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권 8화
183. 너희 좀 늦었다 (4).
만남이 끝나고 요한은 예만 원장 을 따로 불렀다.
그도 요한이 왜 불렀는지 정도는 예상하고 있었다.
“숨겨둔 증거가 있겠지?”
“예.”
요한이 가져온 증거 중에 있어야 할 것이 빠졌다.
그것은 바로 장부였다.
흑왕이 뭘 목표로 하고 로드만 왕국에서 위조 금화를 만들었는지 는 모른다.
하지만 그 금화를 반출했다면 당 연히 그에 대한 장부가 있었을 것 이다.
“가지고 있겠지?”
“물론이죠.”
“보여주게나.”
“보여드리기는 하겠는데. 약속 하나 해주실 수 있으십니까?”
“뭔가?”
“치안통제국. 반드시 해체하게해주십시오.”
중앙 귀족들이 딴소리하지 못하 게 귀족원에서 전면적으로 나서달 라는 것이다.
“치안통제국이 귀족원을 건드린 것 때문에 원한을 품은 위원들은 많을 겁니다.”
“그렇지.”
"하지만 해체까지 가는 것을 바 라지는 않겠지요. 적당히 그들의 콧대를 누르는 정도만 생각할 겁니 다.”
“그렇긴 해.”
치안통제국이 아무리 건방지고 거슬린다지만.
그래도 왕국을 위해 일하는 곳이 다.
그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위원들 중에 치안통제국과 친한 이들도 있다.
요한이 이번 일을 해결하여 치안 통제국 해체를 주장하는 것을 막으 려는 자도 당연히 있을 것이다.
“치안통제국이 해체되더라도 그 들의 임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 야.”
“그건 로디악 기사단이나 성철쇄기사단에서 알아서 하겠지요.”
“한 가지만 묻지. 자네는 왜 치 안통제국을 해체하고 싶은 건가?”
“예산은 예산대로 받고 하는 것 없이 노는 것이 눈꼴시려서 그렇습 니다.”
“그것만이 아닌 것 같은데.”
예만 원장의 날카로운 시선에 요 한은 피식 웃었다.
사실 그랬다.
"치안통제국의 요원이 얼마나 있 지요?”
“일급과 이급 요원들을 생각하 면…… 최소한 이백은 넘어가겠지.”
“그들이 모두 치안통제국 국장인 파보에게 충성을 하고 있다 생각하 십니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들 역시 로드만 왕국에 속한 관리다.
즉 파보가 실각한다고 하더라도 치안통제국이 없어지고,자신들 일 자리가 사라진다면?
그럼 굳이 파보를 따를 일이 없 었다.
“자네 말대로지. 결국은 직위가 사람을 결정하는 법이니까. 많아야두,셋 정도일 거야.”
그의 대답에 요한은 고개를 끄덕 였다.
요한 역시 비슷하게 생각하고 있 었다.
“예만 원장님. 솔직히 그 장부나 연판장이 로만 후작을 잡는 데 도 움이 되겠다면,그럼 제가 썼을 겁 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장부나 연판장 에는 로만 후작과 관련된 이야기가 없었다.
그런 만큼 요한은 다른 방식으로 로만 후작을 공격할 방법을 선택한 것이다.
“치안통제국이 해체되면 허공에 붕 뜨는 인력들이 많아지겠지요?”
씩 웃은 요한은 장부와 연판장을 꺼냈다.
그것을 본 예만 원장은 눈살을 찌푸렸다.
“로디악 기사단과 성철쇄 기사단 이 그들을 흡수하게 하려는 건가?”
“뛰어난 요원들입니다. 그들을 받아들이면 기사단의 힘은 더 강해 질 겁니다.”
“그래 봤자 의미 없는 것 아닌 가? 윗돌 빼서 아랫돌 막는 격인데?”
“그렇지만은 않죠. 치안통제국은 왕국의 부서이기도 했지만,중앙 귀족들을 지켜주는 힘이기도 했으 니까.”
그것이 없어졌으니.
중앙 귀족들은 자신들 나름대로 의 힘을 갖추기 위해 움직일 것이 다.
그들이 드러낸 힘이 나오면.
그것을 왕가에서 받아들이게 해 치안통제국의 자리를 메워야 했다.
예만 원장은 살짝 눈살을 찌푸렸 다.
그 말은 중앙 귀족의 힘을 빼앗 아 왕가에 더하자는 말이었기 때문 이었다.
“귀족들 입장에서는 좋을 일이 아닌데.”
“애초에 로만 후작과 싸우려는 것부터가 귀족의 힘이 깎이는 겁니 다.”
“하긴 그런가.”
로만 후작과 요한의 싸움.
그것은 단순한 둘의 싸움이 아니 다.
대귀족들이 싸우는 것이니 당연 히 누가 이기든 귀족의 힘은 약해 진다.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감안하고 봐야죠.”
“하아…… 괜찮으려나.”
왕가 입장에서는 두 개의 후작가 중 하나가 없어진다면 감사할 일이 다.
특히나 로만 후작 정도 되는 강 력한 귀족은 더욱 그렇다.
만약 왕가와 귀족의 싸움이라면 귀족원은 로만 후작의 손을 들어야 한다.
하지만 로만 후작과 윌카스트 백 작의 싸움이라면?
그럼 귀족원도 어느 편을 들기 힘들다.
그때 왕가가 윌카스트 백작을 돕 는다면?
그리고 그 대가로 바그너 백작가 가 왕가에 빚을 지게 되는 것이라 면?
귀족의 힘이 약해질까 싶어 예만 원장은 내키지 않았다.
“자네 생각대로 일이 풀릴까 의 문이군.”
“지금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로 만 후작을 꺾는 것입니다. 왕가와 귀족과의 힘겨루기는 나중을 생각 해도 됩니다.”
요한이 웃으며 말하자 예만 원장 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 역시 로만 후작이 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이다.
그래야 자신이 지원을 받아 원장 직을 연임할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일을 꾸미는 것은 사람이지만 이뤄주는 것은 하늘이라지요?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것뿐입니다.”
‘내가 이렇게까지 판을 깔아줬는 데 왕가가 움직이지 않는다면…… 그리고 도움의 대가를 바란다 면……요한도 가만히 있을 생각은 없 다.
어쨌든 그것은 그때 가봐야 알 수 있는 결과.
요한은 웃으며 말했고 예만 원장 은 한숨을 내쉬었다.
"알겠네. 자네의 요청은 받아주 지.”
그를 향해 웃으며 요한은 장부와 연판장을 내밀었다.
그 내용을 살펴본 예만 원장은 땅이 꺼지라 한숨을 쉬었다.
“위돌 이 작자가……!”
“중앙 귀족 중에는 차이로 백 작…… 아 이제는 자작이지. 아무 튼 그도 있더군요.”
관련자들의 목록을 살펴본 예만 원장은 장부를 접었다.
“이것은 일단 자네가 가지고 있 게나. 빈민가의 위조 금화 제작지 를 자네에게 들켰다면. 자신을 보 호하기 위해 움직일 자들은 많을 테니까.”
"그러지요. 아. 차라리 당분간은 저희와 함께 계시는 것이 어떻겠습 니까?”
"저희?”
“가보시면 압니다.”
요한은 예만 원장을 데리고 마고 후작의 저택으로 향했다.
저택에 들어간 그는 고개를 갸웃 거렸다.
“분명 봤던 적이 있는데……“아,안녕하십니까.”
“전에 사베트의 연구실에서……“아아아!! 그때 모험가들이구만!”
솔라,마세츠. 그리고 요미안이었 다.
그들이 저택에서 기다리고 있자 예만 원장은 씩 웃었다.
“익스퍼트가 셋이라. 이 정도면 내 호위로는 충분하겠지?”
"아직 더 있습니다.”
어둠 속에서 두 명이 걸어왔다.
하프 엘프인 양유위.
그리고 마스터 레드바였다.
요한의 요청을 받고 이곳까지 찾 아온 그들은 예만 원장에게 꾸벅 허리를 숙였다.
“요한 공자와 같이 일했던 사이 입니다. 당분간 예만 원장님을 호 위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이거 반갑구만.”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모험가들 과 예만 원장이 안으로 들어갔다.
양유위는 심각한 표정으로 물었 다.
“진짜 위조 금화 사건에 흑왕이 관련된 것입니까?”
“그래. 너희들에게는 연락 없었 지?”
“없었지요……“흑왕이 저희 영역을 침범하다 니.”
도둑 길드끼리는 초대하지 않는 이상 영역을 침범하지 않는 것이 관례다.
로드만 왕국에는 로드만 왕국의 도둑 길드가 있다.
그러니 필로틴 제국을 영역으로 삼고 있는 흑왕이 움직여서는 안 되었다.
“정식으로 항의를 해야겠습니다.”
“정식으로 항의해봤자 개들이 들 어 먹겠냐.”
“그럼 어떻게 할까요?”
“그냥 내버려둬. 어차피 개들도 귀가 있으니까 알아서 판단하겠지.”
라이네스가 죽었으니 흑왕도 가 만히 있지는 않을 것이다.
암살자들이나 도둑을 보내 요한 을 공격할 수도 있고.
어쩌면 흑왕이 직접 내려올지도 몰랐다.
“아직 바그너 영지에서 개 안 했 지?”
"개라고 하시면…… 셀마 말씀이 십니까? 예. 아직 거기 있습니다.”
"됐어. 개한테 연락해서 아버지 보호하라고 해둬.”
“알겠습니다. 다른 길드원들도 좀 보내야겠군요.”
요한이야 자신을 보호할 수 있으 니 됐다.
프란츠는 아카데미에 있으니 지 금 누구보다 안전할 것이다.
남은 것은 윌카스트 백작뿐.
광약에게 그를 보호하게 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숨겨놔야 하니 도 둑 길드를 이용해야 했다.
간단하게 명령을 내린 요한은 저 택을 가리켰다.
그들이 안으로 들어가자 요한은 주머니에 손을 꽂았다.
왕자들을 찾아간 요한은 예만 원 장에게 했던 식으로 설명했다.
치안통제국이 해체되면 그 힘을 왕가에서 흡수하라고.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했지만.
중앙 귀족 역시 귀족이라는 요한 의 말에 헤르듀크와 나마스는 동의 했다.
중앙 귀족들이 숨기고 있는 힘을 끌어내기 위한 방편이기도 한 만큼 그들은 쉽게 받아들였다.
물론 치안통제국이 해체되면 꽤 나 바쁠 것이다.
성철쇄 기사단이나 로디악 기사 단 외에도 인재를 바라는 이들은 많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은 왕가에서 할 일이 다.
요한은 어제 있었던 일들을 생각 하며 싱글벙글 웃었다.
똥 씹은 표정으로 앉아 있는 파 보의 얼굴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이번 일을 제대로 해결하였군. 요한. 수고했다.”
“감사합니다.”
“관련자들에 대한 처벌은 귀족원 장의 요청에 따라 귀족원에서 해결 하도록.”
“따르겠습니다. 폐하.”
“그리고 치안통제국장.”
“……크윽. 예.”
"치안통제국에서 해내지 못한 일 을 요한이 해냈다. 이에 대해서 어 찌 생각하는가.”
“송구스러울…… 뿐입니다.”
“그렇다면 치안통제국의 해체는 받아들이겠나?”
파보는 눈을 감았다.
그냥 요한을 잡아내고,일을 좀 쉽게 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런데 이런 결말이 올 줄이야.
그는 무시무시한 눈으로 요한을 노려보았다.
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이고,나 온 결말이다.
패배했다면.
그 패배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 다.
“……승복합니다. 치안통제국은 오늘부로 해체하고. 모든 자료는 일단 로디악 기사단에 위임하겠습 니다.”
“요원들의 직무가 정지될 테니. 그 임무의 이관도 생각하도록.”
“알겠습니다.”
기관 하나를 날려 먹은 것이다.
이번 일에 대한 대가는 근신 정 도로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남작.
최악의 경우 준남작까지 강등될 수 있었다.
‘빌어먹을.’
국왕과 예만,왕자들의 말이 들 렸지만 파보의 귀에는 그것이 들어 오지 않았다.
결국 판결이 나고 모두가 나가자 파보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요한.”
“왜 그러시나?”
느긋하게 웃으며 요한이 자신을 바라보자 파보는 이를 갈았다.
“이것으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 라. 나는……“반드시 기어 올라오겠다고?”
“해봐. 하는 건 좋은데.”
요한은 뒤통수를 긁적거리며 일 어나 파보의 어깨를 잡았다.
“그래도 상대는 봐가면서 덤비는 것이 어떨까?”
씩 웃은 요한은 양팔을 벌렸다.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나은 법이지. 신념,자존심. 다 좋지 만……그를 향해 가볍게 예를 갖춰 인 사한 요한은 몸을 돌리며 말했다.
“그래도 사는 것보다 중요한 건없다고.”
오히려 요한은 그가 덤벼주기를 바라고 있었다.
“크......w“내 말을 이해 못하겠다면. 뭐 상관없어.”
슬쩍 고개를 돌린 요한은 마치 길가의 돌멩이라도 보는 듯한 시선 을 보냈다.
“덤비고 싶으면 덤벼봐.”
그와의 만남을 마치고 요한은 양 유위를 찾았다.
그가 오자 양유위는 공손히 반기 며 물었다.
“파보를 감시할까요?”
“어. 강등 당한 인간이 그냥 있 을 것 같지는 않네. 헛짓거리하 면…… 바로 퇴장시켜버리자.”
“하지만 공자님이라면 직접 하셔 도 되는 것 아닙니까?”
귀족이든 뭐든 거슬리면 제거하 는 요한이다.
그런 요한이라면 직접 죽여도 되 는 것 아닌가.
의아해하는 양유위에게 요한은 인상을 썼다.
“그러다가 할머니 쓰러지신다. 아무튼 뒤는 부탁하지.”
그는 차가운 어조로 말하며 양유 위의 책상에 있는 빵을 씹어먹었다.
환생한 공자님께서 회귀하셨다