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20화
220. 혹시 불만 있으십니까?.
(2)
남작이 다스리던 작은 영지 하나 와 열다섯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
요한에게는 열다섯 칸짜리 아공 간 주머니가 더 중요했다.
“단순하게 권리서 주는 것으로 끝났으면 좋겠지만. 그건 아니겠 지?”
“예. 저는 저희 로로바 영지를 지키고 싶습니다.”
“바그너 가문의 예하가문이 되겠 다는건가?”
“그렇습니다. 저희 로로바 가문은 오랫동안 헤고만 공국의 국경을 다스 리던 가문이었습니다. 그래서……전쟁이 있을 때나 로만 후작의 공격이 있을 때 꽤나 시달렸었다.
이제는 그런 것 따위는 지긋지긋 했다.
“부디 로로바 가문을 지킬 수 있 게 해주세요.”
어찌 보면 가문의 주체성을 잃는 것이기도 했다.
하지만 안정적으로 가문을 지키 는 일이기도 했다.
혼란의 시기에 강자의 밑에 들어 가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니 말이 다.
“좋아.”
열다섯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를 얻을 수 있는데 그것 하나 못 해주 겠나.
요한은 싱글벙글 웃으며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거래는 성립되었고. 일단 아공 간 주머니부터 줬으면 좋겠는데?”
“죄송하지만 지금은 드릴 수 없 습니다.”
레이카는 긴장으로 마른 입술을 할으며 말했다.
그녀를 보던 요한은 피식 웃었다.
“날 못 믿겠다는 것이군.”
레이카는 미안해했지만 말을 되 돌리지 않았다.
그녀를 빤히 보던 요한은 어깨를 으쏙였다.
“귀찮게 하지 말고 그냥 줘. 상 호 간의 신뢰가 있어야지 뭘 하지 않겠냐?”
“그렇지만……“우리 거래가 깔끔하게 끝났다고 치자. 내가 아공간 주머니를 얻고. 로로바 가문이 바그너 가문의 예하 가문이 되었다. 뭐 거기까지는 좋 아.”
레이카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그 손은 레이카의 작은 머리를 꽉 잡았다.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강하게 그녀의 머리를 잡은 요한은 그녀의 눈을 마주하며 천천히 말했다.
“그런데 후에 내가 로로바 가문 을 부숴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은안 해?”
“그,그건……고작해야 남작령 수준의 영지라 면 요한이 기사단 하나만 끌고 가 도 다 부숴버릴 수 있다.
아니,그걸 떠나서.
요한이 석상을 이용해서 광기를 퍼트린다면?
그럼 영지가 망하는 것 따위는 시간문제다.
그를 막을 수 있는 힘 따위 로로 바 영지에 없을 테니 말이다.
“약자가 강자에게 모든 것을 바치고 아량을 구하는 것은 약자의 권리지.”
요한은 천천히 그녀의 머리에서 손을 떼었다.
그리고 무감정한 어조로 말을 이 었다.
“하지만 그 권리를 요구하려면 좀 생각을 하고 하는 게 어떻겠 냐?”
레이카는 살짝 고개를 숙이고 한 숨을 내쉬었다.
어린아이에게 어울리지 않는 모 습이 다.
하지만 작은 가문의 가주라면 항 상 가져야 할 고뇌의 한숨일 것이 다.
“드리겠습니다.”
레이카는 목에 걸고 있던 목걸이 를 내밀었다.
꽤나 커다란 목걸이를 연 순간 그 안에 검은색 캡슐이 모습을 보 였다.
“오호!”
캡슐을 받아낸 요한은 단숨에 삼 켰다.
그것만으로도 아공간 주머니가 확장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열다섯 칸이면 당분간은 아공간 주머니 걱정은 안 해도 되겠군.’
만족한 요한을 레이카는 두려움 섞인 눈으로 보았다.
이제부터는 요한이 말한 대로 진 짜 신뢰의 영역이었다.
“설마 저희를 버리시는 것은 아 니시겠지요?”
“아니야. 야. 이반.”
“예?”
“너 증명패 좀 줘봐.”
이반이 바그너 기사단의 패를 보 여주자 요한은 오러 블레이드를 뽑 았다.
손바닥만 한 패에 자신의 서명을 남긴 요한은 그것을 흔들며 말했다.
“어…… 거기. 윙가르트라고 했 나?”
“예!”
“자. 이거 받고.”
요한은 그의 손바닥에 패를 올려 주었다.
“아버지에게 가서 이거 주고 로 로바 영지로 병력 좀 보내라고 해.”
대충 오백에서 천여 명 정도만 있으면 될 거다.
요한이 심드렁하게 말하자 윙가 르트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말은 내 말 타고 가고. 그 대신 저 마차는 우리가 쓴다.”
“알겠습니다!”
윙가르트는 요한이 타고 온 말을 타고 동쪽으로 향했다.
그가 가는 것을 지켜보던 레이카 는 걱정스레 말했다.
“괜찮을까요……?”
“괜찮아. 괜찮아. 자. 이반.”
“예?”
“마차 몰 줄은 알지?”
“물론입니다.”
이반이 마차에 짐을 싣자 요한은 홀쩍 마차의 지붕 위에 을라갔다.
“자. 출발.”
마차의 지붕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은 요한은 웃으며 명령했다.
그의 명령에 이반은 바로 마차를 출발시 켰다.
* * *요한 일행이 향한 곳은 헤고만 공국의 수도인 에보니아였다.
과거 헤고만 공국을 세운 위대한 공왕 에보니아 헤고만의 이름을 딴 도시 였다.
헤고만 공국의 수도에 도착하자 요한은 자신의 패를 보여주었다.
“로드만 왕국의 요한 바그너다.”
“요한…… 광왕 요한!!”
검문을 하던 병사는 놀라며 창을 잡았다.
그 모습을 본 요한은 싸늘히 웃 으며 이를 드러냈다.
“왜. 싸우자고?”
“그…… 그게……상대는 젊지만 천하십강의 한사 람이 다.
그것도 상대방을 미치게 만드는 자.
만약 요한이 수도에서 시민들을 미치게 만들어버린다면?
그것 때문인지 병사들은 요한을 경계할 수밖에 없었다.
“공식적으로 방문한 거니까 문이 나 열어.”
사자로서 방문했다는 이야기다.
그를 경계하던 병사들은 조심스 레 성문을 열었다.
“잠시 기다려주시면 바로 성에 연락하겠습니다.”
“그래라.”
요한이 허락하자 병사들은 안도 했다.
그들이 성에 연락하는 동안 요한 은 주변을 둘러보았다.
“어이. 거기.”
“예?”
“여기는 뭐가 맛있나?”
“음…… 역시 헤고만 공국 하면 양고기라고 할 수 있겠지요.”
양모와 양고기,그리고 양젖으로 만든 치즈.
헤고만 공국의 특산품이라고 할 수 있었다.
병사가 그것을 설명하자 요한은 웃었다.
“오. 양고기 맛있지. 양젖으로 만 든 술도 괜찮은 거로 아는데.”
"어라? 아십니까?”
“한번 먹어 본 적이 있어.”
요한이 웃으며 말하자 병사는 신기해했다.
소문에 요한은 아주 악랄한 인간 이라고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음식에 관심을 보이는 모 습은 여타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어 보였다.
“괜찮으시면 수도에서 제일가는 양고기 요리 전문점을 알려드리겠 습니다.”
“오? 진짜?”
“예. 에보니아는 처음이시지 않 으십니까?”
‘회귀 전에 한 번 와보기는 했지 만……그때는 바빠서 일만 보고 갔었다.
요한이 고개를 끄덕이자 병사는 황급히 지도를 꺼내 보여주었다.
“시내의 남부로 들어가시면 번화 가가 있습니다. 번화가에 들어가기 바로 전의 요리점이 에보니아 최고 의 양고기 전문점입니다.”
“오오…… 이거 고맙구만.”
요한은 주머니에서 금화를 꺼내 그의 손에 올려주었다.
그것을 받은 병사가 기뻐하고 있 을 때.
다른 병사들이 다가왔다.
"성에서 마중을 나온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그래. 야. 그리고 다른 맛집은 또 없냐?”
“에보니아의 맛집이라면 양고가“거기 말고.”
“그럼 옥수수빵은 어떻습니까?”
병사들이 차근차근 맛집에 관해 서 설명을 해주었다.
그것을 모두 받아 적은 요한은 싱글거렸다.
“이야〜 생각지도 못한 정보들을 얻었네.”
“하하. 공자님께서 저희 헤고만 공국을 좋아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 음이었을 뿐입니다.”
요한에 대한 두려움이 잠시간의 대화로 사라졌다.
사람들에게 인식되는 천하십강의 이미지는 공포 그 자체였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강자들.
그런 강자가 이렇게 맛집을 찾는 다는 것 때문일까?
그 모습은 충분히 병사들에게 친 숙하게 다가올 수 있었다.
“요한 공자님 되십니까.”
예복을 차려입은 중년인이 나왔 다. 그는 요한을 보자마자 정중히 고개를 숙였다.
“헤고만 공국 외무부관 게아스 윌토 자작입니다.”
“요한 바그너다.”
상대는 아직 작위도 받지 못한 공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 위치는 천왕 카일로를 쓰러트린 강자. 그가 하대한다고 하여 불만을 가질 수는 없었다.
“공자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 다. 그런데 그 마차는……마차에 있는 문양을 본 게아스 자작은 조심스레 물었다.
로로바 남작가의 마차를 왜 타고 온 것일까.
궁금해하는 그에게 요한은 웃으 며 말했다.
"로로바 남작가가 바그너 백작가 의 가신으로 들어오기로 했어.”
“……그렇군요.”
“그리고 나머지는 공왕께 직접 말씀을 드려야겠군. 가지?”
“예.”
게아스와 함께 요한은 에보니아 로 들어갔다.
캐슬 오브 로디악보다는 조금 발 전이 덜 되었지만. 충분히 도시라 고 할 만한 곳이었다.
번화한 거리를 이동해 왕궁에 도 착한 요한은 마차에 타고 있는 이 반에게 말했다.
“들어갔다가 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그리고 레이카.”
딱딱히 굳은 그녀에게 요한은 손 을 내밀었다.
“에스코트는 해주지.”
“감사합니다.”
아직 어린 소녀다.
그리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자신 의 주군이었던 이를 만나는 것이다.
그를 버리고 다른 이에게 붙겠다 는 것.
소녀 혼자서 버텨내기 힘든 압박 감이 있었다.
이 에스코트는 그것을 요한이 막 아주겠다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거래는 거래. 지켜준다고 했으 니까 지켜주는 거야.”
"감사합니다……“뭘. 내가 더 감사하지.”
‘망할 보물 고블린은 아직도 아 공간 주머니를 주지 않고 있는데.’
호라이즌 큐브를 얻은 이후에도 계속 사용했다.
하지만 가끔 나오는 보물 고블린 은 스무 칸짜리 아공간 주머니를 줄 생각을 하지 않고 있었다.
그게 나올 때까지 아공간 주머니 는 최대한 구해 놓는 것이 낫다.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말이다.
‘거기에 석상들도 구하는 대로 따 로 보관해야 하고…… 많으면 많을 수록 좋지.’
"요한 공자님. 저……“공식적으로 온 거니까 예의는 갖춰주지.”
“감사합니다.”
천하십강들은 대부분 오만하다.
자신의 기준에 맞지 않는다면 예 의는커녕 존대조차 하지 않는다.
그것 때문에 걱정했지만 요한은 순순히 게아스의 요청을 받아들였 다.
“요한 바그너 공자,레이카 로로 바 남작께서 입장하십니다!!”
문이 열리고 대전이 보였다.
헤고만 공국의 신하들이 자리한 것을 본 요한은 옥좌에 앉은 중년 인에게 허리를 숙였다.
"로드만 왕국의 바그너 백작가 가주 윌카스트 바그너의 아들. 요 한 바그너가 공왕께 인사드립니다.”
“헤고만 공국 호달 헤고만이네. 만나서 반갑군. 그래. 무슨 일인가?”
‘다짜고짜 본론부터 말하자는 건 가.’
나쁘지 않다.
요한도 딱히 여기서 웅변연습 할 생각은 없었으니 말이다.
"저희 로드만 왕국에서는 왕가를 농락하고 대역죄를 저지른 로만 후 작을 처단하였습니다.”
물론 로만 후작에게 그런 죄는 없었다.
그저 핑계에 불과할 뿐이지.
다른 이들도 그것을 알고 있는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야기는 들었다.”
“로만이 전쟁을 벌여 차지한 공 국의 영지 중 두 곳을. 저희는 반 환하려 합니다.”
신하들 몇몇이 안도의 한숨을 쉬 었다.
하지만 다른 신하들의 표정은 굳 었다. 그 대가가 결코 작지 않을 것임을 눈치챘기 때문이었다.
“로드만 왕국과 바그너 백작가에 감사를 드려야겠군. 그런데 두 곳 이라……“로로바 영지의 가주인 레이카 로로바는 바그너 백작가의 가신이 되기로 하였습니다. 즉……요한은 레이카의 등을 내밀었다.
“지금 이 순간부터. 로로바 영지 로 공국의 병력이 들어올 시. 이는 로드만 왕국을 기만함과 동시에 저희 바그너 가문. 그리고.”
요한은 천천히 주변을 훑어보았 다. 날카로운 칼과 같은 시선으로 헤고만 공국의 신료들을 둘러 본 요한은 멈췄던 말을 내뱉었다.
“저를 모욕하는 것이라 알고 그 죄를 묻겠습니다.”
침묵이 이어졌다.
바늘 하나가 떨어지는 소리도 들 릴 것 같은 침묵을 요한은 아무렇 지 않게 깨트렸다.
“혹시 불만 있으신 분들 계십니 까?”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