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권 5화
205. 여섯 번째 (3).
“무슨 힘?”
“그런게 있어요.”
벽을 코어로 변환시키는 과정은 상당한 체력을 소모한다.
저번에도 배고파서 기절할 뻔하 지 않았는가.
그렇기에 바로 먹을 음식을 준비 하는 게 나았다.
사정을 모르는 빌헬미나는 의아해했다.
하지만 별다른 질문 없이 샌드위 치를 잔뜩 만들어주었다.
바구니 하나에 가득 찰 정도의 샌드위치를 만들어 준 그녀는 웃으 며 내밀었다.
“자.”
"고맙습니다. 할머니.”
“뭘. 그보다……빌헬미나는 요한의 손을 살짝 감 싸 잡았다.
“정말 괜찮겠니?”
“예. 괜찮아요.”
빌헬미나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 지는 알 수 있었다.
영지전을 치르는 데 도움이 필요 없느냐는 이야기다.
“이길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올 해 겨울을 넘기지도 않을 것이고.”
‘암왕이 좀 일찍 엘릭서를 가져 왔으면 일주일 안에 끝낼 수도 있 었겠지만.’
광약,플로란스.
그리고 여섯 개의 코어를 가진 요한.
평시라면 셋이 작정하고 로만 후작을 암살하러 가도 된다.
하지만 이미 상황은 전시가 되어 버렸다.
로만 후작에 대한 호위는 전보다 더욱 잘 되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생각하면 굳이 무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할머니는 그냥 밥이나 해주세 요.”
“그래…… 알겠다.”
그래도 여간 걱정스러운 것이 아 니었는지 빌헬미나는 요한의 손을 놓지 못했다.
결국 그가 나갈 때까지 빌헬미나 는 요한의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 했다.
“저 왔습니다.”
요한이 나가고 잠시 후 아단이 돌아왔다.
그가 로브를 옆에 놓고 요리를 준비하자 빌헬미나는 작은 어조로 물었다.
“아단. 상황이 어떠니?”
“상황? 아. 영지전이요?”
아단은 가끔 윌카스트 백작의 요 청으로 바그너 영지의 일을 처리한 다.
그런 만큼 그라면 충분히 현재 상황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 좋지는 못하네 요.”
“그러니……?”
“예. 일단 병력 면에서 큰 차이 가 나니까요. 그리고……“그리고?”
“마법사가 부족합니다. 바그너 영지는 상아탑의 지부를 받아들이 지 않았으니까요.”
물론 동맹을 맺은 마고 후작의 타이론 영지에는 상아탑 지부가 있 다.
하지만 그들이 직접 나서지는 않 을 것이다.
그래도 간접적인 도움은 분명 있 을 거다.
그것도 결코 무시할 수는 없었 다.
“저도 제 동기들에게 도와달라고 요청했지만…… 쉽지 않은 모양이 에요.”
“그래……?”
“예. 그것 때문에 많이 바쁘네요. 내일도 못 을 것 같아요.”
아단 뿐만 아니라 헤갈과 유아랑 도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인맥을 통해 최대한 도움을 받고 있다.
그뿐인가?
윌카스트 백작도 굉장히 노력하 고 있었다.
“병사와 기사의 수는 적지만. 그 래도 어떻게든 될 겁니다. 아. 그리 고 천하십강 중 둘이 이번 영지전 에 참가하기로 했습니다.”
“둘이나? 누구를 말하는 거니?”
의아해하며 묻는 빌헬미나에게 아 단은 차분히 답했다.
“투왕 광약. 그리고 백왕 플로란 스…… 음. 그리고.”
아단은 볼을 긁적거렸다.
아까 들었던 이야기 중에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 있었다.
“그리고 요한 공자님이 자기가 천하십강 수준이라고 말씀하셨다던 데……"요한이!? 그게 정말이니? 무, 물론 요한이 문댄서를 쓰러트렸다 고는 들었지만……“예. 그런데 그것 때문이 아닌가 봐요. 요한 공자님께서 직접 말씀하셨으니까요. 그래도 여전히 상황 은 불리하네요.”
빌헬미나는 살짝 눈을 감았다.
그리고 아단의 팔을 잡으며 조심 스레 말했다.
“아단. 내 부탁을 좀 들어줄 수 있겠니?”
“왜 그러세요?”
“가봐야 할 곳이 있단다.”
그녀의 진지한 표정에 아단은 자 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 * *빌헬미나의 집에서 나온 요한은 곧장 탈무의 연구실에 들어갔다.
이미 연구실은 광약의 방처럼 되 어 있었다.
그는 힐끔 구석을 보았다.
구석에 있는 옷걸이에는 갑옷과 엘븐 실크 무복이 걸려 있었다.
“야. 그 거지 같은 가죽옷 좀 안 입으면 안 되냐?”
“비단은 싫습니다.”
“하. 진짜.”
귀족들에게 소개해주기 위해서 갑옷과 엘븐 실크 무복을 마련해주 었다.
그런데 그게 싫다고 하니 요한은 할 말이 없었다.
그의 인상이 찡그려지자 광약은 머뭇거리며 변명하듯 말했다.
“이 가죽 좋은 가죽입니다. 헬하 운드의 가죽이라……온몸이 불꽃으로 감싸져 있는 개 가 바로 헬하운드다.
꽤 강력한 몬스터고,발견하면 반드시 잡아야 하는 몬스터 중 하 나였다.
헬하운드의 가죽은 불이 침범하 지 않는다.
거기에 방어력도 상당해서 잘 가 공한 옷은 꽤나 비싸게 팔린다.
문제는 헬하운드의 가죽은 가공 이 힘들다는 것.
그래서 대부분 헬하운드를 잡은 이들은 광약처럼 가죽만 대충 엮어 서 입고 다니곤 했다.
다른 이들이라면 그의 변명에 납 득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요한은 달랐다.
“야. 나 일 하나만 하고 그 가죽 정리해서 줄 테니까 좀 제대로 입 고 다녀. 그게 뭐냐? 비렁뱅이도 아니고.”
“진정한 강자는 외면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 법입니다.”
“명령이다.”
“그렇다면 따르지요.”
광약에게 한소리를 끝낸 요한은 책상에 있는 석필을 가져왔다.
그가 바닥에 마법진을 그리기 시 작하자 광약은 의아해했다.
“뭐 하십니까?”
“힘을 좀 키울 필요가 있어서.”
빠르게 마법진을 전부 만든 요한 은 진의 중앙에 앉았다.
그리고 아공간 주머니에서 엘릭 서를 꺼냈다.
“후우……낮은 한숨.
그리고 집중.
마음을 가라앉힌 요한은 바로 엘 릭서를 들이마셨다.
황금색 액체가 그의 목을 타고 흘러 넘어갔다.
완전히 엘릭서를 마신 요한의 몸 에서 폭풍 같은 힘이 넘쳐흘렀다.
'큭......’
그 힘을 간직한 채 요한은 여섯 번째 벽을 무너트렸다.
벽이 무너진 반동이 요한의 몸을 강하게 후려갈겼다.
“쿨럭!!”
오장육부가 진동하고 뼈와 살이 비틀렸다.
그사이 무너진 벽이 점점 코어로 변해간다.
“크윽……신음을 토해낼 때마다 엘릭서의 기운 역시 바깥으로 흘러나왔다.
원래라면 허공에서 사라져야 하 지만.
그 기운은 요한이 그린 마법진에 흡수되어 다시 그에게로 되돌려졌 다.
그렇게 한참 동안 코어를 만들기 위해 씨름을 하던 요한은.
땀과 피를 토한 채 축 늘어졌다.
“로디 I”
요한이 쓰러지자 광약은 황급히 그에게 달려갔다.
그가 다가오자 요한은 힘없이 말 했다.
“바…… 바구니……“예? 아. 예.”
요한은 절맥에 걸려 있던 몸이었 다.
어쩌면 이번 발작이 그 절맥으로 인한 발작일지도 모른다 생각했다.
광약은 다급히 바구니를 열었다.
바구니 안에 약이라도 있을 것이 라 생각했던 광약의 표정이 일그러 졌다.
“……샌드위치?”
“내…… 놔……요한은 피투성이가 된 입을 벌렸 다.
그 안에 광약은 떨떠름해 하며 샌드위치를 넣어주었다.
하나의 샌드위치를 제대로 씹지 도 않고 요한은 꿀꺽 삼켰다.
“하나 더……커다란 샌드위치를 하나 더 꺼내 먹여주었다.
두 개를 먹고 나니 하얗게 질려 있던 요한의 표정에 조금 생기가 돋았다.
“차 좀 끓여줘.”
“어…… 예. 알겠습니다.”
당황하던 광약은 뜨거운 물을 끓 였다.
그사이 요한은 홀로 샌드위치를 먹으며 몸 안을 관조했다.
엘릭서의 마지막 한 방울 힘까지 이용해 힘의 반동을 막아냈다.
만약 넘쳐흐른 엘릭서의 힘을 다 시 끌어모으지 않았다면 몸이 폭발 했을 것이다.
‘그래도 만들어졌으니 됐다.’
심장 안에 여섯 개의 코어가 단 단히 자리 잡았다.
그 코어를 회전시켜 힘을 끌어모 아 본 요한은 손가락을 들었다.
그리고 그 손가락으로 살짝 연구 실의 바닥을 눌렀다.
-우직.
힘이 집중된 손가락이 바닥을 파 고들어 갔다.
치즈처럼 눌려버린 바닥을 보며 요한은 싸늘히 웃었다.
‘좋아. 그럼 시험을 해 봐야겠군.’
“광약.”
“예.”
"나 밥다 먹고 대련 좀 해보자.”
“그러지요.”
요한과의 대련은 처음 하는 것도 아니니 상관없다.
대수롭지 않게 대꾸한 광약은.
식사가 끝난 이후 요한과 검을 부딪쳐보고 알게 되었다.
빠르고 강했다.
검속도. 몸의 움직임도.
그리고 힘도.
자신보다 반도 되지 않는 체구의 요한이 이렇게 강한 이유는 단 하 나.
요한이 운용하는 오러가 더욱 강 화되었다는 것이다.
“큭……!!"
요한의 검격을 막아낸 광약은 빙 글 검을 돌려 잡았다.
아까부터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예전이었다면 이정도만으로도 우 세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어떻게 된 겁니까?”
불과 어제까지만 해도 요한은 광 약에게 미치지 못했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강해졌다.
광약보다 훨씬 더.
이런 비약적인 성장을 광약은 이 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자신 역시 강해지고 싶었 다.
강자가 되기를 열망하는 그를 마 주하며 요한은 한차례 웃었다.
“그냥 벽 하나 부숴버린 것뿐이 야.”
그 말을 들은 광약은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여섯 개의 코어를 만든 요한은 광약의 가죽옷을 들고 가벼운 발걸 음으로 나왔다.
시간이 남는 동안 광약의 옷을 새로 만들어줘야겠다.
그리 생각하며 대장간으로 간 그 는 아단과 마주쳤다.
“어? 넌 왜 여기 있냐?”
“공자님. 한참 찾았습니다.”
"왜? 아버지께서 부르셨어?”
“아뇨.”
“그럼 로만 후작의 부대가 근접 했다던? 이상하다. 내 예상으로는 아직 며칠 시간이 있을 텐데.”
“그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아단이 왜 자신을 찾은 것일까.
요한은 헬하운드의 가죽을 옆에 내려놓았다.
“그럼 뭔데?”
“빌헬미나 님께서 말씀하셨습니 다. 잠깐 시간 좀 내달라고.”
“……할머니가? 왜?”
“그게…… 이번 영지전이 꽤나 걱정되셨나 봅니다.”
“하. 걱정하지 마라니까 그러네.”
“그래도 할머니 마음이란 것이 그렇지 않은 겁니다.”
요한이 가져온 헬하운드의 가죽 을 만져보던 헤갈은 쓰게 웃었다.
빌헬미나의 손주 사랑은 대단하 다.
그런 만큼 당연히 걱정이 되겠 지.
납득을 하며 고개를 끄덕인 헤갈 은 가죽을 만져보았다.
“그런데 이걸 왜 가지고 오셨습 니까?”
“그거 무두질해야 해. 헤갈. 가죽 다룰 줄은 알지?”
“헬하운드의 가죽…… 이거 시간좀 걸릴 것 같습니다. 무두질을 위 한 약도 없어서.”
거기에 당장 영지전이 코앞이라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
그러 한가롭게 헬하운드 가죽을 만질 틈은 없었다.
“약은 내가 만들어다 줄게. 그럼 일반 가죽 다루듯이 만들 수 있을 거야.”
“그럼 금방 할 수 있습니다.”
손재주가 좋은 헤갈이니만큼 문 제는 없었다.
그가 고개를 끄덕이자 요한은 아 단과 함께 과자집으로 향했다.
과자집 앞에 도착한 요한은 인상 을 찌푸렸다.
“할머니.”
“요한. 나랑 같이 상아탑에 가자.”
“예?”
“상아탑에 가서…… 내가 요청하 마. 상아탑에 있는 이들에게 너를 도와달라고 요청해주마.”
꽤나 큰 결심을 한 모양이다.
그녀에게 있어선 최대의 트라우 마나 다름없는 것이 손자들의 무덤.
그 다음이 바로 상아탑이다.
상아탑에서 나온 이후 평생 상아 탑 쪽으로는 얼씬도 하지 않은 빌 헬 미나다.
그런 그녀가 상아탑에 가자고 할 줄이야.
요한은 얼굴을 쓸어 만진 후 말 했다.
“할머니. 그건 안 해도 괜찮아요.”
"아단이 말해줬다. 불리하다면서. 질 수도 있다면서? 네가 당할 수도 있다면서.”
요한은 아단을 보았고 그는 식은 땀을 흘렸다.
“공자님께서 당할 수도 있다는 말은 안 했는데요!?”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