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22화
222. 안정 (1).
“뭐? 그딴 것?”
걱정되어서 기껏 찾아왔는데 저 런 말을 하다니.
레이몬은 요한에게 지팡이를 겨 눴다.
“네놈이 얼마나 정신력이 대단한 지 확인해볼까! 만약 버티지 못한 다면 석상은 다시 가져가겠다!”
“이미 줘놓고 뭔 소린지…… 싫 다고 하셔도 강제로 하실 것 같으니까……요한은 어깨를 으쏙이며 뒤로 물 러 났다.
“그냥은 싫고 만약 제가 버텨내 면 레이몬. 저희 아버지랑 같이 일 좀 하시죠.”
“흥! 버텨내고 나서 말해 봐라!”
레이몬의 지팡이에 검은 기운이 몰려들었다.
"피어 오브 데스!!”
시동어를 외친 순간 그의 지팡이 에서 어둠이 피어올랐다.
검은 먹구름과 같은 기운은 빠르게 요한의 몸을 감쌌다.
흑마법의 정신계 마법 중에서도 상당한 수위의 마법이다.
저항하지 못한다면 공포에 질려 나돌아다니는 것조차 불가능한 정 신 마법.
그것을 건 레이몬은 마른 입술을 깨물었다.
‘내가 너무 심했나?’
피어 오브 데스에 걸리면 상아탑 의 로드도 몇 달은 족히 요양해야 한다.
그런 마법을 건 것이 레이몬은 마음에 걸렸다.
‘아니야. 저 녀석은 빌헬미나 선 배에게 중요한 녀석. 만약 오래된 자의 광기에 빠져 미쳐버리기라도 한다면……빌헬미나가 겨우 찾게 된 안정이 무너진다.
솔직히 열 받지만 빌헬미나를 행 복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요한이 다.
그런 요한이 미쳐버리기라도 한 다면?
간신히 안정을 찾은 빌헬미나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
‘차라리 몇 달 요양시키는 것이낫다.’
상아탑에서 치료를 명목으로 가 둬두고.
몇 달 정도 얌전히 쉬게 한 후 정신계열의 공격이 얼마나 무서운 지 알게 해주자.
그렇게 된다면 요한도 함부로 석 상을 쓰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리 생각한 레이몬이 고개를 끄 덕였을 때 어둠이 움직였다.
"홍.”
낮은 콧방귀 소리가 들림과 동시 에 어둠이 갈라져 버렸다.
그 안에는 붉고 선명한 오러 블 레이드를 든 요한이 서 있었다.
피어 오브 데스에 조금도 영향을 받지 않은 듯한 요한은 무덤덤한 어조로 말했다.
“됐습니까?”
요한의 멀쩡한 모습을 본 레이몬 은 입을 쩍 벌렸다.
어떻게 사람이 저럴 수 있단 말 인가.
당황한 그를 마주하던 요한은 오 러 블레이드를 해제했다.
“너…… 너…… 어,어떻게 한 거냐?”
“근성으로 버텨낸 겁니다. 근성 으로. 집중력. 노력. 뭐 그런 것 있 잖습니까.”
“피어 오브 데스를 어떻게!! 산 자라면 당연히 가지는 것이 바로 죽음에 대한 공포다!”
모든 산자는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기 마련이다.
죽음에 대한 공포가 티끌만큼이 라도 있는 이상 피어 오브 데스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요한은?
아무런 영향이 없다.
레이몬은 질린 표정으로 뒷걸음 질 쳤다.
“너…… 죽는 게 무섭지 않은 거 냐?”
“사람은 원래 죽습니다. 언제 죽 느냐의 차이일 뿐이지. 아무튼 내 기는 제가 이겼군요.”
“……허. 이거 엘릭서를 연구할 게 아니라 널 연구했어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 싶다.”
허탈한 어조로 중얼거린 레이몬 을 향해 요한은 싱긋 웃었다.
“할 일 많으니까 앞으로 열심히 일해주십시오. 그럼 저는 이만!”
“어디 가냐!”
“밥 먹으러 갑니다.”
요한은 터덜터덜 과자집으로 향 했다.
* * *과자집에 도착하자 유아랑과 아 단,헤갈이 있었다.
그들은 요한을 보며 환하게 웃었 다.
“이야! 공자님!”
“천하십강 광왕 요한!”
“제가 천하십강과 함께 일을 할 줄은 몰랐습니다!”
셋이 자신에게 달려오자 요한은 피식 웃었다.
“너희도 왔냐?”
“에이〜 공자님이 여기 계시는데 와야지 요.”
“그쪽은 어떻게 하고?”
“일단 헤위안 자작님이 관리를 하고 계신답니다. 그리고 내년 봄 에 다시 원래 영지로 돌아가신다고 하시고.”
"그렇군.”
“그럼 요한 공자님께서 전 바그 너 영지를 다스리시는 겁니까?”
헤갈이 묻자 요한은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그렇게 되겠지?”
암왕이 이곳에 남아주는 이상 요 한이 굳이 이곳에 있을 필요는 없 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전 바그너 영지 를 열심히 다스릴 생각도 없었다.
“너희들도 따라와.”
“예?”
“가서 일해야지. 계속 여기 있을 수는 없잖냐. 한 달 정도만 있다가 복귀할 거야.”
‘관리라고 해봤자 내가 할 일은 별로 없을 테니…… 유아랑 시켜야 겠군.’
유아랑 정도라면 알아서 잘할 것 이다.
그들에게 웃어 보인 요한은 과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요한!”
헤고만 공국에 다녀오는 동안 빌 헬미나를 만나지 못했다.
노심초사하며 기다리던 빌헬미나 는 요한을 보자마자 달려왔다.
“괜찮니? 어디 다친 데는 없다고 들었는데…… 혹시 이 할머니 걱정 안 하게 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겠 지?”
“예. 다친 곳은 없어요.”
“다행이다…… 얼마나 걱정했는 지 모른다.”
“하하. 할머니. 저 이제 천하십강 이에요.”
“그래도…… 천하십강이라고 해 서 죽지 않는 것은 아니잖니.”
당장 천하십강 중 둘이 요한의 손에 죽었다.
그것을 알기에 빌헬미나로서는 걱 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뭐 그렇긴 하지만. 아. 할머니.”
“그래. 배고프지? 밥부터"•…“아니요.”
요한은 아공간 주머니에 손을 넣 었다.
그가 꺼낸 것은 성패였다.
성괘 안에 있는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을 보여주자 빌헬미나는 눈을 감았다.
“꽤 많은 생명을 모아놨어요.”
“……요한.”
“할머니만 허락해주시면 됩니다.”
이번에 싸우면서 죽인 자들의 생 명을 심해의 지배자의 석상이 받아 들였다.
이 정도라면 빌헬미나의 수명을 이 년은 더 늘릴 수 있다.
“그건 지금 이야기할 만한 것이 아닌 듯싶구나. 그리고 요한.”
빌헬미나는 요한의 손을 꼭 잡았 다.
“레이몬에게 들었는지는 모르겠 지만 저 석상은 그리 좋은 것이 아 니란다.”
아무리 요한이 마스터라고 하더 라도 석상의 광기에 휘말릴 수 있 다.
빌헬미나는 걱정을 잔뜩 담은 채 그를 바라보았다.
“이 석상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구나.”
“할머니가 생명연장의 비법을 받 으신다면 저도 생각해볼게요.”
빌헬미나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 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양보할 수 없 었다.
“……후우.”
한숨을 쉰 빌헬미나는 더 말을 하는 대신 주방으로 향했다.
“고맙구나. 그래도 날 이렇게 생 각해주니까.”
“에이〜 저 말고 할머니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후후후……부드럽게 웃은 빌헬미나가 요리 를 시작했다.
그것을 본 요한은 석상을 다시 성괘로 되돌린 후 눈을 감았다.
그렇게,어색한 시간이 흘렀다.
* * *어느 정도 정리가 끝나자 윌카스 트 백작은 이동명령서를 내렸다.
기존 바그너 영지를 계속 헤위안 자작에게 맡겨둘 수는 없었기 때문 이다.
그렇기에 윌카스트 백작은 영지 의 관리를 일단 요한에게 맡겼다.
원래라면 후계자인 프란츠가 관 리를 해야 했다.
하지만 프란츠가 아카데미를 졸업 하려면 몇 년은 더 기다려야 한다.
그러니 그때까지는 요한이 대리 로 관리해주기로 한 것이다.
“저택의 사람들은 기겁을 하겠군 요.”
요한을 돕기 위해 따라온 유아랑 과 헤갈은 수레에 오르며 말했다.
그들을 향해 요한은 피식 웃었 다.
“좋아 날뛰지 않을까 싶다.”
전에는 요한을 막아 줄 윌카스트 백작이라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 저택에 그를 막아 줄 사람은 한 명도 없다. 저택에서 일하는 사용인들은 절망감에 빠질 것이 분명했다.
“하하하…… 그런데 공자님. 그 럼 공자님께서 영지를 상속받으시 는 겁니까?”
“후계자인 프란츠가 있는데 내가 그걸 왜 받아?”
영지관리를 하라는 명령을 받았지만 따를 생각은 없었다.
관리는 유아랑과 헤갈.
그리고 빌헬미나와 함께 올 아단 이 알아서 할 거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말하자 유아 랑은 떨떠름해 했다.
“저희가요?”
"그럼 누가 하리?”
“아니…… 그럼 공자님은 뭘 하 시려구요?”
“난 바빠. 훈련도 해야 하고. 여 기저기 돌아다니기도 해야 하고.”
일곱 번째 코어를 만드는 일.
그리고 하이데의 저주를 해주하 는 일.
또 쳐내야 할 놈들을 잡는 일.
해야 할 일이 산더미인데 한가롭 게 영지관리를 할 여유는 없었다.
“몬스터 토벌과 치안관리. 그리 고 날 찾아올 놈들의 상대 정도는 내가 할 테니까 나머지는 맡긴다.”
“어휴.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 야 할지.”
일개 모험가에서 영지관리관이 되게 생겼다.
유아랑이 난감해하자 헤갈은 크게 웃었다.
“하하! 공자님! 그럼 대장간 더 증축해도 됩니까?”
“하고싶은거 있으면 다 해. 그리 고 아는 드워프들 있으면 불러도 괜찮아.”
“제가 아는 엘프들도 있는데. 괜 잖으십니까?”
"사고만 안 치면 뭘 해도 괜찮 아. 어차피 나도 부를 거니까.”
할 일 없는 요미안.
더 할 일 없을 솔라와 마세츠도 부를 생각이다.
광약과 플로란스도 일단은 전 바 그너 영지에 둘 생각인 만큼 요한 은 걱정이 없었다.
“사고 치면 목 날아갈 생각은 하 고 오라고 해라.”
“하하하하…… 설마 사고를 치겠 습니까.”
요한이 관리하는 영지에서 어떤 미친놈이 사고를 치겠나.
수레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수레 에 앉아 있던 요한은 여유롭게 말 했다.
“일단 돌아가면 너희 할 일 많을 거다.”
“할 일이요? 무슨?”
“월동준비 해야지. 난 바로 몬스 터 토벌할 거야. 뭘 해야 하는지 정도는 알잖아?”
“아. 그러네요.”
신 바그너 영지 쪽의 몬스터 토 벌은 다 끝냈다.
만약을 대비해서 일단 한 달 정 도는 광약과 플로란스가 남을 것이 다.
그동안은 기존 바그너 영지에서 혼자 몬스터 토벌을 해야 했다.
그 또한 수행의 일종이니 요한은 딱히 부담을 느끼지 않았다.
“당분간은 너희가 고생을 해줘야 겠다.”
“알겠습니다.”
요한의 명령에 유아랑과 헤갈은 공손히 고개를 숙였다.
* * *바그너 영지로 돌아오자마자 요 한은 인수인계를 받고 바로 몬스터 토벌을 시작했다.
물론 지원 따위는 없었다.
요한도 바라지 않았을뿐더러 인 력도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요한이 홀로 바그너 영지 의 몬스터 토벌을 끝내고 복귀했을 때.
광약과 플로란스가 그를 찾아왔다.
“저는 이제 뭘 해야 합니까?”
앞으로 할 일이 많을 것이라고 들었다.
유아랑과 헤갈도 바쁘게 일하는 것을 보았다.
경비병들이 훈련을 하는 것도. 기 사들이 실력을 높이기 위해 일하는 것도 봤다.
자신도 해야 할 일이 많을 것이 라 생각한 광약은 진지하게 물었다.
그리고 그 질문에 요한은 무심히 답했다.
“너? 할 일 많지. 프란츠 가르쳤 던 것처럼 바그너 기사단 애들 좀 가르쳐.”
“소드 댄싱을 전수하라는 말씀이 십니까?”
“아니. 굳이 그럴 필요는 없고.
그냥 적당히 써먹을 정도로만 훈련 시키면 되는 거야.”
“아…… 그렇습니까?”
“남을 가르치는 것도 실력을 키 우기 위한 좋은 방법 중 하나야.”
“알겠습니다.”
요한에게 임무를 받은 광약이 나 가자 플로란스는 차분히 물었다.
“그럼 나는 뭘 해줘야 하나?”
그녀의 질문에 요한은 웃으며 답 했다.
“넌 이제 할 일 없으니까 집에 가라.”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