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18화
218. 그냥 가면 섭섭하지 (3).
로만 후작의 패배는 빠르게 로드 만 왕국에 알려졌다.
그와 동시에 새로운 천하십강의 탄생이 알려졌다.
광왕(狂王) 요한.
오래된 자의 석상을 이용해 수많 은 자들을 미쳐버리게 하는 위험한 자.
그것은 로드만 왕국뿐만 아니라 대륙 전역에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 었다.
그런 천하십강 중 하나의 자리에 오른 요한은.
심드렁한 표정을 지은 채 말했 다.
“그래서요?”
“그,그■러니까.”
요한의 앞에 앉아 있던 중년인은 머뭇거렸다.
로만 후작의 패색이 짙어지며 게 이돈 영지 근처에 있던 이들이 움 직였다.
야금야금 게이돈 영지에 속해 있 던 마을을 종속시킨 영주 중 하나 였다.
“레도칼 남작님.”
“요,요한 공자. 그러니까. 제가 나선 것으로 로만 후작을 치기 좀 더 편하셨던 것 아닙니까?”
“레도칼 남작님.”
"그러니까…… 헤요 마을 쪽과 그쪽의 곡창지대는 저,저희가 가 져가도 될 것 같습니다……힘없이 말한 그는 요한의 눈치를 살폈다.
상대는 단순한 백작가의 공자가 아니다.
천하십강 중 하나이고 천왕 카일 로를 죽인 자.
그럼으로써 광왕이라는 자리를 손에 넣은 자였다.
아직 성인도 되지 못한 소년을 앞에 두고 있던 그는 어쩔 줄 몰라 했다.
“저에게도 그 정도의 권리는 있 다고 생각합니다.”
“권리를 주장하시고 싶으셨다면 처음부터 저희 편에 들어오셨어야 지요.”
처음에는 로만 후작을 따랐다.
그러다가 로만 후작이 질 것 같 으니까 약삭빠르게 편을 바꿨다.
그런 주제에 권리를 주장한다?
요한은 가소롭다는 듯 웃으며 자 리에서 일어났다.
“요,요한 공자님.”
“흥분하지 마시고…… 진정하십 시오.”
레도칼 남작의 뒤에 있던 기사들 은 차마 검을 뽑지 못했다.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은 필사적 으로 만류하는 것뿐.
하지만 요한은 그저 냉정하게 말 할 뿐이었다.
“헤요 마을로 되겠습니까?”
“예?”
“이왕 가져가시는 거 소가든 마 을도 가져가시지요.”
소가든 마을은 헤요 마을의 서쪽 에 있는 마을이었다.
작은 마을이지만 곡창지대가 있 는 곳.
그곳까지 얻는다면 승작의 가능 성도 엿볼 수 있었다.
“저,정말이십니까?”
“예. 가져가셔서 농사 좀 지어주십 시오.”
“……예?”
요한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 다.
움찔한 레도칼 남작이 식은땀을 흘리자 요한은 으르렁거렸다.
“올해 겨울에는 레도칼 남작님의 영지를 치러 갈 거니까.”
“히익!? 요,요한 공자! 요한 공 자!”
“뭣들 하냐. 손님 돌아가신다.”
고작해야 남작에 불과한 레도칼 이다.
그가 요한이 있는 월카스트 백작 의 군대를 막을 수 있을 리는 만무 했다.
아니,그걸 떠나서 요한이 광왕 으로서 움직인다면?
영지민들을 전부 미치게 한다면?
자신을 광인으로 만들어버린다 면?
엄청난 공포에 휩싸인 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한 공자!! 요한 공자! 내가 잘 못했소! 바로 병력을 빼겠소!”
아직 작위도 받지 않은 요한에게 레도칼 남작은 간절히 애원했다.
그를 내려다보던 요한은 쪼그려 앉았다.
“레도칼 남작님.”
“……예…… 예에.”
"제가 존대한다고 해서 남작님을 진짜 존경한다고 생각하시면 곤란 합니다.”
“……그,그렇겠…… 그렇겠지요.”
“그러니"•…요한은 그의 어깨를 토닥인 후 손을 뻗어 멱살을 잡았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얌전히 찌그러져 있어.”
얼음장처럼 차가운 어조에도 레 도칼 남작은 반박하지 못했다.
하얗게 질린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하자 요한은 그의 멱살을 놓아 준 후 말했다.
“손님 가신다. 배웅해드려라.”
기사들이 질려버린 그를 데리고 나갔다.
레도칼 남작이 나가자 요한은 한 숨을 쉬었다.
“후우. 그럼 정리는 끝난 건가?”
로만 후작을 잡았다고 해서 아예 쉴 수는 없었다.
로만 후작의 영역에 있던 영지들 과 재산들의 처분을 해야 했기 때 문이었다.
‘이 정도면 영지 분배는 끝날 것 이고…… 관리가 문제네.’
기존의 바그너 영지와 이번에 얻 은 영지.
물론 윌카스트 백작이 로만 후작 이 보유하던 모든 영지를 차지할 수는 없었다.
마고 후작과 처음부터 참전했던 귀족들.
그리고 왕가에도 일정 부분 나눠 줘야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치더라도 현재 얻은 영지가 기존 바그너 영지보다 컸다.
이 정도라면 후작가로 승작도 충 분히 가능한 정도다.
“프란츠가 할 일이 많아지겠군.”
영지가 넓어지면 할 일은 당연히 증가한다.
그러니 지금까지는 받지 않고 있 었던 예하 가문도 받아야 할지도 모른다.
‘누굴 받아들일지는 아버지가 결 정하시 겠지.’
하지만 거기까지는 요한이 신경 쓸 바가 아니었다.
요한의 목적은 거슬리는 로만 후 작을 치우는 것.
그리고 천왕 카일로를 제거하는 것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나머지는 윌카스트 백작과 프란 츠가 알아서 할 것이다.
그리 생각하며 요한은 방에서 나 왔다.
“고,공자님•"…복도에서 마주친 것은 헤나였다.
로만 후작과의 영지전에서 승리 한 후.
기존에 로만 후작이 쓰던 영지의 사용인들을 계속 쓸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기존 바그너 영지에 있 던 사용인들을 데려왔었다.
그중 하나인 헤나는 요한을 보자 마자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예전에는 단순한 마스터 망나니 였다면.
이제는 보는 사람을 미쳐버리게 만드는 공포의 존재가 되었다.
그녀가 긴장하며 덜덜 떨자 요한 은 씩 웃으며 물었다.
“헤나. 야스진 어디 갔냐?”
“히이이익…… 사,살려주세요-••…“아이 씨. 내가 너 죽인다냐? 야 스진 어디 갔냐고.”
“시,시,시.”
“시?”
“신전에……“오. 그래? 아. 그리고 너 야스진 이랑 결혼한다면서?”
헤나는 덜덜 떨다가 간신히 고개 를 끄덕였다.
그녀에게 피식 웃어 보인 요한은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갔다.
“축하한다. 야스진이 이번 영지 전에서 공을 많이 세워서 내년에는 사제가 될 수 있을 거야. 신분 상 승하겠네?”
"가…… 감사…… 감사합니다.”
“뭘.”
요한은 싱글거렸지만 헤나는 더 욱 두려워졌다.
그녀를 향해 한차례 웃어 보인 요한은 터덜터덜 신전으로 향했다.
야스진은 신전의 마당을 쓸고 있 었다.
“뭐하냐?”
“앗. 공자님. 신전까지는 무슨 일 이십니까?”
“너 찾으러 왔다.”
“예? 저를요?”
“예? 저를요? 는 무슨. 따라와.”
“어디 가시려는 겁니까?”
"너 추천장 써주려고 그런다.”
요한은 품에서 꺼낸 추천장을 보 여주었다.
그것을 본 야스진의 얼굴에 경악 이 서려졌다.
마고 후작.
헤오만 백작.
헤위안 자작.
에이드론 자작아니,그뿐이 아니다.
윌카스트 백작과 친분이 있는 귀 족들까지. 꽤나 많은 귀족들의 추 천 서명이 있었다.
“왜 이렇게 많습니까?”
“추천장에 이름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거라니까.”
서명된 이름을 확인한 야스진은 감동했다.
이번에 영지전을 할 때 참가했던 귀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직접 참가한 이들 외에도 식량이 나 물자,그리고 장비와 병력만 보 내준 귀족들까지.
윌카스트 백작의 승리로 기세가 올라간 귀족들의 이름이 적혀 있었 다.
“남은 건 아버지랑 나뿐이다. 가 자고.”
“공자님……“말했잖아. 내가 너 추천장 써줄 거라고.”
원래 이런 추천장에는 자작의 서 명을 받는 것도 힘들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귀족이라니.
거기에 이번에 후작으로 승작한 다는 이야기까지 있는 윌카스트 백 작까지 있을 줄이야.
야스진은 감격에 몸을 떨었다.
“흑…… 공자님.”
“야. 뭐 이런 거 가지고 우냐? 빨리 안 와?”
“가,갑니다……야스진을 데리고 요한은 곧장 윌 카스트 백작의 집무실을 찾았다.
영지전을 끝내고 복귀한 윌카스 트 백작은 꽤나 바빠 보였다.
“아버지.”
“오! 요한. 왔구나. 마침 잘 왔 다. 헤고만 공국 쪽에 다녀와 줬으 면 하는데 괜찮겠니?”
헤고만 공국에서 윌카스트 백작 에게 친서를 보냈다.
영지를 돌려달라고.
물론 공짜는 아니 었다.
적당한 거래를 통해 줄 건 주고 받을 것은 받자는 것이었다.
“우리는 지금 얻은 영지를 관리 하는 것만으로도 벅차지. 필요 없 는 영지는 주고 다른 것을 얻는 게 낫다.”
“그렇습니까? 그냥 가신을 받는 것은 어떻습니까?”
“가신도 함부로 받기 어려워. 충 분한 신뢰가 없으면 배신이 이루어 질 테니까.”
“이번에 참가한 귀족 중에서는 요?”
“안 그래도 에이드론 자작이 가 신이 되고 싶다고 하더구나. 이번 에 싸운 것도 있고. 또 처음부터 도와주기도 했으니까.”
“헤위안 자작님은요?”
“헤위안 자작도 예하로 들어오기로 했지.”
“그렇군요.”
“어째 관심이 없는 듯한 표정이 다?”
윌카스트 백작이 묻자 요한은 대 답 대신 어깨만 으쓱였다.
“그런데 야스진까지 함께 무슨 일이냐?”
“아. 이것 때문에요.”
요한은 추천장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은 윌카스트 백작은 빙 긋 웃었다.
“야스진이 그동안 고생이 많기는했었지.”
“소,송구스럽습니다.”
윌카스트 백작의 자상한 어조를 들으며 야스진은 고개를 숙였다.
그를 향해 웃어 보인 윌카스트 백작은 시원스레 서명했다.
“훌륭한 사제가 되기를 바라겠 네. 교단에 가서도 우리 바그너 가 문을 잊지 말아주게나.”
"예……"그리고 헤나와 결혼을 한다고?”
“그렇습니다.”
"야심이 없군.”
“평민으로 태어나 사제가 되는 것 만으로도…… 저에게는 충분한 듯싶 습니다. 그리고.”
야스진은 슬쩍 요한을 보았다.
요한을 보고 있으니 권력이나 뭐 니가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요한 공자님을 보필한 경험이 저에게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래? 그리 생각해주니 고맙구 만.”
윌카스트 백작은 추천서를 요한 에게 주었다.
마지막 남은 한 칸.
그곳에 요한은 자신의 서명을 적 었다.
“자. 마차는 내가 준비해주지. 하 인스에게 말해 수도까지 보내 줄게.”
“가,감사합니다!”
수도에 있는 하이마스 주교에게 이 추천장을 내면 심사 후 정식 사 제가 된다.
그렇게 되면 동기들 중에서는 가 장 빠르게 사제가 되는 것이다.
감격에 몸을 떨고 있는 야스진에 게 윌카스트 백작은 여유롭게 말했 다.
“자네라면 바로 하나의 신전을 맡을 수 있겠지. 앞으로도 잘해주 길 바라겠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꾸벅 인사를 한 야스진이 나갔 다. 그가 나간 것을 본 윌카스트 백작은 요한을 보며 물었다.
“넌 괜찮으냐?”
“무슨 말씀이십니까?”
“야스진은 널 꽤 오랫동안 보필 한 자가 아니냐. 그렇게 보내도 괜 잖은가?”
“야스진도 그동안 고생했으니까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겠죠.”
“그러니.”
윌카스트 백작은 작게 고개를 주 억 거렸다.
그리고 서류뭉치에서 몇 가지 서 류를 꺼내 내밀었다.
“자. 이것이 헤고만 공국 쪽에 있는 영지의 권리서다. 이것을 어 떻게 할지는 네 자유다. 한번 잘 해보렴.”
요한에게 전권을 위임한다는 이 야기 였다.
윌카스트 백작의 전면적인 지원 에 요한은 피식 웃었다.
“그냥 주고 와도 된다는 말씀이 십니까?”
"네 마음대로 하려무나.”
요한이 영지를 그냥 내어 줄 리 없다고 월카스트 백작은 믿고 있었 다.
그라면 충분히 이득이 되는 방향 으로 일을 끝낼 것이다.
그리 생각한 월카스트 백작은 가 볍게 박수를 쳤다.
“아. 그리고 갈 때는 어떻게 할 거니? 원한다면 기사들을 붙여주마.”
윌카스트 백작의 말에 요한은 고 개를 저었다.
“아버지. 저 천하십강입니다.”
“하하하…… 그래도 아비로서 불 안하구나. 수행원이라도 데리고 가 렴.”
윌카스트 백작의 제안에 요한은 싱긋 웃었다.
"그럼 한 명 붙여주십시오.”
"누구?”
“이반이요.”
요한은 예전 자신에게 덤볐던 기 사인 이반을 떠올리며 싱글거렸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