 소!”
연금술사 길드의 학파장 정도면 영주가 직접 마중을 나갈 위치에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요한은 심드렁하기 그지 없었다.
“맡겨놓으셨습니까?”
"뭐!? 하,하지만 그대가 가진 지식은 연금술의 발전을 위해……"현자의 돌이라도 가져오고 나서그런 말씀을 하시죠.”
늘 하던 대로 저택의 뒤뜰에서 훈련을 하던 요한은 시큰둥하게 말 한 후 외쳤다.
“손님 가신다!!”
“뭣이라!? 요한 공자!! 내 말을 들 어보시오!! 분명히 좋은 제안……"자자. 가시죠.”
“놔라! 이놈들!! 내가 누군 줄 알 고!! 건방지게 감히!!”
버럭 소리를 지른 오보론이 약병 을 들었다.
그 순간 요한은 그에게 검을 겨 눴다.
“그 병 던지면 손목 날아갑니다.”
w......크,,“손님 가신다!!”
그나마 학파장이라서 경고라도 해준 것이다.
전에 왔던 상아탑의 마법사는 요 한에게 피떡이 되도록 맞고 쫓겨났 었다.
결국 그가 어깨를 축 늘어트리고 가버리자 요한은 투덜거렸다.
“어휴. 진짜 오라는 사람은 안 오고 왜 애먼 놈들만 오는 거지?”
“오라는 사람이 누굽니까?”
요한의 옆에서 책을 읽던 엘레나 가 물었다.
그녀의 질문에 요한은 시큰둥하 게 답했다.
“프란츠.”
“프란츠요? 프란츠는 왜……?”
“개가 와야지 내가 떠나니까.”
“어디 가십니까?”
엘레나가 알기로 요한의 일정은 없었다.
그의 일정은 훈련. 그리고 과자 집에 가서 밥 먹는 것. 그 외에는 없었다.
궁금해하던 그녀가 더 물으려는 찰나 훈련장으로 유아랑이 뛰어왔 다.
“요한 공자님! 프란츠 공자님께 서 복귀하셨습니다!”
“오!! 그래!? 야! 유아랑! 짐 챙 겨!”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궁금해하는 엘레나에게 요한은 씩 웃으며 답했다.
“돌아오지 않는 자의 숲.”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